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방한 없던 일로…4월 총선 '한일 전' 비화 걱정 한몫

김건희 디올 백·독도 이슈 재부상 차단 의도

기시다 방한 사양, 독일 국빈방문 연기와 유사

FNN "4월 총선에 윤석열 뒷받침 목적 있어"

윤석열, 총선 앞두고 도박 피하고 안전 선택

2024-03-03     이유 에디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3월 방한과 한일 정상회담 추진설이 끝내 없던 일이 됐다. 용산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1일 기자들과 만나 "3월 중에는 한일 정상회담이 추진되는 게 없고, 정상회담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모리야 히로시 관방부 장관도 이날 오후 정례 기자회견에서 같은 내용을 확인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 2024.03. 01

기시다, 방한·정상회담 추진 끝내 '없던 일'로

오타니 경기, 민주주의 정상회의 참석 한때 검토

기시다 총리의 3월 방한설을 최초로 지핀 곳은 일본 민영방송인 후지뉴스네트워크(FNN)였다. 이 매체는 지난달 14일 기시다가 3월 20일 서울 고척돔에서 열리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공식 개막전에 맞춰 방한해 참관하고,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개막전인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경기에는 '일본인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가 올해 이적한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출전할 것이란 점이 고려됐다.

기시다의 방한 추진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다고 FNN은 봤다. FNN은 "한국에서는 4월 총선이 있어 일본 측은 한·일 협력에 적극적인 윤 대통령을 뒷받침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일본 측은) 긴밀한 관계를 보이기 위해 방문을 제안하고 있으며 정세를 끝까지 지켜본 뒤 최종 판단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4월 총선 결과가 윤석열 정권의 운명은 물론, 그것과 맞물린 한·일 관계의 앞날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임을 기시다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란 점에서 FNN의 보도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

오타니 경기 참관 말고도 같은 날 기시다 방한에 구실을 줄 또 다른 행사도 예정돼 있다. 제3차 서울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그것이다. 우리나라 주관으로 '미래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를 주제로 오는 18일 개막해 본회의와 장관급 회의를 열고 20일 정상회의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당초 예상과는 달리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 등이 불참하는 바람에 최근 화상회의로 치르는 걸로 낙착되면서 빛이 바랬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2023.5.7. 연합뉴스

윤 정부 '난색'…총선 '한일 전' 비화 우려 한몫

FNN "4월 총선에 윤석열 뒷받침 목적 있어"

시기도 괜찮다. 작년 3월 16일 도쿄에서 첫 윤석열-기시다 정상회담이 개최되고 딱 1년이 되는 때여서다. 더구나 기시다가 오는 4월 10일 미국을 국빈방문해 바이든 대통령과 미·일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인 만큼, 그 이전에 한·일 간에 사전 협의 필요성도 있다. 뭣보다 기시다가 바이든과 만나 북-일 정상회담 추진에 관해 숙의하고 협조를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맥락에서 기시다가 겸사겸사해서 방한한다면 그림은 어색하지 않다.

정상회담엔 고도의 보안이 요청되는 만큼, 끝내 무산된 속사정을 정확히 알 길은 없다. 그러나 양국의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일본 측이 기시다 방한과 서울 정상회담을 제안했지만, 우리 측이 난색을 보이며 사양했다는 게 사실에 가까운 듯하다. FNN의 최초 보도가 나왔을 때부터 대통령실은 "현재 추진되고 있는 사항은 없다"라고 말했다. 그리곤 민주주의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 삼은 한일 정상회담 가능성도 1일 다시 부인했다. 올해 3·1절 기념사에서 '일제'(일본 제국주의)란 단어를 완전히 들어내고 옛 식민 종주국 일본을 '쉴드 치기'에 바빴던 '친일 본색'을 고려하면 기시다 방한을 환영하는 게 윤 대통령에겐 더 어울렸을 텐데 말이다.

