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도 사람 뽑기 겁나…짙어진 불황의 그림자

IT·배터리 기업 2년 새 채용 30~40% 감소

신규 채용은 크게 줄고 기존 직원은 버티기

임직원 고령화 가속…혁신 역량 약화 우려

대외 악재에 무능한 정부…기업들도 한숨만

2024-09-03     장박원 에디터

지난해 기준 재계 순위 1위인 삼성과 2위인 SK는 요즘 다소 과장해서 말하면 ‘내핍’ 경영을 하고 있다. 고정비를 줄이기 위해 사무 공간을 축소하고 불요불급 비용은 집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최소 내년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불황을 견디려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기 때문이다. 재계 1, 2위 대기업이 이 정도면 다른 기업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이는 대기업 고용 시장 흐름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특히 정보기술(IT)과 배터리, 유통 등 경기가 좋지 않은 업종은 지난해 신규 채용을 크게 줄였다. 반면 50대 이상 장기 근속자의 퇴직률은 감소했다. 경기가 나쁜 상황이라 회사를 나와도 새 직장을 구하기 쉽지 않아서일 것이다. 신규 채용 감소로 인력이 정체되고 임직원의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 대기업의 혁신 역량이 떨어질 수 있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주요 기업체 건물. [연합뉴스 자료사진]

불황에 신규 채용 줄고 기존 직원은 버티고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는 3일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 중에 올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신규 채용과 퇴직 인원을 공개한 128개 회사의 고용 동향을 분석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주요 대기업의 신규 채용 인원은 줄고 기존 직원의 퇴직률은 감소하면서 인력 정체 현상이 심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더스인덱스는 “대기업들의 신성장 동력 사업이 주춤하며 이러한 현상이 가속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이들 기업의 신규 채용 인원은 16만 5961명으로 2022년 21만 717명에 비해 21.2% 감소했다. 2021년과 비교해서도 11.6% 줄었다. 2년 연속 두 자릿수 감소세를 보인 것이다. 지난해 신규 채용을 줄인 곳은 조사 대상 기업의 63%인 81개에 달했다. 반면 같은 기간 기존 직원 퇴직률은 감소했다. 퇴직 인원을 공개한 88개 기업의 지난해 퇴직 인원은 총 7만 1530명으로 2022년 8만 8423명에 비해 19.1% 줄었다. 퇴직률로는 2022년 7.8%에서 지난해 6.3%로 1.5%포인트 하락했다. 2021년(6.8%)과 비교해도 0.5%포인트 낮았다.

 

 자료 : 리더스인덱스. 신규 채용 변화. 

IT·배터리·유통업종 고용 정체 심해

지난해 반도체 경기 침체 영향으로 IT전기전자 업종의 신규 채용이 2년 새 무려 2만 5205명이나 줄었다. 2021년 신규 채용이 7만 645명이었으나 작년에는 4만 5440명에 불과했다. 감소율이 35.7%에 달했다. 같은 기간 퇴직 인원은 2만 3712명에서 2만 6873명으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개별 기업으로는 LG디스플레이와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포스코퓨처엠, 엘앤에프 등의 신규 채용 인원 감소 폭이 컸다.

내수 침체와 온라인 쇼핑몰의 약진에 고전하는 오프라인 유통업체들도 신규 채용을 줄이고 있는 추세다. 유통업종의 지난해 신규 채용 인원은 8977명으로 2년 전(1만3201명) 대비 4224명 감소했다. 이마트와 롯데쇼핑 등 기존 유통업체들이 예전에 비해 신입 사업을 많이 뽑지 않았다. 이에 비해 전체 유통업종의 퇴직률은 낮아지고 있다. 2021년 유통업종 퇴직 인원은 1만 3136명이었는데 작년에는 9223명만 퇴직했다.

주요 대기업의 신규 채용 인원을 나이대별로 보면 청년 일자리가 왜 부족한지 엿볼 수 있다. 조사 대상 기업의 20대의 신규 채용 인원은 2021년 8만 394명에서 지난해 7만 2476명으로 약 8000명(–9.8%) 줄었다. 같은 기간 50세 이상 채용 인원은 6114명에서 9457명으로 54.7% 늘었다. 이는 사회초년생인 청년보다 경력자를 선호한다는 것을 뜻한다. 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이들의 취업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자료 : 리더스인덱스. 업종별 신규 채용 변화.

30세 미만 직원은 줄고 50대 이상은 늘고

이는 대기업 임직원의 고령화가 빨라지고 있는 현상과도 직결된다. 리더스인덱스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 연속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제출한 141개사 중 임직원 세대별 현황을 공개한 123개사의 연령대별 임직원 현황을 조사했더니 ‘30세 미만’은 줄고 ‘50세 이상’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그 결과 대다수 대기업에서 30세 미만 직원은 30% 밑이고 세 곳 중 한 곳은 50세 이상이 30% 이상을 차지했다. 리더스인덱스는 “저출생·고령화로 인구 구조가 변한 이유도 있으나 대기업 채용 방식이 대규모 신입사원 공채 위주에서 경력직 위주로 바뀌고 신사업 진출 속도가 느려지면서 채용 형태 또한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조사 대상 기업의 30세 미만 임직원은 2021년 32만2575명이었으나 2년 새 1만5844명이 줄며 작년에는 30만6731명(21.6%)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50세 이상 임직원은 28만 4061명에서 31만1484명으로 9.7%(2만7424명) 늘었다. 전체 임직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8%에서 22.0%로 1.4%포인트 증가하며 20대 직원 수를 넘어섰다.

 

 자료 : 리더스인덱스. 대기업 임직원 연령대별 분포.

대외 악재에 정부는 무능…대기업도 기댈 곳 없어

경기가 좋지 않은 업종일수록 ‘20대 감소, 50대 증가’ 현상이 뚜렷했다. IT전기전자 업종의 경우 2년 새 30세 미만 직원이 2만8178명 줄어 전체 직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4.2%에서 5.3%포인트 하락했다. 50세 이상은 1만6192명 늘며 비중도 16.6%에서 19.8%로 3.2%포인트 상승했다. 은행, 보험, 증권 등 금융업은 50세 이상 임직원 비중이 30세 미만 직원보다 두 배 이상 많아 고령화 정도가 심했다. 반면 자동차와 조선 등 전통적으로 50세 이상 임직원 비중이 높았던 업종에서는 30세 미만 직원이 늘고 50세 이상은 감소했다.

대기업의 신규 채용 감소와 임직원 고령화는 혁신 역량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불황이 길어지면 이들 대기업 고용 시장 정체도 지속될 것이다. 올해 들어 수출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지만 반도체를 제외하면 현장에서 체감할 만큼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는 않다. 내수도 꽁꽁 얼어붙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의 갈등, 중동 정세 불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중국 경제 성장률 둔화 등 대외 악재가 널려 있고, 윤석열 정부의 경제 위기 대응 능력은 의심스럽기만 하다. 이러니 대기업들도 새로 사람을 뽑는 것마저 겁낼 정도로 위기감을 갖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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