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차지철·박종규 떠오르는 김용현 국방장관 후보자
대통령 고교 1년 선배 경호처장이 국방장관 후보자에
대통령실 용산 이전 추진 장본인…풍수전문가와 답사
용산 이전으로 방공망 뚫리고 도청 당하고 폐해 심각
제2의 차지철인가…군인과 경찰까지 지휘감독 행사
'입틀막' 과잉경호 문제도 심각…국회의원도 폭행
경호처장인데 군 인사에 영향력 행사…"국방상관"
채해병 수사외압 당사자…"후보자 즉각 철회하라"
윤석열 대통령이 김용현 대통령경호처장을 신임 국방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배경을 두고 정치권에서 여러 이야기가 오간다. 윤 대통령의 충암고 1년 선배인 김 처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로 임관해 수도방위사령관과 합참 작전본부장 등 요직을 거친 군인 출신이다. 중장(별 3개)을 끝으로 군복을 벗었지만, 윤 대통령의 대선 경선 때부터 외교·안보 정책 자문 역할을 하면서 정권의 실세처럼 군림했다. 그는 정권 출범 이후 대통령 경호 문제뿐 아니라 군사·안보 문제에도 깊은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언론이 김용현 대통령경호처장을 재조명하게 된 것은 지난 대선 직후였다. 김 처장(당시 청와대 이전 TF 부팀장)이 '윤핵관'이라 불리는 현역 국회의원, 역술인으로 보이는 남성(나중에 경찰에서 백재권 풍수전문가로 확인) 등과 함께 용산 국방부 영내에 있는 육군서울사무소를 답사했다는 의혹이 언론사에 제보될 무렵이었다.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일에 풍수라는 비합리적인 요소가 개입됐음에도 대통령이 김 처장을 답사팀에 포함시킨 것은 그에 대한 신뢰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의 '대표작'인 용산 이전은 대선 공약도 아니었지만, 국민 합의도 없이 2개월 만에 졸속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졸속 이전의 폐해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2022년 8월 수도권에 폭우가 내렸지만, 대통령 사저인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주변이 침수되면서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출근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해 반지하에서 침수로 일가족이 사망했다. 방공망, 도청 문제도 터졌다. 2022년 12월엔 북한 무인기가 용산 인근 비행금지구역에 침투하는 일이 있었으며, 지난해 4월엔 미국 정보기관이 국가안보실을 도청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대통령실은 이후 경찰 수사 과정에서 도청에 드러난 민감 내용이 휴민트(HUMINT·사람에 의한 첩보활동)로 획득한 정보라는 입장을 전달했지만, 보안 책임자인 김 처장은 승승장구했다.
2022년 11월엔 경호처장이 경호 활동을 수행하는 군과 경찰에 대해 지휘 감독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대통령경호법 시행령을 개정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군·경을 포함한 대통령 경호 인력은 3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시행령대로면 경호처장이 연대급 병력을 지휘하는 거대 조직이 되는 셈이다. 곧바로 경호처의 비대화 문제가 지적됐다. 당시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유신시대 차지철 실장을 꿈꾸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왔고, 세간에서는 청와대에 탱크 부대를 배치한 유신시대 차지철 경호실장이 회자됐다. 그러나 경호처장의 위세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 1월엔 대통령에게 "국정기조를 바꾸십시오"라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진보당 강성희 국회의원이 대통령 경호원들에 의해 입이 틀어막히고 사지가 들려 내동댕이 쳐진 이른바 '입틀막'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영상과 증언 등을 통해 김 처장이 대통령 뒤에서 직접 강 의원 방면으로 손을 내려친 사실도 확인됐다(☞관련 기사). 10년간 박정희의 경호실장으로 득세하면서 수가 틀리면 장관의 정강이도 걷어찼다는 박종규 실장(일명 '피스톨 박')이 연상되는 장면이었다. 김 처장의 과잉경호는 박종규에 비견할 만한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었다.
야당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독재 시대에나 있을 법한 충격적인 사건"이라며 "경호처장을 당장 경질하고 직접 국민께 사죄하라"고 했지만, 아무런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한 달 뒤인 지난 2월 "연구개발(R&D) 예산을 복원하라"고 외친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졸업생마저 자신의 졸업식에서 입이 틀어막힌 채 사지가 들려서 끌려나가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나 김 처장은 잇단 경호처의 과잉폭력 경호 문제에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국민에 대한 사과나 유감 표명도 없었다.
과잉 경호는 '입틀막' 사건뿐만이 아니었다. 지난해 5월 윤 대통령 부부의 미국 국빈 방문 당시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에선 대통령실 경호원들이 한국인 하버드 대학생의 전단지를 뺐고 행사장밖으로 쫓아낸 사건이 있었다(☞관련 기사). 그에 앞서 지난해 4월 윤 대통령 부부가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했을 당시엔 대통령실 경호처 대테러과 소속 요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기관단총'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포착돼 경호수칙 위반과 과잉경호가 지적되기도 했다(☞관련 기사). 물론 경호처장에 대한 문책이나 징계는 없었다.
