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이낙연 정면충돌…개혁신당 결국 깨지나
합당 선언 열흘 만에 분당 갈림길…예견된 수순
'선거 캠페인과 총선 정책 결정권' 이준석에 위임
'총괄선대위원장' 이낙연, 유명무실한 존재 전락
"의도적 통합 파기 선언…대신 김종인 데려오려"
20일 기자회견…봉합? 공천 국면 2차 폭발 예고
이준석에 매번 휘둘리는 이낙연, 추락 언제까지
총선에 임박해 황급히 '개문발차'했던 개혁신당이 출범한 지 불과 열흘 만에 분당 직전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른바 제3지대 통합 정당으로서 '빅텐트'를 자처했지만 바람 한 번 불자 곧 날라 갈 듯 위태로운 '임시 가설 천막'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합당 선언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이준석-이낙연 공동대표 측이 당 주도권을 놓고 정면충돌하며 요란한 파열음을 내는 것은 원칙 없는 이합집산의 예정된 수순이라는 게 정치권 안팎의 지배적인 시선이다. 정치철학과 노선, 지지기반 등에서 '비빔밥'이 될 수 없는 좌우 이탈파 세력이 억지로 손을 잡았다가 '잡탕밥'의 구조적 한계를 스스로 증명하는 형국이다.
개혁신당은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고성이 오간 끝에 '선거 캠페인과 총선 정책 결정권', 즉 포괄적인 선거운동 지휘 권한을 사실상 이준석 공동대표에게 위임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합당 협상 당시 이낙연 공동대표에게 총괄선대위원장을 맡기기로 이미 합의했는데 이를 뒤집은 것이다. 안건 상정 직후 이낙연 공동대표가 "이견이 있으니 더 토론하자" "오후에 다시 회의해서라도 조정해보자" 등의 반대 입장을 표명했지만 이준석 공동대표가 이날 오전 10시에 약속된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 가야 한다는 이유로 표결을 강행했다고 한다.
최고위에서는 또 정강정책에 반하거나 해당 행위를 한 인사에 대해 입당 심사를 실시할 '당원자격심사위원회'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이준석 대표 측이 입당 및 공천을 강력 반대해왔던 배복주 전 정의당 부대표를 배제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대표, 정의당 여성본부장 등을 지낸 배 전 부대표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의 배우자이기도 하다.
이 같은 안건 상정에 이낙연 대표와 김종민 최고위원은 강하게 반발하다 회의장을 먼저 박차고 나갔고, 해당 안건은 이준석 대표와 양향자 원내대표, 금태섭 최고위원, 조응천 최고위원의 찬성으로 의결됐다. 통합신당을 구성하는 '개혁신당' '새로운미래' '새로운선택' '원칙과상식'의 4개 정파 중에 '새로운선택'과 '원칙과상식'이 이준석 대표 측에 붙고 이낙연 대표의 '새로운미래'는 고립된 모양새다.
김종민 최고위원은 퇴장 뒤 기자들과 만나 "오늘 안건에 대해 계속 일방적으로 처리하자고 했다. 선거운동 전체를 이준석 대표 개인한테 맡기는 것은 민주정당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라며 "전두환이 나라 어수선하니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 만들어서 다 위임해달라고 국회 해산한 것이랑 뭐가 다른가"라고 이준석 대표 측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어떤 어떤 업무를 맡긴다는 것에 대한 구체적 명시가 없다. 다 맡겨달란 것"이라며 "정책 결정권도 위임해달라는 것인데 어떤 민주정당에서 최고위에서 정책 검토도 안 해보고 개인한테 다 위임하느냐"고 어이없어했다.
이낙연 대표 측의 '새로운미래'도 성명을 내고 "오늘 개혁신당 최고위원회는 '이준석 사당'을 공식적으로 의결했다"면서 "선거의 전부인 선거 캠페인 및 정책 결정에 대한 전권을 이준석 개인에게 위임해 달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정권 심판과 야당 교체에 대한 국민의 여망과 제3지대 통합 정신을 깨뜨리는 어떠한 비민주적 절차와 내용에도 반대함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준석계'인 허은아 수석대변인은 회의 뒤 브리핑에서 "선거 캠페인, 선거 정책 결정권을 위임해 이준석 공동대표가 공동 정책위의장(김용남·김만흠)과 협의해 시행하는 안건을 의결했다"며 "신속성과 혁신성을 담보하기 위해 최고위 권한을 이준석 공동대표에 위임한다"고 못박았다. 이어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 차원에서 해당 행위자를 심사하기 위한 당원자격 심사위원회를 설치하는 안건을 의결했다"며 '정체성'을 내세웠다.
