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부터 촛불까지, 우리가 모두 의병이다"

박재동 화백 '의병전展: 일어서는 사람들' 열어

동갑내기 이희재 화백과 함께 하는 2인전

영국 언론인 매켄지 책 속 의병 사진이 모티브

유화 '의병들의 휴식'…과거 의병은 지금의 촛불

8월27일~10월26일 서울 망우 박재동갤러리

2024-08-28     하성태 프리랜서 작가

"지금 전 세계적인 조각품이 우리나라에 있는데 바로 평화의 소녀상이다. 독일에서도 지금 난리가 났고, 어쨌든 전 세계적으로 이슈잖나. 그렇게 사랑받는 조각상이 없다. 우리 삶에, 역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참여하고 행동하고 활성화하고. 그렇게 살아있는 평화의 소녀상이 세계적인 조각상인 거다."

전시 준비에 한창이던 박재동 화백의 말문이 터졌다. 몇 해 전 뉴욕 전시를 찾아 "우리가 세계 예술의 수도"라고 선언했다거나 어릴 적 수십 페이지짜리 만화를 그리던 '꼬마 박재동'의 활약을 넘어 공개하지 않은 과거 작품들에 관한 뒷이야기까지. 한창 작업 중이던 만화계의 거목이 들려주는 입담이 그칠 줄 모른다.

 

'의병전(義兵戰)展 : 일어서는 사람들' 개막 하루 전인 26일 박재동 갤러리에서 만난 박재동 화백. 배경 그림은 박 화백이 40년 만에 그린 유화 '의병들의 휴식'.  네번째달 사진.

'의병전(義兵戰)展 : 일어서는 사람들' 개막 하루 전인 지난 26일 저녁, 전시장 1층을 분주히 누비던 박재동 화백을 만났다. 박 화백은 역시나 만화계의 거목인 동갑내기 이희재 화백과 27일부터 오는 10월 26일까지 박재동 갤러리(서울 중랑구 망우본동 17-13)에서 '의병에서 촛불까지'란 주제로 열리는 2인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지난 5월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갤러리에서 '뿌리'라는 개관 전시를 열었던 박 화백의 이번 '의병전(義兵戰)展 : 일어서는 사람들'은 1907년 영국 언론인 매켄지가 구한말 의병들을 취재한 뒤 출간한 <자유를 위한 한국의 투쟁>(Korea's fight for freedom) 속 의병 사진을 모티브로 기획됐다.

이를 통해 박 화백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자 40년 만에 그린 유화가 바로 '의병들의 휴식'이다. "매켄지와 함께 있어서 더 옷을 빨았지 않았을까"라며 너스레를 떠는 박 화백은 "우리가 모두 의병"이라는 주제를 전달하고자 자연스레 현재와의 접점을 찾아갔고 이러한 노력은 그날의 의병과 오늘의 의병인 '촛불'을 잇는 방식으로 귀결됐다. 십수 년간 촛불 현장을 찾았던 박 화백이 틈틈이 그린 스케치나 캐리커처들도 여럿 선보인다. 다음은 박재동 화백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의병전(義兵戰)展 : 일어서는 사람들' 포스터. 아트몽땅 사진. 

지금, 여기, 우리가 의병이다

- 왜 '의병전'인가.

"초기 의병은 옛날부터, 임진왜란 때부터 있었고 나라가 백성을 버렸을 때도 의병이 지켜냈다. 이런 의병들, 이런 백성들은 아마 전 세계에 별로 없을 거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굉장히 의식이 높다고 생각한다. 보통은 어떤 놈이 통치하든 바뀌었으면 그냥 그렇게 살기 마련인데, (의병들은) '절대 안 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목숨은 버릴지언정 나라는 버릴 수 없다'는 이런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거다.

그러니까 우리 조선 시대 지식인들이 굉장한 수준의 의식을 갖고 있었고, 그 뒤엔 동학 때부터 일어난 어마어마한 민중들이 있었다. 일제가 침략하기 시작했을 때도 의병이 거병했지 않나. (민중들이) 불리하다고 하면 일어났던 거다."

- '의병들의 휴식'은 만화적 특성도 잘 녹아든 것 같다.

"아마 을미의병일 수 있고 조선 말기 의병인데, 매켄지라는 기자가 찍었던 걸 내가 그린 거다.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니까, '자, 서 보세요'하고 탁 찍은 게 아니고, 오랫동안 같이 살고 하면서 얘기를 많이 나누고 그런 거 같아.

또 자세히 보니까 (의병들이) 수염이 하나도 없어. 의병들 모습 보면 옛날에 다 수염을 길렀거든. 그래서 아마 맥켄지가 면도기를 가지고 있어서 의병들도 수염을 깎지 않았을까(웃음).

