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안전 '위험한 신화'…11차 전력수급계획 폐기해야

심리학자의 눈에 비친 '원자력 발전에 대한 착각'

2024-06-08     한규석 원전위험공익정보센터 운영위원·전남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며칠 전(5월 31일) 친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가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공개하였다. AI 등 데이터센터 산업 등으로 전기 수요가 계속 늘어나는 것에 대비하여 2038년까지 새롭게 대형 원전 3기를 건설하는 등의 대책을 내세웠다. 신규 원전이 전기본에 포함된 건 2015년 수립된 7차 전기본 이후 처음이다.

아울러 윤석열 정부는 2030년까지 설계수명(40년)이 종료되는 노후원전 10기 모두에 대해 수명연장 절차를 거쳐 계속 사용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앞으로 1-3년 이내에 설계수명 40년이 만료되는 고리 원전 2호기와 영광의 원전 1‧2호기, 월성 2·3·4호기의 운영을 연장하기 위한 절차가 현재 진행되고 있다. 원자력 발전이 지닌 위험성에 대한 고려없이 필요하니까 지어야 한다는 식이다.

 

한울원자력발전소 전경.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러나 이런 정책은 모두 국민들이 원하는 방책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2017년 시민대표 471명이 한달 동안의 숙의과정을 거쳐 신고리 5-6호기에 대하여 중단된 건설을 계속하되 원전을 단계적으로 감축시키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해 간다는 방침을 채택하였고, 정부도 이에 따라 탈원전 정책을 취한다고 결정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제안된 국민들의 정책 제안은 윤석열 정부에 의해서 철저히 무시되고, 원전만이 살길인 양 친원전 정책으로 급선회하였다.

주요 언론에서는 정부의 방침에 호응하여 친원전 정책이 고사해 가던 원전 생태계를 되살리며, 국가경제에 불가피하다는 식의 기사들을 띄우고 있다. 환경단체를 제외하고는 이런 정책의 전환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어, 국민들이 이제는 친원전 정책을 아무 문제없이 수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불과 십여 년 전인 2011년 이웃나라인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폭발사건이 발생하여 15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지만, 13년이 지난 현재의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은 거의 전무한 것 같다. “이건 아니지 않나!” 심리학자로서 이 현상을 이해해 보고자 싶어서 이 글을 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국민들이 지니고 있는 원전의 안전신화에 있다고 여겨진다. 원자력발전이 실제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근거없는 신화를 믿고 있다는 것이다. 확률론적으로 원전의 대형사고 가능성이 영에 가깝다고 친원전론자들이 주장해 왔지만, 세계적으로 터진 누구도 감당하지 못하는 세 건의 대형 원전사고는 그런 확률론적 추정을 비웃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경남 창원시 경남도청에서 '다시 뛰는 원전산업 활력 넘치는 창원·경남'을 주제로 열린 열네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2.22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합뉴스

이런 안전신화는 그렇다면 무엇에 근거하는가? 심리학적으로 보았을 때 세 가지가 작용한다. 하나는 상관의 착각 심리이다. 이는 표면적으로 비슷한 사건들이 실제보다는 더 인과론적으로 관계가 있다고 여기는 심리적 현상이다. 예를 들면, 큰 효과(결과)는 큰 원인이 작용하며, 작은 원인은 작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착각이다.

원전 안전의 신화와 관련해서 본다면, 대형 원전사고는 폭격, 충돌, 지진, 해일 같은 큰 원인에 의해서 발생할 것이기에 방호벽을 튼튼하게 하는 등의 시설을 강화한다면 막을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인류가 목격한 세 건의 대형 원전 사고 중 두 건은 작은 실수에 의해서 발생하였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원전사고는 냉각수가 줄어들고 있는데 이를 모르고 비상냉각수 가동 스위치를 꺼놓은 것이 냉각수 부족으로 결국 노심용융을 초래하게 된 인재이며, 아울러 설계 상의 작은 실수가 섞여 발생한 사건이었다.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사건은 정전으로 전기공급이 끊어진 상태에서 원자로의 터빈이 관성에 의해 얼마나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는 실험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작업자의 조작 미숙으로 인한 인재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대형 쓰나미로 인해 정전이 되고, 다가온 쓰나미에 침수된 비상발전기마저 작동하지 않아 원자로를 냉각시키는 냉각수가 공급되지 못하여 벌어진 폭발사고였다.

 

신한울 1·2호기 전경. 한수원 홈페이지

올해 초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1호기가 정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원자력발전을 위한 핵분열과정은 일단 시작되면 일정하게 출력을 유지하는 것이 설비운영에 유리하다. 급격한 출력변동을 하는 경우에 핵분열과정의 안정성을 해치고 대형 사고로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피하고 있다. 그래서 원자력 발전이 돌연히 중지된다는 것은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사건이다. 왜 정지했는지를 조사해 보니 예방점검을 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오전 10시 42분에 정비원이 조절장치판의 개방 단추를 눌러 교류차단기가 열렸다. 이 차단기가 동작하자 가동 중이던 발전기가 멈췄고, 원자로 출력이 30% 수준으로 떨어졌고, 오후 7시 39분에 원자로가 멈췄다.