왜 사양했을까? 정권의 운명인 걸린 4월 총선 때문이지 싶다. 기시다는 윤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돕기 위해 방한을 생각했다지만, 선거를 목전에 두고 '한일 전'을 만들 때 현 여권엔 득보단 실이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시다가 방한할 경우, 1년 전 윤 대통령이 이른바 '제3자 해법'을 통해 일제 전범 기업들의 불법 강제동원(징용) 범죄에 면죄부를 줬지만, 일 년이 되도록 일본 측의 '성의 있는 조치'는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한국민을 자극할 게 불보듯 하다. 특히 올해 들어 본격화한 '독도(일본 주장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란 일본의 공세가 기시다의 방한과 맞물릴 때 분출할 부정적 파장도 고려했음 직하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22일 일본 시마네(島根)현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정한 '다케시마의 날'(2월 22일)을 맞아 일본 측이 독도 강치를 활용한 홍보를 더 강화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일본 시마네현 마쓰에시 곳곳에 붙어 있는 '다케시마의 날' 홍보 포스터. 2024.2.22 [성신여자대학교 창의융합학부 서경덕 교수팀 제공] 연합뉴스

기시다, 정상회담서 독도 공식화 땐 수습 불가

윤석열, 총선 앞두고 도박 피하고 안전 선택

최근 일본의 가미카와 요코 외무상의 행적이 일본의 전략을 잘 보여준다. 가미카와는 1월 11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사법재판소를 (ICJ) 방문해 '법의 지배'(rule of law)의 중요성과 강제적 관할권 수용국 확대를 주장해 독도 문제를 ICJ에 끌고 가 분쟁화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1월 30일엔 일본 정기국회 연설을 통해 독도와 관련해 "역사적 사실에 비춰 봐도, 국제법상으로도 일본 고유의 영토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입장에 근거해 의연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뒤이어 가미카와는 2월 21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진행한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정식으로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폄으로써 최초로 '공식화'하고 나섰다. 일본 외무성은 결과 발표문을 통해 한국의 조태열 외교장관에게 "가미카와 요코 외무상이 다케시마에 대한 일본의 오래된 입장을 반복했다"고 밝힌 것이다. 회담 날짜를 '다케시마의 날'(2월 22일) 하루 전에 배치해 선전 효과를 극대화하는 일본의 치밀함이 돋보였다.

더욱이 요미우리와 산케이 등 일본의 보수, 극우 언론들은 사설을 통해 일본 앞에선 사족을 못 쓰는 윤 대통령의 집권 기간에 독도 문제 해결해야 한다고 기시다 정권에 촉구하는가 하면, 한국 정부의 사과와 독도 반환도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민의 반일 여론을 자극했음은 물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시다 총리가 3월 20일 방한해 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외교장관 레벨에 이어 정상 차원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공식화할 때 뒤따를 반일 여론을 윤 정부는 걷잡을 수 없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뭣보다 그때는 선거를 20일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기시다의 방한과 한일 정상회담을 수용하는 것은 '도박'으로 비쳤을 수 있다. 안전한 길을 선택한 셈이다.

 

'김건희 명품 가방 수수' 의혹 사건을 전하는 일본 아사히 신문의 4일자 기사.

'김건희 디올 백' 재부상 가능성 차단 의도

기시다 방한 사양, 독일 국빈방문 연기와 유사

또 한 가지 포인트는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와의 관련성이다. 일본 기시다 총리가 부부 동반으로 방한하고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면 김 여사와 '디올 백' 수수 문제가 불가피하게 전면으로 재부상하게 된다. 국가적 행사인 3·1절 기념식인데도 김 여사는 지난해와 달리 올해엔 불참한 것도 이런 우려 때문으로 봐야 한다. 작년 12월 15일 윤 대통령의 네덜란드 순방에 동행했다가 귀국한 뒤 3일 기준으로 79일째 외부 공식 활동을 멈춘 상태다. 기시다 부부가 방한할 경우, 김 여사가 공개 석상에 얼굴을 드러내면 드러내는 대로, 안 나오면 안 나오는 대로 구설에 오를 개연성이 높다. 임박한 총선에 최대 악재로 떠오를 것임은 윤 정부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터였다.

1월 18일부터 예정됐던 윤 대통령의 독일 국빈방문과 덴마크 공식방문의 느닷없는 연기 사태 때도 그 배경을 두고 유사한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윤 대통령은 초청국들에 엄청난 외교적 결례를 범하면서까지 가장 격이 높은 국빈방문을 사실상 취소시켰다. 역대 정부에서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윤 대통령으로선 총선을 앞둔 엄중한 시점에 기시다의 방한 때문에 김 여사의 디올 백, 독도 문제 등이 다시 불거지는 평지풍파를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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