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기자들이 자사 상대로 정정보도를 청구한 까닭
박민의 KBS가 ‘불공정 편파’로 사과한 기사들
취재기자들 "철저한 확인 거친 것, 인정 못해"
"오세훈의 말 바꾸기 등에 대한 뛰어난 검증 보도"
대한민국 공영방송 KBS 기자들이 2월 초 언론중재위원회에 자사를 상대로 정정 보도를 청구하는 조정신청서를 냈다. 한국 언론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국민의 방송 KBS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기자들은 ‘왜’ 신청서를 낸 것일까? 조정을 신청한 뉴스는 ‘어떤’ 내용이며, ‘어떤’ 쟁점들이 부각됐고, ‘누가’ 관여된 뉴스일까?
먼저, 사건의 개요를 파악하고, 기자들의 주장을 살펴본 다음, 주요 개념들을 도출한 다음 판단의 기준점들을 삼고 KBS 관련 기사 내용을 분석해 보자. KBS 보도와 대조 비교하기 위해 5개 신문사(조선·중앙·동아·한겨레·경향)도 분석해 보자.
사건은 2023년 11월 14일 KBS 9시 뉴스에서 방영된 2건의 보도에서 시작됐다. 첫 번째 보도는 ‘불공정 편파보도 사과’란 제목의 기사로, 박민 사장은 “공영방송으로서 핵심 가치인 공정성을 훼손해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상황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국민 여러분께 정중히 사과드립니다.”라고 육성 사과 방송을 했다. 두 번째는 박장범 9시 뉴스 앵커는 ‘보도 공정성 훼손 대표적인 사례들은?’이란 제목으로 △검·언 유착 오보 △윤지호 9시 뉴스 출연 △서울시장 선거 때 나온 이른바 생태탕 보도 △김만배-신학림 녹취파일 등 4건을 ‘공정성’을 훼손한 보도로 지목했다. 전자 2건의 사례는 언론권력 부패와 관련된 것이며, 후자 2건은 선출권력 검증과 연관된 보도다. 언론중재위 조정을 신청한 기사는 이른바 ‘생태탕 보도’다.
이 기사를 보도한 KBS 3명의 기자들은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당시 오세훈 후보의 내곡동 땅 의혹을 3월 15일부터 4월 1일까지 KBS 9시 뉴스에서 보도했다. 이들은 오세훈 처가 땅 의혹을 ‘생태탕 보도’가 아닌 ‘내곡지구 개발’ 등의 이름으로 10건을 보도했다. 검증 취재팀이 조정을 신청한 이유는 언론인으로서 철저한 ‘사실 검증’과 사실 확인 ‘절차’를 거쳐 보도한 기사를 ‘불공정 사례’로 꼽는 KBS 경영진의 판단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출 권력은 ‘왜’ 검증 보도 대상인가
KBS 기자들의 ‘내곡지구 개발’보도는 언론학에서 ‘검증 보도’로 분류할 수 있다. 대의민주주의 체제는 정기적 선거를 통해 유권자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권한을 행사하는 정치체제이다. 선거에 출마한 미래 권력들은 언론이라는 공론 장에서 과거의 성과를 검토 (또는 검증) 받고, 미래의 비전을 공유하며, 현재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야만 권력을 획득할 수 있다. 즉, 미래 권력은 언론에서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검증을 받는다. 검증에는 미래 권력 후보자의 자질과 과거 경력 및 발언이 포함된다. 유권자들은 검증 보도를 통해 후보자가 왜 권력을 원하며, 권력을 잡았을 때 어떤 방식으로 행동할지 예상할 수 있다. 즉, 검증보도는 ‘대의 민주주의 체제 (선거) - 미래 권력 - 유권자’라는 삼각구도 속에서 권력을 위임하는 국민들에게 누구를 미래 권력으로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같은 언론의 검증 절차를 통해 민주주의는 절차적 정당성을 획득하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언론의 검증을 회피하는 선출 권력은 민주주의 체제에선 생존할 수 없는 것이다.
