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돌아온다, 북미 정상회담도 돌아오나?
트럼프 2.0의 현실주의와 동북아시아 평화
중국과 대적하기 위해 북한과 손잡을 수 있다?
헤리티지 재단 ‘프로젝트 2050’ “대중국 집단방위”
미국우선정책연구소 “오늘의 적은 내일의 동맹”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확정됐다. 대다수의 전문가와 언론이 예상했던 박빙이 아니었다. 그는 선거인단 수에서뿐만 아니라 일반 투표수에서도 민주당 해리스 카멜라 후보를 눌렀고, 경합주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었다. 더불어서 하원과 상원 선거에서도 공화당이 강세를 보인 덕분에, 차기 트럼프 정부는 공화당이 다수를 장악한 상·하원의 지원을 받아 ‘트럼프 표’ 정책들을 강력하게 추진할 태세다.
트럼프 정부 2.0은 과연 어떤 정책들을 추진할 것인가? 그의 정책들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최근 쏟아져 나오는 분석들은 트럼프의 개인적 성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트럼프라는 인물이 워낙 성격이 독특하고 강렬하기 때문이다. 그의 '거래주의'적 성향은 미국 대통령직에 집중된 힘 덕분에 전 세계를 뒤흔들 파급력을 갖게 된다. 이미 트럼프 1.0 정부에서 방위비 분담금 요구나 관세전쟁으로 세상이 시끄러웠던 경험이 있다. 그러니 트럼프 2.0에서는 재선에 연연하지 않을 트럼프 대통령이 더 마음대로 세상을 휘저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 국가의 정책은 대통령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미국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의 모델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국가는 거대한 관료기구이기도 하고, 다양한 개인과 이해집단이 정책 결정을 두고 경쟁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국가는 세계 속의 여러 국가와 상호작용을 하며 존재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미국도 예외가 아니고, 트럼프 2.0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정부 2.0의 정책과 그 영향을 전망하려면 트럼프 개인뿐만 아니라 그 주위의 인물과 조직, 미국의 위치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이유다.
MAGA주의: 레이건에서 트럼프로
트럼프 캠페인을 가장 강력하게 받쳐주는 힘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 밑에 집결한 다양한 미국인, ‘MAGA주의자’들이다. 하지만 이 구호는 트럼프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이미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레이건 후보가 내세운 것이었다. 그는 베트남 전쟁, 워터게이트 스캔들, 이란의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뿐만 아니라 무역 적자와 인플레이션 등으로 낙담하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희망적 구호를 던졌다. 유권자들이 열렬히 반응한 결과 그는 카터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40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레이건 2기 정권 대소련 정책, 협상 쪽으로 극적 선회
레이건 대통령은 미사일 방어체계인 '별들의 전쟁'을 추진하며 소련과의 군비경쟁을 강화했다. ‘힘을 통한 평화’를 추구한 레이건 정부의 정책 때문에 1970년대의 데탕트 시대가 저물고, 동북아시아에서 전쟁 위기가 높아지는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냉전이 심화됐다. 하지만 레이건 대통령은 재선 이후 2기에서는 대 소련 정책을 극적으로 전환했다. 협상을 통한 군비통제에 힘을 기울여 1987년 중거리 핵전략 조약(INF)을 체결, 중거리 지상발사형 탄도·순항 미사일을 폐기하는 데 성공했다. 또 핵무기를 감축하자고 소련에 제안하여 전략무기 감축조약 (START) 협상을 시작, 1991년 그 조약이 체결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기도 했다.
동시에 레이건 대통령은 미국의 무역적자를 감축하기 위해 동맹국을 압박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1981년에는 일본과 자동차 수출을 ‘자발적’으로 감축한다는 협약을 체결,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어서 1985년에는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일본과 독일 등 주요 동맹국과 협상 끝에 미국 달러의 가치를 절하하고,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가치를 절상한다는 합의를 끌어내기도 했다. 환율 조작으로 미국의 수입을 줄이고 수출을 늘리려는 정치적 합의였다. 이러한 정부의 개입으로 미국의 생산력이 활력을 되찾았는지에 대한 평가는 갈리지만, 적어도 단기적으로 미국 자동차 산업이 재생의 전기를 맞이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하겠다.
레이건 대통령은 이렇게 냉철한 현실주의에 기초하여 외교안보 정책을 집행했다. 자국의 군사력이 국방의 핵심이지만 적국의 군사력을 협상을 통해서 통제할 수 있으면 이것도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인식한 것이다.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불렀지만 인도적 지원에 인색하지 않았고, 군비통제 조약에 대해서는 “신뢰하지만 검증하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동맹국이 중요하지만 ‘퍼주기’만 하지는 않았다. 동맹국과도 냉정하게 거래했고, 받아낼 것은 힘으로 압박해서도 ‘쟁취’했다.
트럼프 2.0의 현실주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레이건의 이런 구호를 21세기의 MAGA주의자들이 소환하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미국 우선주의’나 백인 우월주의 같은 요소들을 걷어내면 트럼프가 추구하는 정책들의 핵심은 레이건이 이미 40여 년 전에 선을 보였던 노선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MAGA주의의 이러한 현실주의는 트럼프 캠페인을 뒷받침하는 싱크탱크의 정책에서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트럼프 캠페인의 양대 싱크탱크로 볼 수 있는 헤리티지 재단의 프로젝트 2050과 미국우선정책연구소(AFPI)의 국방정책을 중심으로 분석해보자.
