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로프의 ‘텔레그램’, 과연 ‘표현의 자유’ 상징일까?

"어떤 나라 정보국도 통제 못하는 메신저" 홍보했지만

마약, 음란물 유포, 무기 불법 거래에 이용된다 의혹도

프랑스 이중국적에 절연했다던 러시아 50여 차례 방문

2024-09-08     벨랴코프 일리야 수원대 교수

러시아의 최대 메신저 ‘텔레그램’의 창립자 파벨 두로프 (Pavel Durov)가 8월 24일 파리에서 체포되었다는 뉴스는 러시아에서 큰 이슈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쟁에 불을 지폈다. 러시아 정부는 “서방 국가들이 늘 그러는 것처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위선의 최고치를 찍었다”고 곧바로 반응했다.

내로남불도 이런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 2014년 러시아 정부야말로 두로프를 물리적인 폭력으로 압박하면서, ‘텔레그램’을 통해 반정부 활동을 하는 인사들의 개인정보를 당장 내놓지 않으면 감옥에 보내겠다고 협박하지 않았나? 두로프는 다 버리고 한밤 중에 급히 비행기를 타고 러시아를 떠났다. 전 세계를 이곳저곳 떠돌아 다니다가 2017년부터는 두바이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에는 러시아 정부가 국내에서 아예 ‘텔레그램’을 금지하려는 시도까지 했으나 기술적인 이유 때문에 결국 실패했다. 이를 예시로 들면서 두로프는 지금까지 자기 결백을 주장해 왔다. ‘텔레그램’은 표현의 자유의 마지막 상징이고 전 세계에서 어느 나라 정보국도 통제를 못하는 메신저라고 홍보해 왔다.

 

텔레그램 공동 설립자 파벨 두로프가 2017년 8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방문했을 때의 모습. AP 연합뉴스

‘가장 안전한 의사소통 수단’이 각종 범죄에 악용돼

하지만 러시아 내에서 두로프에 대한 의견은 항상 엇갈렸다. 2000년대 초반에는 ‘VK’ (러시아 내 최대 SNS)를 만들어서 큰 인기를 얻었다. 결국 ‘VK’는 국민 소셜네트워크가 되었다. 2010년대에는 국민 메신저로 자리잡은 ‘텔레그램’을 만들어서 성공했다. 뛰어난 첨단 기술 때문에 그 어느 누구도 메신저를 해킹할 수 없다고 홍보하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의사소통 수단”이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텔레그램’은 여러 차례 큰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그런 논란은 항상 표현의 자유와 관련되었다. ‘텔레그램’이 마약 거래, 미성년자 음란물 불법 유포, 불법 무기 거래, 테러 조직 의사 소통 채널 등으로 이용된다는 수많은 보도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텔레그램’이 도마에 오를 때마다 두로프의 입장은 한결 같았다. ‘텔레그램’은 표현의 자유를 엄격하게 지키고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발언권을 제공하며 콘텐츠 통제를 절대 안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대놓고 유통되는 불법적인 콘텐츠는 색출해서 통제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 두로프는 “그렇다면 언어를 금지합시다. 테러범들이 언어를 사용한다는 제보가 있어서요”라고 비꼬기만 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모습을 취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두로프의 멋있어 보이는 의견이 현실과 달랐다는 점이다. 러시아 정부와 절대 협조 안 하겠다던 두로프는 2014년 이후에도 계속 반푸틴 ‘텔레그램’ 채널을 폐지해 왔고 2022년 2월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와 그 후에도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운영하는 채널이나 전쟁을 비판하는 채널을 수시로 강제 삭제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인을 죽이자는 러시아 극우 단체의 채널들은 아직도 아무 문제 없이 활발한 활동 중이다. 2023년 10월에 러시아 남부 도시인 마하취깔라에서 반유대 폭력 시위가 일어나자 두로프는 이 시위를 보도하는 현지 텔레그램 채널을 러시아 정부의 지시에 따라 곧바로 폐지 시켰다. 흥미로운 것은 이 사건 몇 주 전에 있었던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때는 하마스 공식 ‘텔레그램’ 채널을 삭제해 달라는 이스라일 정부 요구를 거절했다는 점이다. 러시아에서 반정부 내용을 포스팅하는 민간인 ‘텔레그램’ 채널은 표현의 자유 대상이 아니고 모든 유대인을 지구상에서 없애자는 주장으로 전 세계가 테러조직으로 지목하는 하마스의 ‘텔레그램’ 채널은 표현의 자유의 대상이라는 것이 두로프의 모순적인 논리 구조를 잘 보여준다.

2024년 기준으로 ‘텔레그램’은 극우 단체 옹호, 민족 간 갈등 조장, 미성년자 음란물 유포 등과 같은 이유로 중국, 이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금지되어 있고 카자흐스탄, 독일, 브라질, 스페인, 튀르키에, 인도네시아 등에서 계속 경고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에서도 2020년의 n번방 사건이나 얼마 전에 불거진 딥페이크 음란물 사건 같은 경우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모순적 논리 구조 가진 거짓말쟁이가 표현의 자유?

이번 파리에서의 체포로 인해 두로프의 또 다른 거짓말이 밝혀졌다. 지금까지 3개의 국적 (러시아, 세인트키츠 네비스, UAE)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두로프가 프랑스 국적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었다. 몇 년 전에 두로프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면담을 하면서 ‘텔레그램’ 본사를 프랑스로 옮기자는 마크롱 제안을 받고 프랑스 국적을 요구해서 마크롱이 그의 요구를 들어 줬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금까지 자신이 그 어느 유럽 국가와 그 어떤 관계도 갖고 있지 않으며 어떤 유럽 정부와도 절대 협조하지 않는다는 두로프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다크넷을 통해 러시아 출입국 기록이 불법 공개가 되어서 2014년 이후에 러시아와 모든 인연을 끊고 한 번도 돌아간 적 없다는 두로프가 무려 50번이나 러시아를 방문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큰 화제가 되었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멋있고 굳굳한 전사라는 그의 이미지가 단번에 무너졌다.

‘텔레그램’을 둘러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쟁을 보면서 영화 ‘오펜하이머’가 머리에 떠올랐다. 두로프는 자기가 발명한 기술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다는 것을 괴로워한 오펜하이머를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무조건 표현의 자유를 지킨답시고 마약 거래, 인신매매, 음란물 유포 등에 눈을 감으면서도, 정부에 반대하는 인사들의 민감한 정보를 곧장 제공한다면 그런 표현의 자유는 사업을 위한 사기술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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