언론의 검증 보도는 언론 내부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개념인 ‘규범’의 제약을 받는다. 규범이란 언론 내부에서 적절하게 받아들여질 만한 행동이 무엇인지 확인시켜주는 단서로서 작동한다. 즉, 언론인들은 언론사 내부 또는 언론 사회의 규범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규범에는 언론이 지켜야 할 원칙과 언론 상품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기준점들이 포함돼 있다. 영국 BBC나 한국 KBS 같은 공영방송들은 제작 가이드라인을 통해 방송 규범을 규정해 놓고 있다. KBS의 방송 규범인 ‘제작 가이드라인’에는 △편성의 독립과 제작의 자율성 △공정성 △사실과 의견의 명확한 구분 △정치와 선거 보도에서 검증 보도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동시에 각 항목별로 세부적 원칙들이 표기돼 있다. 예를 들면, KBS는 검증 보도에 대한 규범에서 ①후보자 검증 ②폭로성 주장 ③정책과 공약 등으로 세분해서 선거보도를 하고 있다. 동시에, 후보자 검증에 대한 명확한 보도 규범도 갖고 있다. 후보자 검증 보도는 △확인된 사실에 근거해 보도 △당사자 소명 기회 필수 (소명 거부 시 이 사실을 밝혀야) △선거 보도 자료 출처 공개 원칙 △후보 자질 검증의 경우 2명(개) 이상의 취재원 확인 필수 △ 인터뷰 대상자와 취재원 신원 확인 및 공개 원칙 등을 포함하고 있다. KBS 공직자 검증 규범은 이준웅(2014)이 향후 권력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형성기 권력에 대한 ‘공직자 검증 보도의 3가지 원칙’과 유사하다. 공직자 검증 보도의 원칙들은 △공적 적실성 △검증의 원칙, 그리고 △공정 보도의 원칙 등이다. 공적 적실성은 언론의 검증 보도 내용이 공직자의 과거의 공적 활동 또는 미래의 공직 수행능력과 관련 있다는 것이 해당 기사에서 제시되어야 한다. 검증의 원칙은 각각 독립된 2개(명) 이상의 정보원을 통해 사실적 자료를 기초로 기사가 작성되어야 한다. 공정보도의 원칙은 검증 당사자의 해명이 보도 내에서 정당하게 반영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언론의 검증보도는 미래 권력의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관련성을 확인하는 언론의 실천적 규범이다.
오 후보의 처가 땅 관련 ‘말 바꾸기’ 검증 보도
KBS의 첫 보도에 대한 내용 분석을 시작하기 이전에, 보도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당시의 정치 경제적 상황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21년 3월은 서울과 부산에서 공석이 된 두 메가시티의 시장을 뽑는 보궐선거가 진행 중이었다. 경제적으로 공무원들의 부동산 투기 열풍이 전국을 휩쓸고 있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의 부동산 개발 책임 기관인 엘에이치(LH) 임직원의 토지 정보 유출 사건에 대해 사과문까지 발표했다. 엘에이치(LH) 직원은 그린벨트 개발과 관련된 정보를 지인과 친·인척들에게 흘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법원 공무원은 법인을 설립해 최대주주로 240억 원을 그린벨트 지역에 투기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청와대 직원은 임야를 밭으로 토지 형질을 변경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었다. 또한 당시 여당인 민주당은 오 후보가 서울시장 시절 부인과 처가의 땅이 있는 서울 내곡동 일대 그린벨트 개발을 추진했고, 보상금으로 큰 이익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오 후보 측은 개발을 결정한 건 노무현 정부이고, 법이 바뀌면서 형식적 절차만 진행한 것이고 해명했다. 양 측은 ‘내곡지구’ 개발에 대한 입장이 첨예하게 달랐다. 선거 국면에서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순간이 언론의 검증이 필요한 때이다.
