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권 '노동 개악' 뭘 노리나…하층 노동자들에 더 치명적

기업주들 요구 집대성한 ‘미래노동시장 연구회’ 권고안

주80시간제, 직무성과급, 파견근로 확대, 주휴수당 폐지

노조 때리기 안간힘…명분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

대기업들 외주화 전략에 사내하청, 비정규직 대거 확대

열악한 임금, 근로조건을 ‘강성 귀족노조’ 탓으로 돌려

“더 힘없는 노동자와 MZ세대 위해” 갈라치기 본질 봐야

2022-12-22     전지윤 사회운동가·'연속성과 교차성' 저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2.12.16.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올해 마지막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며 '적폐 청산'과 '노동조합 부패 척결'을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노조 부패도 공직 부패, 기업 부패와 함께 척결해야 할 3대 부패 중 하나"라며 "엄격하게 법 집행을 해야 한다"고 했다. 척결(剔抉)할 첫 번째 대상으로 '노조 부패'를 꼽은 것이다.

앞서 지난 16일엔 ‘미래노동시장 연구회’(이하 연구회)의 노동시장 개혁에 대한 권고안 발표가 있었다. 윤석열 정권의 노동정책 방향을 보여주고 실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내용이다. 이미 윤석열 정권과 노동부는 이를 적극 수용하고 추진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그 노골적이고 심각한 노동시장 ‘개악’의 방향이다.

52시간제를 월·연간 단위로 확장해 최대 80시간 노동까지 가능하게 하자, 호봉제를 직무성과급으로 전환하자, 파견 근로가 가능한 업종·기간을 확대하자, 파업 기간에도 대체 근로를 허용하자, 파업시에 노조의 점거를 금지하자, 주휴수당을 폐지하자, 최저임금을 손보자 등…. 그 하나하나가 놀라울 정도로 기업주들에게 유리하고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내용들이다. 노동시간을 늘리고, 임금을 낮추고, 비정규직을 늘리고, 노동조합과 단체행동의 힘을 약화시키는 내용 투성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내용들은 그동안 전경련과 경총 등 기업주 단체들이 요구해온 내용을 집대성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결국 전경련 등의 요구를 정권이 그대로 수용하면 아무래도 모양새가 너무 노골적이니까, 중간에 전문가와 학자들의 연구와 권고라는 징검다리를 하나 더 만든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우리는 “공부 많이 한 전문인”(한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표현)들의 구실이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이처럼 윤석열 정권이 '노조 때리기'와 ‘노동시장 개혁’을 주장할 때 항상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명분이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해소’라는 점이다. 즉 현재 한국의 노동시장이 ‘대기업에 다니고 고임금을 받고 고용도 안정적인 상층 노동자들’과 ‘중소기업 등에서 일하는 저임금에 고용도 불안정한 하층 노동자들’로 이중화돼 있기에, ‘더 열악하고 힘든 처지의 노동자들을 위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논리이다.

 

화물연대가 파업을 종료하고 현장 복귀를 결정한 9일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조합원이 눈물을 닦고 있다. 2022.12.9. 연합뉴스

이에 따라 대기업 위주의 기존 노동조합들이 반대해 온 제도들을 도입하고, 노동운동이 이루어 온 제도적 성과들을 어느 정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뒤따르게 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해소’라는 명분이 워낙 강력해서, 연구회의 권고안과 윤석열 정권의 개혁 방향에 비판적인 일부 사람들도 이를 전적으로 반대하지는 못하는 반응도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기원과 책임, 윤석열 정권의 성격과 정책 방향에 대해서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먼저 한국의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초역사적 과정과 결과가 아니다. 이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 대한 자본과 권력의 대대적 반격과 그것에 노동운동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만들어진 구조이다.

