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의 시대, 재즈로 말하다
세상 향해 자유롭게 열려있는 것이 재즈의 정신
팬데믹 이후로 우리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 모든 것이 예측 불가능한 삶. 그 카오스를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 고대 그리스 회의론자들은 에포케(epoche) 즉, 판단중지를 강조했다. 모든 것은 좋다, 나쁘다를 한 번에 판단해서는 안되며 있다, 없다를 보이는 대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요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메타인지와 맥락적 사고>다. “전체를 훤히 내려다보지 못하는 이상, 이 길들이 셀 수 없이 많은지 아니면 단 하나에 불과한지 확인한 길이 없다.” 이렇게 말한 카프카 역시 판단유보에 자신을 맡긴 듯하다.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는 세계를 불교에서는 번뇌즉보리 (煩惱卽菩提)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라고 하는데 번뇌가 바로 깨달음이고, 태어나 죽는 것이 곧 해탈이라는 뜻이다.
생에 대한 지각적 신념, 집착, 두려움을 일축해 버리는 심오한 화두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예측 불허의 혼돈을 잠재우는 건 해석의 힘이다. 이 긍정으로 해석된 자유로움은 다시 우리 안에 내재한 근원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재즈의 즉흥연주처럼 자유롭게 삶을 펼쳐나가기 위해서는 모든 사유와 판단을 잠시 중지하고 성찰을 통한 이완의 리듬을 익혀야 한다.
아인슈타인의 직관은 끊임없는 생각에서 발현되었다. 이 직관이 우주의 파동과 맞닿은 것이다. 직관은 수없이 접혔다 펼쳐진 사유 끝에 나오는 통찰이다. 직관과 음악 사이, 바로 여기에 즉흥연주(Improvisation)가 존재한다. 흔히들 즉흥연주는 순간적 느낌으로 연주된다고 생각하지만, 그 즉흥연주의 내면에는 무한반복이라는 수행이 담겨 있다.
사유와 판단 잠시 중지하고 이완의 리듬 익혀보라
나에게 보컬 강의를 듣는 학생 중에 스님이 있는데 레슨 때 배운 호흡내리는 연습을 집중적으로 반복하면서 염불하는 호흡도 길어지고, 목소리가 맑고 편안해졌다. 호흡을 내린 덕분이다. (이것을 계기로 얼마 전 ‘불교와 재즈’라는 유튜브를 촬영하기도 했다.) 재즈와 불교가 '호흡수행'이라는 같은 길을 걷고 있기에 일어난 작은 기적이다.
호흡을 내리는 연습은 시간을 두고 꾸준히 해야 하는데 여간한 인내심이 아니고서는 호흡이 내려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나를 낮추면 나의 호흡이 느껴지고, 진정한 내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잘해야겠다는 욕심보다는 자연스럽게 부르고 싶은 마음이 솟아난다. 습관으로 어색했던 손동작이 멈추고, 어깨에 힘이 빠지면서 표정이 편안해진다.
고음이 안 되거나 성대결절이 있는 학생들도 호흡을 내리면 좋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호흡을 내리고 또 내리는 것, 이것이 나의 레슨 철학이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노래할 때 “되도록 노래를 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부르기를 당부한다. 이런 마음이 되기까지 무한반복은 피할 수 없는 여정이며, 이 반복은 변화하기 위한 반복이다. 끊임없는 반복은 즉흥연주의 원천이 되고, 나아가 일종의 저항정신으로 불굴의 삶을 지향하게 한다. 그 무한한 반복은 다름아닌 우리 일상의 반복적인 리듬이다.
어디에 가든 잔잔히 흐르고 있는 재즈의 선율이 기분좋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우리의 신경을 자극시키지 않는다.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오롯이 배경으로 남아 카페에서, 매장에서 매일 소비된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것. 누군가 귀기울여 듣지 않아도 유유히 흐르고 펼쳐지는 것. 이것이 바로 재즈의 진정한 매력이다.
재즈 콘서트에서 관객들을 열광시키는 화려한 솔로연주는 반복적인 통주저음 위에서 펼쳐질 때 비로소 빛이 난다. 그 찰나가 지나고 나면 다시 통주저음으로 무한반복되는 세계에 들어선다. 그 찬란한 순간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같이 연주하고 있는 상대방의 소리를 온전히 들어야 한다.
재즈의 진정한 매력은 '유유히 흐르고 펼쳐지는 것'
세계적인 재즈 뮤지션인 허비 행콕이 공연 중에 실수했을 때 마일즈 데이비스가 유연하게 멋진 화음으로 바꿔 연주한 일화는 상대방의 소리를 온전히 듣고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보여주는 예다. 즉흥연주는 일종의 두려움이다. 공연 때마다 일어나는 예기치 않은 상황을 조율하기 위해 연주자들은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요즘 신경과학자들의 대중강연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것은 ‘마음과 감정’이 건강한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소통’은 운명이다. 우리는 소통하기 위해 태어났다. 나와 타인들, 그리고 시대와 소통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위트’와 ‘순발력’의 선율이 지속될 수 있도록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손님’처럼 맞이하고, ‘다양한 시선’이라는 악기로 즉흥연주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아름다운 것은 추한 것,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스탠리 휘트니의 말은 ‘경계없음의 시대’를 겨냥한 재즈적 표상이다. 정해진 것은 없다. 필요한 것은 세상을 향해 자유롭게 열려있는 재즈의 정신이다. 즉흥연주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