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제국주의와 우리 안의 사대주의
시진핑-습근평-슈킨페이, 그의 본래 이름은?
일본, 후진타오 중국 주석을 '고킨토'로 불러
중국, 일본 기시다(岸田) 총리를 ‘안톈’ 총리로
국무부를 국무성, 국방부를 국방성으로 쓰는 까닭
“후 이즈 후?” 20여 년 전 중국 국가주석직에 오르기 직전의 후진타오(胡錦濤)에 관한 이 언어유희 내지 농담을 알아듣지 못한 건 전 세계에서 일본인들뿐이었다고 <아사히신문>의 고정 칼럼 ‘천성인어’(天聲人語) 필자가 5일 회고했다.
후 이즈 후?
‘후 이즈 후?’는 ‘Who is Hu(胡)?’로, ‘후진타오는 도대체 누구야?’ 라는 말이다. 당시까지 아직 지명도가 높지 않았던 중국의 차기 최고권력자에 대한, 서방 기자들이 재미삼아 만들어낸 일종의 조크(익살)이자 야유였다. 이 언어유희의 의미를 일본인들이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것은 일본 특유의 외국인 이름 표기, 호명 방식 때문이었다. 일본인들은 胡錦濤를 중국 현지 발음인 후진타오로 읽거나 말하지 않고 일본식 한자읽기에 따라 고킨토(こきんとう)라고 했고, 매스 미디어들이 이를 고착시켰다. 한국에서 그를 한때 ‘호금도’라 부른 것과 같다.
그러니 ‘후 이즈 고’라면 모를까 ‘후 이즈 후’의 의미를 일본인들이 알아들었을 리 없다. ‘후 이즈 고’로 썼다면 알아들었을 사람이 그래도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후 이즈 후’에서 대칭적으로 반복되는 ‘후’가 주는 언어유희적 묘미는 사라져 버린다. ‘후 이즈 고’는 그냥 고는 누구야? 어떤 사람이야? 라는 의미밖에 없다.
시진핑-슈킨페이, 박정희-보쿠 세이키
지금은 일본 미디어들도 외국인 호칭을 현지발음 중심으로 많이 바꿨다. 지금의 중국주석 ‘시진핑(習近平)’을 예전에는 일본식의 ‘슈킨페이’로 읽고 표기했으나 지금은 대부분 그냥 한자만 쓰거나, 그 옆에 작은 글씨로 시진핑이라는 토를 달거나 한자이름 뒤에 붙인 괄호 속에 히라가나로 ‘시진핑’을 써 넣는다.
박정희 대통령도 예전에는 朴正熙(ぼく せいき. 보쿠 세이키)로 썼고, 전두환도 全斗煥(ぜんとかん. 젠도칸)으로 표기했다.
이는 마치 아베 신조(安倍晋三)를 ‘안배 진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를 ‘안전 문웅’으로 부르고 표기하는 것과 같다.
이런 표기방식은 일본만의 현상이나 관행은 아니지만, 일본이 유독 심했다. 이는 외부세계를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을 때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일 수도 있지만,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나 집착의 결과, 또는 자기최면일 수도 있고, 타자에 대한 야비한 차별적 경멸일 수도 있으며, 자폐적인 자기중심주의나 인종차별에 가까운 근거없는 우월감의 표출일 수도 있다. 거기에 개재된 모순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그렇게 쓰는 것이다.
제국주의 정신조작 공식
‘위대했던 영광의 대일본제국’을 그리워하고 그 부활을 꿈꾸는 듯한 국수주의 경향의 극우 <산케이신문>이 지금도 시진핑을 슈킨페이로 표기하는 것을 보면, 이런 일본 특유의 외국인 호칭방식이 일본 제국주의 침략역사의 사상적 잔재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이는 예전 중국대륙 침략기에 일제가 중국을 굳이 ‘시나(支那. 지나)’라는 경멸적인 호칭으로 부른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과거에 우러렀던 중국을, 이제 제국이 됐다고 자부하는 일본이 거꾸로 중심에서 내려다보며 정복해야 할 변방 쯤으로 여기는 제국주의 정신조작 공식이 거기에 배어 있다.
‘천성인어’ 필자도 지적했듯이, 사람은 누구나 그 사람 본래의 이름이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중국도 기시다(岸田) 총리를 ‘안톈’ 총리로
이런 일본적 관행이 불러일으킨 국제적인 불협화음 때문이었던지, 40년 전에 당시 아베 신타로 외무대신(외상)은 중국인이나 한국인의 이름을 현지 발음대로 부르고 표기하도록 하라고 외무성에 지시했다. 아베 신타로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아버지다. 그 결과 한국인에 대해서는 금방 그 표기방식이 많이 바뀌었으나, 중국인의 경우는 좀체 그렇게 되지 못했고, 아직도 많은 경우 고킨토, 슈킨페이 식으로 특별취급을 하고 있다.
