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날, 류희림 씨의 사퇴를 보고 싶다

윤석열 류희림에 맞선 방심위 평직원들이 쫓겨날 판

방심위 예산 삭감, 국회의 지혜가 필요하다

악보다 선이 승리하는 상식이 통하기를 바란다

2025-01-01     최선영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

‘모든 언론이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가짜뉴스와 여론조작, 허위선동을 금지한다’는 포고령은 매우 노골적이었다. 돌이켜보니 윤석열은 집권초기부터 방송을 장악하고 길들이는 작업을 통해 계엄 선포를 염두에 둔 언론 통제 계획을 준비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2023년 11월, 윤석열의 대리인 류희림 씨가 만든 ‘가짜뉴스 신속심의센터’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계엄사와 유사한 국가 언론 통제 기구로 전락시키려는 시도로 여겨진다. 현판식까지 한 류희림 씨의 야심 찬 ‘가짜뉴스 심의센터’를 좌초시킨 주역은 다름 아닌 방심위 평직원 150여 명이었다. 이들은 방심위 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통신심의위원회지부, 지부장 김준희)를 중심으로 단결해, ‘가짜뉴스 심의센터’로의 인사발령과 부서 이동을 단호히 거부하며 센터 운영 중단을 강력히 요구했다.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 현판식.왼쪽부터 이종육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기획조정실장, 박종현 사무총장 직무대행, 황성욱 상임위원, 류희림 위원장, 허연회 위원, 박종훈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 센터장. 2023.9.26 연합뉴스

‘가짜뉴스 심의센터’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자, 윤석열과 류희림은 정치심의와 민원사주를 남발하면서 진실을 ‘삭제’하고 비판을 ‘처단’하는 악행을 일삼았다. 윤석열은 제멋대로 정연주 위원장과 방심위원을 해촉했고, 국회와 야당이 추천한 위원은 위촉하지 않았다. 대통령과 위원장은 헌법과 법률을 어기는 게 예사였다. 이 과정에서 류희림 씨는 특정 보도를 겨냥해 가족과 친지들을 동원하여 심의 안건 민원을 사주하는 위법과 불법을 저질렀다.

위원장의 민원사주 정황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한 이들도 149명의 방심위 직원들이었다. 이들은 윤석열 정권 초기 권력의 압박이 거세던 시절부터 방송 심의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맞섰다. 그리고 2024년 마지막 날까지 완전한 해결을 위해 싸움을 이어갔다.

만약 이들의 저항이 없었다면, 방심위 ‘가짜뉴스 심의센터’가 윤석열과 류희림 씨의 뜻대로 운영되었다면, 지금 상황은 어땠을까? ‘대한민국 1등 영업사원 외교천재 윤석열’이나 ‘결백한 김건희의 패션 외교’ 등의 언론보도로 뒤덮여 있을지 모른다. 절대 권력에 대한 비판은 압수수색과 검찰 수사를 받고 척결되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야구방망이로 언론을 통제하는 시대에 살게 되었을지 모른다.

눈치도 책임도 수치심도 없는 자칭 방심위원장의 이기심

그런데 방심위 정상화를 위해 싸워온 방심위 직원들은 새해를 맞는 것이 두렵고 불안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국회가 류희림 씨의 방심위 파행 운영을 문제 삼아 2025년 방심위 예산에서 경상비를 대폭 삭감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류희림 씨의 부당 행위를 알리고 저항해 온 직원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처지에 놓이게 된 것.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위원장 연봉 삭감하고 절감 재원을 평직원 처우 개선에 사용하라는 부대 의견을 의결했지만, 류희림 씨는 본인의 연봉 전액(2024년 약 2억 2천만 원)을 수령하겠다는 기이한 의지를 고수하고 있다. 현재 방송회관 13층과 16층에서 근무하는 90여 명의 방심위 사무처 직원들은 류 씨의 이러한 이기심과 무책임한 행보로 인해 도리어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내몰릴 위기에 처해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실에 붙여진 위원장 사퇴 촉구 피켓.(사진출처 : 언론노조 방심위지부. 미디어오늘 2024년 1월 12일 기사 재인용)

류희림 씨의 연봉 사수 고집을 꺾지 못한 사측은 해당 업무 공간의 임대 해지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2월 24일, 미디어오늘은 “이미 실측 작업이 완료되었으며 사측의 공간배치안도 마련됐다. 구성원들은 내년 2월까지 현재 사무실을 떠나야 한다. 13층 디지털성범죄심의국과 16층 정책연구센터는 방심위 서초사무실로, 16층 통신심의국은 17층으로 통합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더욱이, 류희림 씨를 비호해 온 사무총장과 일부 측근의 행보를 감안할 때, 새해 벽두부터 두 개 층의 업무 공간을 불도저식으로 없애는 극단의 조치가 강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류희림의 말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상황이 이렇게 되자 12월 19일 방심위 지부는 성명서를 통해 “경상비 삭감의 여파로 사무처의 근무공간 축소, 교육훈련비 삭감 등으로 노동조건이 심각하게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근로조건 악화는 근로기준법 위반이며 노조와 반드시 협의해야 함에도, 사측은 19일 오후에야 ‘정해진 바가 없다’, ‘경영상 불가피하다’는 답변을 늘어놓았다. 방심위 직원들은 ‘류희림 체제’의 입틀막 심의에 끊임없이 저항해 온 당사자들“로서 류희림 체제에 순응하고 있는 실국장들을 비판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다.

