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적자’ 핑계로…LH, 서민용 장기임대 확대 외면
경실련 “시세로 평가하면 LH 적자 논리 깨져”
LH “시세 등락 반영 시 경영성과 왜곡” 반박
“1,2인 가구 등 수요 맞춰 다양한 유형 공급”
경실련 “진짜 필요한 장기 임대는 부족” 재반박
“매입임대는 공공주택 아니야…사업 중단해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수도권 공공주택의 가격 평가 방식을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경실련은 LH가 보유한 자산의 공시가와 시세 등 가격 정보를 더 자세하고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으나 LH는 경영성과를 왜곡할 수 있다며 장부가격을 기준으로 적자 규모를 밝히고 있다.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감가상각으로 취득가액보다 더 떨어진 장부가격은 회계 장부상 대규모 적자를 유발하고 LH는 이를 핑계로 서민을 위한 장기 공공주택 사업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실련의 주장에 대해 LH는 적자에도 불구하고 공공주택 공급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경실련은 20년 이상 임대하는 진정한 의미의 장기 공공주택 물량은 많지 않다고 재반박했다. LH가 진짜 필요한 장기 공공주택 공급은 뒷전으로 밀어놓고 그 대신 집주인과 건설업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매입임대주택 사업을 확대하는 것에 대해서도 경실련은 ‘세금 낭비’라고 비판했다.
“부동산 시세 무시한 자산평가로 커진 LH 적자”
경실련은 지난 5일 ‘LH 수도권 공공주택 자산보유실태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LH가 공공주택 자산평가 때 감가상각만 적용해 공공 자산을 실세보다 턱없이 낮게 평가하고 있다는 게 발표 내용의 요지다. 그러면서 이렇게 ‘조작된 LH의 적자’는 본업인 공공 임대주택 공급 사업을 기피하는 핑계가 되고 있다. 경실련은 LH의 이런 '적자 논리'를 깨기 위해 2022년 말 기준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38만5860세대 공공주택 중 공시가격이나 시세 파악이 어려운 1만 1999세대를 제외한 37만 3861세대의 취득가액과 장부가격, 공시가, 시세 등을 분석했다.
LH 공공주택 총 취득가액은 44조 원으로 주택당 1억 2000만 원이었다. 총 장부가액은 취득가액보다 4조 5000억 원이 감소한 39조 5000억 원이었다. 토지가격은 그대로지만 건물에 대한 감가상각으로 가격이 하락했다. 이 대목에서 논란이 되는 점은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꾸준히 상승했다는 사실이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주택을 보유하고만 있어도 자산증가 효과가 발생한다. LH의 자산평가방식은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있다는 게 경실련 주장이다.
얼마나 가격이 왜곡됐는지 알아보기 위해 경실련은 취득가액과 장부가액을 공시가격과 시세와 비교했다. 그 결과 공시가격은 취득가액보다 8조 원(18%)이 늘어난 52조인 것으로 추정됐다. 주택당 공시가격은 취득가액보다 2000만 원가량 높았다.
취득가액보다 2배 이상 오른 수도권 공공주택 시세
지난 7월 기준 시세와 비교하면 취득가격이나 장부가격과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LH 공공주택 시세는 취득가액보다 두 배 이상 오른 93조 6000억 원인 것으로 추산됐다. 주택당 시세는 2억 5000만 원에 달했다. 취득가액으로 695만 원이었던 평당가격은 1400만 원으로 뛰었다. 취득가액이 이 정도니 장부가액과의 격차는 더 클 게 분명하다. 경실련은 “시세를 반영해 자산을 평가한다면 만년 적자라는 LH의 재정 실태도 전혀 다르게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공주택 자산액이 가장 많이 오른 상위 10개 지역은 시세가 취득가액 대비 최대 4배가량 오르기도 했다.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공공주택 2만 850호는 취득가액이 3조 원이었는데 현재 9조 원이 올라 12조 원이 된 것으로 파악됐다. 평당 자산액이 가장 많이 오른 지역은 서울시 강남구로 18평형 기준 1억 6000억 원에서 7억 2000억 원이 올라 지금은 8억 8000만 원에 달한다. 성남시 위례 31단지는 취득가액이 3924억 원이었는데 1조 3000억 원이 올라 현재 1조 7389억 원이다. 취득가액에 비해 자산가치가 4.4배 상승한 셈이다.
