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흰 해병대 잘못 건드렸다…안되면 될 때까지, 특검!"
'채해병 특검법 재의결' 부결 뒤 첫 주말 도심 집회
저녁엔 8000여 시민 시청역서 92차 촛불 대행진
더불어민주당 범국민대회 3만여 명 '분노의 함성'
조국혁신당, 1000여 명 용산 대통령실 포위 집회
이재명 "우리가 주권자임을 직접 증명해야 할 때"
조국 "윤석열은 스마트폰 제출하고 수사 받으라"
"너희는 해병대 잘못 건드렸다. 우리는 끝까지 간다. 안 되면 될 때까지 끝까지 간다. (…) 귀신잡는 해병대가 이 더럽고 무능한 정권을 반드시 앞장서서 타도하고 말 것이다. 온 국민이 너희들이 망하는 꼴을 두 눈 똑똑히 뜨고 볼 것이다."
'채해병 특검법' 거부권 재의결이 무산된 뒤 첫 주말인 1일 서울역 4번 출구 앞. 70대 원로 목회자이자 노병(老兵)이 오후 뙤약볕에 거리에 나섰다. 해병 332기로 전역한 성공회 김경일 신부는 더불어민주당이 주최한 '윤석열정권 규탄 및 해병대원 특검법 관철을 위한 범국민대회'에서 "특검 재의결 부결로 채해병 부모님은 2차, 3차 가해를 당하고 있는데, 위로는 못할 망정 고문을 해서야 되겠냐"며 "국힘당과 대통령이 나라를 망하게 하고 있다"고 통분했다.
주최 쪽 추산 3만 명의 당원과 시민 앞에서 선 70대 신부는 다른 해병대 예비역과 함께 '필승' 구호로 경례하고 해병대 군가인 '팔각모 사나이'를 불렀다. 해병대 예비역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도 함께 전광판에 나온 군가 가락을 따라 불렀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특검법 부결 당시 대통령실과 여당을 거침없이 비판한 해병대 예비역의 결기는 집회에 참가한 민주당 지도부와 국회의원들에게도 전해진 듯했다.
민주당 해병대원 사망사건 진상규명 티에프(TF) 단장을 맡은 박주민 의원은 채해병 특검법 부결로 공수처가 수사를 맡고 있는 현실에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해 8월, 윤석열 대통령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통화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수사 외압의 진실이 일부 밝혀지고 있지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핵심 당사자인 대통령 스마트폰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박 의원은 "새 공수처장조차 '수사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검이 국회에서 논의되는 걸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라면서 "최근 공수처에 외압이 가해지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고 통분했다. 사회를 보던 한준호 의원은 "박 의원이 이렇게 목청 터져라 연설하는 모습을 4년간 처음봤다"고 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종섭 전 장관은 수일에 걸쳐 한덕수 국무총리, 방문규 국무조정실장,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경찰) 등과 잇따라 통화했고, 그 외에도 수많은 인사와 여당의원들과도 연락주고 받는다"면서 "범인이 아니고서야 왜 이렇게 긴박하게 움직이고, 기를 쓰고 특검법을 거부했겠냐"라고 반문했다. 이어 "대통령의 특검법 거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자, 노골적인 수사 방해"라고 비판했다.
그는 "특검법 폐기되니까 (국민의힘 의원과) 기분좋다고 술판 벌이는 대통령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라면서 "권력은 짧고 역사는 영원하고,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고 외쳤다.
이재명 대표는 "투표로 심판했음에도 승복하지 못한다면, 이제 국민들이 힘으로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국민의 뜻에 따르지 않은 국민의 일꾼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우리가 직접 손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이제 이 나라 권력 주체이자 주인이고, 이 나라 미래와 우리 모두를 책임져야 하는 바로 우리 자신이이 직접 나서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다만 "따로따로, 혼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며 "우리가 이제 작은 차이를 넘어서 함께 손잡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국민이 주신 권력으로 대신 일선에서 최선을 다하되, 국민 여러분과 함께 길거리에서 밤낮없이 쉬지 않고 함께 싸우겠다"고 약속했다.
집회엔 지난 토요일에 이어 이번 주에도 가수 안치환이 무대에 올라 '광야에서' '내가 만일'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워'를 열창했다. 이 대표 와 민주당 지도부는 어깨를 겯고 노래를 따라불렀다. 집회에선 상징 의식도 있었다. 참가자 3만 명이 피켓을 들고 파도타기를 하며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범국민대회에 앞서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 앞에선 조국혁신당이 '대통령실 포위 집회'를 열고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 및 구속을 촉구했다. 집회엔 혁신당 조국 대표와 황운하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회의원과 당원, 시민 1000여 명이 참가했다. 집회 시작 전부터 극우단체가 대형 확성기를 동원해 방해했지만, 시민들이 더 큰 목소리로 "윤석열 탄핵" "윤석열 구속"을 외쳤다. 경찰은 극우단체 소음을 통제하지 않았다.
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는 "뒤늦게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두 번 관여했지만 수사 개입은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며 "대통령이 수사 축소 지시하는 게 뭐가 잘못이냐고 궤변 늘어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실 해명에 "장두노미(藏頭露尾), 꿩이 쫓기다가 머리만 감추지만 몸통과 꼬리가 다 드러나서 결국 사냥꾼에게 잡힌다"라고 단언했다.
