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 젬병인데…윤석열 “창원에 SMR 클러스터”
R&D 삭감해놓고 “원전엔 5년간 4조 투입”
“그린벨트 풀어서 원자력 산단 만들겠다”
SMR 경제성·안전성 다 떨어지는데
“창원에 SMR 클러스터 구축 적극 지원”
선심성 정책 내놓으며 사실상 사전선거운동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원전이 곧 민생”이라며 “원전 산업 정상화를 넘어 올해를 원전 재도약 원년으로 만들기 위해 전폭 지원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특히 소형모듈원자로(SMR)의 경우, 경제성 문제로 기술 선도 국가인 미국에서조차 사업을 포기했음에도 윤 대통령은 특별법을 제정하고 SMR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삭감했던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특정 지역, 특정 분야에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며 대놓고 ‘사건 선거운동’을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경남 창원시 경남도청에서 ‘다시 뛰는 원전산업, 활력 넘치는 창원·경남’을 주제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이같이 밝히며 “우리 정부에서 5년간 4조 원 이상을 원자력 R&D에 투입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개발을 뒷받침하겠다”고 공약했다. 또 “3조 3000억 원 규모의 원전 일감과 1조원 규모의 특별금융을 지원하겠다”며 “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을 개정해 원전 제조를 위한 시설 투자나 연구개발도 세제 혜택 대상에 포함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원전 산업이 계속 발전할 수 있도록 SMR을 포함한 원전산업지원특별법을 제정하겠다”며 “합리적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2050 중장기 원전 로드맵’을 금년 중에 수립하고 마무리 짓겠다”고 했다. 그는 전날 울산 민생토론회에 이어 “창원에서도 그린벨트를 풀어 방위 원자력 융합 국가산단을 비롯한 20조원의 이상의 지역전략 산업 투자를 끌어내겠다”면서 “SMR 클러스터 구축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이 육성을 약속한 SMR은 경제성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SMR 세계 1위 기업인 미국 뉴스케일사(Nuscale Power Corp.)와 미국 유타주 50개 군소지자체 비영리 전력협동조합(UAMPS)이 SMR 사업을 철회한다고 밝히면서, 국내에서도 사업 타당성 논란이 불거졌다. 미국 지자체들이 SMR을 포기한 이유는 3배 가량 발전 단가가 싼 태양광으로 대체가 가능한 상황에서 발전비용이 53% 상승한 SMR을 쓸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사업자인 뉴스케일사 역시 잦은 설계변경으로 전력구매 약정 용량도 확보하지 못했다.
경제성뿐만이 아니라 안전성 문제도 제기된다. SMR은 작은 원자로를 여러 개 연결하는 분산형 원자로인 만큼 ‘다중사고 가능성’이 있다고 원전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곳에서 핵 폐기물이 발생하지만 고준위 방폐장도 없어 사용후핵료 처리도 까다롭다. 국내 대형 원전들도 현재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하지 못해 원전 옆 공간에 임시로 적재하고 있으며, 이조차도 공간이 부족해 계속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
또한 SMR은 본질이 원자로인만큼 주민 수용성도 좋지 않다. 지난 대선 윤석열 캠프에서 원자력·에너지 정책분과장을 맡은 주한규 현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은 SMR을 충남 당진 등 기존 석탄화력발전소에 지으면 된다고 언급했다가 지역 주민의 반발에 직면한 적이 있다. SMR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수출을 위해선 국내 실증로(실제 핵융합으로 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검증하는 핵융합로)를 지어야 하지만, 원자로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만큼 주민들이 수용할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게다가 윤 대통령은 IMF 외환위기 때도 삭감하지 않았던 R&D 예산을 전년 대비 15%(4조 6000억 원) 가량 삭감해 국민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의 예산 삭감으로 중소기업이나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수년간 추진한 연구과제가 중단 위기에 몰리고 있으며, 이공계 인재 유출까지 우려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정 지역에서 특정 분야에 대해 전폭적인 R&D 예산 지원, 세제 혜택 등을 약속하는 것은 ‘관권선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4일부터 민생토론회라는 이름을 걸고 선심성 정책을 내놓으며, ‘사전선거운동’을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번 민생토론회만 올해 들어 14번째다.
윤 대통령은 이날 민생토론회에서 “흔히 원자력 발전의 시작을 1978년 4월 고리 1호기로 기억하는 분이 많지만, 실제로 우리나라 원전의 기초를 다진 분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었다”고 찬양하며 역사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1956년 한미원자력협정 체결, 1959년 원자력원·원자력연구소 설립으로 이 전 대통령이 원전의 길을 열었다면서 “서울대와 한양대에 원자력공학과를 설치해 연구개발의 토대를 닦았다. 실로 대단한 혜안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최혜영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민생토론회를 빙자한 사전선거운동이고, 관권선거”라며 “선거를 앞두고 장관들 몸가짐부터 조심시켜야 할 대통령이 작정한 듯 여당 선대위원장처럼 사전선거운동을 펼치고 있으니 참담하다”고 말했다. 최 대변인은 윤 대통령이 이승만 전 대통령을 미화한 데 대해서도 “정권 차원에서 국민에게 쫓겨난 독재자를 복권시키겠다는 것도 우습지만 이승만 띄우기가 총선전략이라니 윤 대통령은 국민의 상식과 백만 년은 떨어진 안드로메다에서 사느냐”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제발 정신 차리라”며 “대통령이 스스로 내세운 법과 원칙, 공정과 상식, 국민 소통을 조롱하는 코미디 같은 현실을 국민은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윤 대통령은 민생토론회를 마친 뒤 창원시에 위치한 마산 어시장을 방문했다. 윤 대통령은 연설을 하지 않았지만, 정육점·생선 가게·족발 가게 등을 차례로 둘러보며 시민과 악수하거나 기념 촬영을 하는 등 4·10 총선 선거운동을 방불케 했다. 윤 대통령은 최근 전국을 순회하며 민생토론회를 열고 지역 전통시장을 방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