이미 지난주부터 이준석 대표가 요구했던 내용대로 관철된 것이다. 통합 이전의 개혁신당은 ▲65세 이상 노인에게 제공되는 지하철 무상 이용 혜택 폐지 ▲여성도 군 복무를 해야 경찰관·소방관 등에 지원할 수 있도록 복무 의무화 확대 등의 공약을 제시해 "패륜 정당" "상습적인 갈라치기 시도" 등의 비판을 받았다. 이낙연 대표 측은 수용하기 어려운 이 같은 총선 공약들을 이준석 대표가 앞으로도 본인 뜻대로 밀어붙이기 위해 선거 캠페인과 정책 결정권에 집착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페미니즘 성향의 20‧30대 남성을 핵심 지지층으로 삼고 있는 이준석 공동대표는 또 정의당 출신 류호정 전 의원과 배복주 전 부대표가 개혁신당에 합류하면서 당원들의 탈당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두 사람의 '정체성'을 노골적으로 문제 삼아왔다. 류호정 전 의원에 대해서는 "합당 과정에서 류 전 의원이 개혁신당 당원이 된 것이지, 류 전 의원의 사상이나 정책이 아주 좋아서 영입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류 전 의원이 개혁신당에서 주류적 위치로 자리 잡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깎아내렸고, 배복주 전 부대표에 대해서는 "전장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등 개혁신당 당원과 지지자들이 환영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법적 대표인 제 권한 내에서 공직 후보자 추천이나 당직 임명의 가능성은 없다"고 저격한 바 있다.
일련의 과정을 두고 이낙연 대표 측은 '이준석 사당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통합 파기를 기획한 것으로 규정하고 여차하면 갈라설 수도 있다는 태세다. 이준석 대표 측도 이날 최고위에서 다수결로 의결된 사안을 물릴 뜻은 전혀 없어 양측이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김종민 최고위원은 이날 오후 6시 국회 소통관에서 긴급 브리핑을 갖고 "일단 지금 이 상황은 이준석 대표가 통합 파기를 기획하고 밀어붙이는 거라고 판단했다"며 "추측이 아니고, 사실관계로 분명해져서 설명드린다. 이건 안건 결정이 중요한 게 아니고 통합을 파기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최고위 표결 강행에 대해 "오늘 처음 안건이 올라왔고 30분도 채 논의하지 않았는데 조율 없이 처리하겠다는 건 민주정당, 민주주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면서 "이 사안은 의도와 기획이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통합을 파기하기로 작정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준석 대표가 오후 언론 상대 티타임에서 김종민·이낙연 그만두면 천하람·이원욱 두 사람을 최고위원으로 임명하겠다, 그리고 김종인 전 대표 찾아가 전권을 주고 공관위원장 맡도록 읍소하겠다고 얘기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또 "이준석 대표는 마음속에서 이낙연·김종민을 이미 당에서 몰아냈다"며 "김종인 전 대표는 얼마 전 보도를 통해 이낙연 대표가 사라져야 (개혁신당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준석 대표는 사실상 김종인 전 대표를 끌고 오기 위해 이낙연 대표를 몰아내야 한다는 계산으로 오늘 최고위에서 말도 안 되는 비민주적 안건 강행을 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 최고위원은 "선거운동은 이준석에게, 전권은 김종인에게 있다면 통합된 정당이 맞냐. 상당히 심각한 문제이고 위중한 상황"이라며 "아무리 정치가 막장이라고 해도 통합 합의 일주일도 안 됐는데 전권 내놓으라 하고, 사실상 통합을 파기하는 이런 의사결정을 강행하는 건 정치할 자격이 없다. 이게 어떻게 제3지대 정치이고 새로운 정치인가. 젊은 정치도 아니다"라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정당에서 있을 수 없는 원칙과 상식에 어긋나는 결정을 밀어붙인 데에는 이낙연 대표와 김종민을 빨리 몰아내고 '이준석 사당'으로 완성시키겠다는 기획 의도"라고 결론지었다. 그는 기자들이 '개혁신당이 받은 정당보조금 6억 원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묻자 "통합을 깨는 의도를 갖고 (현역) 의원 5명을 채워서 국고보조금을 받았다"면서 "당연히 통합 유지가 안 되면 다시 환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준석 대표도 페이스북에서 "탈당하는 의원이 생겨 의석수가 5석 미만이 될 경우 개혁신당은 기지급된 국고보조금 전액을 반납할 것"이라고 했다.
이낙연 대표는 '헤어질 결심'을 포함해 최종 입장을 정리한 뒤 20일 오전 10시에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양측이 극적으로 화해하고 타협할 가능성은 낮지만 설혹 이낙연 대표가 이번에도 양보하는 식으로 갈등을 잠시 봉합하더라도 조만간 본격적인 공천 국면으로 가면 더욱 큰 2차 폭발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총선 때까지 현 체제를 유지할지, 아니면 그 전후에 쪼개질지, 결론이 어떻게 나든 이준석 대표에게 매번 휘둘리며 무기력하거나 수세적인 행보로 일관하는 이낙연 대표가 날개 없는 추락을 끝내기는 당분간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