"중국이 가장 현저한 위험”
우선, 프로젝트 2050은 중국을 “가장 현저한 위험”으로 적시하고 있다.
미국의 안보와 자유, 번영에 가장 현저한 위험은 중국이다. 중국은 미국 이외에 가장 강력한 국가다. 중국은 아시아를 지배하려 하는 것이 확실하며, 그 위에서 세계적 우월성을 누리려 한다. 중국 정부가 이 목적을 달성한다면 그것은 미국의 핵심 이익을 극적으로 훼손시킬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이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도록 ‘거부 방어’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은 미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비용과 위험 수준에서 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미국은 혼자서 중국의 도전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동맹국의 방위 분담이 ‘미국 국방전략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밝힌다. 즉 미국은 “동맹국이 방위 분담을 증대하도록 지원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강력하게 장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프로젝트 2050은 러시아, 이란, 북한 및 초국가적 테러도 “실재의 위협”으로 지적하면서, 이 위협에 대처하는 데에도 동맹국들의 방위 분담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에 대해서는 “북한에 대응한 비핵 방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라고 구체적으로 요구했다. 또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는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와 같은 동맹국과 대만의 방위비 증액과 협력을 지원하여 집단방위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비핵 방위에서는 동맹국들의 역할 분담 확대를 촉구하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 등의 핵무력을 억제하는 능력은 미국이 행사해야 한다는 점도 확실히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핵무력을 확대·현대화하고, 전술적 차원에서도 대응할 수 있는 신 핵능력을 개발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또 육군과 해군을 강화해 ‘양대 지역 전쟁’을 동시에 수행할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육군은 5만 명을 늘려야 하고, 해군은 군함 355척 이상을 건조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특히 우주전 및 사이버 전쟁에 있어서는 바이든 정부의 방어적 태세를 비판하며 전술·전략적 공격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의 방위산업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도 잊지 않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2.0이 고립주의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냐는 일부의 전망과는 매우 다른 국방정책이다. 한국에 기대하고 있는 것이 ‘대북 방어’ 분담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초국가적 테러 등을 포괄한 방위 분담이라는 점도 잘 드러나고 있다. 동시에 트럼프 정부에 방위 분담을 늘려주는 대가로 한국의 독자적 핵능력을 추진하자는 일각의 시각도 ‘우물 안의 개구리’임을 알 수 있다. 미국은 트럼프 2.0이라고 해도 핵무력 패권을 양보할 의사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핵무장을 확대하고 현대화하여 그 지위를 강화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안전 위해서는 적국에 유연한 접근 필요”
프로젝트 2050은 이와 같이 미국이 군사력의 최첨단을 확보하고 있으면서 동맹국에 방위 분담을 강요하여 '힘을 통한 평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주의적 안보정책은 미국우선정책연구소의 보고서에서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연구소는 안보정책 보고서에서 ‘적국에 접근하는 미국우선주의의 4대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데, 적국과의 관계를 매우 현실적으로 유연하게 접근하고 있다.
1. 동맹국뿐만 아니라 적국과도 직접 관여하지 않고서는 미국민을 안전하게 할 수도 없고 세계의 위기를 해결할 수도 없다.
2. 적국과의 관여는 조건을 수반하지, 일방적 양보를 의미하지 않는다.
3. 오늘의 적은 내일의 동맹이 될 수도 있다.
4. 적국의 행동에서의 변화는 의도의 변화와 일치해야 한다.
이 보고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관여로 미사일 시험을 1년간 중단시켰고, 수십 년 전 전장에서 사망한 미군의 유해를 송환받기도 했다”고 서문에서 밝히며 적국과의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하면서도 외교협상을 통해 군축조약들을 성공시켰던 모습을 상기시킨다.
작은 적으로써 큰 적을 견제한다?
이 보고서는 북한과 같은 적국을 미국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전략적 적국인 중국에 대한 대응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하는 것이 “현명한 외교 정책”이라고 명시하기도 했다. 트럼프 2.0에서는 중국이라는 ‘가장 현저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북한과의 관계 개선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25년 트럼프 정부 2.0이 공식적으로 출범한 이후 집행할 정책은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다. 다양한 국내적 국제적 요소들에 의해 여러 가지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 2.0을 뒷받침하고 있는 MAGA주의, 그리고 그것을 정책화하고 있는 연구소의 지향점은 명확해 보인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는 위기와 기회의 양면성이 공존한다. 위기를 피하고 기회를 살릴 수 있을 것인가? 연말연시에 숙고해야 할 질문이다.
* 이 글은 지난 11월 26일 기독교사회발전협회 포럼 카이로스에서 발표한 내용 중 한반도 관련 부분만 정리한 것이다. 강의 전체 내용은 다음 유튜브에서 시청할 수 있다. https://youtu.be/Ww2IybfsljM?si=Uj38oKZJnhp6je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