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그날…이태원 참사 2주기 추모에 다 함께

26일 6시 34분 서울광장서 '시민추모대회' 열어

생존 피해자와 목격자들 위한 안내 부스도 마련

구술기록집 발간, 추모 콘서트, 학술대회 등 예정

유가족 "참사 이후에도 한국 사회 변한 게 없어"

"성수대교 책임자들은 사퇴, 30년 전보다 퇴보"

"'놀다가 죽었다'는 2차, 3차 가해 발언 멈춰라"

"특조위가 흔들림 없이 일하도록 시민들 관심을"

2024-10-21     김민주 기자
21일 오후 서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열린 10.29 참사 2주기 기자회견에서 이정민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2024.10.21. 연합뉴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는 21일 오후 1시 59분 이태원 참사 현장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에 모여 참사 2주기 집중추모 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회견 시간을 1시 59분으로 잡은 것은 이태원 참사에서 사망한 159명을 기리기 위해서다.

유가족협의회는 21일부터 9일 동안 2주기 집중추모 주간을 선포했다. 오는 26일에는 오후 6시 34분부터 오후 8시까지 서울광장에서 시민추모대회를 연다. 오후 6시 34분은 이태원 참사 압사 사고가 경찰서에 처음 접수된 시간이다.

29일까지 진행되는 추모 주간에는 2주기 구술기록집 발간, 재난 피해자 권리 보장 정책 포럼, 2주기 추모 159분 콘서트, 2주기 학술대회, 종교 행사 등 이어간다. 이 기간동안 대전, 광주, 수원, 대구, 해외에서도 추모행사가 진행된다. 

 

26일 열리는 이태원 참사 2주기 시민추모대회 일정 포스터

기자회견에서 유가족들은 참사 이후 한국 사회를 두고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고 평가했다. 오히려 지난 2년간 별이 된 피해자, 피해자의 유가족, 참사 생존자들은 위로를 받기는커녕 왜 그런 곳에 갔냐고 비난을 받았다.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안지중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은 "이 장소에서 우리는 소중한 가족을 잃었다. 여전히 마음속 아픔과 슬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다시 유가족들이 이 자리에 섰다"며 "159명의 별이 된 가족들을 생각하고 이태원 참사 진실 규명 책임자를 처벌하겠다고 다짐하는 마음으로 묵념하자"고 말하며 1분간 묵념을 진행했다.

묵념이 끝나고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이태원 참사가 무엇이 다른지 비교했다. 이 운영위원장은 "오늘은 성수대교 붕괴 30주기다. 성수대교 붕괴 사건으로 32명이 사망했고 17명이 부상당했다. 이 사고로 당시 서울시장은 경질됐고 국무총리는 참사를 책임지기 위해 사퇴했다"며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일어난 지 30년 지났다. 그런데 한국은 30년 전보다 퇴보했다"고 했다.

그는 "이태원 참사 책임자의 1심 공판 결과는 허망했다. '예견할 수 없었다'는 이유다. 피해자도 유가족도 참사를 예견할 수 없었다. 예견하지 못한 참사에 누가 책임을 진단 말인가. 이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우리는 묻고 또 물을 것"이라며 "유가족의 아픈 상처를 헤집고 소금을 뿌린 것이다.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피해자한테 돌린 결과"라고 지적했다.

 

21일 오후 서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 집중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2024.10.21. 연합뉴스

이 위원장은 "2022년 10월 29일 밤 이태원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내 아이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나. 우리가 몸부림치는 이유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고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지만 정부로부터 존중받지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 싸움은 국가 권력과 싸우는 것이다. 시민의 지지가 필요하다. 아직도 이태원 참사의 고통을 겪고 있는 생존자, 목격자, 부상자에게 호소한다. 못다 한 이야기가 있으면 목소리를 내달라"면서 "유가족들이 방패막이가 되어 주겠다. 아직도 병상에 있는 생존 피해자를 위해 그날을 기억하자"고 했다.

