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회는 인류 백년대계의 기둥 

[시민의회 ③] 직접민주주의로 가는 징검다리

4.10 총선 이후 법제화 강력 추진 제안한다

2024-03-03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

시민의회의 첫 사례는 2004년 브리티시 콜롬비아라는 캐나다 지방 주정부에서 선거법의 개정을 위해 소집한 사건이었다. 올해가 2024년이니 이제 20년이 지나고 있는 셈이다. 

과거 덴마크에서는 1987년부터 의회 산하에 과학기술시민회의라는 조직을 운영하면서 주부와 학생을 포함한 일반시민들이 과학기술이 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숙의토론의 방식으로 참여하여 왔지만 이는 자문기구의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2008년 이후 때마침 불어닥친 세계금융위기를 극복하고자 아이슬랜드가 선거법과 헌법의 개정을 시민의회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시도하였으며, 이웃한 아일랜드 역시 논쟁 중인 주요 현안에 대해 유사한 방식을 통하여 관련 법안을 도입하는 성공의 사례를 만들었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기후변화의 대응책으로 유가를 급격히 인상하면서 생활이 어렵게 된 다수의 서민들이 이에 저항하여 노란조끼의 저항운동을 전개하면서 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럽자,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지방기초 단위에서 중앙 단위까지 수천 회의 대토론회를 조직하여 수백만 시민들이 이에 자발적으로 호응해 숙의적 토론과정을 거쳐 사회적 합의에 이른 바 있다.

이렇듯 많은 사례가 축적되면서 몇 년 전부터 OECD는 홈페이지의 홍보를 통해 미래정치 가버넌스의 주요한 방식으로 시민의회를 강력하게 추천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 공론회 수준의 사례까지 포함해서 그동안 260회가 넘는 주요한 현안들이 시민의회 유사의 숙의적 방식으로 결정되어 왔다. 

이렇듯 우리가 이제 소개하며 도입하고자 하는 시민의회의 모델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고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논쟁이 되고 있는 주요 의제를 해결하고자 이미 많은 국가에서 시도하면서 일부에서는 주목할 만한 성과를 시현해낸 결정의 방식으로 국제사회에서 보편화되고 있는 컨셉이다. 

 

2018년 8월 29일 울산시청에서 울산시립미술관 건립 공론화를 위한 시민토론회가 열리고 있다.2018.8.29 연합뉴스

저명한 정치학자인 버나드 마넹은 이미 국내에도 번역소개된 "선거제는 민주적인가"라는 저서를 통하여 선거 중심의 대의민주제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였으며, 21세기 지본주의라는 저술로 세계석학의 반열에 오른 파리대학 피케티 교수도 서구식 민주주의를 상인계급과 제사장들이 야합한 기득권 엘리트 지배의 도구로서 기존 지배체제를 강화하려는 과두제임을 강하게 암시하였다. 이 또한 진보적인 정치학자들 대부분의 평가이기도 하다.  

현 시점에서 세계 전역을 살펴보아도 정당 중심의 선거제를 운영하면서 주권재민의 민주주의 제 뜻을 제대로 실현하는 나라를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도 일본도 한국도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 역시 대동소이한 실정이다. 선거제를 통한 민주주의가 그나마 연명되고 있는 나라는 북유럽 정도인데, 이의 배경에는 민주시민 교육이 매우 강화되어 있으며 정당내 민주화가 제대로 정립되어 있는 덕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유럽의 서구식 민주주의조차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바야흐로 18세기에 시작된 서구식 민주주의는 이제 한계가 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리고 새로운 변화를 만들 동력의 중심에는 대한민국이 있다. 내가 아는 지인 한 분이 윤석열 정권 출범 이전인 연전에 미국에서 열린 정치제도개선 포럼에 참여했는데 당시 다선의 상원의원으로부터 "미국의 민주주의는 이제 끝났다, 탈출구가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한국을 보니 희망이 보인다. 나를 대한민국으로 데려다 줘라. 대한민국은 위기의 서구 민주주의에 새로운 탈출구를 만들 수 있는 나라이다"라는 얘기를 들었다 한다.

작년 가을 한겨레가 2년마다 개최하는 '미래포럼' 정치분야의 초청강사로 참가한 명사 중에 제인 맨스브리지라는 노교수가 있었다. 미국 정치학회장을 연임하기도한 하버드 대학의 명예교수로 80을 넘긴 여장부이다. 그녀 역시 비슷한 내용의 얘기를 했다.

"서구의, 정당 중심의, 선거식 민주주의는 끝났다. 문제는 서구 자체가 이에 대한 대안의 해결책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 있다. 

이를 돌파할 동력이 형성되질 않는다. 현재의 미국을 봐라. 헌데 내가 보니까, 아직도 역동적이고, 규모도 적당하고, 경제 수준도 맞는 한국이야말로 인류 미래의 새로운 거버넌스 만들 수 있는 최적의 국가다." 

이렇게 고백을 했다 한다. 하지만 정착 미래포럼을 주최한 한겨레조차도 이처럼 중대한 발언을 제대로 기사화하지 않았고 본격적으로 공론화하지도 않았다.

