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단체, 징벌적 손배제 반대만 할 것인가?
민주당 '3배 손배법' 내자 언론인 단체·언론 또 반대
3년 전과 똑같은 이유에 "윤 정권 환영할 것" 추가
징벌적 손배 반대 위해 내놓은 '자율기구' 흐지부지
한겨레·경향 "피해자 구제 반대 안해"라면서도 반대
무책임하고 반대 위한 반대만 하지 말고 대안 내야
지난달 말 민주당 정청래 의원 등이 ‘3배 징벌적 손해배상’이 포함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발의하자 현업 언론인 단체들과 일부 언론이 또다시 반대의 목소리를 내놓았다. 잘못된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구제를 제대로 하자는 입법에 이번에도 ‘언론자유 침해, 취재 위축’을 내세워 계속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 단체와 일부 언론은 3년 전 언론중재법 개정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같은 이유로 반대했다. 그러다 국민들의 언론개혁 여론이 들끓자 ‘자율기구를 만들 테니 맡겨달라’고 했지만 결국 흐지부지 끝났고 말았다. 이번에는 ‘징벌적 손배제를 도입하면 윤석열 정부가 좋아할 것’이라는 반대 이유를 추가했다.
언론의 무책임하고 악의적인 허위 보도가 사라지지도, 줄어들지도 않고 있는데, 언론은 스스로 정화나 개혁 노력은 하지 않고 도대체 언제까지 반대만 할 것인가? 국민들은 언제까지 엉터리 보도의 피해를 고스란히 당해야 하나?
민주당이 이번에 발의한 언론중재법 개정 등의 법안은 △악의적 보도로 인격권이 침해된 경우 언론사가 손해액의 3배 이내에서 배상하도록 하고 △정정·반론 청구 기한을 늘리며 △정정·반론·추후보도를 원래 보도의 지면 및 분량으로 게재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언론인 단체와 일부 언론이 이번에도 ‘악의적 보도’라는 표현이 모호하다면서 그것 때문에 전략적 봉쇄소송이나 언론탄압으로 악용되거나 남용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모호하지 않도록 최대한 구체적이고 적절한 범위를 제안하고 논의하고 합의하면 된다. 3년 전에도 똑같은 이유로 반대했다가 민주당이 수정안을 내자 다시 반대하고, 반대를 받아들여 수정하자 또 반대하면서 개정안이 누더기가 됐다. 그러자 ‘누더기 법안’이라고 또 반대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당시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비판을 받았던 것이다.
민주당이 제안한 ‘3배 손배’를 마치 엄청난 징벌인 것처럼 말하는 것도 과장이다. 언론의 오보로 의한 피해보상이 현재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언론 스스로 잘 알 것이다. 기업이 파산하거나 개인이 회복 불능의 피해를 입어도 법원이 언론에 명령하는 피해보상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 언론중재위에 따르면 언론의 오보로 인한 손해배상 평균 조정금액은 겨우 5백만원을 넘지 않는다.
오히려 언론보도로 인해 막대한 피해와 손해를 입고도 겨우 몇백만원의 보상으로 피눈물을 닦아야 하는 피해자들에게는 오보 자체가 언론으로부터 이유없이 받는 엄청난 징벌이다. 2년 전 '쿠팡 노조가 대낮 술판을 벌였다'고 보도한 조선일보와 한국경제신문은 오보임이 확인되자 짧은 정정보도문 하나와 1백만~5백만원 정도의 위자료로 책임을 끝냈다. 더럽혀진 노조의 명예와 깊은 상처가 5백만원으로 회복되고 치유될 수 있을까?
