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해병 순직 진상 규명과 함께 다가오는 '항쟁의 시간'

[김종대 칼럼] 대통령 비서실장 국민에게 선전포고

공수처 수사에 무너지는 해병대 지휘체계

임기 만료 국방부 고위 관계자 총대 맬까?

성난 민심…2016년 파국 재연하는 장면들

2024-05-04     김종대 연세대 객원교수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교육원 객원교수

채 상병 특검법(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안)이 통과된 5월 2일.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국회 본회의에서 특검법이 통과되자 지체 없이 막말을 쏟아냈다. 그는 특검법 통과에 대해 “총선 민의와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며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 정치적인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고 야당을 비난했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뻔뻔함이자 국민에 대한 선전포고다. 이제 대통령실은 사방을 포위하고 압박해 들어오는 민심에 저항하기 위해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결사항전’을 외친다.

국민에게 선전포고한 대통령실 비서실장

작년에 대통령실이 박정훈 대령에 대한 항명 혐의의 공소를 전부 취하하고 대통령이나 국방장관이 나서서 사과하며 사건 수사를 정상으로 회복할 수 있는 기회는 셀 수 없이 많았다. 그 기회를 전부 날리고 ‘대통령은 무결점과 무오류의 존재’라는 망상에 집착하다가 오늘의 화를 불렀다고 보여 진다. 위기관리에 실패한 대통령실은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겠다며 버티기로 들어갔다.

대통령실의 반응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먼저 이전에 국회가 통과시킨 9번의 거부권 행사와는 달리 이번 특검법은 대통령 본인과 그 비서실이 채 해병 죽음에 대한 해병대 수사에 대한 외압의 직접적 당사자다. 이 때문에 특검을 야당에 양보하면 정권이 끝장난다는 절박감이 매우 클 것이다. 두 번째는 21대 국회에서 특검을 무산시키고 시간을 끌면 22대 국회가 출범해도 올해 안에 특검을 성사시키기 어렵다는 기대다. 적당히 시간을 끌며 올해를 넘기기만 하면 국민과 언론이 이 사건에 대해 피로도가 높아져 적당히 진상을 뭉개버릴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고 보는 것이다.

작년 8월에 사건을 이첩 받은 경북경찰청은 9개월이 되도록 그 어떤 수사 결과도 발표하지 않았고, 모처럼 힘을 내고 있는 공수처라고 하지만 국방부에 외압을 가한 대통령실에 대한 수사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만일 공수처가 작년 8월부터 이 사건을 제대로 수사했다면 지금은 대통령실에 대한 압수수색도 끝내고 외압의 당사자로부터 진술까지 받아낼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수사가 여의치 않은 점을 관찰한 대통령실과 여당이 되레 공수처더러 “빨리 수사하라”며 윽박지르는 형국이다. 특검만 아니면 공수처 수사쯤이야 버텨볼만 하다는 속셈처럼 보인다.

부사령관까지 공수처 수사대상? 무너지는 해병대 지휘체계

이런 계산은 전혀 예기치 않았던 지점에서 뜻밖의 문제로 인해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 먼저 해병대다. 4월 말의 군 정기인사에서 유임이 확정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1986년에 해군사관학교에 44기로 입교했다. 그 해에 박안수 육군 총장과 이영수 공군 총장, 양용모 해군 총장도 사관학교에 입교했으니 김 사령관은 이들과 기수 동기다. 대장 중에도 선임에 해당되는 참모총장과 동기가 3성 해병대사령관을 역임하는 것은 비정상이 분명하다. 따라서 당연히 교체될 것으로 여겨졌던 김 사령관이 유임된 것은 이종섭 전 국방장관이 올해 호주 대사로 부임한 사건에 비견된다.

임성근 전 1사단장의 경우는 해사 45기인데 이 기수와 동기에 해당되는 육사 47기는 이미 육군에서 4성 장군으로 야전 군사령관을 맡고 있다. 해병대 소장이 타군의 같은 기수에 비해 계급이 두 단계나 아래라는 이야기다. 이미 해병대는 인사에서 신진대사가 마비된 상황이다. 이들이 바위처럼 눌러 앉아 있으니까 해병대에서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장군 진급자가 나오지 않았다.

더 충격적인 점은 곧 다가올 보직 인사에서 임성근 전 사단장이 해병대 부사령관으로 영전될 것이라는 소문이 이미 해병대 내부에 쫙 퍼졌다는 점이다. 해병대의 소장 직위는 1, 2 사단장과 합참의 전비태세검열실장, 해병 부사령관까지 4개다. 보직이 없으면 자동으로 전역되는 군 인사체계상 임 전 사단장은 합참 검열실장이나 부사령관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런데 이미 부적절한 지휘와 처신으로 신뢰를 잃은 임 전 사단장을 전군의 군사준비태세를 검열하는 직위로 이동시키는 것을 합참의장이 수용하기란 어렵다. 그렇다면 남는 자리는 부사령관 하나다.

