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가결에도 맥 못 추는 증시…돌파구 있다
불확실성 줄었으나 고환율 공포 여전
트럼프 리스크에 양대 지수 내리막
‘이사의 충실의무’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 등 기업 가치 개선책 시급
자본시장법만 개정하자는 건 꼼수
좌고우면 말고 연내 상법 개정해야
국내 주식시장이 윤석열 탄핵소추안 가결에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코스피 지수는 탄핵안이 가결되고 처음 증시가 열렸던 16일 전 거래일 대비 0.22% 하락했다. 17일에도 외국인 투자자들이 매물을 쏟아내며 코스피 지수는 1.29%(32.16포인트) 떨어져 2456.81로 거래를 마감했고, 코스닥 지수도 0.58%(4.06포인트) 하락한 694.47에 장을 마쳤다. 원/달러 환율 역시 1440원에 육박하는 등 국내 금융시장 불안이 이어졌다. 정치적 불확실성보다는 약해질대로 약해진 경제의 기초 체력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을 앞두고 증폭되는 불안감이 더 큰 영향을 주는 모양새다.
탄핵안 가결에도 주가 떨어지고 환율은 급등
가장 우려스러운 현상은 환율 흐름이다.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미국 주식시장으로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당분간 달러 강세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는 내년 1월 중순까지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 특별한 돌파구가 없으면 국내 증시를 끌어올릴 방법이 없다는 의미다.
이런 측면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은 수렁에 빠진 한국 증시를 살리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민주당은 비상계엄 사태로 연기됐던 상법 개정안 정책 토론회를 19일 열기로 했다. 이재명 대표가 직접 좌장을 맡아 개정에 찬성하는 일반주주와 반대하는 재계 대표가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양쪽 의견을 충분히 듣고 개정안에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민주당은 토론회에 끝난 이후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 법안을 상정해 올해 안에 상법 개정을 끝낸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사의 충실의무 주주로 확대한 상법 개정 급물살
상법 개정이 시급한 이유는 명백하다. 재벌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다. 현행 상법으로는 지배주주의 전횡을 막을 방법이 사실상 없다. 이는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는 상법 제382조 제3항(이사의 충실의무)의 흠결 때문이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 국한하다 보니 일반주주에 대한 책임이 모호하다. 재벌 기업의 이사회 멤버들은 대체로 지배주주와 직간접적인 인연이 있다. 이들이 중대한 사안을 결정할 때 지배주주의 뜻을 외면하기 어렵다.
일반주주와 지배주주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 상관없다. 하지만 이해충돌이 발생할 경우 현행 상법으로 일반주주를 보호하기 어렵다.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을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를 위하여’로 개정하려는 것은 이런 현실적 이유 때문이다. 이는 매우 시급한 현안이기도 하다. 총수 일가의 3, 4세로 재벌 기업의 경영권이 승계되는 과정에서 일반주주의 이익을 희생하며 지배주주가 이익을 챙기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 총수 일가만 유리한 중복상장 규제 시급
쪼개기 상장(중복상장)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22일에도 빙그레 이사회는 내년 5월까지 인적 분할 방식으로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쪼개 재상장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경영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기업 가치와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했으나 시장에서는 곧바로 ‘중복상장’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알짜 사업을 쪼개면 모회사의 기업 가치가 하락해 일반주주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반면 지배주주는 기존 지분율이 줄어들지 않은 상태로 경영권을 강화할 수 있다. 3, 4세로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쪼개기 상장은 지배주주인 재벌 총수 일가 입장에서는 마법과도 같은 수단이다. 실제로 LG가 LG화학을 쪼개 LG에너지솔루션을 상장하면서 LG화학의 기업 가치는 급락했다. LG 총수 일가는 지배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나 LG화학 일반주주들은 큰 손실을 봤다.
