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여대 시위 비난과 탄압으로 의기투합한 보수우파
족벌 언론, 보수 정치인, 우익단체들 한목소리
위기 때면 약자 공격하는 이준석·한동훈·오세훈
힘 얻어서 탄압과 보복 쏟아내는 동덕여대 당국
성평등과 민주주의 빠진 일방적 남녀공학 전환
사람, 생명보다 시멘트 바닥과 벽, 동상만 걱정
신남성연대의 학생들 혐오·괴롭힘 방치한 학교
정권 말기에 분출하는 투쟁과 희생양 삼기 시도
요즘 많은 시민은 경제, 외교, 의료, 민생 등 무엇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고 모든 것을 망치고 있는 윤석열 정권의 무능과 실정에 분노하고 있었다. 그것은 매주 주말마다 몇십만 명이 모이는 촛불집회와 10% 대로 추락한 윤석열 지지율로 나타났다. 이제 친위쿠데타 시도로 윤석열 정권에 대한 이 분노는 한 순간도 참을 수 없는 수준이 됐다.
하지만, 이 나라의 보수 정치인과 족벌 언론, 기득권 세력의 관심은 다른 곳들에 있었다. 이들이 그동안에 가장 '충격과 분노'를 느끼고 표현해 온 것 중에 하나는 동덕여대 학생들의 "폭력 시위"였다. 주요 거대언론들이 모두 앞다퉈서 동덕여대 학생들의 "폭력"을 비난하면서 "전쟁터", "난장판"이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있었다.
특히 앞장선 것은 이번에도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는 그런 기사들 중의 하나인 "성소수자 혐오 동아리가 시위 주축? 동덕여대 소요사태 전말"에서 "외부세력들의 선동에 의해 집단 광기로 번진 폭력 시위"라고 낙인찍었다. 이 기사에는 조선일보가 띄워주던 임명묵 '청년논객'도 등장해 동덕여대 학생들을 비판하고 있다.
이런 기사에는 조선일보의 기대대로 학생들을 향한 혐오·조롱성 댓글들이 줄줄이 달렸다. 툭하면 성소수자 혐오를 부추기는 기사들을 실어 온 조선일보가 이런 방식으로 동덕여대 학생들을 공격하는 것은 참 역설적이었다. 이것은 동덕여대 학생들의 투쟁에 대한 적개심이 기득권 우파의 전반적인 흐름이라는 것을 보여 줬다.
특히 보수우파의 유망한 '차기 대권주자'라는 정치인들이 누가 더 동덕여대 학생들을 더 강력하게 비난할 것인지 경연대회라도 하는 것 같았다. 스타트를 끊은 것은 "다른 학생들의 수업권과 안전을 위협했다. 비문명", "고립과 배척을 무기로 삼는 대한민국의 래디컬 페미니즘은 이미 공세종말점에 온 것"이라며 포문을 연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었다.
다음으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폭력 사태 주동자들이 재산 피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이 용납될 수는 없다"라며 학생들을 맹비난했다. 그다음에 올라탄 것은 오세훈 서울시장이었다. 오 시장은 "폭력적인 행태로 인해 생긴 학교 기물 파손"과 "불법으로 기물을 파손한 것은 손괴죄"라면서 경찰 수사를 촉구했다.
마녀사냥에 뛰어든 이 3명 정치인의 공통점을 보자면 먼저 3명 다 여성, 장애인,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부추겨서 정치적 위상을 높이려고 한 과거와 전력이 있다는 점이었다. 또 지금 명태균 게이트나 당게시판 댓글 공작 등으로 정치적 코너로 몰리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결국, 셋 다 모두 자신들의 정치적 위기를 동덕여대 학생들에 대한 마녀사냥을 통해서 탈출하고 싶어 한다는 의심을 샀다. 그래서 시선을 돌리고 물타기 하면서 에펨코리아 등 극우적 청년들이 모여있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인기를 얻으려는 속셈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이준석은 2년 전 '성상납' 위기 때도 장애인 운동단체를 "비문명"이라고 공격한 바 있다.
