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죽인 한은…기준금리 내리 9차례 3.5%로 동결
내리자니 물가·가계부채 걱정, 올리자니 소비위축 우려
하반기 미국이 기준금리 내리면 통화정책 완화 가능성
올해 경제성장률 2.1% 예상…작년 11월 전망치 그대로
물가상승률 전망 2.6% 유지…근원물가 2.2%로 낮춰
한국은행이 이번에도 현상 유지를 선택했다. 기준금리는 9번째 동결했고,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도 지난해 11월 전망치를 그대로 유지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22일 오전 올해 두 번째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3.5%에서 조정없이 동결했다. 지난해 1월 이후 9차례 연속 동결이다. 3개월 뒤 기준금리도 계속 동결이 적절하다는 게 대다수 금통위원들의 견해다. 6명의 금통위원 중 1명만이 내수 부진을 고려해 금리인하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사견을 전제로 상반기 내 기준금리 인하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내놨다.
한은은 이날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 자료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1%로 제시했다. 지난해 11월 내놓은 전망치를 ‘수정없이’ 유지했다. 이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내수 부진이 전체 성장률을 0.1%p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으나, 수출 개선이 성장률을 0.1%p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서로 상쇄됐다"고 전망치 유지의 이유를 설명했다.
한은이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배경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치인 2%를 넘어서고 있고, 가계부채 증가세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역대 최대인 미국 기준금리와의 격차(2.0%p)가 더 커지면 환율 불안과 외국인 자금 유출이 가중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고금리로 인한 압박이 계속되면 민간 소비 위축으로 경제성장률이 2년 연속 1%대(실질 GDP 기준)로 내려앉을 가능성이 있고,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를 비롯한 대출 부실 위험이 커질 우려가 높다. 따라서 하반기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한은도 통화정책 완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금통위는 회의 의결문에서 동결 결정의 배경에 대해 "물가 상승률의 둔화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물가가 목표 수준(소비자물가 상승률 2%)으로 안정될 것으로 확신하기는 아직 이르고 대내외 불확실성도 크다"며 "주요국 통화정책과 환율 변동성, 지정학적 리스크 등 대내외 정책 여건의 변화도 점검할 필요가 있는 만큼 현재의 긴축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봤다"고 밝혔다.
한은이 지난해 11월 전망치를 유지한 올해 경제성장률 2.1%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한 2.3%뿐 아니라 정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이 내놓은 2.2%보다 낮은 수준이다. 한국금융연구원(2.1%)과 같고 산업연구원(2.0%)보다는 높다. 글로벌 투자은행(IB)과 비교하면 골드만삭스(2.3%), JP모건(2.2%)보다 낮고, 씨티(2.0%), 노무라(1.9%)보다 높다.
한은의 경제전망을 부문별로 살펴보면,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은 1.6%로, 건설투자 증가율은 -2.6%로 각각 예상됐다. 지난해 11월 전망보다 민간소비(1.9%)는 0.3%p, 건설투자(-1.8%)는 0.8%p 각각 낮아졌다. 반면 올해 재화 수출은 3.3%에서 4.5%로, 재화 수입은 2.4%에서 2.7%로 각각 상향 조정됐고, 설비투자도 4.1%에서 4.2%로 소폭 높아졌다.
한은은 올해 취업자 수 증가 규모가 25만 명으로, 당초 예상(24만 명)보다 커질 것으로 봤다. 실업률 전망치는 2.9%로 유지했다.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연간 520억 달러로 전망했다. 지난해 11월 전망(490억 달러)보다 30억 달러 상향 조정한 결과다.
한은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2.6%로 유지했다. 지난해 연간 소비자물가가 전년 대비 3.6% 오른 것과 비교하면 상승률을 1%p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달 물가상승률이 2.8%로 6개월 만에 3%선을 밑돌았고, 단기 기대인플레이션율도 최근 3.0%로 낮아진 점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은은 그러나 더딘 소비 회복세 등을 감안해 식료품과 석유류를 제외한 올해 근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지난해 11월 전망(2.3%)보다 0.1%p 낮은 2.2%로 조정했다.
한은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도 지난해 11월 전망치를 그대로 유지했다. 경제성장률은 2.3%, 소비자물가는 2.1%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