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장관이 대놓고 휴지조각 만든 '피의사실 공표죄'
노웅래 뇌물 받았다 단정, 피의사실 낱낱이 열거
역대 법무장관 초유…검사들도 밥 먹듯 법 위반
헌법상 대전제 '무죄추정의 원칙' 안중에도 없어
여론몰이로 혐의 기정사실화, 재판 전 유죄 낙인
윤석열-한동훈 정치 검찰에선 아예 일상다반사
"노웅래 의원이 청탁을 받고 돈을 받는 현장이 고스란히 녹음되어 있는 녹음파일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청탁을 주고 받은 뒤 돈을 받으면서 '저번에 주셨는데 뭘 또 주냐' '저번에 그거 제가 잘 쓰고 있는데'라고 말하는 노웅래 의원의 목소리, 돈봉투 부스럭거리는 소리까지도 그대로 녹음되어 있습니다.
그 밖에도 '귀하게 쓸게요' '고맙습니다' '공감 정치로 보답하렵니다'라고 돈을 줘서 고맙다고 하는 노웅래 의원의 문자메시지도 있고, '저번에 도와주셔서 잘 저거를 했는데 또 도와주느냐'라는 노웅래 의원의 목소리가 녹음된 전화 통화 녹음파일도 있고, 청탁받은 내용을 더 구체적으로 알려달라는 노웅래 의원의 문자메시지도 있고, 청탁받은 내용이 적힌 노웅래 의원의 자필 메모와 의원실 보좌진의 업무수첩도 있으며 청탁을 이행하기 위해서 공공기관의 국정의정시스템을 이용해서 청탁 내용을 질의하고 회신하는 내역까지 있습니다.
노웅래 의원은 브로커로부터 6000만 원의 뇌물 및 정치자금을 받았고, 단순히 불법 자금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브로커의 청탁을 적극적으로 이행하려 했으며, 그 과정에서 국회 보좌 조직까지 이용했습니다. 자기 목소리가 나오는 돈 받는 현장 녹음까지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의 조작이라고 거짓 여론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8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직접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설명한 대목이다. 온갖 매체를 통해 생중계되는 현장에서 노 의원이 뇌물 및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단정하며 피의사실을 낱낱이 열거함은 물론, 노 의원이 '거짓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고 비방까지 가한 것이다. 역대 법무장관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수준의 피의사실 공표 장면이다. 과거 법무장관들은 체포동의 요청 '취지 설명'을 하더라도 대략적인 개요를 포괄적으로 언급했지, 한 장관처럼 세부적인 혐의 내용을 공개한 적은 없었다.
"검찰, 경찰 그 밖에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수행하면서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소제기 전에 공표(公表)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형법 제126조 '피의사실공표'에 관한 조문이다. 수사 중 알게 된 피의사실을 기소 전 외부에 발표하거나 흘리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한다고 형량까지 명시하고 있다. '피의사실'(被疑事實)은 글자 그대로 '의심을 받는 사실'로서 객관적이거나 확정된 진실이 아니라 수사 단계의 잠정적,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검사들은 피의사실공표죄 위반을 우습게 안다. 그야말로 밥 먹듯이 어긴다. 그러니까 '일국의 법무장관'조차 피의자가 혐의를 완강히, 일관되게 부인하는데도 검증되지 않은 검찰의 조사 내용을 국회 본의의장에서 전 국민을 상대로 미주알고주알 읊어대는 것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헌법상의 대전제는 안중에도 없다.
누구나 아는 상식인 '무죄추정의 원칙'을 새삼 환기하자면, 재판에서 최종적으로 유죄라고 판정된 자만이 범죄인이라 불려야 하며, 단지 피의자나 피고인이 된 것만으로는 범죄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헌법 제27조 제4항은 "형사피고인은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라고 해 이를 확고히 못박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피의사실은 공표되면 안 되는 것이다. 이는 검찰권 남용을 억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대 검찰은 수사의 표적이 된 특정 대상을 먼지가 날 때까지 털고, 때로는 사실을 부풀리거나 조작까지 한 뒤, 그렇게 만든 피의사실을 언론에 흘려 여론몰이를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혐의 입증에 자신이 없으면 더욱 그랬다. 기자들이 무분별하게 쏟아내는 의혹 보도를 통해 여론재판으로 혐의를 기정사실화하고 정치적 타격을 입히면, 담당 판사도 그에 영향을 받아 유죄 심증을 굳히는 수순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한명숙 전 국무총리, 조국 전 법무장관 등 숱한 민주개혁 진영 인사들이 재판도 하기 전 이미 죄인으로 낙인이 찍혀 만신창이가 됐다.
이 같은 폐해가 끊임없이 되풀이됨에 따라 문재인 정부 당시 박상기 법무장관은 2019년 2월 28일 수사 과정에서 원칙에 위배되는 피의사실 유출로 피의자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라고 검찰에 공문을 보내 지시했고, 조국 장관 재임 때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 추진됐다. 이 규정은 '조국 사태' 수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다는 조 장관 뜻에 따라 그가 장관직에서 물러난 후인 2019년 10월 30일 제정돼 12월 1일자로 시행됐다. 그러나 규정 시행 뒤에도 윤석열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는 근절되지 않았고 윤석열-한동훈 정권 하의 검찰에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 관련 전방위 수사에서 보듯 아예 일상이 된 상황이다.
한동훈 장관의 깨알 같은 피의사실 공표에 노웅래 의원은 신상발언에 나서 격앙된 목소리로 항변했다. 정작 자신에 대한 소환 조사 때는 녹취록의 존재나 내용을 전혀 고지하지도, 묻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혐의를 막무가내로 기정사실화할 수 있느냐는 분노와 억울함이 잔뜩 배어있었다. 노 의원은 "정상적인 수사가 아니라 사람 잡는 수사"라고 토로했다.
"한동훈 장관, 증거가 차고도 넘친다고 얘기했는데, 그렇게 차고 넘치면 왜 조사 과정에서 묻지도, 제시하지도, 확인하지도 않았습니까. (조사 당시)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고 갑자기 '녹취가 있다', '뭐가 있다' 이거는 방어권을 완전히 무시하는 거 아닙니까. 돈을 줬다, 녹취가 있다, 그거 우리 행정비서가 퀵서비스를 통해서 (전달자가 몰래 의원회관에 두고 간 돈을 다시 돌려)보냈다는 건데, 증인도 있고, 돈 줬다는 사람도 자기가 돌려받았다고 하는 건데 그걸 녹취했다고 지금 새로운 내용으로 부풀려서 언론플레이를 해서 사실 조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 부정한 돈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하지도 않은 일로 범법자로 몰아서 정말 억울합니다. (중략) 한마디로 검찰이 만든 작품입니다. 뇌물받은 것처럼 언론플레이해서 재판도 받기 전에 저를 범법자로 만들었고 저는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검찰은 이틀이 멀다하고 불법 피의사실 공표를 하고 있습니다. 저 소환 조사에서 그 같은 문자 내용도, 녹취록도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 했습니다. 한 번 조사조차 안 해놓고는 갑자기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녹취록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제 방어권을 고의로 악질적으로 무력화시키는 것이고, 녹취록이 진짜 존재하는 것인지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례적인 인사로 고맙다고 한 게, 그게 돈을 받은 겁니까? 제 말을 고의적으로, 악질적으로 왜곡시켰습니다. 이건 정상적인 수사가 아닙니다. 사람 잡는 수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