문제는 정비원의 실수가 아니라 현장 조절장치판의 도면에의 선 연결이 잘못되어 있었고, 정비원은 잘못 기재된 것을 모르고 표시된 대로 작동을 한 것이었다. 즉 흔히 말하는 인재가 아니라 원자로 제작의 품질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내용을 보면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원전을 운영하기 위해 수십만가지의 부품과 회로가 쓰일텐데 이들 중의 미세한 오류 하나가 이같은 발전정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느낀 소름이었다.

 

일본의 ‘원전 오염수 유출 사고’를 비판한 조선일보의 기사. 2013.9.16. 조선일보 인터넷판 갈무리

둘째 이유는 언론보도가 미치는 영향이다. 지금까지 국내 언론의 원전 관련 보도는 한두 매체를 제외하면 친원전으로 일관하고 있다. 탈핵 결정이 산업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주로 보도하였지, 원전 운영이 지니고 있는 무책임의 윤리(핵폐기물 처리 못하면서 어떻게 되겠지 하며 원전 운영하는 것), 사회 정의의 문제(현세대가 값싼 원자력 전기를 쓰고 후세대가 부담을 지는 것, 농어촌 지역에 원전발전의 부담을 지우고 송전망을 깔아 도시에서 사용하는 것)를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더욱이 원전 산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듯 기술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SMR(소형원전). 파이로프로세싱 등을 마치 바로 쓸 수 있는 기술인 것처럼 보도하였다. 수명연장과 관련해서 가장 큰 문제인 안전 기준 상향 및 헐값의 수명연장 예산에 대한 보도는 전혀 볼 수 없었다.

셋째 이유는 엄청난 사고가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적 생각이다.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이런 희망을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여 이를 비현실적 낙관론이라 부른다. 핵발전에 대하여 문외한인 일반인들은 전문가와 과학기술에 대한 믿음에 기대어 내용을 따지지 않고 판단한다. 이들의 말을 불신한다는 것은 과학을 불신하는 것으로 여겨서 잘못이라고 여긴다. 이런 낙관론은 일상에서 사람들에게 활기를 불어넣고 자신의 생활에서 마주치는 도전에 보다 잘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순기능을 지니지만, 동시에, 위험한 정책이나 행동에 대한 대비를 소흘하게 만들기도 하는 역기능을 지니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관계자들이 20일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장군 동상 앞에서 제6차 일본 후쿠시마 해양투기 강행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일본 도쿄전력은 지난 17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 6차 해양 방류를 개시했다. 2024.5.20. 연합뉴스

한국사회에서 원자력발전은 원자력 발전 대국인 프랑스, 미국, 중국 등의 국가들이 지니지 않은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핵발전에 필요한 부지를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부지에 2~6기가 운영되고 있으며 울진에는 8기가 운영되고 있다. 이렇게 과밀집된 형태로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는 외국의 사례가 적기 때문에 하나를 운영할 때 지켜야 할 안전지침을 좇아서 밀집원전을 운영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에 어떤 복합 위험이 발생할 것인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설마 그런 일이 발생하겠느냐는 희망으로 대책을 삼고 있는 격이다.

두 번째 문제는 인구밀도가 세계 최고로 높은 좁은 국토를 지닌 탓에 후쿠시마원전사고 같은 사태가 생겼을 때 일본식의 대응이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가 나자 발전소 반경 20km 안에 거주하는 국민들을 피난시켰다. 15만 명이 거주지를 떠나야 했다. 이 기준을 국내에 적용시키면 원전밀집 지역인 부산 북부, 경주, 울산의 지역 주민 삼백만명 이상이 대피해야 한다. 이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세 번째로 핵폐기물처분장을 지을수 없다는 것이다. 핵발전을 하면 고준위 방사능 물질인 핵발전 쓰레기들이 나오게 마련이다. 우리는 이 쓰레기를 처리하는 시설을 마련하려고 1980년대 이후 나름으로는 많이 노력했다. 적절한 지질학적 구조를 가진 부지를 발견하기도 어렵지만, 발견해도 해당 지역의 주민들이 모두 핵폐기장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여 9번이나 실패하였다.

 

8월 22일 촬영된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 저장 탱크의 모습. 후쿠시마 원전을 운영하는 도쿄전력은 24일 "오늘 오후 1시께 해수 이송 펌프를 가동해 오염수 해양 방류를 개시한다"고 발표했다. 2023.08.24. AP 교도 연합뉴스

정부에서도 새로운 시설을 건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긴 탓인지 발전소 부지 내에 두고 있는 습식 및 건식의 임시저장 시설들을 더 만드는 쪽으로 법안을 만들어 저장용량이 곧 포화될 발전소들을 계속 운영하고, 새로운 핵발전소에서 나올 폐기물을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지니고 있다. 이런 방침을 시행하려는 법안이 21대 국회에서 폐기되었다. 핵발전소를 새로 3기를 더 건설하겠다는 방침의 11차 전력수요 계획을 지닌 정부여당에서는 핵폐기물의 임시처리 방법을 대응책이라고 추진하는 형편이다.

핵발전이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은 근거없는 희망이고, 한국의 여건에서는 아주 비현실적인 신화에 불과하다. 정부는 핵발전소를 임시방편적 대응책을 바탕으로 계속 운영하려는 11차 전력수급계획을 폐기해야 한다. 그런 수급계획은 비현실적인 안전신화에의 믿음을 추진하는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사고가 나든 안 나든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초래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의 운영형태를 지속하는 아주 나쁜 정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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