자본과 권력은 노조로 조직된 대기업 노동자들을 공격하기 쉽지 않아진 조건 속에서 ‘외부 노동시장’의 확대를 돌파구로 택했다. “사용자들은 기업 내부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욕심대로 할 수 없는 조건에서 외부노동시장 확대라는 전략을 추구했다. 그 결과 한편으로 노동시장에서의 중심이 축소되고 다른 한편 분절이 심화되었다.”(정이환, <한국 고용체제론>)

외주화, 사내하청, 임시직, 파트타임, 이주 노동력의 도입 등이 대대적으로 추진됐다. 주요 대기업들은 2000년대 이후 정규직 신규 채용을 최소화하고 필요한 인력은 사내하청과 비정규직으로 충원해갔다. 여기에 원하청 수직계열화, 불공정 거래, 이윤 독점이 따라갔다. 자본과 권력이 노린 것은 단지 인건비 절감만이 아니었다.

“대기업들이 외주화 전략을 통해 간접 고용을 확대한 중요한 이유는 보통 ① 인건비 절감, ② 경기변동에 따른 유연한 고용조정, ③ 노조 회피를 통한 노사관계 관리[세 가지 모두였다.]”(조효래, <노동조합 민주주의>)

이것은 노동시장이 끝없이 분절되고 격차가 벌어지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이 어떤 결과를 낳고 누구에게 이익이 됐는지는 분명하다. 노조 조직률이 여전히 15%에도 이르지 못하고, 대기업의 일자리가 많지 않고, 비정규직의 비율이 매우 높기에 전체 노동자의 거의 70~80%가 열악한 임금과 근로조건에 놓여있는 것이다. 반면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재벌과 대기업들의 수익은 크게 늘어났다.

그리고 여기서 역설이 발생했다. 자본과 권력은 이처럼 분절과 격차 확대를 통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스스로 만들어 놓고, 이 모든 책임을 ‘대기업 정규직 강성 귀족노조’의 탓으로 돌리며 그것을 탄압과 공격의 논리로 이용한다. 동시에 이중구조의 하층에 있는 노동자들을 더욱 쥐어짜려고 한다. 이를 가장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윤석열 정권이다.

윤석열 정권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대표적 하층 피해자인 조선소 하청노동자, 화물 특수고용노동자들을 폭력적으로 짓밟고 그들의 쥐꼬리만한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더욱더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려 했다. 또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법과 제도들(안전운임제, 노동법 2·3조 개정 – 노란봉투법)을 가장 앞장서 막고 있다.

이번에 연구회가 권고하고 윤석열 정권이 적극 추진하겠다는 정책과 제도들도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상층에 있든 하층에 있든, 모든 노동자에게 불리하면서도 특히 노조라는 방패도 없는 하층 노동자들에게 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는 “노조가 죽어야 청년이 산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이런 방향을 크게 환영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2.12.15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윤석열 정권과 친기업적인 ‘족벌언론’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더 힘없는 노동자들과 MZ세대를 위해서' 이런 방향을 추진한다는 위선적인 프레임을 사용하고 있다. 화물연대 파업이 보여줬듯이, 이런 갈라치기와 낙인찍기의 선을 넘어서 투쟁하면 탄압의 표적이 되는 반면, 선을 지키면 협력의 파트너로 대접받는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 기간에 연대 전선을 무너뜨린 요소 중에 하나는 예고됐던 지하철 파업의 철회였고, 거기에 역할을 한 것은 서울교통공사 '올바른 노조'였다. 이 노조의 위원장은 며칠 전 '국정과제 점검회의'에 초대를 받고 출연해서 발언하며 윤석열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현장 노동자들의 의견과 부합하다며 뒷받침해주는 구실을 했다.

물론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해소’는 노동운동이 외면할 수 없는 과제 중 하나이다. 노조의 울타리 안에 있는 노동자들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려 해서는 안 되고, 울타리 밖에 있는 80~90% 노동자들의 권리를 말로만 옹호하는 노동운동 일부의 잘못된 태도는 분명히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윤석열 정권이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라는 명분 아래 추진하려는 개악의 본질을 이해하고 함께 막아서는 것과 대립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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