그의 위세는 군에서 더욱 뚜렷했다. 2022년 9월 군 장성 인사를 총괄하는 핵심 요직인 국방부 인사기획관에는 '김용현 사단'으로 알려진 예비역 준장 조모 씨가 내정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조 씨는 김 처장이 주도해서 만든 윤석열 대선후보 지지 모임인 '국민과 함께하는 국방포럼'의 일을 도운 것으로도 알려졌다. 당시 국방부는 논란이 되자 채용 절차를 돌연 중단했고, 김 처장의 육사 2기수 후배인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서 관련 의혹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김 처장이 군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말은 끊이지 않았다.
시민언론 민들레가 지난해 8월 채 해병 사건 수사외압 사건 등으로 계룡대에서 만난 복수의 군 관계자들은 당시 김 처장을 '국방 상관'이라고 불렀다. 이 말은 '국방부 장관 위에 상관이 김용현'이라는 뜻이다. 군의 관계자는 "육군 인사 상당 부분을 김용현이 쥐락펴락한다는 말이 있다"며, 군인들이 '김용현 라인'인지 아닌지로 하반기 인사를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김용현이 4성 장군 달지 못한 게 평생 한이었다는데, 지금 한을 풀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도 했다. 경호처장의 군 인사 개입에 대한 푸념이었다.
그의 군내 위상은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국방부 장관 후보자 지명을 두고도 군 인사 문제가 언급되고 있다. 국방부 대변인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부승찬 의원은 이날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내정자(현 국방부 장관)와 김용현 후보자 사이에 군 인사를 놓고 갈등이 있다는 제보가 들려 온다"며 "10월에 장성 인사가 있는데 어떤 인물이 어떤 자리로 가게 되겠나, 김 후보자는 개인적인 욕망을 위해 국가안보를 팔아먹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가 되는 인사는 '블랙요원 신상' 유출로 문제가 된 정보사령부 관련 인사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여권 내에선 이번 인사를 두고 윤 대통령이 군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김 처장을 국방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하고 신원식 국방부 장관을 국가안보실장으로 밀어냈다는 해석도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신 장관은 김 처장보다 육사 1기수 선배라 '컨트롤'에 어려움이 있어 김 처장을 국방부 장관으로 보낸 부분도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을 국정원장으로 밀어내기 하듯이 안보라인의 권력구조를 개편한 것으로 보인다. 신 장관이 채 해병 수사외압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명예전역을 불허한 데 대해 대통령실에서 못마땅하게 보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무엇보다 김 처장 본인은 채 해병 수사외압 의혹과 임성근 전 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 당사자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의 격노에 이어 국방부의 채 해병 사건 기록 탈취, 수사외압 시도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지난해 7월 31일부터 8월 9일까지 통화 내역에 따르면, 김 처장은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과 7차례 통화했다. 대통령의 경호임무만을 맡아야 하는 김 처장이 직권을 넘어서는 모종의 역할을 한 것 아닌지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또한 최근 공개된 전직 청와대 경호처 간부 송호종 씨와 공익신고자 김규현 변호사의 통화 녹취에서는 '임 전 사단장 구명의 배후가 김용현 경호처장이라고 한다'는 취지의 발언도 등장했다. 아울러 지난해 채 해병 수사결과 발표를 연기하기 직전,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이 통화했던 대통령실 전화번호 02-800-7070이 대통령 경호처로 확인되면서 김 처장이 수사외압에 개입했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경호처는 입장문을 내고 "허위날조"라고 강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의심을 지우긴 어렵다.
군 생활 당시 문제들도 언급되고 있다. 김 처장이 2011년 육군 17사단장으로 재임할 당시 3명의 병사가 한강 하구에서 수풀을 제거하던 중 병사 1명이 급류에 쓸리며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당시 육군은 숨진 병사가 후임병을 물 밖으로 밀어내 구한 뒤 변을 당했다고 발표했었다. 이에 대해 군인권센터는 2017년 김 처장이 '영웅담'으로 조작한 주범이라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검찰과 법원에서 김 처장에게 혐의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사건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인사 청문회가 열린다면 당시 사건에 대한 재검증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북핵 위기가 고조됐던 2017년 8월 김 처장의 행보도 언급된다. 당시 합참의 '핵심 중의 핵심' 직책인 작전본부장을 맡고 있던 김 처장은 4성 장군 인사 발표 직후 휴가를 떠났다. 육군참모총장에 김 처장의 1기수 후배인 육사 39기 김용우 장군이 임명된 직후였다. 직접적으로 인사와 휴가가 관련 있는지는 확인이 필요하지만, 그 시기에 꼭 자리를 비워야 했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김 처장이 휴가를 다녀온 뒤인 2017년 9월 초 북한은 6차 핵실험을 감행했고, 그로부터 2개월 뒤 11월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완성했다.
과거 군 이력 문제뿐만 아니라 대통령 경호 담당이면서도 안보 문제 곳곳에 개입한 정황이 있는 김 처장의 국회 인사청문회는 시작부터 난항이 예상된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 의원들은 벌써부터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아닌 후보자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민주당·혁신당 의원들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처장에 대해 "입틀막, 대통령실 졸속 이전, 채해병 수사 외압의 당사자"라며 "이런 사람이 국방장관으로 오면 군령이 제대로 서겠느냐"고 했다. 이들은 "김 후보자는 무엇보다 '채 해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의 핵심 관련자다. 피의자로 입건해도 모자랄 사람을 국방부 장관에 앉히겠다는 것"이라며 "'충암고 출신'이면 앞뒤 가리지 않는 윤석열 정권은 지명을 당장 철회하라"고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