경실련은 “LH가 공공주택을 꾸준히 지어 계속 보유하고 있었다면 서민 주거는 한층 안정됐을 것”이라며 “집값이 오른 만큼 공공 자산도 늘어났을 게 확실한데도 LH는 공익보다는 장사 논리와 이윤 추구를 최우선으로 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적자 논리를 내세워 서민을 위한 장기 공공주택 확대를 뒷전으로 밀어두지 말라”며 공공주택 자산내역과 분양원가 등 행정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영구·50년·국민·장기전세 등 서민용 주택 공급에 집중할 것을 요구했다.
LH “시세 반영은 경영 왜곡, 수요 따라 다양한 주택 공급”
이에 대해 LH는 5일 보도 참고자료를 통해 경실련 주장을 반박했다. 영업활동과 무관한 외부 부동산 시세 등락을 반영하면 매년 당기손익이 변동돼 경영성과를 왜곡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임대 수요가 가구 인원수(1~2인 가구), 나이(청년, 신혼부부, 고령자), 경제적 여건, 개인적 선호 등에 따라 다양해지고 있는 것에 대응해 기존 건설임대 중심에서 매입임대(빌라, 오피스텔, 기숙사), 전세 임대(기존 건물을 LH가 임차해 재임대) 등으로 다변화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건설형 공공주택도 공급을 늘리고 있다며 구체적 수치까지 제시했다.
경실련은 6일 LH의 반박을 조목조목 재반박했다. 경실련이 문제가 있다고 지목한 공공주택 자산은 임대주택을 의미하는데 LH는 분양아파트 같은 다른 유형까지 포함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분양주택은 5년이나 10년 임대한 뒤 시세대로 분양한다. 이때 LH나 민간 임대업자만 큰 이득을 챙길 수 있다. 행복주택도 대학생·청년 6년, 신혼부부 10년 등 입주 계층에 따라 임대 기간이 짧아지고 임대료도 시세를 반영하여 비싼 편이라는 게 경실련 주장이다. 반면 영구·50년·국민·장기전세 등 장기 공공주택은 저렴한 임대료만 지불하고도 20년 이상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다. 이런 주택의 공급을 확대하라는 게 경실련 등 시민단체의 요구다.
임대료 비싼 매입임대는 공공주택으로 볼 수 없어
경실련은 특히 LH가 매입임대주택을 공공주택 확대 방안으로 명시한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매입임대주택은 주로 다세대를 대상으로 한다. 경실련 분석에 따르면 매입임대주택 다세대 25평형 한 채 매입가격은 6억 7000만 원이다. 위례지구 아파트 25평 분양 원가는 3억 4000만 원이다. 매입임대 주택은 사들이는 가격이 비쌀 뿐만 아니라 다세대 주택 특성상 가격이 오를 가능성도 아파트보다 훨씬 낮다. 매입임대주택은 시세대로 집을 비싸게 사들이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 경실련은 “매입임대주택사업은 공공주택 확대로 볼 수 없으며 지금이라도 즉각 중단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LH가 공공주택 자산의 시세 반영이 힘들다는 해명에 대해서도 경실련은 재반박했다. 공공주택 가치와 외부 부동산 시세 등락을 구분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감가상각만 적용해 자산가치를 계속 떨어뜨려 생기는 왜곡은 괜찮고, 부동산 시세 등락에 따라 자산가치가 변동하는 것은 문제라는 주장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경실련은 “LH 관련 행정정보는 너무도 불투명한 상태라 국민은 LH가 정말 적자가 맞는지 막연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만일 LH가 공공주택 자산 시세 반영을 당장 시행하기 어렵다면 SH공사가 시행하는 방식을 참고해 취득가액·장부가액·공시가격·시세를 모두 공개하면 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