그다음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의관을 굉장히 중요시했다. 상투도 내놓고 다닌다는 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할 만큼. 그래서 망건을 쓰고 갓을 쓰고. 또 (의병들이) 옷도 상당히 깨끗했다. 매켄지와 함께 있어서 더 옷을 빨았지 않았을까(웃음)."

- 괜히 백의민족이라고 불린 게 아니잖나.

"그렇지. 진짜 흰옷을 숭상했더라고. 그런데, 이 의병들이 어차피 죽는다는 건 다 알고 있었다. '우리는 죽는다', '어차피 죽게 되겠지'…. 일본하고, 정치 군대하고 싸운다는 게 말이 안 되지만 우리는 저항한다는 거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가 있는 거다.

그래서 저들을 그려보고 싶었는데, 사진으로 충분한 것도 만화가이기 때문에 이런 연출이 가능했다. 개별 인물들을 이렇게 저렇게 그리는 데 가능한 장점이 있는 거다.

또 우리 촛불 현장에 자주 가는데, 사람들이 싸운다고 딱 정색만 하는 게 아니라 코미디도 하고 풍자도 하고 노래도 계속하고 춤도 추고 그러면서 싸우거든. 그냥은 힘들어서 못한다. 그런 것들을 내가 봐서 그럴지도 모르고. 딱딱한 의병보다는 이 의병들에게 휴식을 주고 싶었다.

좀 놀면서 해야지 그래야 오래 가는 거다. 또 휴식을 하면 어떻게 할까. 그냥 가만히 휴식하는 건 재미가 없다. 한 번 놀기도 하고 그래야지 맨날 싸우기만 할 순 없잖나(웃음)."

 

박재동 화백이 이희재 화백의 그림을 설명 중이다. 네번째달 사진. 

- 작품에 대해 좀 더 부연한다면.

"그림을 그리는 와중에 경주에서 후배를 만났을 때 거기 계신 여자분이 그러더라. 왜 여성은 안 그리느냐고. 충격이었다. 남자들은 남자만 생각하는 거다. 그런데 의병 중에 여자들도 많았거든. 독립운동가들 중에서 여성들도 많고 굉장한 분들도 많았다.

그런데 사진에 없으니까 안 그리더라. 그런데 그때 그분이 지적을 해 주더라고. 총을 안 들었다고 하더라도 보급 같은 건 담당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뒤에 지금처럼 그렸더니 훨씬 그림이 풍부해졌다.

어떤 사람들은 묘한 슬픔을 같이 느낀다고 하더라. 저는 별로 그렇지는 않다. 이때는 즐겁게 노는 거다. 나중에 결국 죽겠지만. 가만히 앉아서 죽거나 놀고 죽거나.

그것도 있지만 이 작품은 현재를 말하는 거다. 지금 시청 앞 촛불들이 2년을 넘겼단 말이지. 그런 운동, 민주화 운동을 이렇게까지 끈질기게 하는 민족은 나는 처음 봤다. 믿겨지나? 다들 한두 번 하고 말지 않나. 외국에선 유리창 깨고 폭력적으로 시위하지만 우리는 전혀 폭력적이지도 않고 질서를 딱 지키면서 그 속에서 풍자와 해학으로 놀고 꾸짖고 외치고 강력하게 싸우면서도 늘 유머를 잃지 않고, 노래와 춤을 잃지 않고 그렇게 싸웠단 말이지.

그러니까 이런 아이디어가 나오는 거 같다. 의병들한테 휴식도 주고 한 번 놀게 해 드리고 싶은 것도 있고. 바로 이게 우리 현재의 모습이다. 그래서 이렇게 연출을 새로 했다."

십수 년간 촛불 집회에서 만난 오늘의 의병들

- 윤석열 정권의 역사 왜곡 및 친일 논란이 부각된 시점에 꽤나 시의적절한 주제다.

"그렇지. 그래서 우리 전체 전시의 테마도 '우리가 의병이다'인 거다.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할머니들이든, 시청 앞에 나가서 같이 싸워주는 사람들을 꾸준히 봐왔다. 정말 감동적이다.

첫째로 그분들 눈빛이 너무 선하다. 그 눈빛이 신뢰감을 주고 힘을 주고 위로를 주는 거다. 거기 너무 가다 보니 다들 식구처럼 됐다. 새로운 이웃이자 가족처럼.