이 같은 정치 경제적인 맥락 속에서, KBS의 서울시장 검증 보도는 크게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시기(3.15. ~ 3. 25)는 민주당의 의혹 제기 검증과 오 후보의 해명 검증 보도다. 중점은 ‘내곡지구’ 개발 경위와 개발 결정 책임자가 누구인지였다. 두 번째 시기(3.26. ~ 4. 1)는 오 후보의 측량 현장 동석 여부와 그의 해명 검증 보도다. 사실, 오 후보의 처가의 측량 행위는 SH가 개발 여부에 대한 외부 용역을 발주하기 이전에 이뤄졌다. 또한 이날 측량 현장에 오 후보가 함께 있었다는 증인들이 등장했다. 검증 보도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것이다. 이들 검증 보도는 KBS 검증 규범에 맞춘 보도들이다. 기사의 정보원들은 공문서 (SH 문서, 서울시와 건교부 사이 공문 내용, 지적공사의 측량기록 및 측량 결과도), 전문가 (환경부 공무원, 부동산학과 교수들, 시민단체 간부), 3인 이상의 경작인 들과 측량 기사들, 그리고 행사에 참석한 인물 사진들이 보도에 사실을 증명하는 근거로 활용됐다. 기사의 내용 전개는 ‘민주당의 오세훈 셀프 특혜 의혹 - 오세훈의 반박과 해명 - 내곡동 개발 경위와 결정 시기 - 개발로 손해 봤다는 오 후보의 주장 검증 - 오 처가 개발용역 직전(前) 내곡동 땅 경계 측량 - 내곡동 땅 측량 현장에 오세훈 목격 증인들 등장 - 오세훈 큰 처남 측량 현장이 아닌 대학원 행사에 참석 등이다.
‘내곡지구’ 개발 이명박 서울시 제안, 이명박 정부 결정
이들 10개의 기사 중 첫 번째 보도(3.15.)와 국면 전환이 이뤄진 여섯 번째 보도(3. 26)를 살펴보자. KBS는 3월 15일 9시 뉴스에서 ‘내곡지구 개발 서울시 제안했지만 노무현 정부 지정 안 해’란 제목으로 첫 보도했다. 내용은 민주당의 주장 검증과 오 후보의 해명 검증이었다. 검증 절차는 내곡동 일대 현장 취재와 관련자 증언 그리고 공문서 취재로 이뤄졌다. 그 결과, 민주당의 주장은 대체로 사실이었다. ‘내곡지구’에는 오 후보 아내와 처가 소유의 땅이 있었고, 이 일대가 택지개발 예정 지구로 지정돼 서울도시주택공사(SH)에서 36억 5천만 원을 보상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오 후보의 해명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았다. 오 후보가 주장하는 개발 결정 시기는 ‘2006년 3월’이 아니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한 2008년 2월까지 개발은 확정되지 않았다. 개발 결정 시기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인 2009년 11월이었다. KBS가 밝혀낸 또 다른 새로운 사실은 개발 경위다. 이명박 서울시는 2006년 3월 내곡동 일대 임대주택단지 개발 제안서를 건교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서울시 도시 계획과, 서초구청, 그리고 환경부의 반대로 노무현 정부 때까지는 개발이 결정되지 않았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9년 11월에 개발이 최종 결정됐다. 개발 결정 당시 서울시장은 오세훈이었다. 하지만 개발 결정의 최종 결재권자는 오 시장이 아닌 도시개발 국장이었다. 서울시 사무처리 전결 규칙은 개발 예정지구 지정 방침은 시장이 최종 결재권자이지만, 예정지구의 경미한 변경 등은 실국장 전결로 돼 있다. 하지만, KBS 검증 보도는 3월 26일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이날 보도된 기사의 제목은 ‘오세훈 처가, 2005년 6월 개발용역 직전 내곡동 땅 경계측량’과 ‘ 복수 경작인, 내곡동 땅 측량 현장에 오세훈 있었다’이다. 내용은 오 후보의 처가가 내곡지구 개발을 추진하기 직전에 측량을 했다는 사실과 측량 현장에 선글라스를 쓴 오 후보가 동석했다는 증인들의 발언을 확보한 것이다. 이날 보도에서 증인들이 오 후보와 ‘생태탕’을 먹었다고 증언 했고, 당시 식당 이름은 안골식당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KBS는 이 보도에서 처음으로 ‘의혹’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전에 사용하던 ‘내곡지구’란 명칭 대신 ‘오세훈 후보의 내곡동 땅 의혹’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타사보다 취재력 돋보인 KBS 검증 보도가 불공정 보도라고?
