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경영 위기에 보조금도 줄 판…삼성은 괜찮나
인텔 투자 지연에 미 정부 보조금 축소
AI 반도체 흐름 읽지 못해 경영난 봉착
삼성도 인텔과 유사한 실책으로 위기
이재용 회장 사법 리스크 ‘산 넘어 산’
검찰 불법 경영권 승계 2심서 5년 구형
기술 초격차 복원·거버넌스 개편 시급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인텔에 대한 보조금을 5억 달러 이상 줄일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반도체 공장 건설 프로젝트 등 일부 투자가 지연되자 기왕에 주기로 한 보조금을 축소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4일(현지시간)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이런 내용을 전했다.
인텔, 경영 위기 여파로 보조금 5억 달러 못 받을 판
인텔이 미국 정부 보조금이 줄어들 수 있는데도 일부 투자를 지연시킨 이유는 극심한 경영난 탓이다. 인텔은 반도체 시장의 흐름을 읽지 못해 기술 주도권을 엔비디아에 내줬다. 실적 부진을 만회하려고 시작한 신규 사업들마저 번번이 실패했다. 원인은 비대해진 조직과 고장 난 의사 결정 시스템에 있다. 인텔의 몰락은 삼성이 어려움에 빠진 이유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검찰은 25일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부당 합병과 회계 부정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항소심(2심)에서 1심과 같은 징역 5년과 벌금 5억 원을 구형했다. 1심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됐으나 항소심에서 다른 판결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위기를 타개해야 할 시기에 또 다른 난제가 겹칠 수 있다. 삼성이 인텔의 위기를 ‘강 건너 불’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인텔은 지난 2022년 미국 의회를 통과한 반도체 지원법(칩스법)에 따라 최대 85억 달러를 보조금으로 미국 정부와 예비적 합의를 맺었다. 단일 반도체 기업에 제공되는 보조금 중 가장 많은 금액이다. 미국에 투자한 대가로 대만의 TSMC는 66억 달러, 삼성전자는 64억 달러, SK하이닉스는 4억 5000만 달러의 보조금을 받는다.
한때 반도체 시장 지배했던 인텔이었는데…
인텔은 세액 공제와 낮은 금리의 대출 등을 통해서도 110억 달러의 정부 지원을 받는다. 보조금을 합치면 총 195억 달러에 달하는 거액이다. 그러나 인텔은 이 돈을 다 받지 못할 처지에 몰렸다. NYT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보조금을 축소하기로 한 이유는 인텔이 계획했던 오하이오주 반도체 공장에 대한 투자가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텔 인 사이드’라는 광고 문구는 한때 인텔이 세계 반도체 시장의 패자였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인텔 반도체를 사용하지 않으면 정보기술(IT) 기기를 만들 수 없을 정도로 인텔의 위상은 높았다. 개인용 컴퓨터(PC) 시대에 인텔은 말 그대로 반도체 시장의 지배자였다.
그러나 인공지능(AI) 반도체 경쟁에서 밀리면서 왕좌의 자리를 엔비디아에 내주며 몰락의 길을 걸고 있다. 실적 부진에 더해 미래 비전까지 불확실해지면서 기업가치는 땅에 떨어졌다. 미국 우량주식을 묶어 산출하는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 구성 종목에서 제외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인텔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투자로 승부수를 던졌으나 또 다른 실패가 되고 말았다. 이 분야의 절대 강자인 TSMC와의 기술 격차를 극복하지 못했다. 인텔이 기사회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규모 감원과 매각설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인텔 몰락과 삼성의 위기 ‘닮은꼴’
인텔의 보조금 축소와 삼성전자가 받기로 한 보조금과의 관련성은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임기 내 보조금 지급을 마무리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TSMC는 최근 보조금 지급이 확정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보조금 문제도 조만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현재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공장 등을 건설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다고 해도 칩스법에 근거해 지급하기로 한 보조금이 없어질 가능성이 매우 낮다. 다만 트럼프가 반도체 기업에 대한 보조금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던 만큼 지급 조건을 까다롭게 바꾸거나 세제와 대출 혜택을 축소할 수 있다.
미국 정부의 보조금은 삼성전자에게 지엽적인 문제다. AI 반도체에서 뒤처진 기술력을 복원하고 중국 기업의 추격을 따돌리는 게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23일(현지시간) 특집 기사에서 삼성전자의 위기를 여러 측면에서 분석했다. 고대역폭 메모리(HBM) 부문 경쟁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린 데다 사상 첫 노조 파업과 트럼프 재집권에 따른 불확실성 증폭 등을 삼성이 직면한 위기 요인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이재용 회장이 혹독한 시험대에 올랐다고 강조했다.
이재용 회장 혹독한 시험대 통과할 수 있을까
삼성전자의 위기를 초래한 근본 원인은 신기술 투자 시기를 놓치게 만든 기업 거버넌스(지배구조)와 의사결정 시스템에 있다. 관료화하고 경직된 조직 문화와 부서 간 칸막이도 심각한 문제다. 말로는 신기술 개발을 중시한다면서 최종 의사 결정은 재무적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등 최고경영진의 표리부동한 언행도 위기를 심화시킨 요인이다.
그러나 이 지경에 이른 최종 책임은 최고경영자(CEO)인 이재용 회장에게 있다. 1심 판결과 달리 2심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삼성의 위기는 더 커질 것이다. 인텔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이 회장의 결단이 중요하다. AI 반도체 분야의 기술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의사 결정 시스템을 이사회 중심으로 바꾸는 게 시급하다. 그래야 FT가 언급한 ‘혹독한 시험대’를 통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