문제는 임 전 사단장이 부사령관으로 영전될 경우 김계환 사령관과 함께 해병대의 최상층부 두 사람이 공수처의 피의자가 된다는 점이다. 현행 작전과 실병력을 지휘해야 하는 군 지휘부가 공수처에 불려가 장시간 조사를 받는 일이 반복되면 해병대는 그 자체로 굴욕이다. 이런 비정상을 감내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채 상병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차단하려는 권력자의 의도다. 의혹의 대상자를 군에서 전역시켜 통제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을 막아야 할 임명권자의 속사정이 있는 거다. 이런 비정상이 해병대로부터 불만과 원성의 대상이 되면 해병대 지휘체계는 거의 무너지게 되는데, 이는 군의 전투 준비태세를 보장해야 할 국군통수권자의 임무 태만이고, 이적행위가 될 수 있다. 이 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 사령관과 임 전 사단장은 사의를 표명할 의도가 전혀 없어 부하들에게 령(令)이 서지 않을 것이다.

 

'채상병 특검법'이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한 2일 오후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원들이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대통령과 여당에 특검법 수용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5.2. 연합뉴스

임기 만료 국방부 두 고위 관계자, 계속 대통령실 총대 맬까?

국방부 직위자 두 명의 거취도 관심이다. 공수처에 첫 번째로 소환된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6월에 종료되는 3년의 계약기간을 연장하지 않아 교체된다. 민간인 신분으로 공수처 수사를 받게 될 경우 과연 정권을 방탄하는 데 자신을 희생하려 할까? 이 점은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번 총선 천안갑 선거구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하였다가 낙선한 상황에서 공수처 소환이 예상된다. 그런데 돌연 5월 초에 그는 자신에게 가해진 의혹으로 당에 누를 끼친다는 이유로 “국민의힘을 탈당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작년 7~8월에 해병대에 가장 많은 수사 외압을 가한 국방부 핵심 관계자 두 명이 자유로운 민간인 신분이 되면 이 역시 공수처 수사에 있어 뜻밖의 변수가 될 수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올해 초 수사 외압의 정황을 밝혀주는 각종 통화기록과 문서들이 대량으로 방출된 것이 민간인 신분의 이종섭 전 국방장관을 호주 대사로 급히 임명한 배경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민간인 신분으로 공수처에 소환되면 용산이 이들의 진술을 통제하기가 극히 곤란해지기 때문에 권력자는 좌불안석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유재은 법무관리관은 문재인 정부 당시에 시민단체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 국방부 법무관리관에 임명된 진보 성향의 법조인이다. 유 법무관리관이 자신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윤석열 대통령을 변호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임기가 만료된 이후의 진술에 변화가 없을까? 대통령실이 시켜서 한 일을 자신이 총대를 매야 할 필요가 과연 있겠는가.

항쟁으로 진화하는 민심, 2016년 파국을 재연하는 장면들

더 중요한 점은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다음의 민심 동향이다. 야당에 표를 던진 유권자들은 선거로 심판을 해도 대통령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하고 이제는 정권 퇴진을 향한 ‘항쟁의 시간’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선거로 정권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직접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각성이 시민들을 다시 광장에 불러 모으게 할 것이다.

최근 박정훈 대령을 지지하는 해병대연대는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정권 퇴진운동을 전개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동안은 선거와 국회에 대한 기대치가 워낙 높아서 시청광장의 촛불시민의 열기가 그다지 높지 않았던 측면도 있었지만,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민심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는 점이 명확해지면 사태는 달라진다. 5월 2일 정진석 비서실장의 입장 발표가 폭발 직전의 민심에 불을 지르는 것처럼 지극히 위험해 보이는 이유다.

국민의 저항이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이는 5월에 대통령실은 그런 민심과 괴리된 농성장처럼 되는 양상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가 파국으로 가던 2016년의 모습과 거의 흡사하다. 국민의힘은 국정을 위한 여론을 결집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대통령 부부의 안위를 도모하는 로펌 사무실이자 호위대로 전락했다. 특히 안철수, 조경태 두 의원은 특검법 찬성 소신을 버리는 행태로 스스로를 배신했다. 총선 이후에 우리 정치의 파국을 예고하는 장면이 연이어 연출되고 있다. 5월의 한국 정치 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다. 다시 정치의 중심이 여의도에서 시청과 광화문으로 이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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