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폭력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리뷰] 화이트헤드 소설 <니클의 소년들>

미국 플로리다주 ‘니클 학교’의 만행 고발

과거엔 구체적 울타리에서 행해진 폭력

이젠 온라인서 은밀하고 광범하게 확산

사회적 반성 통해 폭력 해체 방법 찾아야

2025-01-27     황융하 시민기자

"그 녀석들은 죽어서도 골칫덩이였다."

콜슨 화이트헤드의 소설 <니클의 소년들>은 이런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소설 속 모든 긴장과 대립을 응축한 서두이자 작품 전체의 알레고리다. 여기서 '그 녀석들'은 니클 학교에서 학대받는 소년들을 말하지만, 더 나아가 제도적 억압 속에 갇힌 약자들의 은유다. 그들을 '골칫덩이'로 규정하는 이는 그들을 억압하는 권력자들, 더 나아가 체제 자체다. 이 문장은 권력과 저항이라는 보편적 구조를 통해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콜슨 화이트헤드의 소설 '니클의 소년들' 표지 (부분). 사진=은행나무 출판사

본문에서 "사람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힘이 있는데도 행사하지 않는다면, 그런 힘을 갖고 있는 의미가 없지 않은가."(p.141) 하는 엘우드의 독백은 위험한 폭력으로 도덕적 이상을 설파한다. 반면 터너는 "결국 사기꾼이 패를 뒤집고 돈과 희망을 모두 쓸어가겠지"(p.143)라며 냉소적인 현실 인식을 드러낸다. 이 두 인물의 대비는 작품의 핵심 갈등인 이상과 현실, 희망과 체념의 대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화이트헤드는 이 두 관점 사이의 긴장을 통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더 나은가? 이상을 포기하지 않는 것인가, 현실을 직시하며 살아남는 것인가?

니클 학교는 플로리다주의 실제 사건인 '도지어 남학교'를 모델로 하고 있다. 111년 동안 수천 명의 학생들이 그곳에서 학대받았고, 수많은 삶이 파괴되었다. 소설은 이를 은유적으로 담아내며, 체계적 폭력을 고발한다. 소년들이 링 위에서 싸우는 장면은 격투가 아니다. "마치 감방의 벽을 주먹으로 뚫고 나가려는 것 같았다"(p.145)라는 묘사는 그들의 투쟁이 생존을 위한 몸부림임을 상징한다.

폭력은 선형적으로 연결된다

죽어서도 '골칫덩이'로 남는 소년들, 특히 그리프의 죽음은 단순한 비극을 넘어선다. 작품은 50년 후 발굴된 그의 유해를 통해 폭력의 근원을 명확히 드러낸다. "검시관은 부러진 손목뼈를 보고 그가 죽기 전에 손목이 묶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p.148)는 대목은 사회 구조적 폭력으로 인한 소년들의 고통을 증언한다. 이는 발터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Angelus Novus)'를 연상시킨다. 벤야민은 과거의 희생자들이 지워지지 않고 역사의 잔해 속에서 계속 목격된다고 말한다.

그리프의 결말은 승리와 패배의 경계가 모호한 장면으로 그려진다. "결과적으로 흑인 소년의 승리였다"(p.147)는 판정은 허울뿐인 승리다. 그는 싸움에서 이겼지만, 곧이어 체제의 폭력 앞에 패배한다. 그리고 이 결말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리프가 "저는 2라운드인 줄 알았어요!"(p.147)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독자에게 또 다른 질문을 남긴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2라운드'를 반복하고 있는가? 그리프는 체제의 폭력에 굴복하지 않았지만, 그 대가는 비참했다. 여기서 우리는 알베르 카뮈의 '반항하는 인간'을 떠올릴 수 있다. 카뮈는 삶의 부조리 속에서도 저항의 가치를 논한다. 그리프는 체제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음으로써 부조리에 대한 인간적 반항을 구현한다.

소설은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독자는 이를 통해 현재를 직시하게 된다. 한국의 '형제복지원 사건'처럼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억압과 고통이 단지 역사적 비극으로 끝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두 사례는 모두 폭압이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제도와 권력이 이를 주도하거나 묵인함으로써 발생했다는 서글픈 진실을 드러낸다.

 

1월 25일 광화문 집회에서. 사진=이강국 제공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인종 차별, 계급 갈등, 폭력적 제도는 우리가 직시해야 할 현재의 문제로 남아 있다. 소설은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해체하고 변화시킬지 시선을 확대하도록 촉구한다. 체제적 폭력과 불평등은 과거의 유물로 치부할 수 없고 현재 진행 중이며, 우리가 그 유령들을 직면하지 않는 한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니클의 소년들'은 독자에게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억압받는 자들에 대한 연민을 넘어, 체제와 폭력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 구조를 바꾸기 위한 책임을 성찰하게 한다. 그래서 소설의 첫 문장은 독자에게 질문이자 증언이며, 행동을 촉구하는 다짐처럼 다가온다. 과거의 이야기이면서 현재에도 유효한 메시지로 우리를 사유의 공간으로 이끈다.

윤석열 경호처 파티도 권력화 된 생일 축하

소설에서 학교 이사장이 자신의 생일에 학생들에게 축하 노래를 강요하는 장면은 권력의 우스꽝스러운 자기 과시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이다. "돌아오는 금요일에 예순 살이 된다면서 학생들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게 하자 그레이슨 씨는 일어서서 독재자처럼 뒷짐을 지고 고개를 살짝 끄덕여주었다."(p.140)라고 권력자가 자신을 위한 상징적 쇼를 연출하며,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구조를 드러낸다.

최근 폭로된 윤석열 경호처의 생일파티 '노가바' '삼행시' 사례와 묘하게 겹친다. 현실에서 권력은 내재된 과잉 충성을 공공연히 실현하며, 체제 내 위계질서를 공고히 다진다. 이러한 현상은 시대를 초월한 권력의 병폐로, 소설과 현실이 맞물리며 사회적 반성을 촉구한다.

그러나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과거에는 제도와 권력의 폭력이 구체적인 울타리(panopticon) 안에서 이루어졌다면, 지금의 시대에서는 온라인이라는 무형의 공간에서 주조되고 확산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폭력은 더욱 은밀하고 광범위하게 진행되므로, 우리 사회는 이를 직면하고 해체할 방법을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

소설은 과거의 잔혹한 현실을 통해 현재를 성찰하게 하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우리가 직면해야 할 질문들을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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