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 귀환 '2인 방통위' 다시 폭주하나
공영방송 장악 위해 임명한 윤 탄핵 속 역설적 상황
파행 편법운영, 법인카드 유용 의혹에 면죄부 얻은 듯
윤석열 내란 진압 속 언론계의 내란 벌어진 셈
헌법재판소가 탄핵 소추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림으로써 시민들과 국회가 멈춰세웠던 '2인 방통위'가 다시 폭주의 태세를 갖추게 됐다. 탄핵이 기각돼 방통위로 복귀하게 된 이 위원장은 앞으로 김태규 부위원장과 2인만으로 여러 안건을 처리할 것을 시사했다. "적법한 의결을 위해서는 방통위가 합의제 기관으로서 실질적으로 기능하기 위한 최소한의 위원 수, 즉 3인 이상의 위원이 재적하는 상태에서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하다”는 판단은 헌재 재판관 8인 중 4인의 찬성을 얻는 데 그쳤다.
헌재의 결정은 2인 방통위 체제에 제동을 걸었던 법원의 잇단 판결과 현실에서 부딪치는 상황을 빚어내게 됐다. 공영방송 장악을 위해 이진숙의 방통위장 임명을 강행한 대통령 윤석열은 탄핵과 함께 구속된 상황이지만 정작 이진숙은 귀환하게 된 것도 역설적인 국면이다.
지난해 8월 2일 국회에 의해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5개월여 만에 직무 복귀가 이뤄진 헌재 결정 직후 “2인으로도 최소한 행정부에서 업무를,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판단을 내려 주신 의미 있는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이진숙은 “앞으로 할 일이 많다”면서 방송사 재허가, 재승인을 거론했다.
MBC 장악을 위한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 선임을 자신과 부위원장 단 2명이 밀실에서 결정한 것으로 요약되는 방통위 편법 파행 운영에 마치 면죄부를 얻은 듯한 복귀의 변이다. 국회 탄핵 소추 사유로 제시된 방송자유 위축과 MBC 사영화 시도, 권력을 비판하는 MBC를 광고거부로 응징해야 한다는 등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 자유를 억압하는 편향된 인식까지 인정을 받은 듯한 발언이다. 취임 당일 비공개 회의를 열고 단 1시간 만에 KBS 52명, 방문진 31명 등 83명의 이사 후보자의 심사를 마친 것과 같은 광속의 폭주를 재개하겠다는 선포쯤으로 읽힌다. 밀실에서 면접도 없이 1인당 43초 꼴로 이뤄진 전례 없는 날림 심사와 같은 일방통행에 허가증을 받기라도 한 듯한 득의의 기세다. 위법적인 2인 방통위를 통해 밀어붙여온 공영방송 사장·임원에 대한 임명, 비판언론에 대한 방심위의 수십차례에 걸친 편향 심의와 무리한 제재, 그리고 법인카드로 빵집에서 수십만 원 어치의 빵을 산 것과 같은 수상쩍은 의혹에 대해서도 면죄부의 판결을 받은 듯한 표정이다.
헌재 심판정의 태극기와 ‘헌법’ 로고 사인을 들면서 기각 결정을 국민께서 내려 주신 것이라고 생각했다던 그가 "직무에 복귀해서 기각 결정을 내려 주신 국민들을 생각하면서 직무를 수행하겠다"고 말한 것에서 보이는 '사명감'이 앞으로 방통위의 위험한 앞날을 예상케 한다.
그러나 헌재의 탄핵 기각이 방통위 운영에 대한 전적인 승인인 것은 아니다. 탄핵 주요 사유인 방송통신위원회 2인 체제 운영을 두고 재판관 절반이 '중대 법률 위반'으로 봤다. “2인의 위원만이 재적한 상태에서는 방통위가 독임제 기관처럼 운영될 위험이 있는바, 이는 방통위를 합의제 기관으로 설치한 입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 인용 의견을 낸 재판관 4인(문형배, 이미선, 정정미, 정계선)의 설명이다. 이들은 "방통위의 의결정족수에 관한 방통위법 제13조 제2항을 위반한 것이고, 이는 그 자체로서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법률 위반에 해당한다"는 의견을 냈다.
“방통위를 직무상 독립을 보장받는 5인의 상임위원으로 구성되는 합의제 기관으로 설계하고, 그 구성에서도 대통령 국회 여권추천 야권추천 위원이 모두 임명되도록 함으로써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중첩적으로 구현한 것은 방통위의 다원적 구성을 통해 방통위가 국가권력이나 특정한 사회 세력의 간섭을 받아 운영될 위험을 방지하고, 서로 다른 의견의 교환을 통해 실질적인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장해, 방통위 의사결정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확보하기 위함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적법한 의결을 하기 위해서는 3인 이상의 위원이 재적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동안 2인 체제에서 이뤄졌던 주요 결정들이 법원에서 잇따라 뒤집힌 것에서도 2인 방통위의 문제는 사법부에 의해 인정을 받았다. 지난해 8월 26일 법원은 이진숙-김태규 2인 방통위가 임명한 차기 방문진(MBC 대주주) 이사 6명의 임명 효력을 정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 서울행정법원 12부는 "2인의 위원으로 피신청인에게 부여된 중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것은 방통위법이 추구하는 입법 목적을 저해하는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MBC에 대한 법정제재를 취소한 결정을 내린 서울행정법원 7부도 "2인의 위원으로 피신청인에게 부여된 중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것은 방통위법이 추구하는 입법 목적을 저해하는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판결은 여야정이 추천하는 5인의 합의제 행정기구라는 이 법 취지를 무시하고 대통령이 추천한 2인의 방통위원을 앞세워 방송의 독립과 언론의 자유를 침해해온 윤석열 정권의 방송탄압에 대한 심판이라는 평가를 받았었다.
그러나 이 위원장 탄핵 기각을 주장한 4인 재판관은 2023년 이동관 위원장과 이상인 부위원장 2인 체제를 언급하면서 수많은 안건을 심의·의결해 온 것을 근거로 들었다. “만약 방통위가 위와 같이 중요하고 시급한 현안을 장기간 처리하지 않고 방치했다면 헌법 및 국가공무원법에 규정된 공무원의 성실의무에 위반하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잡혀야 할 2인 방통위의 파행 변칙 운영의 결과를 오히려 파행 변칙 운영 정당화의 근거로 삼은 것이다.
이진숙과 함께 방통위 2인 체제를 이루고 있으며 이진숙 위원장 직무정지 중에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아 왔던 김태규 부위원장이 이 위원장과 다를 게 거의 없는 언행을 보여왔다는 점에서 이진숙-김태규 2인 방통위가 어떤 시도를 할 것인도 선명하게 그려진다. 김 부위원장은 지난달 31일 국무회의에서 고성을 지르며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재 재판관 2명을 임명했다며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날 밤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 하여금 긴급통신심의위를 소집해 ‘윤석열 탄핵촉구 문자’를 삭제하도록 했다는 것도 알려졌다.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의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 금지’ 조항을 실행해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금지시키려 했다는 얘기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방통위에 ‘유언비어 대응반’을 꾸려 가동하려 했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비상계엄이 3시간여 만에 해제되었기 때문에 이 모든 일들이 실행되지 않았을 뿐이다. 12월 9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서 윤석열 내란범죄 행위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끝내 답변을 회피했다.
이진숙-김태규 2인 방통위의 부활은 내란 진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또 다른 작은 내란, 언론계의 내란을 점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