조선일보는 지난해 분신자살한 건설노조 양회동 씨의 유서가 위조 · 대필되었다는 악의적 오보를 내고도 몇줄의 사과문으로 마무리했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섰던 조수진 변호사는 언론 보도에 밀려 출마를 포기했지만 결국 그 많은 언론 보도는 모두 오보였다. 오보로 밝혀졌어도 그가 다시 출마할 수는 없다. 한국 언론에 심각한 오보가 얼마나 많은지는 언론인들 스스로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오보를 낸 언론이 하는 일은 짧은 사과문이나 정정보도, 5백만원 정도의 보상금이다. 그러니 언론은 사실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고 마구 오보를 쓴다. 오보의 피해자만 돌이킬 수도, 회복할 수도 없는 손해와 피해로 고통받게 된다.
언론중재위는 잘못된 보도에 대해 피해자보다는 언론의 입장을 더 많이 수용하는 편이다. 법원은 언론이 오보를 내더라도 기자의 진위확인 노력 등에 따라 조각사유를 적용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명백한 오보임이 확인돼 3배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다면 그것이 과연 '과잉'이고 '징벌’인가? 언론보도에 의한 피해구제법을 ‘징벌적 손배법’이라며 반대하는 것은 대개 국내 큰 언론사들인데, 손해액의 3배 정도의 배상이 언론사 문을 닫게 할 정도의 큰 금액인지도 모르겠다.
언론중재위나 재판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데 이를 3배 손해배상토록 하는 것은 과잉입법이라며 반대하는 주장도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언론중재위나 재판에서 피해보상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3배 손배로 이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또 형법에 명예훼손죄로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중 처벌이라고 주장한다. 명예훼손법은 형법상 그것대로 의미가 있고 손해배상은 별개의 문제다. 언론 보도에 형법상 명예훼손을 적용하는 것이 문제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문제제기할 일이다.
언론인 단체와 일부 언론은 이번에 민주당이 발의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비판언론 탄압을 자행하고 있는 윤석열 정권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 반대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막강한 정치권력이나 금권력을 갖고 공익적 보도에 대해 언론탄압이나 전략적 봉쇄소송에 나설 수 있는 정부·대기업에 대해 징벌적 손배제를 적용하지 않도록 하면된다. 윤석열 정권의 징벌적 손배제 악용이 걱정된다면, 윤 정권이 끝난 뒤에는 징벌적 손배제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인가?
지금은 윤석열 정권의 방송 장악을 저지할 방송3법 입법에 집중할 때라 징벌적 손배제로 논의와 싸움을 분산시키지 말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방송3법이 통과되고 난 뒤에는 징벌적 손배제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인가? 논의해볼 수 있다는 의미인가?
심지어 이 법안이 양문석 의원의 ‘사적 복수심’으로 인해 발의된 것이라며 반대하기도 한다. 양문석 의원이 공동 발의자에서 빠진다면 이 개정안을 받아들이거나 논의해 볼 수 있다는 것인가? 본질을 덮으려고 자꾸 구차한 이유를 만들어내고 있다.
언론은 겨우 3배 손배제를 ‘징벌적’이라고 과장하고, 그것이 너무나 부담이 되어 취재와 언론자유가 위축될 것이라 주장한다. 솔직해지고 겸손해지자. 잘못된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를 제대로 보상하면 정말 언론자유가 위축되는가? 한국 언론 역사에서 무도한 권력의 횡포와 비열한 자본의 겁박에 의해 언론자유가 위축된 적은 있어도 언론 피해자에 대한 정당한 피해보상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언론자유가 소중하다는 사실을 백번 인정하더라도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인해 생긴 피해를 제대로 구제할 책임까지 외면해서는 안된다. 지금 언론이, 혹은 언론인이 ‘기레기’란 멸칭으로 불리는 것이 언론의 사회적 책임 방기 때문이라는 것을 새까맣게 잊고 있는 것일까?
징벌적 손배제는 오히려 기자들의 취재를 더 자유롭게 하면서 책임있는 언론인으로 나아가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기자들이 사주나 간부들의 정치적 편향 또는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고 사실보도에 더 충실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 개인이 아닌 언론사에 피해 보상의 책임을 지도록 하면 사주나 간부도 기자에게 무리한 취재·보도 지시를 하지 않고 기사의 진위와 품질도 더 엄격히 관리할 것이다. 언론인 단체들이 사주나 간부가 아닌 취재 기자들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징벌적 손배제를 도입하자고 해야한다.