두 건의 기사 내용에서 살펴본 것처럼, KBS는 오세훈 후보에 대한 검증에서 ‘셀프 특혜’를 검증한 것이 아니라 오세훈의 ‘말 바꾸기’ (또는 거짓말)를 검증 보도한 것으로 분석된다. 사실 오세훈 후보 검증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났다. 예를 들면, △ 내곡동 그린벨트 택지개발 사업은 이명박이 서울시장 때 제안해 대통령 당선 후 개발 △오 시장의 재임 기간 그의 부인과 처가가 36억 5천만 원 보상, 그리고 △실국장 전결로 개발 진행 등의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현장 취재를 통해 오 후보의 거짓말도 도마에 올랐다. 오 후보는 내곡동 땅의 존재와 위치도 몰랐다고 해명했지만, 그를 측량 현장에서 목격했다는 경작인과 측량 팀장 증언까지 등장했다. 현장에 자신이 아닌 큰 처남이 있었다는 그의 주장은 당일 다른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들이 등장하면서 그의 해명은 신빙성을 상실했다.
KBS의 검증 보도의 탁월성은 타사와의 비교 분석에서도 두드러진다. 보수지인 조선·동아·중앙 등은 내곡지구 관련 기사를 별건으로 취재 보도하지 않고, 오세훈 후보 측의 주장을 전달했다. 보도 기사 건수도 1~2건에 불과하며, 취재원은 모두 오 캠프 측 인사들이다. 심지어 진보지로 분류되는 한겨레(4건)·경향(1건)도 내곡 지구 검증 보도를 소홀히했다. 한겨레의 3건의 보도와 1건의 사설 중에서 자체 발굴한 취재기사는 하나도 없다. 유일하게 <경향>만 ‘오세훈 셀프 특혜 의혹’이란 제목으로 발굴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의 정보원은 서울시의회 도시관리위원회 회의록으로, 오 후보가 친환경 주거 단지 언급으로 내곡동 개발 방향이 바뀌었다는 내용이 있을 뿐이다. 즉, KBS만 서울시 미래권력 후보자의 말 바꾸기를 지속적으로 검증 보도했다. 기자들의 땀과 고뇌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분석으로 추론컨대, KBS 내곡지구 검증 보도팀이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한 것은 우리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는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선거에 나온 후보의 발언을 검증 보도한 것이 ‘왜’ 불공정 보도인지를 묻고 있다. 두 번째는 공영방송 기자가 언론 규범에 맞춰 취재 발굴한 기사를 쓸 수 없다면, 국민의 방송인 KBS는 어떤 기사를 써야 하는가라는 고민이다. 마지막으로, KBS 경영진은 ‘왜’ 오세훈 후보 처가 땅 개발 보도를 불공정 보도로 꼽았는가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 추론 질문 중 하나는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오세훈 후보 대권 프로젝트가 현재 물밑에서 가동 중이고, 출마할 경우 논란이 예상되는 골칫거리 중 하나를 처리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의 가설이 적중하지 않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바비 젤리저 외 3인. (2023). 저널리즘 선언 (신우열·김창욱 옮김). 파주: 오월의 봄
KBS (2020). KBS 방송 제작 가이드라인. https://guide.kbs.co.kr/ko/home
강준만(2016). 왜 저널리즘이 민주주의를 결정하는가? : 월터 리프먼, 인물과 사상(통권 219호), pp. 45-78.
이준웅 (2014). 언론의 고위공직자 검증보도의 전제와 원칙. 관훈저널(통권 132호), pp. 1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