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자민당 총재선거 앞두고 ‘기시다 퇴진 이후’ 시동
스가 전 총리, 사실상 기시다 퇴진 요구
기시다 내각 지지율 16.4%, 자민당 19%
흔들리는 기시다-아소의 ‘동지적 관계’
니카이파 중진 “여러 의미에서 총리는 끝났다”
‘포스트 기시다’ 레이스 선두 이시바 시게루
오는 9월로 집권 자민당 총재 임기가 끝나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 퇴진론이 표면화하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는 23일 분게이슌주(문예춘추) 온라인 미디어에 출연해 “총리 자신이 파벌 문제를 안고 있는데, 책임을 지지 않았다. 언제 질 것인가. 언제 언급할 것인가. 그 책임에 대해 얘기하지 않고 오늘까지 왔다”며 9월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당의 쇄신을 국민에게 호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자민당 파벌들의 정치 비자금 조성과 관련한 기시다 총리의 대응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스가 전 총리의 이런 발언은 “사실상 총리의 (총재선거) 불출마, 퇴진을 요구하는 발언”이라고 <아사히신문>이 이날 전했다.
스가 전 총리, 사실상 기시다 퇴진 요구
<일본경제신문>(닛케이)도 자민당 총재선거와 관련해 정치의 “쇄신”이 중요하다며 새로운 리더십이 나와야 한다면서 “사실상 퇴진요구를 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내각책임제의 일본에서 의회의 압도적 다수당인 자민당 총재가 일본총리가 되는 관행상 총재선거 불출마나 낙선은 곧 총리 교체로 이어진다. 기시다 총리는 9월의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아 재선에 성공한 뒤 총리직을 계속 맡으려 하고 있으나, 당 내에서는 총재선거 이후 치러질 중의원선거(총선)에서 지금의 기시다 총재 얼굴로는 승산이 없다고 보는 시각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야당이 분열로 지리멸렬한 상황임에도 최악의 경우 정권교체까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중의원 해산과 총선은 오는 9월의 총재선거 뒤부터 이번 중의원 임기가 끝나는 내년 10월 이전 사이에 실시된다. 내년 7월에는 참의원선거도 있다.
기시다 내각, 자민당 지지율 10%대
자민당은 ‘비자금 스캔들’ 여파로 12년 만에 가장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13일의 일본 <지지통신> 보도에 따르면, ‘6월 여론조사’(6월7∼10일 실시)에서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전 달 대비 2.3%포인트 떨어진 16.4%를 기록했다. 이는 2012년 자민당이 민주당으로부터 정권을 되찾아온 뒤 가장 낮은 지지율이다.
자민당의 지지율도 처음으로 10%대로 추락했다. <아사히신문> 지난 15~16일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응답자 1012명)를 실시한 결과를 보면, 자민당 지지율은 한 달 전보다 5%포인트 하락한 19%로 집계됐다. 조사가 시작된 2001년 4월 이후 자민당이 10%대를 기록한 것은 처음이었다.
“여러 의미에서 총리는 끝났다”
기시다 총리와 거리를 두고 있는 비주류판 리더격인 스가 전 총리의 이날 발언은 반기시다 진영의 움직임을 가속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아사히>는 지적했다. 스가 전 총리는 기시다 총리의 정치 비자금 조성 문제에 대한 대응과 관련해 “정치불신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자민당이 원점으로 돌아가 대처하는 것이 당연했다. 관련 법안을 야당이 먼저 낸 뒤에 자민당안이 나온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며 다음 총재선거에서 “자민당이 바뀌었다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자민당을 덮고 있는 분위기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자민당의 정치 비자금 조성 사건은, 정치자금 모금을 위한 당 파벌들의 파티권 판매로 얻은 수익의 일부를 각 파벌이 정치자금 수지보고서에 재대로 기재하지 않고 뒷돈으로 빼돌려 쓴 사실이 드러난 사건이다. 의원들에게 할당된 파티권 판매를 초과 달성한 의원들에게 초과분을 수지보고서 기재 없이 돌려주거나 엉터리로 수지보고서를 작성해 정치자금규정법을 위반(기재 누락, 허위 기재)한 것이다.
