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비 엇갈린 '선거의 해'와 주목되는 프랑스 결전
멕시코, 남아공, 인도, 유럽 선거 결과와 그 의미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성장과 녹색, 좌파 약화
마크롱의 자충수가 낳은 극우 르펜 집권의 위기
진보좌파 단결을 통한 신민중전선의 등장과 희망
극우 패배를 기대하며 함께 돌아볼 교훈과 과제
올해는 ‘선거의 해’라고 부를 정도로 세계 곳곳의 나라들에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선거들이 연달아 벌어지고 있다. 그중에서 몇 가지 중요한 선거들이 지난 6월 초에 진행됐고 그 결과가 나왔다. 그것을 보면 사회의 진보적 개혁과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소식도 있고 우울한 소식도 있다.
먼저 지난 6월 초의 멕시코 대선에서는 지난 6년 동안 집권해온 중도좌파 집권여당이 집권 연장에 성공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에서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인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으로 정권이 이어지게 됐다. 멕시코에서 여성들은 저임금 불안정 노동으로 다국적 기업들에게 초착취당하고, 마약 카르텔에 의한 여성 폭력과 살해도 극심한 나라였다.
하지만 ‘한 명도 더 잃을 수 없다’라고 외치며 싸운 여성들의 투쟁과 극심한 차별을 해소하고 여성의 사회 진출을 뒷받침하려는 정치권의 적극적 여성할당제로 이제 대법원장과 중앙은행 총재와 국회의장에 이어서 최초의 여성 대통령까지 탄생했다. ‘여성할당제’를 극렬히 반대하는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들으면 싫어할 얘기이다.
더구나 멕시코의 오브라도르 정부는 노동자 임금 인상, 노조 설립 지원, 노동시간 단축, 부자 증세 등의 일관된 정책이 지지를 얻어서 6년 전보다 더 큰 선거 승리를 거두었다. 진보 좌파 정당들의 선거 연합도 성공적이었다. 물론 부패, 범죄 등의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지만 다국적 기업, 마약 카르텔의 힘이 여전한 상황에서 6년 만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오브라도르 정부만 탓하기는 어렵다.
반면에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총선 결과나 인도의 총선 결과는 별로 희망적이지 않다. 남아공의 집권여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세계 최대의 빈부격차 같은 계급적 차별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흑백 인종차별에 맞서고 있다는 정당성도 희미해져 버렸고, 내부적 반발 속에서 여러 정당들로 쪼개졌다. 결국 이번 선거에서 30년 만에 과반 확보에 실패하고 단독 집권에 실패했다.
인도 총선에서는 장기 집권 중인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극우적 힌두 민족주의 정부가 3 연임에 성공했다. 모디 총리가 무슬림을 강제 수용하거나 인종 청소하겠다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은 인도의 소수자와 무슬림들에게는 나쁜 소식이다. 다만, 모디의 집권 연합이 개헌 가능 선까지 확보할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야당 연합이 절반에 가까운 의석을 얻으며 강력한 견제가 가능해졌다.
지난 6월 초에 있었던 선거 중에서 국제적으로 가장 관심을 모은 것은 유럽의회 선거와 그 결과였다. 이 선거는 특히 심각해지는 이민 문제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낳은 갈등 속에서 극우 인종주의적 정치세력과 신나치들이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 진행됐다. 선거 결과를 보면 실제로 극우 정당들이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전체 720개 의석 중에서 25% 정도를 차지하게 됐는데, 그럼에도 급성장까지는 아니었다. 문제는 여전히 유럽의회에서 가장 큰 세력인 유럽 각 나라의 중도우파적 정당들이 극우 정당들의 반이민 정책들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보수당은 미등록 이민자들을 모두 체포해서 아프리카 르완다로 추방하겠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 두드러지는 것은 녹색당과 좌파 정당들의 약화였다. 대표적으로 독일에서 히틀러의 계승자로 의심받고 있는 ‘독일을위한대안당’(AfD)은 이번에 제2당으로 성장한 반면에, 녹색당과 좌파당 등은 지지율과 의석수가 상당히 줄었다. 프랑스도 상황은 비슷하지만, 좀 더 다른 그림이 펼쳐지고 있다.
먼저 이번에 프랑스에서도 유럽의회 선거에서 가장 큰 승자는 신나치라고 비판받던 르펜의 국민연합이다. 국민연합은 마크롱의 집권여당보다 2배나 더 지지를 얻어 1위를 했다. 8년 전에 등장한 마크롱의 중도우파 정부는 부유세 폐지, 연금 개악 등을 추진하고 반이민 정책을 도입하면서 오히려 르펜이 권력을 잡을 수 있도록 길을 깔아준 셈이 됐다.
