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 애완견과 '광견'

대상에 따라 도사견으로 돌변하는 행태

자신 돌아볼 기회 걷어차며 발언자 맹공

언론 자신에 대한 비판에는 혼연일체 보여줘

'얻다 대고 감히'라는 말이 드러내는 오만함

2024-06-20     이명재 에디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언론은 애완견’ 발언이 있고 나서 며칠간 언론의 반응은 그야말로 파상 공세였다. 이 대표는 ‘애완견’이라는 말은 언론 전체가 아닌 일부 언론에 대한 발언이었다고 유감의 뜻을 나타냈지만 그가 과연 사과 해명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차치하고, 그의 발언은 언론이 자기성찰을 할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었다. 이 발언은 그에 대한 동의와 반대 여부를 떠나 언론에 하나의 기회이기도 했던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정치인의 언론에 대한 작심 발언은 그것을 정당한 비판으로 보든 반대로 부당한 주장이며 도발로 보든 간에, 그 말에 대한 비판과 함께 언론 스스로 따져볼 필요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언론의 진지한 성찰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분노는 컸지만 자성은 보기 힘들었다. 발언자에 대한 공격과 비방은 문제의 본질을 비껴가는 시비로 흘렀다. 공격은 그 발언자에 대해서만 행해졌을 뿐 왜 언론이 그 같은 지적을 받게 됐으며, 적잖은 국민들이 왜 그 발언에 대해 공감을 표시했는지를 살펴보려는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 대표의 발언은 두 번 놀라움을 안겨준 말이었다. 첫 번째는 언론에 밉보여서 유리할 게 없는 정치인이 언론을 적으로 돌리는 것을 자초하는 듯한 발언을 스스로 한 것이라는 점에서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게 한 또 하나는 모든 언론들이, 이른바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일제히 그 발언을 한목소리로 규탄하고 나선 것이었다. 언론계의 자기개혁 운동을 벌이는 언론운동단체들까지 나서서 공격하는 모습이었다. 거의 전 언론계가 일치단결해 공세를 펼쳤다.

그 같은 언론의 '혼연일체'는 일부 언론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었을 뿐이라는 이 대표의 해명과 달리 그의 발언이 결과적으로 특정 언론이 아닌 언론 일반의 현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냈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또 역설적인 것은 언론이 이번에 '감시견'의 속성과 역할을 여지없이 보여줬다는 것이다. 그동안 참았던 감시견의 역할을 다하려는 듯 맹렬하게 애완견 발언을 공격하는 기세에서 언론은 모처럼 매서운 감시견의 면모를 드러냈다. 다만 감시견의 역할은 극히 선택적으로, 일방적으로 나타났다. 다른 무엇보다 언론 자신에 대한 비판 앞에서 언론은 다른 사안들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감시견의 역할을 보여준 것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 장경태 최고위원과 대화하고 있다. 2024.6.14. 연합뉴스

언론은 어떠한 권력을 감시하는 것 이상으로 언론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에 대해 성난 표정으로 맹공을 가했다. 그런 언론을 애완견이라고 한다면 더욱 문제는 애완견이어서가 아니라 그 애완견이 대상에 따라서는 도사견, 광견이 된다는 것에 있다.

자신에 대한 비판과 공격에 대해 언론이 취하는 태도의 단면을 보여준 것은 한국일보의 논설위원의 칼럼 <얻다 대고 애완견인가>이었다. ‘얻다 대고’라는 표현은 '감히 언론에 대고 무엄하게'라는 의식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그럼에도 이걸 오만이라기보다 애써 언론으로서의 ‘자존’이나 ‘긍지’라고 해 두자. 그러나 자존과 권위는 언론 자신을 성역으로 드높이거나 특권화하는 것으로써는 결코 얻어지지 않는다. 이번에 한국의 언론들이 언론인으로서의 동업자의식, 동료의식을 보여줬다면 그것은 성역의식과 특권의식의 동료애였다. 언론사에 대한 무차별 수사와 압수수색기소 등 언론에 대한 권력의 탄압 때는 찾아볼 수 없었던 동료애이며 동지의식의 표출이었다.

이재명 대표의 '애완견' 발언이 있고 나서 며칠 뒤 한국 언론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신뢰도를 보여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영국 로이터 저널리즘연구소가 매년 조사하는 신뢰도 지수에서 한국은 올해도 최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태평양 11개 주요국 가운데에서는 꼴찌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 뉴스를 전하는 언론사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언론의 자존과 긍지는 권위 있는 국제기구에서 나온 조사 결과를 하나의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듯하다. 이 소식을 전하는 언론 중에서 위의 '얻다 대고' 논설위원 칼럼이 실린 신문에서는 이를 <전 세계 '뉴스 회피' 시대>라는 제목과 요지로 보도했다. 전 세계 10명 중 4명은 의도적으로 뉴스를 회피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으며,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지루하고 우울한 뉴스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나타났다는 요지였다. 그러나 한국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세계 최하위권이라는 내용은 아예 빠져 있다. 이런 식의 반쪽 보도야말로 한국민들이 뉴스를 회피하는 큰 이유에 다름 아니다. 

 

한국일보 6월18일자 지면 칼럼 '이대표, 얻다 대고 애완견인가'. 

<얻다 대고> 칼럼은 재판부의 판결이 ‘들쭉날쭉’이라는 이 대표의 주장에 대해 “기만에 가깝다”고 단언하면서 “나라 꼴을 생각해서라도 이젠 그 말의 옳고 그름을 엄정히 짚어야 할 때가 됐다”고 사뭇 비장한 어조로 '망국적인' 야당 대표의 발언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설파한다. 그 같은 비장함과 결연함은 언론에 끊임없이 위협을 가하고 있는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 그 이전에 자신의 ‘들쭉날쭉 보도’에 대해서 먼저 필요한 게 아닌지 돌아봐야 마땅할 것이다.

한국기자협회가 제정한 <기자윤리강령>은 취재와 보도에서의 '독립'을 강조하고 있다. 그 독립은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침해나 간섭을 받지 않는 독립을 우선 얘기하는 것이지만 그와 함께, 아니 오히려 그 이전에 독립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자신의 편견과 무지로부터의 독립이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은 자신의 편견과 무지로부터의 독립보다 외부의 비판으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이번의 애완견 발언 사태는 여실히 보여줬다. 애완견이든 감시견이든 한국의 언론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자신을 광견이 되지 않도록 자신의 목에 스스로 거는 자기비판, 자기반성의 '목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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