족벌 언론과 보수 정치세력의 지원사격은 일방적 남녀공학 전환을 추진하던 동덕여대 학교 당국에 큰 힘이 됐다. 처음에는 학생들의 저항에 직면해 쩔쩔매는 것 같던 학교 당국은 덕분에 전면적 공세로 돌아섰다. 학교 당국은 '남녀공학 전환 추진의 잠정 중단'을 약속하는가 싶더니, 한숨 돌리던 학생들을 향해 파상 공세를 쏟아냈다.
'폭력 시위로 학교가 최대 54억 원의 손해를 입었다'라며 언론 플레이하더니, 곧 "폭력 사태, 교육권 침해, 시설 훼손 및 불법 점거에 대해"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총장 성명을 발표했다. 이어서 대학 본관을 점거하고 있는 학생들의 퇴거와 업무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했고, 재물손괴·업무방해 등 6개 혐의로 학생들을 경찰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이것은 경찰력 투입을 통해서 학생들의 투쟁을 강제 해산하고, 나중에 학생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으로 보복하려는 계획의 사전 정비작업으로 보였다. 실제로 엊그제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은 투쟁을 주도한 학생 19명의 "인적 사항을 특정"했고 "외부 개입설도 수사를 검토" 중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짜여진 마녀사냥과 대대적 탄압이 진행됐다. 그러면서 족벌 언론, 보수 정치인, 학교 당국이 모두 절대 말하지 않는 것은 왜 학생들이 이토록 분노하고 저항하게 됐는가의 문제였다. 먼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동덕여대 당국이 부패한 재단 운영과 비민주적 학사 운영으로 이미 악명 높았다는 사실이다.
동덕여대는 3대째 세습되고 있는 대표적 족벌 사학으로 이사장 등 학교 책임자들이 가족으로 구성돼 있었고, 과거에 교비 78억 원을 유용해서 당시 총장과 이사장이 형사 고발된 적도 있다. 학교 자금으로 이사장의 개인 채무를 청산하거나, 교육시설로 구매한 주택에 이사장 가족이 거주한다는 논란도 제기된 바 있다.
동덕여대 재단과 학교 당국은 노후화된 교육시설에 대한 정비와 보수, 부족한 교수 충원 등에 대한 학생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고 학과 통폐합, 여성학 전공 폐지 등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듣거나 반영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분노했던 순간은 지난해 학내 비탈길에서 한 학생이 쓰레기 수거 차량에 치여 사망했을 때였다.
위험을 방지할 난간과 계단 설치에 대한 학생들의 오랜 요구를 학교가 무시하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비극이었기에 이 안타까운 죽음을 학생들은 너무나 슬퍼했다. 그 후에도 학교 당국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결국 이번에 일방적으로 남녀공학 전환을 추진하다가 발각되면서, 학생들의 불신과 분노가 폭발하게 된 셈이다.
더구나 이번에 동덕여대 재단과 학교 당국이 남녀공학 전환을 추진하는 이유나 배경에는 어떠한 진지한 고민도 보이지 않는다. 여자대학은 원래 가부장적 성차별 질서가 극심하던 20세기 초에 여성에게 교육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등장했다. 오늘날에는 여성의 대부분이 대학에 갈 정도로 문제가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한국은 성평등에서 146개국 중 94위를 차지하고 있고, 성별 임금 격차는 OECD 최하위 수준이고, 국회의원이나 대기업 임원 등에서 여성의 비율은 여전히 20%를 넘지 못하고 있다. 불법 촬영, 스토킹, 교제 폭력, 디지털 성범죄 등으로 인해 여전히 많은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과연 여자대학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인지, 어떻게 다양한 성별이 어울리면서 함께 평등을 이룰 것인지 고민과 논의는 필요하고 가능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동덕여대 학교 당국의 고민은 그저 저출생과 입시경쟁의 격화 속에서 어떻게 입학생 수를 늘리고 등록금 수입을 확대할 것인가에 머물고 있었다. 더구나 민주적 의견 수렴도 없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라고 하면서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려는 윤석열 정부와 비슷한 태도였다. 그래서 학생들은 "민주주의는 죽었다",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저항하게 됐다. 11월 초에 처음에 저항이 시작될 때 학생들은 서명을 하고, 성명과 대자보를 붙이고, 항의의 뜻으로 학교 점퍼를 벗어서 전시해 놓는 방식으로 투쟁했다.
