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꼼수’ 사업구조 재편 강행에 뿔난 소액주주들

밥캣-로보틱스 합병 비율 조정 후 재추진

일반주주에 합병기업 주식 더 부여했지만

지배주주인 총수 일가에 유리한 건 그대로

행동주의펀드도 분할 합병 영구 포기 촉구

“밥캣 지분 공정가치로 매수하는 게 옳아”

2024-10-25     장박원 에디터

두산그룹이 알짜 계열사인 두산밥캣을 적자기업인 두산로보틱스의 자회사로 편입하는 방식의 사업구조 재편을 다시 추진하자 소액주주들이 반발하고 있다. 두산밥캣을 자회사로 둔 두산에너빌리티 주주연대는 24일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꼼수 합병 중단을 요구하며 트럭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주주연대는 두산의 사업구조 재편 방식에 대해 “주주들의 의사에 반하는 불공정한 분할 합병”이라며 “금융감독원에 두산그룹이 제출한 정정 증권신고서를 다시 반려할 것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캇 박 두산밥캣 부회장이 21일 오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두산에너빌리티-두산로보틱스 분할합병 건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류정훈 두산로보틱스 대표,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대표, 스캇 박 두산밥캣 부회장. 2024.10.21. 연합뉴스

두산 계열사 분할 합병 재추진도 일반주주가치 훼손

두산밥캣 지분을 1% 넘게 보유한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얼라인)도 이날 변칙적인 분할 합병을 통해 밥캣을 로보틱스 자회사로 편입하는 방식을 영구히 포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얼라인은 “(두산그룹이 추진하는 합병 방식처럼) 포괄적 주식교환 가능성이 남아 있으면 두산 지배주주로서는 두산밥캣 주가가 낮을수록 로보틱스 주식과의 교환 비율이 유리해진다는 건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밥캣의 주주가치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두산그룹은 지난 21일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두산로보틱스 3사 경영진이 총출동해 사업구조 재편 재추진 방안을 설명하는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밥캣과 로보틱스 합병을 통해 자산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하고 투자 여력을 확보해 시너지를 높인다면 주주가치도 제고될 것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그럴 듯한 말처럼 들리지만 합병 비율을 조정한 것 외에는 달라진 게 없었다.

합병 비율을 조정했어도 근본 문제 해결 안 돼

두산의 사업구조 재편 재추진 방식은 두산에너빌리티를 기존 사업 회사와 두산밥캣 지분을 보유한 신설법인으로 인적 분할한 뒤 신설법인을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두산밥캣의 모회사가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로보틱스로 바뀐다. 지난 7월 발표한 내용과 다른 점은 두산로보틱스와 두산에너빌리티 신설법인의 합병 비율을 1대 0.031에서 1대 0.043으로 상향한 것이다. 에너빌리티 일반주주들이 합병 회사 주식을 더 받게 됐다는 의미다. 즉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100주를 보유한 주주가 받을 수 있는 두산로보틱스 주식이 기존 3.1주에서 4.3주로 늘어난다. 존속 사업 회사인 두산에너빌리티 주식도 기존 75.3주에서 88.5주로 증가한다.

두산 측은 회계상 순자산 장부금액 기준으로 책정했던 기존 두산밥캣 분할 비율을 시가 기준으로 바꾸고, 시가만 적용했던 신설법인과 로보틱스 간 합병 비율에 두산밥캣 경영권 프리미엄 43.7%를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에게 최대한 많은 주식이 지급되도록 분할 합병 비율을 산정했다는 것이다.

 

 두산그룹 사업구조 재편 방향. 연합뉴스

두산, 분할 합병 정당화하려고 시너지 효과 강조

두산그룹은 기자간담회에서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홍보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차입금 부담을 덜 수 있고 투자 여력이 생겨 신사업 진출이 원활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3개 계열사 모두 매출과 영업이익이 증가해 결과적으로 주주가치가 높아질 것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내놓았다.

하지만 일반주주를 희생해 지배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분할 합병을 정당화하려는 미사여구일 뿐이다. 알짜기업인 밥캣의 적정가치를 무시하고 지배주주 지분이 절대적으로 많은 로보틱스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두산밥캣은 매출이 9조 7000억 원, 영업이익은 1조 3000억 원이 넘었다. 반면 두산로보틱스는 매출 530억 원에 190억 원가량 적자를 본 부실기업이다. 다만 두산그룹이 전략적으로 키우는 기업이라 주가는 높게 형성돼 있다. 따라서 시가로 합병 비율을 정하면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주주들이 손해를 보고 지배주주 지분 비중이 높은 두산로보틱스는 이익을 본다.

지배주주 이익 보고 소액주주 손해 보는 결과 그대로

두산그룹은 박정원 회장 등 총수 일가가 약 37%의 지분을 보유한 ㈜두산을 통해 각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두산의 두산에너빌리 지분은 30%이고 두산에너빌리티가 두산밥캣 지분을 46% 보유 중이다. 밥캣이 로보틱스의 자회사로 편입되면 ㈜두산의 두산로보틱스 지분이 줄어드는 대신 밥캣에 대한 간접지분이 13.8%에서 42%로 높아진다. 적자 계열사 지분을 넘겨주고 알짜 회사의 지배력을 키우는 셈이 된다.

이런 이유로 금융당국은 두산의 사업구조 재편에 제동을 걸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8월 두산의 합병신고서에 대해 정정을 요구하면서 밥캣을 보유한 신설법인을 시가가 아닌 미래 수익에 기반한 모형을 적용해 가치를 산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러면서 현금흐름할인법(DCF)과 배당할인법(DDM) 등을 예시로 들었다.

하지만 두산은 이번에도 두산밥캣 가치 평가에서 시가 중심 평가방식을 고수했다. 두산은 미래가치를 산정할 때 논란이 있을 수 있어 이를 피하려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회계법인들이 산정을 거부했다고도 밝혔다. 두산밥캣이 상장주식이라 시가가 존재하고 있고, 미래 매출과 영업이익을 추정할 때 여러 가정을 적용해야 하는데 이때 정확한 가치를 산정하기 어렵다는 게 두산 측 설명이다.

 

두산 로고 [두산그룹 제공] 연합뉴스

두산로보틱스가 두산밥캣 주식 매수하는 게 옳은 방법

이런 문제가 있다면 굳이 분할 합병을 통한 사업구조 재편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대안은 간단하다. 두산밥캣 주요 주주인 얼라인은 “만일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자회사로 만들고 싶다면 공정성 확보를 위한 적절한 절차를 거쳐 공정가치로 밥캣 주식을 공개매수하는 방식을 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경제개혁연대가 지난 7월 제시했던 내용과 같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일반 주주에게 가장 유리한 방식은 가격 협상을 통해 두산밥캣 지분을 두산로보틱스에 직접 매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산그룹이 가장 공정하면서도 뒷말이 나오지 않는 방식을 두고 분할 합병이라는 꼼수를 쓰려고 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지배주주인 총수 일가의 이익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