르펜의 국민연합은 도시 변두리와 농촌 등 낙후된 지역의 불만에 찬 사람들 속에서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반면 프랑스의 좌파는 사회당, 공산당, 불굴의 프랑스, 생태주의당 등이 서로 경쟁하며 분열된 상황이었다. 몇 번이나 집권했지만 실망만 낳았던 중도좌파 사회당에 대한 다른 좌파들의 불신이 컸고,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도 문제였다.
특히 급진좌파이면서 가장 성장하고 있는 ‘불굴의 프랑스’는 팔레스타인 저항을 적극 지지하면서 ‘반유대주의’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이 상황에서 마크롱은 유럽의회 선거가 끝나자마자 조기 총선이라는 도박과 승부수를 던졌다. 좌파가 분열돼 있는 상황에서, ‘르펜만은 막아야 한다’라는 공포감을 이용하면 중간에서 자신이 승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마크롱의 자충수 덕분에 오히려 르펜이 승리해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커지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걱정과 우려가 쏟아졌다. 이 상황에서 새로운 희망이 등장하며 역동적인 상황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분열 속에 있던 진보좌파들(불굴의 프랑스, 사회당, 공산당, 생태주의당)이 ‘신민중전선’을 결성해 총선에 공동 대응하기로 극적인 합의를 한 것이다.
신민중전선은 150개 공동정책도 합의하고 발표했다. 최저임금 인상, 부유세 부활, 생태적 계획, 생필품과 에너지 요금 동결, 공공주택 확충, 억만장자 특권 폐지, 횡재세, 연금 개악과 반이민 법안 무효화,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 즉각 중단, 이스라엘 군수 지원과 협력 중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중단과 우크라이나의 자결권 지지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번 극적 합의는 좌파가 단결해서 극우 신나치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작동한 결과다. 분열을 넘어선 좌파의 단결을 요구하는 아래로부터 압력이 높았다. 지난 2주 동안에 프랑스에서는 르펜에 반대하고 신민중전선을 지지하는 50~80만 명 규모의 시위가 연달아 벌어졌다. 프랑스의 주요 4대 노조(CGT, CFDT, FSU, 솔리다리티), 반인종주의 연합체, 급진좌파 조직들도 신민중전선 지지를 선언하고 있다.
지금 상황을 1930년대 프랑스에서 있었던 경험과 비교하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당시에도 극우파의 득세에 맞서던 사회당-급진당-공산당의 반나치 ‘민중전선’이 선거에서 승리하고 집권했다. 그것은 500만 노동자가 참가하는 공장 점거 파업으로 이어졌고, 급진적인 개혁 정책들을 가능하게 했다. ‘신민중전선’이라는 이름이 그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르펜의 국민연합이 30~34%, 신민중전선이 26~30%로 1, 2위를 다투고 있다. 반면 마크롱의 집권 연합은 16~20%로 3위다. 계획이 어긋난 마크롱은 크게 당황하고 있다. 물론 6월 말 1차 투표와 7월 초 결선 투표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낙관할 수는 없다. 현재 르펜의 국민연합을 중심으로 다른 극우 세력들이 결집하는 분위기다. 전통적 우파인 공화당에서 일부도 국민연합과 협력하자는 목소리가 나타나고 있다.
신민중전선 내부의 균열 요인들도 존재한다. 집권하는 동안 무능하고 기득권에 타협하는 정책으로 사회당의 몰락을 가져온 올랑드 전 총리도 신민중전선의 후보로 나선 것이 악재가 되고 있고, ‘불굴의 프랑스’는 지도자인 장 뤽 멜랑숑의 카리스마가 너무 강하고 비민주적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좌파의 단결을 가로막아 온 요인들이 여전하고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는 상황이다. 마크롱과 주류언론은 그것을 기대하며 이간질하고 있다.
부디, 다가오는 프랑스 총선에서 ‘반무슬림 문화 전쟁’을 선포한 르펜의 극우 정부가 집권할 것이라는 악몽이 ‘신민중전선’의 집권이라는 희망으로 바뀌기를 간절히 기대하는 마음이다. 프랑스의 축구 국가대표 선수인 킬리안 음바페도 최근 "우리는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 있다", "극단주의가 권력의 문 앞에 있다", "(이것은) 경기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라고 말하며 르펜에 반대해서 투표할 것을 호소했다.
멕시코, 남아공, 프랑스 등의 경험과 상황은 우리에게도 몇 가지 교훈과 과제를 보여주고 있다. 첫째, 진보 정권은 실질적 개혁에 성공해야만 집권을 연장할 수 있다. 둘째, 기득권에 타협하는 무능한 중도 정부의 실패는 결국 극우의 성장을 부추길 수 있다. 셋째, 사람들의 불만을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증오로 돌리는 극우의 집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넷째, 그러려면 진보좌파의 폭넓은 단결을 통한 희망의 제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