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 잠재성장률 2.0%…2년 연속 미국에 뒤져
저출산·고령화 영향 5년새 0.4%p 하락
부자감세 영향 재정적 대응 능력도 부족
미국은 지속 상승하고 독일·영국도 올라
미국과의 소득 격차 더 벌어질 가능성 커
올해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2.0%로 추정돼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미국에 추월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잠재성장률은 경제 규모가 큰 국가일수록 잠재성장률이 낮은 게 일반적이어서, 한국이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15배 이상 큰 미국보다 잠재성장률이 뒤처진 데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의 잠재성장률 하락은 지속적인 저출산으로 생산연령인구가 감소한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은 인구 감소로 노동시장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지만, 정부는 재정 상황 악화로 이를 타개할 이렇다 할 방안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20일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집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을 2.0%로 추정했다. 지난해 6월 추정치(2023년 1.9%, 2024년 1.7%)보다는 상향됐지만 최근 급속한 하락세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지난 2020~2021년 2.4%에서 2022년 2.3%로 낮아졌고, 지난해 2.0%까지 급락해 올해까지 이어졌다.
잠재성장률은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노동·자본·자원 등 모든 생산요소를 모두 동원해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생산 수준을 말한다. 주로 그 나라의 노동력과 자본, 생산성 등에 의해 좌우된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은 오히려 상승을 거듭하고 있다. 미국의 잠재성장률은 2020∼2021년 1.9%에서 2022년 2.0%로 올랐고, 지난해에는 다시 2.1%까지 상승했다. 올해도 2.1%로 추정돼 미국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한국보다 높았다. 잠재성장률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1년 이후 미국의 잠재성장률이 한국보다 높은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소득수준이 높은 국가일수록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낮은 경향이 있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소득 수준이 더 높은 미국보다 잠재성장률이 낮아졌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2022년 세계은행(WB) 기준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 5990달러로 미국(7만 6370달러)의 47%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과 미국 간 잠재성장률의 역전은 앞으로 양국 간 소득 격차가 더 커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의 잠재성장률 추이가 이처럼 대조를 보이는 근본적인 이유는 인구 변화다. 우리나라는 잠재성장률의 핵심 요소인 생산연령인구가 저출산·고령화 영향으로 줄어드는 반면, 미국은 외국인 유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산업구조 개편이 더디고 서비스산업 경쟁력도 약한 편이지만, 미국은 정보기술(IT) 기업을 중심으로 인공지능(AI) 등 신산업이 꾸준히 발전해오기도 했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독일 등 주요 선진국도 최근 잠재성장률이 오르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독일은 2020년 이후 0.7%에서 등락을 보이다 올해 0.8%로 소폭 올랐다. 영국은 2020년 0.9%에서 지난해 1.2%, 올해 1.1% 수준으로 상승했다. 반면 우리나라보다 앞서 고령화가 가속화한 일본은 잠재성장률이 2020년 0.6%에서 2021년 0.7%로 올랐다가 이후 해마다 하락해 올해 0.3%로 추산됐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의 절대적인 수치는 여전히 주요 7개국(G7)과 비교하면 2위 수준이다. OECD의 올해 5월 추계 기준 미국(2.1%)을 제외하면 모두 한국(2.0%)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캐나다(1.9%), 프랑스·이탈리아·영국(1.1%), 독일(0.8%), 일본(0.3%) 순이었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주된 이유는 바로 저출산에 따른 생산연령인구 감소다. 통계청에 따르면 15∼64세 생산연령인구 비중은 2022년 71.1%(3674만 명)에서 2072년 45.8%(1658만 명)로 급감할 전망이다. 생산연령인구 100명당 고령인구의 비율을 뜻하는 노년부양비는 올해 27.4명에서 2072년 104.2명으로 치솟을 것으로 예측됐다. 홍콩(158.4명)과 푸에르토리코(119.3명)에 이어 3번째로 높다.
노동력 부족으로 힘이 빠진 성장 동력은 자본·기술 등 총요소 생산성 개선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총요소생산성은 자원 배분의 효율성과 기술 수준 등을 포괄하는 것으로 통상 자본·노동 투입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가가치의 증가분으로 측정된다. 하지만 가파른 고령화 탓에 성장 잠재력의 개선도 한계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동공급 자체가 줄면 자본 투입에 대한 생산성도 줄어들어 자본의 성장 기여도도 함께 감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이를 위한 재정 지원이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하지만 지속된 부자감세의 영향으로 역대급 세수 부족이 당장 넘어서기 어려운 걸림돌이다. 반도체·이차전지 등 전 세계적인 기술 보조금 경쟁에도 2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는 R&D 예산은 이런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내년 R&D 예산(29조 7000억 원)은 올해보다 11.8%나 늘지만 총량 기준으로 보면 2년 전인 지난해(29조 3000억 원)와 같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인구감소의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대외 개방, 규제 합리화 등 경제 역동성 강화를 위한 규제 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대한상공회의소 SGI(지속성장이니셔티브)는 올해 2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국내 연구들은 노동력 저하에 따른 잠재성장률 하락을 극복하려면 총요소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인구가 줄고 인력이 고령화하는 시기에 총요소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2040년 0.7%까지 하락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놨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구조개혁이 절실한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최근 발간한 '중기 경제전망'에서 한국의 실질 GDP 증가율이 올해 2.4%에서 내년과 후년 2.2%, 2027년 2.1%, 2028년 2.0%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잠재성장률은 올해 2.2%에서 2028년 2.0%까지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장기적으로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고령인구의 노동력 활용 제고와 생산성을 높이는 구조개혁, 자원의 적재적소 배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