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독일 국빈방문 '돌연' 연기, 뒷구멍 발표 왜?

불분명한 사유로 사실상 취소…"외교 결례"

대통령실 발표 없이 익명으로 언론에 흘려

국내 경제·민생·안보 현안이 순방 연기 이유?

김건희 '디올 백' 문제 부담으로 작용한 듯

YS·DJ·MB·박근혜 때는 납득할 만한 사유 있어

2024-02-15     이유 에디터

납득하기 어려운 사태가 또 터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부터 일주일 예정된 독일, 덴마크 순방 계획을 '돌연' 연기했다. 대통령실은 이런 내용을 출발 나흘 전인 14일 언론에 '흘려' 빈축을 샀다. 특히 독일의 경우엔 의전상 가장 격이 높은 국빈방문(State Visit)이어서 더 경악하게 했다. 거의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외국 정상에게 최고의 예우를 하는 국빈방문에선 통상 예포 21발(로열 살루트) 발사와 의장대 사열, 초청국 원수 주최 만찬, 의회 연설 등의 행사가 진행된다. 따라서 국빈방문을 준비하려면 초청국으로선 엄청난 공력을 쏟아붓게 된다. 기본 행사 시나리오와 함께, 경호와 숙소, 이동, 연회, 출입국, 화물 등 챙겨야 할 게 한둘이 아니란 얘기다. 초청국의 이런 사정을 고려한다면 '나흘 전 연기'는 결례 정도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21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독 정상회담 공식 만찬에서 건배하고 있다. 2023.5.21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윤 대통령, 독일‧덴마크 순방 출발 나흘전 연기

"천재지변 아닌데, 국빈방문 연기 엄청 결례"

더 심각한 것은 대통령실이 이 문제를 대하는 태도다. 대통령의 순방 행사가 연기됐으면 마땅히 대통령실 홍보수석이나 대변인의 발표가 있고 공식 해명이 뒤따라야 했다. 실제론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나 '여권 핵심 관계자'란 익명에 숨어 슬그머니 언론에 흘리는 형태를 취했다.

정작 본인들도 낯이 뜨거웠다는 얘기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여권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순방 연기와 관련해 "경제·민생·안보 등 국내 현안에 집중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곤 우리가 요청한 순방 연기의 구체적 사유에 대해선 함구했다. 그러면서 결례에 따른 외교적 부담과 관련해선 초청국과 연기 문제를 잘 조율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란 입장을 드러냈다.

문제는 오래 준비한 국빈방문을 사실상 취소하기에 합당한 "경제·민생·안보 등 국내 현안"이 무엇이냐다. 대통령실은 공개적으로 입을 닫았지만,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대하는 의사 단체들의 집단행동 예고, 4월 총선 전 북한의 군사 도발 가능성 등을 그 대표적 사례로 일부 언론에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직접 말하기 곤란하니 언론이 '알아서' 써주길 바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50여 일 남은 총선과 연관 짓는 해석이 더 설득력 있다. 하나는 취임 이후 16차례의 순방이 웅변하듯 윤석열-김건희 대통령 부부의 '뻔질난' 외국행에 따른 막대한 비용 문제다. 작년에는 모두 13차례로 한 달에 1번 꼴도 넘었다. 작년 국빈방문만 7번이다.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거나 연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1일(현지시간)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에 도착,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서 내린 뒤 차량에 탑승해 대기하고 있다. 2023.12.12. 연합뉴스

국내 경제·민생·안보 현안이 순방 연기 이유?

김건희 '디올 백' 문제 부담으로 작용한 듯

다른 하나는 김건희 여사 문제다. 예정대로 순방이 진행됐다면 동행했을 공산이 크다. 그동안 16차례 중 한 번 빼고 모두 함께 했기 때문이다. '디올 가방' 문제 등으로 국민의 지탄받는 김 여사는 작년 12월 중순 네덜란드 국빈방문 이후 근 2개월째 잠행 중이어서 그의 순방 동행 여부는 세간의 관심거리였다.

김 여사가 동행하면 '뭘 잘 했다고 따라가느냐", 그렇지 않으면 통상 동행하는 국빈방문에 대통령 혼자 감으로써 이래저래 논란을 부르게 돼 있었다. 절체절명인 총선을 앞두고 이런 논란 자체가 윤 대통령과 여당인 국민의힘에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MBC에 따르면, 실제로 대통령실은 순방 연기를 통보하는 순간까지도 김 여사 동행 여부를 결정하지 않아서 상대 국가에서 의전과 일정 등의 조율 문제로 답답함을 호소해 왔다고 한다.

대통령의 외국 방문 행사는 보통 몇 개월에 걸쳐 일정 조율과 정부합동실무단의 현지 사전답사 등을 거쳐 진행된다. 윤 대통령의 국빈방문 때면 거의 어김없이 동행해온 재계도 전혀 예상치 못한 사태에 놀란 모양새다. 일부 기업은 현지에 파견한 선발대를 불러들였고,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제인협회는 긴급 안내 통보를 통해 MOU 체결식,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비즈니스 포럼 등을 연기한다고 통보하는 등 부산을 떨기도 했다.

외교와 의전에 정통한 전직 정부 고위당국자는 15일 시민언론 민들레와 전화 통화에서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국빈방문을 출발 며칠 앞두고 갑자기 연기를 통보한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고 엄청난 결례다"라고 말했다. 그는 "초청국 정상이 일정을 비워놓고 예산도 마련했을 테고, 더구나 우리 쪽이 요청했을 텐데 행사를 목전에 두고 못 가겠다니 한국이란 나라를 어떻게 보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로이터통신 홈페이지 1월24일자 기사 갈무리

1997년 한보사태로 YS '지중해 순방' 취소

불분명한 사유로 국빈방문 돌연 연기 처음

물론 역대 정부에서도 대통령 순방 일정을 취소하거나 연기한 적이 있다. 그 대표적 사례는 1997년 3월 초로 예정됐던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지중해 인접 국가들 순방이었다. '지중해'란 코드명이 붙은 이 행사는 이탈리아, 스페인, 튀르키예 등이 방문 대상국이었다. 대통령 경호실과 의전수석실, 외교부 등의 실무 인력으로 꾸린 선발대도 이미 각 방문국에 파견해 현장 준비를 거의 모두 마친 상태에서 출발 2주 전인 그해 2월 중순쯤 취소 결정이 내려졌다.

당시 청와대가 공식 해명은 하지 않았지만, 한 달 전인 1월 23일 한보철강 부도 사태가 당시 '소통령'으로 통하던 아들 김현철 씨의 특혜대출 의혹으로 급속히 번진 상황이 배경이었을 것으로 짐작됐다. 검찰은 2월 21일 현철 씨를 소환해 조사를 벌여 닷새 만에 무혐의로 풀어줬지만, 결국 재조사를 통해 5월 17일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현철씨를 구속했다.

김대중 대통령 때인 2001년에는 9·11 테러로 미국 등 순방 일정을 취소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 때인 2015년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미국 순방을 연기했고, 이명박 대통령 때인 2010년엔 천안함 폭침 사건이 터져 멕시코 국빈 방문 일정을 연기했다. 거의 다 국내외에서 대규모 재난이나 중대한 국가 현안이 발생했을 때라는 점에서 이번 윤 대통령의 경우처럼 모호하고 불분명한 사유로 국빈방문을 연기한 사례는 전무후무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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