한편 한국내 시민사회 일부에서  오래전부터 직접민주주의를 거론하고 있지만 이의 실현이 가능하려면 시민의회가 우선 도입이 되어 제도로서 정착되고 법제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이후에야 비로소 다음의 수순으로 직접민주주의의 도입 여부를 숙의적 토론을 통하여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의회라는 과정의 징검다리를 거치지 않고 바로 직접민주주의로 들어가기에는 정치적으로 굉장히 많은 장애와 위험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일단 숙의적 경험과 정치적 사례가 상당히 누적된 이후 직접민주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수순적이다.

민주주의 분야의 연구조직으로 최고 평가를 받는 예일대학 정치학과의 랜드모어라는 여교수가 '2020년에 'Open Democracy - 열린민주주의' 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다른백년에서 판권을 계약하여 현재 번역 중에 있다. 아마도 오는 4월중 한국어판의 출시가 가능할 듯 싶다. '숙의 민주주의'라는 주제를 매우 깊이있게 다룬 저술이다. 그녀에 따르면 시민의회의 다른 이름인 숙의민주주의가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법적 강제력을 갖기 위해서는 아래의 5가지 요건을 갖춰야 된다고 한다.

첫째, 모두에게 조건없이 개방이 되어야 한다. 참여의 민주성이다. 둘째, 참여된 구성이 민주적인 비례성을 가져야한다. 한쪽으로 몰리지 않고, 우리나라 국민들의 실상을 거울처럼 비추는 비례성을 가져야 민주적 대표성이 있다. 셋째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국민들한테 투명하게 공개해야 된다. 투명과 공개성의 원칙이다. 네 번째는 숙의의 원칙이다. 토론과 결정에 이르는 과정에 가능한 시간의 제한을 두지 않아야 한다. 숙의의 과정이 중요한 것은 스위스 사례가 말해 준다. 법안의 제정이 시급한 사안은 3개월로 한정하되 웬만한 법안에 대해서는 최종 결정의 투표를 붙이기 전 12개월까지, 헌법의 개정인 경우에는 18개월까지 숙의한다. 

마지막 다섯 번째 조건은 충분히 숙의하고 토론하고 다시 숙의 과정을 통해 비로소 다수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단순히 한번의 투표를 통해서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숙의하고 토론하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를 적시에 제공하면 처음에 지녔던 선입감이 숙의과정을 통해서, 그야말로 집단지성이 작동되고 지혜가 모아지는 결정의 과정이 이루어진다. 상기의 5가지 조건을 구비하게 되면, 선거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정치적 정당성과 법적 강제력을 가질 수 있다고 랜드모어 교수는 주장한다. 

이와 더불어 그간의 많은 사례와 데이터들을 분석해보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결정한 것에 많은 오류와 패착이 있던 반면에, 상식을 지닌 일반시민들이 숙의과정을 거쳐서 결정한 것이 훨씬 오류가 적었고 올바른 판단이 이루어졌다는 여러 보고서들이 있다 한다. 

비록 전문영역이라도 일반시민들이 모여서 숙의를 거치는것이 밀실에서 전문가들이 정하는 것보다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결정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전문집단은 결정권을 가질 것이 아니라 자문역할만 하면 된다. 팩트를 알려주고 데이터를 제공하고 정보를 제공해주는 일에 전문가의 역할을 집중하고, 결정은 주권자이자 유권자인 일반시민들이 하는 것이 훨씬 균형잡히고 지혜롭다는 것이 입증된 점에 주목해야 한다.

서구 민주주의 본산이라는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주의 역사에는 선거가 없다. 몇년 만에 한번 치루는 선거방식은 근본적으로 위임된 과두제적이며, 기존의 기득권과 엘리트가 현존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절차의 포장적 성격이 다분하다.

위에 언급하였듯이 민주주의의 원형이라고 평가되는 그리스의 사례를 다시 검토해 보자. 그곳에 선거가 있었나? 없었다. 그리스 민주주의는 무작위 추첨에 의해 구성된 평의회, 광장에서 모인 시민들의 직접참여, 집정관과 장군의 임명을 위한 선출제, 그리고 이들을 견제하기 위한 도편추방, 이의 4가지가 그리스 민주주의 핵심이다. 

분명히 다시 말하자면 그곳에는 선거가 없었다. 이렇듯 그리스 민주주의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대의제적 숙의방식이 시민의회이다. 이제 이를 제도적으로 정착하고자  공론화할 때가 되었다. 

한마디로 시민의회 방식의 가버넌스가 다가오는 인류사회의 백년대계라는 기둥이다. 또한 OECD가 주장하듯 결함과 한계를 드러낸 대의제 민주주의를 한층 업그레이드하는 길이다. 더불어 이를 통하여 인류사회의 난제인 기후대책은 물론이고 한국의 정치 현안인 언론 및 사법과 검찰의 개혁, 대통령 결선제를 포함한 헌법과 선거법의 개정, 출생율제고 등 중요한 의제를 올바르게 다룰 수 있다. 

추첨과 숙의를 통해 국민적 주요 의제를 설정하고 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결정하면 정부와 국회에서도 이를 법제화하고 효과적으로 추진하기에 매우 수월해진다. 바야흐로 4.10 총선이 끝나면 시민의회를 한국사회에 가장 주요한 아젠다로 선정하고 이의 도입과 법제화를 강력하게 추진해 나갈 것을 이에 제안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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