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 '호전적 발언' 경쟁…7천만 민족 볼모로 '도박'
김정은 “남조선은 명백한 적”…핵무력 사용 첫 언급
전술핵 탑재 초대형 북한 방사포 남한 전역 사정권
김정은 “제2 사명, 방어 아냐”…핵 선제사용 재확인
윤석열 정부 ‘이에는 이, 눈에 눈’ 식 단선적 대응만
“확전 각오” 무력 충돌 위험성 높여…치킨게임 양상
북한이 새해 벽두에 600㎜ 초대형 방사포 1발을 동해로 발사하고 나섰다.
2022년 한해를 마감하는 12월 31일에는 초대형 방사포 3발을 발사했다.
올 한해 한반도 정세가 군사 대치 속에 절대 순탄치 않으리라는 것을 예고하는 사건이다.
김정은 “남조선은 명백한 적”…핵무력 사용 첫 언급
새해 첫날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았다. 4년째다.
그 대신에 전날까지 1주일간 진행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6차 전원회의에서 있었던 김 위원장의 보고와 연설 내용을 공개했다. 여기서 김 위원장은 ‘2023년도 핵무력 및 국방발전의 변혁적 전략’을 천명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을 인용해 연합뉴스가 전했다.
보고에서 김 위원장은 “남조선 괴뢰들이 의심할 바 없는 우리의 명백한 적으로 다가선 현 상황은 전술핵무기 다량 생산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부각시켜주고 나라의 핵탄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발언에는 몇 가지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중대한 지점이 있다.
첫째는 김 위원장이 직접 남한을 ‘명백한 적’으로 규정한 점이다. 윤석열 정부의 남한을 겨냥해 심지어 “남조선 괴뢰”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동원하면서 적개심을 드러냈다.
전술핵 탑재 초대형 북 방사포 남한 전역 사정권
둘째는 김 위원장이 핵무력을 남한을 향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밝힌 대목이다.
이전에는 “동족을 향해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누차 공언해왔지만, 이번에 그 발언을 거둬들인 셈이다.
이런 입장은 그가 전날 초대형 방사포의 전원회의 증정 행사 연설에서 더 분명히 드러난다.
초대형 방사포를 두고 김 위원장은 “남조선 전역을 사정권에 두고 전술핵 탑재까지 가능하다”고 말해 유사시 전술핵을 탑재한 방사포로 남한을 타격할 수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조선중앙통신은 초대형 방사포 30문이 장거리 포병부대에 추가로 ‘인도’됐다고 전해 실전배치가 진행 중임을 시사했다.
셋째는 향후 군사적 충돌에 대비해 초대형 방사포와 같은 전술핵무기를 양산하는 한편, 거기에 탑재할 핵탄두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려가겠다고 공언한 부분이다.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것으로 관측되는 제7차 핵실험도 멀지 않아 단행할 것임을 예고한다.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과 첫 군사위성 발사 계획 등도 공개했다.
김정은 “제2 사명, 방어 아니다”…핵 선제사용 재확인
김 위원장은 또한 “우리 핵무력은 전쟁 억제와 평화안정 수호를 제1의 임무로 간주하지만, 억제 실패 시 제2의 사명도 결행하게 될 것”이라며 “제2의 사명은 분명 방어가 아닌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핵무력을 선제공격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
북한은 2016년 7차 당대회에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으나, 지난해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를 통해 그 약속을 철회했다. 선제공격 가능성을 명시한 ‘핵무력 법령’을 채택한 것이다.
핵무력법령은 김 위원장 등 북한 지도부가 “적대세력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하는 경우” 사전의 작전계획에 따라 ‘자동 핵타격’이 실행된다는 내용과 함께, 선제 핵사용 조건 5가지를 열거하고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와 관련, 김 위원장은 미국과 적대세력들이 “극도의 대조선 고립 압살 책동에 매달리고 있다”며 그 사례로 △ 상시 배치 수준 미국 핵타격 수단의 남한 전개 △ 한·미·일 3각 공조 본격 추진을 통한 ‘아시아판 나토’와 같은 군사블록 형성 등을 들기도 했다.
핵 참화 부를 위험천만한 김정은 발언 철회해야
그러나 그 어떤 명분을 내놓더라도, ‘남한을 향해 핵무기를, 그것도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김 위원장의 발언은 결코 넘어서는 안 될 ‘레드 라인’을 넘어선 것이다. 7000만 민족을 핵전쟁의 참화로 몰아넣을 위험천만한 발언으로 즉각 철회돼야 함은 물론이다.
진짜 문제는 사태가 이렇게 악화일로에 있는데도, 윤 정부는 평화를 위한 한반도 위기관리 능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이에는 이, 눈에 눈’ 식의 단선적 대응에 나서 도리어 무력 충돌의 위험성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북한 무인기 침범과 관련해 윤 정부가 “확전을 각오하고 임했다”고 공개한 대목에서 드러난다. 실제로 ‘확전’이 되면 한반도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지, 어떤 재앙이 초래하는지 숙고한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 것도 국민의 불안을 키우는 대목이다.
국방부 “북 핵사용 기도시 김정은 정권 종말”
윤 대통령의 발언들도 호전적이라 할 만큼 수위가 높았다. 12월 27일 국방과학연구소를 찾은 자리에서 “확고한 응징과 보복만이 도발을 억제” “상대에게 핵이 있든, 어떠한 대량살상무기가 있든 도발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줘야” “평화를 위해 압도적으로 우월한 전쟁 준비” “위장된 평화로는 안보의 기반마저 무너진다“ 등의 발언을 했다.
국방부의 이날 내놓은 입장 발표도 비슷하다. 국방부는 출입기자단에 보낸 ‘국방부 입장’을 통해 “북한이 자행한 핵공격 위협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심각히 해치는 도발적 언사”라고 비난하고 “북한이 만일 핵사용을 기도한다면 김정은 정권은 종말에 처하게 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핵 개발 중단과 비핵화 복귀를 촉구했지만 의례적일 뿐이었다.
심각한 것은 남과 북의 정상까지 직접 나서서 호전적 발언들을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그 밑에서는 앞다퉈 상대를 자극하는 극언을 쏟아내면서 상승 작용을 일으킬 것이 불 보듯 해서다. 특히 지금은 어느 쪽도 먼저 자제할 뜻이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한동안 상황은 악화일로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남·북한 모두 치킨게임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극단적 발언들을 자제하고, 말이 행동으로 옮겨지기 전에 서로 냉정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핵개발에 집착하고 핵사용 불사를 외칠 만큼 북한이 ‘고통스럽게 여기는’ 안보상의 우려는 무엇이고, 우리가 북한에 느끼는 안보상의 우려는 무엇인지를 까놓고서,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진지한 대화와 협상의 공간이 필요하다. 7000만 민족의 생명과 재산을 볼모로 도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한반도 평화 유지가 최고의 덕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