중복사장 지배주주 의결권지분율 5.01~9.52%p 지켜
경제개혁연구소는 최근 발표한 ‘우리나라 지배주주는 왜 중복상장을 선호하는가? 자회사 상장을 통한 지배주주의 지배권 보존 효과 분석’이라는 ‘이슈 & 분석’ 보고서를 공개했다. 지난 2019년부터 올해 6월까지 유가증권과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628개사 중 중복상장에 해당하는 78개 기업을 대상으로 총수 일가의 지분 희석 정도를 추산한 내용을 담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총수 일가가 중복상장이 아닌 유상증자로 참여하면 출자 상장회사에 대한 의결권지분율이 5.01~9.52%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소는 “중복상장으로 외부 자금을 조달할 때 동일인(총수) 등은 의결권지분율 감소를 회피하는 효익을 얻는 셈”이라며 “중복상장은 인수 대상 기업 지분에 대한 부분 인수와 함께 우리나라 재벌들이 피라미드 구조를 형성하는 대표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특히 “중복상장은 지배주주 본인들의 자금을 추가 투입하지 않고도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기업집단의 확장을 도모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경제력 집중 억제 관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등 주요국은 쪼개기 상장 강력 규제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 증시에서는 기업의 중복상장 비율은 매우 낮다. IBK투자증권에 따르면 미국은 0.35%, 중국은 1.98%, 일본은 4.38%, 대만은 3.18%에 불과하다. 이들 국가는 중복상장이 지배주주에게만 유리하고 일반주주에 손해를 주기 때문에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다. 반면 국내 증시에서 기업의 중복상장 비율은 약 18%에 달한다. 개인투자자들이 중복상장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일반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과 함께 자본시장법을 바꾸면 중복상장 남발을 막을 수 있다. 정부와 재계는 자본시장법 개정만으로도 중복상장 등에 따른 일반주주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상법 개정과 자본시장법 개정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사안이 아니다. 두 법 모두 개정이 필요하다.
중복상장 규제를 강화하려면 자본시장법 제165조의4를 손봐야 한다. 이 조항에 상장회사의 합병과 중요한 영업·자산 양수도,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전, 분할 또는 분할합병의 경우 이사회가 주주의 정당한 이익이 보호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을 명시하면 된다. 이사회의 노력에는 합병 등의 목적, 기대 효과, 가액의 적정성 등 의견서를 작성해 공시하는 것이 포함된다. 또 모든 합병 등에 대해 외부 평가기관에 의한 평가와 공시를 의무화해야 한다.
상법 개정과 자본시장법 개정 동시 추진해야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통해 자본시장법 개정만으로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우선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규율 범위가 제한적이다. 이사회의 의사결정이 일반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사례는 각종 자기주식 거래, 증자와 감자, 현물출자 등 자본시장법이 정한 범위 밖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자본시장법 개정만으로는 일반주주에게 피해를 주는 지배주주의 행위를 사전에 규율하지 못한다. 경제개혁연대는 “이사의 주주 보호에 관한 일반적인 원칙 제시 없이 특정 거래에서만 주주 보호 의무를 부과하면 다른 유형의 자본거래로 편법 풍선효과만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법 개정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확대뿐 아니라 일정 규모 이상 상장사에 대해 분리 선임하는 감사위원 수를 늘리고 정관으로 집중투표제를 배제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조항도 담았다. 이사회의 3분의 1 이상을 독립이사로 선임하고 병행전자주주총회의 개최를 허용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지배주주의 전횡을 막아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이다.
더욱이 상법과 자본시장법은 법의 규제를 받는 기업의 범위가 다르다. 상법은 규제 대상이 100만 개가 넘는 데 비해 자본시장법은 상장사 2400여 곳만 규제한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상법 개정 대신 자본시장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 “상장회사 합병과 물적분할·재상장 제도만 개선하는 기술적 덧붙이기만으로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무너진 신뢰는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며 “자본시장법 개정만으로 상법상 주주 충실의무 또는 보호 의무를 대신하려는 것은 상법 개정 논의가 왜 나왔으며 그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