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살리려면 탄핵만으로는 부족하다

민주시민들이 세계에 확인시킨 민주주의 회복력

권력 유지하려 억지 부린 극우 정치세력이 날려

외국인 투자자들 한국에 대한 불신 더욱 높아져

탄핵은 공직자의 직무상 비위행위에 대한 징계

내란범 형사처벌로 법치주의 국가임을 입증해야

2025-01-01     유상규 에디터

박정희 정권이 ‘대망의 80년대’를 기약하며 의욕적으로 정한 경제 목표는 ‘100억불 수출, 1000불 소득’이었다. 온 국민이 표어처럼 외우고 다녔던 이 목표는 당초 설정한 시점보다 3년 앞선 1977년 달성됐다. ‘10월 유신’으로 영구 집권의 기틀을 마련한 박 정권은 친위 쿠데타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위해 이런 경제 성과를 엄청 자랑삼았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가난한 나라였다. 애국가보다 자주 불러야 했던 새마을노래 가사처럼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해서 ‘부자나라’를 만들어야 하는 시절이었다.

 

5·16 군사반란 직후, 5월 16일 오전 8~9시 경 중앙청 앞에서 박정희 소장과 이낙선 소령, 박종규 소령, 차지철 대위. 위키백과

약 50년이 지난 2024년 한국은 어떤 모습인가? 여러 비교 지표가 있겠지만 우선 국가적 구호였던 수출과 소득만 살펴보자.

2024년 우리나라 수출 목표는 7000억 달러다. 대중국 외교 참사 등 윤석열 정부의 ‘뻘짓’으로 목표에는 못 미치겠지만 6000억 달러 후반대의 연간 수출 실적이 예상된다. 또한 국제통화기금(IMF)이 추산한 2024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4200달러다. 일본(3만 3000달러)을 제치고 세계 20위 안에 들었다. 전 세계 국가 평균 소득(1만 3800달러)의 2.5배에 가깝다. 참고로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590달러로 최하위권이다.

한국은 불과 반세기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수출 실적은 70배, 국민소득은 35배가 늘어나는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수출과 국민소득 이외에 여러 경제 지표를 종합해 보면 세계 10위권 국가로 손색이 없게 됐다. 한국 경제를 말할 때 늘 혹처럼 붙어다녔던 ‘NK(북한) 리스크’라는 말이 언제부터인가 사라졌다. 6·25 전쟁이 종전 아닌 휴전 상태인 분단 상황이어서 언제라도 안보상 위험이 있다는 우려가 없어진 것이다. 더 나아가 세계인들에게 우수하고 즐기고 싶은 대상에는 K를 붙이는 게 관행이 됐다. K-팝, K-푸드, K-컬처, K-드라마 등등. 이들 단어에 붙은 이니셜 K에서 케냐, 쿠웨이트, 카자흐스탄을 연상하는 사람은 없다. Korea는 세계인들에게 부러움의 상징어가 된 것이다.

이런 나라에 느닷없는 비상계엄을 빙자한 내란 사태가 터졌다. 윤석열 일당의 친위 쿠데타다. 일반적으로 국민소득 1만 달러가 넘는 나라에서 쿠데타가 일어나는 일은 없다고 한다. 한국도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여러 차례의 쿠데타가 있었다. 한국민들은 박정희의 5ㆍ16군사반란과  ‘10월 유신’에 이어 전두환·노태우의 12·12, 5·17 등여러 차례의 쿠데타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2024년의 한국에서 쿠데타가 발생하리라고는 세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지난 12월3일 밤 국회 앞에서 안귀령 민주당 대변인이 계엄군의 총부리를 붙잡고 항의하는 모습. JTBC뉴스 화면 갈무리. 

더구나 이번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에 세계인들이 보이는 관심은 후진국 내지 개발도상국 시절의 한국에서 일어난 사태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외교나 문화교류 등의 이유도 있겠지만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돈이 물려있기 때문이다. 한국 금융시장은 이미 국제적 큰손들이 투자하고 있어서, 세계 유수 언론들은 앞다투어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실시간 중계하듯 보도하고 있다. 그들에게 10위권 선진국인 한국에서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가 큰 뉴스이기도 하고, 이후 전개 과정은 더욱 흥미진진했다. 어느 나라 국민이 쿠데타가 났다는데 피난할 궁리는 안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그것도 무장 계엄군이 진입해 있는 여의도 국회로 몰려드나? 비상계엄이 선포된 후 불과 2시간 반 만에 군경의 봉쇄를 뚫고 본회의장에 모인 국회의원들에 의해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고, 새벽 4시 30분 계엄이 해제됐다. 불법 계엄 선포는 불과 6시간 만에 실패로 돌아갔다. 세계 언론은 이 상상하기 어려운 ‘다이내믹 코리아’를 영화 해설처럼 타전하면서, 이를 한국의 놀라운 ‘민주주의 회복력’이라고 칭송했다.

하지만 긍지를 가질 만한 장면은 여기까지다. 이후 벌어진 윤석열 탄핵 소추를 둘러싼 여야 공방, 한덕수 권한대행의 권력 농단 등을 보는 국제 사회의 반응은 싸늘하다. 한마디로 한국은 더 이상 믿을 수 있는 시장이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하기 시작했다. 정확한 수치가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150조 원 이상의 외국인 자금이 한국을 떠났다.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외국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자산운용사들에는 당분간 한국 시장에는 투자하지 않겠다며 계약 종료 통보가 줄을 잇고 있다. 내란 주도 세력이 되레 큰 소리를 치는 상황에서 무얼 믿고 투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니 환율이 오르고, 환율이 오르니 외국인 투자자들은 수익성이 떨어져 자금을 더 빼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헌법재판관 임명과 헌재 판결 등이 결국은 순리대로 해결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국민의 저력을 믿는다는 정치적 수사도 덧붙여가며. 하지만 문제는 시간과 내용이다. 한국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는 한 외국인 투자자들을 붙들거나 돌아오게 할 방도는 없다. 이미 떠날 준비를 끝내 놓고 있는 그들에게 한국은 그래도 믿을 만하다는 인식을 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헌재가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렸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29일 춘추관에서 대국민담화를 마치고 퇴장하는 모습. 2017.3.10 [연합뉴스 자료사진]

박근혜 탄핵 때처럼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헌법재판소의 주문이 나오면 다 해결될까? 국회의 탄핵 소추안 가결 이후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 공방을 이미 목도한 외국인 투자자들은 제2, 제3의 윤석열을 우려한다. 흑백이 명백한 사안을 놓고도 극단적인 정치적 공방이 계속되는 한국은 그들에게 더 이상 신뢰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다. 더구나 탄핵은 공직자의 비위행위나 직무상 과실에 대한 행정 징계에 불과하다. 계엄으로 포장한 친위 쿠데타,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과 그 일당은 징계가 아닌 사법처리을 해야 한다. 그들의 구속과 형사재판이 시급한 이유다.

한국 민주시민들은 응원봉으로 상징되는 비폭력 투쟁으로 불법 비상계엄을 막아내 민주주의 회복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극우 보수 정치권이 이후 권력 유지를 획책하며 온갖 억지를 쓰는 바람에 그 효과를 모두 날려 버렸다. 이제 우리는 내란의 주범 윤석열과 그 동조자들에 대한 형사처벌을 통해 한국에 선진국다운 법치주의가 살아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국제 사회에 쌓인 불신을 씻어내고 경제를 살리려면 탄핵으로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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