평직원들은 “류희림 씨와 주요 책임자들은 ‘날치기 호선’마냥 19층 밀실에서 직원들과의 어떠한 소통도 없이 일방적인 논의를 자행하고 있다. 사무소를 당장 이전해야 하니 짐을 싸야 하고, 대부분 교육 파견이 취소될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실국장들은 밥값으로 지출되는 월정직책금 2억 7천만 원을 절반이라도 사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의사를 개진하고, 업무추진비 1억 수천만 원을 보전하기 위해 동호회지원비, 학위취득비를 감액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회사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본인들의 이익에 연연하며 직을 유지하려는 낯부끄러운 모습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를 지적했다.

평직원들의 이러한 외침을 외면할 수 없었던 걸까. 이제서야 류희림 씨의 말로가 보인 걸까. 12월 30일 방심위 실국장 6인(기획조정실장, 방송심의국장, 통신심의국장, 권익보호국장, 디지털성범죄국장, 정책연구센터장)은 일괄 보직 사퇴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예산 삭감의 원인 제공자이자 가장 먼저 사퇴해야할 류희림 씨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측근인 이현주 사무총장, 박종현 감사실장, 장경식 국제협력단장도 사퇴하지 않았다.

 

2024년 10월 24일 오전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출석한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왼쪽)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호혜성이 이길 수 있음을 보여줘야

지난 여름, TV로 이진숙 방통위원장의 국회 청문회와 방통위 현안 질의를 보면서, 일부 방통위 직원이 권력에 무비판적으로 맹종하는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는 장면에서 충격을 받았다. 방통위라는 조직이 과연 회생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불법과 편법, 불의에 저항해 이타심으로 연대해온 방심위 직원들의 국회 발언이나 그간의 일관된 행동은 그래서인지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류희림 체제의 불의, 불법과 2023년부터 싸워온 언론노조 방심위 지부는 자유언론실천재단의 제 9회 언론운동 기금 수상자, 미디어공공성포럼 특별상, 이용마 언론상 본상(탁동삼 팀장), 민언련 민주시민언론상 등을 수상했다. (사진 : 2024년 3월 28일 '선거방송심의위원회 규탄 및 류희림 사퇴 촉구 결의대회'. 사진제공 언론노조 방심위지부, 미디어스 재인용)

진화심리학에서는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행동하는 이타적인 사람을 ‘호혜적 인간’으로 정의한다. 진화심리학자 최정규 교수는 저서 <이타적 인간의 출현>에서 “당장 자신에게 이익이 돌아오지 않는다해도, 사회적 규범을 어기는 사람을 징계하거나 보복함으로써 자신이 치르는 비용(희생, 수고, 경제적 불이익)이 더 커진다하더라도, 규칙 위반자를 방치하지 않는 집단이 결국 승리한다”고 설명한다. 찰스 다윈 또한 “고결한 도덕적 가치를 지닌 사람이 많은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경쟁에서 유리하다. 타인에게 동정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집단은 이기적인 집단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 바 있다.

결국 이기적 권력집단과 이타적 집단이 맞붙는다면 후자가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이기적 집단은 자신의 이익 극대화 목적에 의해 행동하기 때문에 종국에는 혼자 남겨질 수밖에 없다.

방심위 평직원들은 1년 이상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규칙 위반자인 류희림 씨를 집단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구성원들은 그를 “위원장”이라 호명하지 않음으로써 상징적 징계를 가했다. 그러니 류희림 씨가 스스로를 위원장이라 칭하고, 연봉 전액을 챙겨간들 무슨 보람과 자부심이 있으랴. 영영세세 계속되는 자리도 연봉도 아니니 헛되고 헛될 뿐.

자기 희생과 호혜적 협조로 결속해 싸움을 이어가는 방심위 직원들은 결국 승리해 오래 생존할 것이다. 공동체 이익을 우선으로 고려하는 집단은 싸움의 과정에서 신뢰와 안정이라는 자본을 축적해 이전보다 더 건강한 집단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심위 예산, 악보다 선을 보는 혜안을 바라며

방심위 직원들이 류희림 씨로 인해 현 업무 공간에서 쫓겨나는 일도, 불이익을 받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업무 공간이 흩어지면 기존 물리적 공간에서의 협력과 연대가 어려워져 방심위의 조속한 정상화가 힘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방심위 사무실이 위치한 서울 목동은 학원 수요가 많은 지역으로, 업무 공간 축소가 되면 원상복구가 어려질 것이 예상된다.

 

2024년 12월 20일 방송회관 19층 위원장 집무실 앞에서 ‘류희림 사퇴’를 촉구한 방심위 평직원들(사진 출처 : 언론노조 방심위 지부)

국회가 류희림 씨 보수 삭감을 결정한 건 잘한 일이나 다만, 그가 편법에 능한 사람이란 걸 간과한 것 같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방심위 다수 구성원이 처할 위기를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채 예산 삭감안이 통과된 점은 그래서 아쉽다. 더욱이 애꿎은 평직원들에게 예산 삭감 불똥이 튄 상황이 문제다.

어느덧 해가 바뀌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12월 2일, 예산안 의결을 미루며 일주일 간 정부와 증액을 협의할 것을 지시했으나, 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논의가 멈춰진 것으로 알려졌다. 더는 시간을 지체할 여유가 없다. 몇 마리 쥐를 잡겠다고 집까지 태우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방심위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토대를 국회가 신속히 마련해 주기를 기대한다.

특히 비상계엄과 제주항공 참사의 혼란을 틈타 류희림 씨가 심의 권한을 다시금 편법적으로 악용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방심위는 우리 사회의 긴급한 현안과 거미줄처럼 연결될 수밖에 없는 핵심 기관이다. 지금은 비상한 시국이다. 방심위 정상화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새해 첫 날, 류희림 씨의 사퇴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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