조국 대표는 지난달 30일 국민의힘 워크숍 당시 "지나간 건 다 잊자"며 건배사를 하고 맥주를 마신 윤 대통령을 상기시켰다. 윤 대통령은 워크숍에서 음주를 했을 뿐 아니라 특유의 '어퍼컷' 세리머니까지 했다. 조 대표는 "이 날이 어떤 날인지 아냐"며 "얼차려 받다 숨진 육군 훈련병의 영결식이 열린 날"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생때같은 자식을 가슴에 묻고 피눈물을 흘리는 부모에게 윤 대통령은 조화 하나 보낸다"며 "우리 젊은이 목숨값이 당신들에게 겨우 그 정도냐"고 따졌다.
조 대표는 "윤 대통령이 맥주를 따라주고 어퍼컷을 하자 좋다고 웃는 여당 국민의힘 의원들, 귀하들은 윤 대통령과 같이 침몰하는 것을 택했다"면서, 대통령을 향해 "공수처 수사나 겸허히 받으라"며 "개인 스마트폰을 공수처에 제출하라"고 외쳤다. 또 "조만간 채해병 특검법을 제출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발언을 마친 뒤,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대통령실을 포위하듯 길게 늘어서서 구호를 외치는 상징 의식을 했다. "윤석열을 수사하라" "특검으로 수사하라" "김건희도 수사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전국집중 집회 연상케 한 제 92차 촛불대행진
한낮의 열기는 오후 5시쯤부터 모여든 촛불시민들에 의해 서울 시청역~남대문으로 이어졌다. 제92차 촛불 대행진에 참가한 시민 8000여 명의 함성은 지난주 전국집중 행진 때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등의 구호에는 대통령의 채해병 특검법 거부권 행사 뒤 더욱 응축된 분노가 녹아 있었다.
대통령과 '폭정의 공동정범'인 국민의힘에 대한 김지선 서울촛불행동 공동대표의 성토로 시작한 집회는 가수 백자의 '조일권의 노래'로 다소 숨을 고르는 듯했다. 시민들의 합창과 함께 "승리의 날 더덩실 춤을 추리라"는 가사와 함께 힘을 모으는 시간이었다. "특검을 거부한 자, 윤석열이 범~인이다"라는 노래가 이어지면서 함성의 톤이 더 짙어졌다. 연단에 오른 김중남 강원촛불행동 공동대표와 이상조 김포 시민, 한정화 독일 코리아협의회 대표, 박진영 시사평론가는 각기 다른 주제로 짧은 연설을 했다. 하나하나의 멜로디가 모여 하나의 하모니를 이뤘다.
김중남 대표는 "22대 국회가 21대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라면서 ""개헌, 종부세 폐지 같은 김 빼는 소리 더 이상 하지 말고 탄핵으로 총집결하자"고 촉구했다. 이상조 씨는 "지금, 대한민국 자영업자와 그 밑에 종사하는 국민의 신음소리와 한탄이 하늘을 찌르고, 과학기술 분야 예산 삭감으로 미래를 선도해야 할 인재들의 연구 단절 및 학업 중단이 현실화되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훈련병 영결식이 있던 날 저 용산, 국힘당 똘만이들은 애도는 고사하고 술잔을 기울이며 희희낙락했다"라며 "사람이 아니고, 짐승"이라고 지탄했다.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수호, 모금 호소도
한정화 대표는 "4년 전 베를린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 뒤 일본 정부가 (독일)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방해하고 있다"며 현황을 전했다. "독일 시민들에게 일본의 식민지배와 만행을 알리기 위해 작은 시민단체가 일본과 독일, 한국 정부를 상대로 홀로 싸우고 있다"면서 성금 지원을 호소했다. 박진영 씨는 헌법재판소가 최근 기각한 안동완 검사(부산지검 2차장) 탄핵 문제를 집중 부각하면서 "검새와 판새는 같은 편인가. 대한민국이 조류의 나라였나"라고 반문했다. 서울시 공무원 유오성 씨 간첩 조작 사건과 관련, "그(공소권 남용 혐의를 받아 온 안 검사)가 했던 건 보복성 기소였다"라면서 보복의 고리를 끊어야 검찰을 개혁할 수 있고, 국민이 검찰의 폭압으로부터 살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무대에 오른 극단 경험과 상상의 단원 8명은 노래와 율동, 구호와 연설을 섞어가며 좌중의 주목을 끌었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의 호소"라면서 "각자 투쟁하고, 산별로 투쟁해서 얻을 수 있는 것 없다. 힘을 합쳐 싸우자"는 구호가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보수와 진보의 문제 아닌, 사람의 문제"
집회를 마친 시민들은 시청 동편 광장과 종로구청 사거리, 세종대로 사거리를 거쳐 광화문 광장까지 촛불대행진을 벌였다. 정리집회는 다시 채해병 특검법 거부권 행사 문제로 초점을 모았다. 마지막 연사는 이날 오후 서울역 앞 범국민대회에서도 마이크를 잡았던 정원철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장. 그는 5월 28일 채해병 특검법 통과를 위해 국민의힘 의원총회장에 가 찬성표를 부탁할 때의 참담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따위 인간들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가 하는 비참함에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그들은 끝내 부결시켰다"라면서 "국힘당을 해체하는 게 아니라 불태우고 싶다"고 말했다.
"이건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보편적 복지가 일반화된 지금, 보수가 내세울 가치는 국가안보와 대북관밖에 없는데 그것마저 팽개쳤다"고 꼬집었다. 마지막으로 "야당이 원구성에서 국민의힘에 휘둘리고, 6월 중 채해병 사건 국정조사를 처리하지 못한다면 촛불 시민이 목소리를 내줘야 한다"라면서 야당의 행동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