그건 그것대로 반가운데 또 강력하게 싸우면서 놀고 그러면서 지치지도 않는다. 도대체 2년을 넘게 그러는 사람들이 어디 있나? 그것도 매주 토요일에. 저는 인류 역사상 이런 걸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 특이하고 정말 진정성이 있는 거다. 희생정신도 많고. 또 알다시피 현장도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해. 진정 어리면서 꾸준하고 끈질기게 끝까지 하는 거다."

 

'의병전(義兵戰)展 : 일어서는 사람들' 중 박재동 화백의 캐리커처와 스케치. 하성태 사진.

- 집회 현장을 포함해서 그런 어떤 결정적 장면들도 스케치 그림으로 담은 게 인상적이다.

"작년 가을에 개인전을 했는데 우리 후배들이 여럿 붙어서 같이 했다. 그 동안 시사만화를 하다 그 뒤로는 계속 작은 스케치들을 해왔거든. 그림이 꼭 커야 하는 건 아니고 작은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래서 어린 시절 초등학교 때 그림부터 다 모아서 전시를 했었다."

- 박재동 갤러리를 열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이다. 사실 우리 집이 원래 쓰레기 퇴적장이었다. 내 방이 (그림이나 작업물 등으로) 어마어마해서 임계 상황이 넘었고 치울 수 없는 상황이 됐었다. 우리 집사람 소망이 '이 짐을 들고 나가라'였으니까(웃음).

방법이 없는 거다. 그걸 한꺼번에 해결해 준 사건이 일어났다. 박영윤 대표가 자비를 들여 갤러리를 만들었고, ‘아트 몽땅’이란 회사를 만들었다. 저한테는 구세주고 잔다르크다.

가난하지만 재능이 넘치는 친구들과 모여 회사를 만든 거다. 같이 일도 하면서 내 콘텐츠를 다 가지고 왔다. 박 대표하고 몽땅 식구들 4명이 우리 집을 습격해서 깔끔하게 해결된 거지. 기적이 일어난 거다."

 

'의병전(義兵戰)展 : 일어서는 사람들' 중 박재동 화백의 캐리커처와 스케치. 하성태 사진.

- 이번 전시도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만화가들은 다 이야기꾼들인 것 같다.

"그렇지. 만화가들은 정말 행복하다. 회화 하는 사람들도 행복하겠지만 만화가들이 행복지수가 높을 수 있다. 그리면서 낄낄거리고 웃고, 막 '사람들이 이거 보면 죽어날 거야' 그러면서(웃음). 그림으로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하나의 캐릭터를 만든다는 그 창조자로서의 즐거움 같은 것들이 굉장히 크다.

저는 만화도 하고, 애니메이션도 하고 회화도 했다. 회화는 어떤 면에서 이야기하는 데 무거운 점이 있고, 장엄하게 풀면 또 쉽다. 만화는 많이 그렸으니까 요즘은 회화 쪽으로 해 보려고. 회화를 너무 굶었다.

이번에도 사십 년 만에 그린 유화다.  80년대, 90년대까지는 회화도 그렸는데 그 뒤로는 시사만화를 그렸던 말이지. 그러니까 회화를 잘 못 그렸었다. 막 간지럽고. 이제는 실컷 그려보고 싶다.

내 필생의 작업이 동학에서 촛불까지 우리 민족 민중 수난사와 항쟁사다. 그 안에 생활사가 약간 들어가고. 나는 너무 부자다. 꿈이 크잖나. 화가나 작가의 재산은 하고 싶은 이야기다. 할 이야기가 확실하게 있고 딱 잡혀 있으니까 정말 든든하다."

- 그걸 다 그리려면 건강하셔야겠다.

"그렇지. 건강해야지. 제가 좀 자신이 있는데 내가 술을 안 마신다. 내 성격에 술까지 마셨으면…(웃음).

- 27일이 오프닝이다. 박재동 갤러리를 관람객들에게 의병전을 소개한다면.

"우리 전시를 보면, '우리가 의병이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을 거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는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만화가 이희재 선생과 같이 했다. 절친이고 동갑이다. 그렇게 서로 죽이 맞고 좋을 수가 없다.

나 혼자 감당하기 좀 그래서 모셔와서 하니 서로 비슷하면서 또 느낌이 다르다. 내일 이후 와서 전시를 제대로 보면 상당할 거다(웃음). 이희재 선생이 지적으로도 굉장히 무장돼 있고, 도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탄탄하신 분이다. <감동 한국사> 이걸 그리느라 한국사 책 2천 권을 읽었다고 한다. 정말 훌륭한 화백이다."

 

'의병전(義兵戰)展 : 일어서는 사람들' 중 박재동 화백의 캐리커처와 스케치. 하성태 사진.

'의병전(義兵戰)展 : 일어서는 사람들' 중 박재동 화백의 캐리커처와 스케치. 하성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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