근현대 역사는 시민의 힘으로 쓰여진다는 사실
다시 보는 <서울의 봄>과 <나폴레옹 대관식>
12.12 쿠데타가 내비친 권력 욕망의 잔혹한 속성
절대왕정 회귀 꿈꾼 나폴레옹 시민 바람 짓밟아
역사의 흐름 결정해 온 시민이 나아길 길 만들자
영화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군부 쿠데타가 벌어진 9시간 동안의 숨 막히는 과정을 무대 삼아 권력의 욕망과 폭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승리를 거머쥐려는 자들의 치밀한 계산과 비열한 술수, 그리고 이를 저지하려는 저항군의 몸부림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군부 내 충돌은 내전 직전까지 치닫고, 영화 속 사건들은 현실을 뒤흔드는 듯한 강렬한 울림을 준다.
쿠데타 세력에게로 권력이 급격히 이동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이미 결과를 알고 있으면서도, 영화가 제공하는 긴장감에 몰입하게 된다. 한편 저항군은 필연적으로 실패를 맞이할 운명이었지만, 그들이 신념을 지키려 했다는 사실 자체로 의미가 크다. 저항이 힘을 잃고 먹먹해질수록 우리는 역사의 냉혹한 현실과 마주하게 되며, 그 무게를 묵묵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에 젖기도 한다.
영화는 반란 세력이 권력을 탈취하는 과정을 가감 없이 그려낸다. 쿠데타가 성공에 가까워질수록 군사력은 더욱 난폭하게 휘둘러지고 피로 얼룩진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권력을 쥐기 위해 폭력을 서슴지 않는 그들의 모습은 관객을 숨죽이게 만든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충돌과 군사적 압박은 영화적 긴장감을 극대화하며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듯, 쿠데타가 성공한 후 자축하며 터뜨린 샴페인과 단체 사진 촬영은 왕좌를 차지한 그들의 착각과 자만심이었다. 그러나 화려한 축배 뒤에는 학살과 억압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들이 승리를 기념하는 순간, 국민이 맞닥뜨릴 재앙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역사는 그 비극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이들이 자축하는 장면을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의 그림 <나폴레옹의 대관식>(1807)에서 마주하게 된다. 나폴레옹은 교황을 대신해서 아내 조세핀에게 왕관을 직접 씌워준다. 그림은 스스로 권력을 장악하며 프랑스 혁명의 이상을 배반하고 왕조 시대로 회귀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영화에서 쿠데타 세력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의 기대를 배신하고 군부 독재를 부활시켰다는 점에서 그들의 속성을 상기시킨다.
나폴레옹의 등장은 프랑스 혁명의 지지를 받으며 도도하게 등장했다. 자유와 평등, 박애를 외쳤던 시민의 바람은 공화정이었으나, 그는 왕정으로 회귀했다. 이처럼 혁명의 성과가 새로운 권력자의 손에 넘어간 과정은 12·12 쿠데타 이후 군부가 권력을 장악한 모습과 겹친다. 프랑스 혁명을 배신한 나폴레옹처럼, 한국에서도 민주화의 희망은 군부에 의해 짓밟혔다.
10·26 사태 후 시민들은 군부 시대의 종말을 기대했지만, 12·12 쿠데타가 그 희망을 무너뜨렸다. 1980년,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총성과 군화 소리에 묻혔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진 저항은 더욱 처절했고, 군부의 폭력은 도시를 피로 물들였다. 자유를 향한 꿈은 잠시 땅에 묻혔지만,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역사는 늘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는 절망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쿠데타의 화려한 승리는 결국 비극의 시작일 뿐이었다. <나폴레옹의 대관식>이 권력의 아름다움을 묘사했다면, <서울의 봄>은 그 아름다움이 국민을 희생시키며 만들어진 것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민주주의는 결코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피와 희생으로 꽃피어왔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역사는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 그리고 우리가 경계해야 할 위험을 끊임없이 가르쳐준다.
결국, 영화 <서울의 봄>은 군사 반란의 기록이 아니라, 저항했던 이들의 피로 얼룩진 역사의 증언이다.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이상이 아니라,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존과도 직결된 투쟁의 영역이다. 군부의 탄압은 정치적 억압을 넘어 국민이 꿈꾸던 자유와 존엄을 부정하는 것이었고, 결국 시민의 희생으로 역사는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역사는 늘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시민의 저항이 곧 역사의 흐름을 결정하며, 권력은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를. 영화와 예술이 모든 질문에 해답을 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본질적인 질문을 찾아가도록 이끈다. 12.3 비상계엄을 겪으며 폭력에 맞섰던 시민들의 저항은 민주주의의 불씨를 지켜냈으며, 우리는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역사를 써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