미디어오늘이 5월 말 김영훈 민주당 문화체육관광 수석전문위원을 만나 인터뷰한 기사를 보면 징벌적 손배제의 긍정적 측면이 언급되어 있다. 그는 “언론 미디어 환경이 바뀌면서 언론보도에 대한 피해자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언론중재법 찬반 논의 이전에 오죽했으면 이런 논의가 나오게 됐나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라면서 “자기 검열이 아니라 검증 강화를 통해 제대로 된 뉴스를 생산한다는 긍정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징벌적 손배제가 통과된다고 해도 재판부가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으리라고 본다”면서 “합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기사를 쓰면 징벌적 손배제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3년 전 징벌적 손배제 논란이 일자 언론인 현업 단체들은 이 제도에 반대하며 ‘통합형 자율규제기구’를 만들겠다고 했다. 언론보도로 인한 분쟁이 발생했을 때 반론·정정·사과·위자료 등 피해구제 조치를 ‘자율적’으로 하겠다며 만든 기구다. 그러나 이 기구의 얼개가 공개됐을 때 내부에서도 “무엇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 ‘자율규제기구’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언론피해구제 강화법에 일부 '진보' 언론들이 대책 없는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한겨레는 지난 6일자 “징벌적 손해배상제 또 발의, 비판보도 위축 우려된다”는 사설에서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반대한다면서도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피해자를 구제해야 한다는 취지에 반대할 이는 없다. 또 이런 법안을 발의하게 만든 일부 언론들의 잘못된 행태를 옹호하려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피해자 구제에 반대하지 않는다면서 왜 입법에는 반대하는가?
경향도 마찬가지다. 같은 날 사설에서 “언론보도엔 책임이 따르고 성역이 있을 수 없다. 악의적 보도로 인권침해가 일어나는 일은 더욱 없어야 한다”면서도 “감탄고토식 언론 입법 말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한겨레와 경향은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중대재해처벌법엔 찬성하면서 왜 비슷한 취지의 언론피해구제 강화법엔 반대하는지 모르겠다. 기업이 저지른 중대재해는 강력 처벌하자면서, 언론 자신이 저지른 중대오보는 강도 높게 배상해서는 안된다는 것인가?
미디어오늘, 미디어스 등 언론의 오보, 왜곡보도를 감시·비판하고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구제에도 큰 관심을 가져야 할 미디어 비평 매체들도 징벌적 손배제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이다. 언론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매체가 일방적으로 언론의 편을 드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다. 특히 징벌적 손배제를 ‘양문석 의원의 사적 복수’에 따른 것으로 몰고 가는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 언론 감시·비판 매체는 언론인이나 언론사의 잘못된 주장을 비판하거나 대안을 찾기 위한 공론의 장을 열어주는 게 역할이다.
언론피해구제 강화에 이토록 반대하는 언론인 현업 단체들을 향해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3년 전 국민의 80% 이상이 언론중재법 개정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었다. 지금은 어떨까? 언론에 대한 신뢰가 3년 전보다 나아지지 않았다면 지금 국민들의 생각이 어떨지 짐작하는 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언론중재법 개정 논란을 두고 언론인 현업 단체들이 사회적 책임보다는 언론사, 언론인들의 기득권 챙기기에 더 적극적인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언론은 언론인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다. 언론자유는 언론인·언론사의 자유가 아니라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자유다. 언론의 자유가 '오보를 낼 자유'는 더더욱 아니다. 국민들은 그동안 자유를 마음껏 누려온 언론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에 더 적극 나서주길 바라고 있다. 언론피해구제 강화에 언론인들이 반대만 할 게 아니라 대안이든 보완책이든 스스로 할 수 있는 방안을 내고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