자민당 내에서는 스가 전 총리 발언 이전부터 총리 퇴진 요구가 지방에서 계속 제기돼 왔고, 국회의원들 속에서도 “책임은 누군가 저야 한다”며 총리 퇴진을 요구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일본 중앙 정계에서는 이제까지 퇴진요구가 공개적으로 거론되진 않았으나, 니카이 도시히로 전 간사장이 이끄는 ‘니카이파’의 한 중진은 “총리는 여러 의미에서 끝났으나, 총재선거가 9월이어서 아직 누구도 끌어내리려고 하지 않을 뿐 총재선거의 호포가 울려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 단체 헌금 금지’ 30년 지나도록 못지켜
고노 다로 디지털담당 대신의 아버지인 고노 요헤이 전 중의원 의장도 일본 정기국회가 끝난 지난 21일 여론조사에서 자민당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진 사실을 지적하며, 정치 비자금 조성을 규제하기 위한 정치자금규정법 개정이 ‘기업과 단체 헌금 금지’라는 여야당 합의사안조차 실현시키지 못한 점을 비판했다.
1993년 자민당 정권이 붕괴한 뒤 들어선 야당연합의 호소카와 모리히로 정권과 자민당은 1994년 1월, 정치개혁 관련법안 논의 때 기업과 단체의 헌금을 금지하는 대신 국민 세금으로 정당교부금을 주기로 합의했으나, 당장 기업과 단체 헌금을 금지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5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 금지 합의는 지켜지지 않고 있고, 일본 납세자들은 연간 315억엔(약 2740억 원)의 정당교부금만 추가로 내고 있다.
정치자금규정법 개정안은 또 용도를 밝히지 않아 ‘블랙박스’라는 비판을 받아 온 ‘정책활동비’ 영수증도 ‘10년 뒤에 공개’하는 것으로 돼 있으며, 정치자금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3자 기관 설치도 그것을 담당할 주체가 누구인지조차 정하지 못한 상태다.
흔들리는 기시다-아소의 ‘동지적 관계’
오랫동안 기시다의 정치적 동지였던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도 정치자금규정법 개정 논의에서 당 ‘파티권’ 구입자의 공개 요건을 둘러싸고 기시다 총리의 일방적인 결정에 반발하면서 사이가 틀어져 기시다의 총재 연임 구도에 균열이 생겼다.
자민당의 정치헌금 모집 장치인 당 파티권 판매와 관련해 아소 부총재는 1매 2만엔짜리 파티권 구매자의 신원 공개를 총10만엔 이상 구매자로 하자고 주장해 왔으나 기시다 총리가 연정 파트너인 공명당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와의 5월 말 회담에서 5만엔 이상 구매자로 하자는 공명당안에 동의해 버리는 바람에 양자 간에 균열이 생겼다.
정치 비자금 문제가 터져 나왔을 때 여론 악화를 막고자 기시다 총리가 서둘러 문제가 처음 불거진 ‘아베파’ 중진들을 각료직에서 무더기로 퇴장시킨데 이어 ‘파벌 해체’를 선언하며 자민당 내 파벌들에 해산을 종용한 것도 아소를 화나게 만들었다. 아소파는 아직도 해산을 거부하고 있다. 스가 전 총리는 그런 아소파의 해체도 이번에 요구했다.