그래도 학교 당국이 학생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대화에 나서지 않으니까 본관을 점거하고 수업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11월 20일에는 의결 정족수의 3배가 넘고, 전체 재학생의 약 3분의 1인 1973명이 모여서 학생총회를 열고 99%가 남녀공학 전환 반대에 투표했다. 이것은 대부분의 비폭력적이고 민주적인 저항 운동이 보여 주는 발전 과정이었다.
하지만 족벌 언론들은 학생들이 이 과정에서 시멘트 바닥이나 책상 등에 래커칠로 구호를 적고, (친일반민족행위 명단에 올라간) 설립자 동상에 밀가루를 던진 것만 부각하면서 "폭력"이라고 비난했다. 대량 해고로 노동자의 생계를 끊는 것이 '폭력'이 아니라, 해고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이 공장 벽에 래커칠로 구호를 적는 게 '폭력'이라던 논리의 복사판이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장애인의 권리를 빼앗는 것이 '폭력'이 아니라, 지하철역 벽에 항의 스티커를 붙이는 장애인의 행동이 '폭력'이라던 논리와도 똑같다. 기득권 세력은 언제나 이렇게 살아있는 인간과 생명에게 가해질 고통과 상처보다도 시멘트와 벽, 동상에 가해지는 '고통과 상처'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학생들은 과거 학생운동 전성기 때처럼 무슨 화염병을 던진 것도 쇠파이프를 든 것도 아니다. 그저 동상과 대리석에 래커칠로 구호를 적은 것이고 그것은 '폭력'이 아니라 '저항'이다. 반면 지금 학교 당국, 족벌 언론, 보수우파 정치세력들이 학생들에게 퍼붓는 집중적인 공격과 탄압이야말로 '폭력'적이다.
더구나 동덕여대 학생들은 지난 한 달 동안 반페미니즘을 내세운 극우적 여성혐오 선동 단체인 '신남성연대'의 집중적 공격에도 괴롭힘을 당해 왔다. '신남성연대'는 "동덕 폭도"라고 학생들을 매도하면서 신상 특정까지 위협하는 시위를 학교 앞에서 진행하고 학교로 무단 침입하기도 했다. 이것은 일종의 정치적 폭력과 위협이지만 누구도 막아서지 않았다.
다행히 최근 민주당 여성위원회와 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도 동덕여대 투쟁을 방어했다.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사태의 원인은 대학 구성원인 학생 몰래 남녀공학 전환을 추진한 대학 당국의 비민주성에 기인한다"라고 지적하고 "공학 전환 계획을 백지화하고 민주적 절차와 과정을 통해 구성원 모두의 합의를 도출하라"라고 요구했다.
이런 목소리와 쏟아지는 탄압에 대한 방어의 행동들이 더 많아질 필요가 있다. 물론 동덕여대 투쟁 속에서 성평등과 민주주의를 넘어서, 모든 남성과 성소수자들을 배척하자는 주장, '운동권과 외부 정치세력을 배제한 순수한 투쟁'이라는 잘못된 관점 등이 발견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비판과 토론이 필요하지만, 동덕여대 투쟁을 대표하는 목소리도 본질도 아니다.
무엇보다 동덕여대 투쟁과 권력의 탄압은 윤석열 정권의 말기적 상황을 보여 주는 현상 중에 하나였다. 모든 불량하고 반민주적인 정권은 권력의 말기에 통제력을 잃으면서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투쟁에 직면하곤 한다. 그러면 정권은 다시 그 투쟁들을 마녀사냥하고 짓밟으면서 위기 탈출을 시도한다.
박근혜 정권 말기에도 이화여대 학생들의 투쟁, 공공부문 노동자 투쟁,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한 체포 시도 등이 나타났었다. 지금도 동덕여대 투쟁뿐 아니라 철도와 지하철 파업 등이 등장하고 있다. 이 모든 투쟁들은 심지어 친위쿠데타까지 시도한 윤석열 정권의 퇴진을 향해 나아가고 거기서 다시 만날 더 커다란 물결의 일부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