유가족들은 눈물을 흘렸고, 때마침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하늘의 별이 된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이 흘린 눈물처럼 모두에게 느껴졌다. 이지현 시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는 이태원 참사 피해를 밝히는 데 시민들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됐다. 한국이 안전 사회가 되기 위해 참사의 구조적 문제와 책임을 묻고 그에 맞는 처벌을 하기 위해서다. 시민 여러분이 특조위가 흔들림 없이 일을 해 나가도록 관심을 가져달라"며 "우리의 슬로건은 '진실을 향한 걸음 함께하겠다'는 것이다. 참사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이겨낼 힘이 되어 달라"고 했다. 또 "추모대회가 열리는 오는 26일에는 혼자서 피해를 감내한 생존 피해자와 목격자들을 위한 진정 신청 안내 부스가 있을 예정"이라며 "참사 당시 피해자들이 많이 오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지현 공동위원장의 발언이 끝나자 유족들은 "이태원 참사 진실을 규명하자" "이태원 참사 책임자를 처벌하자" "기억하고 연대해 또 다른 참사를 막아내자"고 구호를 외쳤다.

종교계에서도 힘을 보탰다. 평화교회연구소 박형순 목사는 이태원 참사를 외면하고 비난한 기독교를 비판했다. 박 목사는 "2년 전 별처럼 빛나는 생명이 꺼져갔다. 이들을 지켜야 하는 한국 사회가 지키지 못했다. 정부, 경찰도 마찬가지였다"며 "그 순간 가장 어두운 곳이 교회였다. '왜 그런 나쁜 행사를 갔냐' '사고가 하나님의 뜻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타인의 삶과 죽음을 함부로 여기거나 죽음을 외면하는 것은 기독교가 아니다. 죽음의 자리에서 함께 연대하고 머물며 진상을 밝혀나가야 하는 것이 기독교가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 목사는 “윤석열 정부와 이태원 참사 특조위에 말한다. 아직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그날의 진실을 규명해달라. 2주기가 지나고 3주기를 맞이할 때도 이태원 유가족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다짐했다.

 

21일 오후 서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 집중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이 끝나고 유가족협의회 관계자들과 박형순 목사가 포스터를 붙이고 있다. 2024.10.21. 김민주 기자

끝으로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남훈 씨 어머니 박영수 씨와 고 이지현 씨 어머니 정미라 씨가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다. 박 씨는 "이태원 참사 당시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을 알면서 인파 관리 대책을 수립하지 않은 이유, 경찰에 신고 전화가 있었는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를 밝혀야 된다"며 "수습 과정에서의 무능과 부실, 혼란과 혼선의 책임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부 기관의 총체적 무능과 실패로 수많은 목숨이 희생됐는데 정부가 사과하지도 책임을 지지도 않았다. 또다시 참사가 반복되더라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 씨는 "2년 동안 수많은 시민이 연대해 진상규명을 위해 싸웠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와 핼로윈 데이를 터부시하는 사람들의 장벽에 가로막혔다. 축제를 즐기는 것은 당연한 일상인데도 참사 당일에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혐오의 대상이 돼 2차, 3차 가해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이어 "'놀다가 죽었다'는 폄훼성 발언이 159명 희생자와 참사 생존자를 부적절한 사람으로 치부했다. 이는 이태원 참사를 이야기하고 그 기억을 통해 진실을 요구해야 하는 목소리마저 숨죽이게 했다. 우리는 이태원 참사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의무가 있다"고 했다. 정 씨는 시민들을 향해 "진상규명을 통해 다시는 참사가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명과 존엄의 사회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어 달라"고 당부했다.

기자회견이 끝내자 유가족협의회는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에 '진실을 향한 걸음, 함께하겠다는 약속'이라고 쓰여 있는 포스터를 붙였다. 이 포스터에는 유가족이 특조위에 제출한 9대 과제가 기록돼 있다. 과제는 ▲희생자들이 가족에게 인계되기까지의 행적 ▲핼로윈 데이 인파 밀집에 대한 예견 및 대책 현황 ▲대통령실 이전이 참사 대응 관련 각 기관에 미친 영향 ▲참사 전날, 당일 위험 신고 대응과 전파의 적절성 ▲참사 당일 현장 배치된 경찰 운용의 문제점 ▲참사 당일 구급활동과 대응의 문제점 ▲참사 당일 현장 배치된 기관별 인원, 역할의 적절성 ▲피해자 지원 체계와 내용의 문제점 ▲피해자들에 대한 모욕·혐오·명예훼손·2차 가해 실태와 대책 등이다.

 

이태원 참사 2주기 집중추모 주간 일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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