천성인어 필자에 따르면, 중국 쪽도 사정이 비슷해서, 예컨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를 ‘기시다(岸田, 안전) 총리’가 아니라 ‘안톈(岸田) 총리’라는 중국식 호칭으로 부르고 있다. 한자가 갖는 표기상의 어려움 탓도 있겠지만, 중국의 그런 표기방식에도 일본의 외국인 호칭 표기방식에서 엿보이는 것처럼 과거 제국(중화제국)에 대한 향수가 깃들어 있는 게 아닐까.
이날 천성인어는 마지막에 지난 6월 말 중국 장쑤성 쑤저우 시에서 스쿨버스를 기다리던 일본인 모자를 습격해 흉기를 위두른 중국인 남성을 저지하다 흉기에 찔려 숨진 중국인 여성 버스 안내원을 애도하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이것이 실은 이날 외국인 이름에 대한 일본 특유의 호칭방식에 대한 얘기를 꺼낸 계기이자 목적이기도 했다. 그 여성의 이름은 胡友平(호우평, 일본식은 아마도 고유헤이)이었는데, 천성인어 필자는 그 이름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그 현지 발음(표기)도 꼭 알려주고 싶다며 ‘후여우핑’이라고 적었다.
국무부-국무성, 국방부-국방성
이 글을 읽다가 좀체 그 낡아빠진 잘못된 관행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외국기관, 특히 미국정부 부처 명칭의 괴이쩍은 표기방식을 떠올렸다. 여기에는 강자의 제국에 대한 향수나 자기중심적인 차별적 우월감과는 정반대인 약자의 자기비하 또는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사대주의적 무의식의 발현 같은 느낌과 함께 비감함마저 갖게 하는 요소들이 스며 있다.
예컨대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를 유독 국무성과 국방성으로 표기하는 잘못된 관행이다. 국무부는 Department of State, 국방부는 Department of Defense의 번역어일 텐데, 이 Department를 우리가 ‘성(省)’으로 번역할 아무런 이유도 근거도 없다. 우리 정부 부처 명칭에는 국방부, 외교부, 문화체육부, 기획재정부처럼 부서 이름에 ‘부(部)’를 붙이지 ‘성’을 붙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굳이 국무성, 국방성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으며, 특히 이른바 조중동 등의 유력 신문들이나 거기에 글을 쓰는 그들 회사 안팎의 칼럼니스트나 유명 외부기고자들 다수가 여전히 미국정부의 Department of State를 국무성, Department of Defense를 국방성으로 표기한다.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없어졌지만, 유력지나 유력 지식인들이 아직도 그렇게 많이 쓰고 있다.
추측하기에 그것은 아마도 일본의 매스 미디어나 도서의 해당 부서 명칭 표기를 그대로 따 와서 쓰는 매체나 지식인들 관행이 만들어낸 영향이지 싶다. 일본은 우리의 부(部)에 해당하는 정부 부서 명칭에 성(省)을 붙인다. 재무성, 경제산업성, 방위성, 국토교통성, 후생노동성, 외무성, 총무성처럼. 따라서 미국의 Department of State를 국무성, Department of Defense를 국방성으로 옮겨 표기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의 경우엔 전혀 당연하지 않다. 우리 정부 부서명에는 성(省)을 붙이지 않는다. 부(部)를 붙인다. 국무성, 국방성이라는 호칭은 일본이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를 부르고 표기할 때 쓰는 그들만의 호칭이다. 우리가 왜 그런 일본의 호칭을 가져다 써야 하는가.
이 또한 식민지시대의 잔재인가. ‘제국 일본’이 쓰던 국무성, 국방성이 그 식민지배를 받았던 ‘신생국가’의 국무부, 국방부보다 어딘지 더 권위가 있어 보이고, 우러러보는 절대강국의 부서 명칭에 그것이 더 걸맞다고 보거나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아마도 별 생각없이 그냥 그렇게 쓰는 경우도 많겠지만, 미국 국무부, 국방부를 국무성, 국방성으로 표기하는 건 여러 가지 의미에서 잘못이다.
북한이 예전의 외교부를 어느때부터 갑자기 외무성으로 부르고 표기하기 시작했다.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순 없지만, 북한에 심한 거부감을 지니고 있고 때론 경멸해마지 않는 듯한 남쪽의 유력 인사들이 미국 정부 부서 명칭에는 왜 굳이 북한이 쓰는 그 ‘성’자 붙이기를 고집하는지도 알 수 없다. 역시 일본이 쓰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