기시다 총리는 당내 비판, 특히 ‘아소파’의 반발이 거세지자 21일 이례적으로 참의원 총회에 참석해 정치 비자금 문제로 국민의 불신이 심각해진 상황에서 연정 파트너인 공명당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당과 정권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해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기시다는 전기 가스 요금 인하 효과를 내는 보조금 지급을 재개하는 등 경제대책을 내놓으며 민심 달래기에도 나서고 있으나, 정치 비자금 문제에 대한 분명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여론을 돌려세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기시다 정권은 지금까지 기시다 총리, 아소 부총재,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 세 기둥이 떠받치는 ‘3두 정치’체제로 유지돼 왔으나, 총재선거를 앞두고 흔들리고 있다. 아소는 “아소파와 모테기파를 화나게 하면 정권 운용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번에 스가 전 총리가 사실상의 기시다 퇴진론을 들고 나온 것과 관련해, 2020년 9월 아베 신조 퇴진 뒤 총리직을 이어받은 스가 당시 총리의 연임 의욕을 좌절시킨 기시다에 대한 반격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2021년 9월 총재선거 때 스가는 무투표로 재선되는 걸 노렸으나 기시다가 총재선거에 입후보하면서 그 시도는 좌절당했다. 그때 기시다는 한편으로 스가의 코로나 팬데믹 대처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그러나 결과적으로 국민 사이에는 ‘정치가 우리의 소리, 현장의 소리에 호응해 주지 않는다’ ‘우리의 고민과 고통이 가 닿지 않는다’ ‘정치를 신뢰할 수 없다’ ‘정치에 기대해봤자 소용없다’는 등의 절실한 소리가 흘러넘치고 있다”며 자신의 입후보 이유를 밝혔다. 결국 스가는 총재 입후보를 포기했다. 이번에는 스가가 기시다 불가론의 이유를 똑같은 말로 되돌려 주고 있는 셈이다.
시작된 ‘포스트 기시다’ 레이스 후보들
기시다가 총재선거에 출마할지 여부와 상관없이, 자민당 내에서는 ‘총리 재선’ 불가를 전제로 한 ‘포스트 기시다’ 경쟁이 시작됐다.
여론조사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사람은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이다. 그는 21일 총재선거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많은 의석을 지닌 자민당 의원들은 모두 그런 각오를 다져야 한다”며 의욕을 보였다. 그의 국민적 인기는 제2기 아베 정권 중반 이후 정권과 거리를 두면서 ‘당 내의 야당’ 역할을 한 것에 대한 기대감이라고 할 수 있다. “‘틀 바깥’에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자민당에게 불만이 있는 유권자들의 지지가 쏠리고 있다”고 한 각료 경험자는 말했다. 그는 당 바깥과 지역 당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지만 중앙과 연역의원들은 그에 대한 거부감이 강해 총재 당선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
2021년 총재선거에 입후보했던 노다 세이코 전 총무상도 “(국회 내의 남녀 성비) 불균형을 바꾸는 상징이고자 한다”며 출마의사를 내비쳤다. 노다는 당시 4인 후보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했으나 “(이번에는 의원들이) 이미 지원팀을 만들었다”고 했다.
고노 다로 디지털 담당대신은 겉으로는 “필요에 응해 대응해 가겠다”는 정도에 그치고 있으나, 소속 파벌을 이끌고 있는 아소 부총재의 지원을 얻기 위해 회식자리를 마련하는 등 지반 다지기를 본격화하고 있다.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은 ‘모테기파’ 바깥으로 지지를 넓히기 위해 정치 비자금 사건으로 해체 상태인 아베파 등의 젊은 의원들과 접촉을 강화하고 있다.
우익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상은 지난 총재선거에서 자신을 지원한 아베 전 총리의 ‘후계자’를 자처하며 보수성향의 의원들을 결집시키려 하고 있다. ‘네이버 라인’ 문제에도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해 가을 외무대신에 취임한 뒤 졸지에 총재후보로 거론되는 가미카와 요코 외상은 21일 기자들에게 “기대는 고맙게 받아들이겠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여기에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대신도 거론되고 있고, 스가 전 총리도 의욕을 보이고 있으나, 아직 이렇다 할 ‘유력후보’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만큼 자민당이 정치 비자금 사건으로 입은 상처가 커서 이미지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아사히>는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