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재집권 땐 나치 길 연 ‘바이마르 공화국’ 돼”

샌더스 상원의원 “트럼프 재집권, 민주주의 끝장”

트럼프는 사람들 불안과 투쟁 이용하는 선동가

억만장자 3명 재산이 1억 6천만명 재산보다 많아

“민주당, 컨설턴트 주도하는 광고제작 선거기관”

“그럼에도 싸움을 포기할 도덕적 권리가 없다”

2024-01-20     한승동 에디터
지난 18일 코로나 팬데믹(COVID) 환자 돌봄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한 미국 상원의 보건 교육 노동 연금 관련 청문회에서 발언하는 버나드 샌더스 상원의원. 2024.1.18. AP 연합뉴스

11월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77)가 다시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민주주의, 제대로 기능하는 민주주의는 끝장날 것이다.”

2016년과 2020년 미국 대통령선거 때 유력한 민주당 대선 후보로 떠올랐던 버몬트 주 연방 상원의원 버나드(버니) 샌더스(82)는 지난 13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재집권은 그의 1기 집권(2017~2021)보다 더 끔찍할 것이라며, 그의 재집권을 막기 위해 싸우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재선되면 분풀이를 할 것”

“그는 4건이나 되는 범죄혐의로 기소돼 많은 고통과 개망신을 당한 사람이다. (재집권하면) 자신의 적들에게 그것을 되돌려 주며 분풀이를 할 것이다.” 그것을 막으려면 “우리는 미국인들에게 그것(트럼프의 재집권)이 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미국 민주주의의 붕괴가 우리 모두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해 줘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유권자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어야 “트럼프를 이길 수 있다”고 했다. 미국 현역 의원들 중에 가장 왼쪽(진보, ‘좌파’)에 포진해 있는 샌더스는 트럼프가 어떤 사람인지 2016년 선거 두 달 전 그가 공화당 대선 후보 지명을 수락하면서 “나만이 (잘못된 것을) 고칠 수 있다”고 한 말을 듣고 알았다. 그때 그는 “이 자가 대통령이 되려는거야 독재자가 되려는거야?”라고 말했다.

2020년 대선 두 달 전에 샌더스는 선거에서 패배한 트럼프가 조용히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고, 그의 예언은 극적으로 실현됐다.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바이든이 승리한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의회에 난입해 점령했다. 트럼프는 선거 부정이 저질러졌다며 그 난동을 부추겼다.

4년이 지난 지금 그 후보들이 다시 격돌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선거판의 ‘판돈’은 훨씬 더 커졌다.

민주당 정부에 대한 유권자들 실망

샌더스는 트럼프의 등장을 (그에게 표를 던진) 시골의 룸펜 노동계급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면서, “모든 트럼프 지지자들이 인종차별주의자거나 성차별주의자 또는 동성애 혐오자들이라고 보진 않는다. 문제는 정부가 미국 보통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때문에 지금 조 바이든과 트럼프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많은 유권자들이 “고맙지만, 사양하겠다”며 몸을 사릴 것이라고 했다. 다수가 트럼프 재집권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모르거나, 알더라도 민주당 정부에 대한 실망 때문에 바이든 지지 표명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로 들린다.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의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젊은층과 유색인종 등 소수자(마이너리티)들이 이대로 가면 이번 선거에선 바이든 지지에 선뜻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여론조사 결과가 그것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19일 뉴햄프셔 주 콘코드에서 대선 공화당 후보지명을 위한 유세를 벌이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 2024.1.19. AFP 연합뉴스

공화당원 트럼프 압도적 지지

지난 15일 미국 대선 후보 지명전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린 아이오와 주 공화당 코커스(당원대회)에서 트럼프가 압승했다. 그는 후보 선출권을 지닌 아이오와 주 공화당 대의원을 뽑는 당원 투표에서 51.0%의 지지를 받았다. 2위 그룹인 플로리다 주 지사인 론 디샌티스(45)의 21.2%, 트럼프 정권 때 유엔대사를 지낸 전 사우스 캐롤라이나 지사 니키 헤일리(51)의 19.1%와는 큰 격차가 났다. 대의원은 득표율에 따라 배분되는데, 아이오와 주 대의원은 40명이고 트럼프가 30명을 차지했다. 전체 대의원은 2429명이며 이 중에서 과반을 얻은 후보가 대선 후보자로 최종 지명된다.

지난 16일의 <이코노미스트> 보도에 따르면, 아이오와 주 99개 카운티 중에서 트럼프는 98개 카운티에서 승리했다. 아이오와 대학 소재지로 고등교육을 받은 공화당원이 많은 존슨 카운티 한 곳만 근소한 차이(0.03%, 16일 현재)로 헤일리가 이겼다. 2위를 차지한 디샌티스는 모든 카운티들을 돌며 유세를 했으나 한 곳에서도 이기지 못했다.

트럼프를 “거짓말쟁이, 겁쟁이”라고 비난했던 크리스 크리스티는 투표를 하기도 전에 사퇴했다. 압도적인 트럼프 지지 분위기에 눌린 것이다. 전국적으로 트럼프는 공화당원의 60%가 넘는 지지를 받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자체 여론조사 집계에 따르면, 트럼프가 65%, 다크호스 헤일리는 11%다.

3월 초 워싱턴DC 법정 출두 전 사실상 후보 확정?

다음 23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도 트럼프가 압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2월 24일에는 헤일리가 지사를 지낸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프라이머리가 있다. 결정판은 다수의 주에서 대의원을 뽑는 3월 5일의 ‘슈퍼 튜즈데이’가 될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 전에 뉴햄프셔에 이어 2월의 사우스 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에서도 트럼프가 이길 경우 공화당 최종 후보 지명자로 트럼프가 사실상 확정된다. 슈퍼 튜즈데이까지 갈 것도 없다.

그럴 경우 트럼프에 대한 4건의 기소사건 가운데 가장 먼저 공판이 열리는 3월 4일의 워싱턴DC 지방법원 출두 때 트럼프는 사실상 대선 공화당 후보 확정자의 자격으로 나가게 된다.

트럼프가 받고 있는 혐의 가운데 하나는 최장 20년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는 것인데, 판결이 어떻게 나느냐에 따라 선거판도 흔들릴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선거제도와 법원의 충돌, 어느 쪽도 다치지 않고 피해갈 수는 없는 중대한 충돌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 지명전에 나선 니키 헤일리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가 뉴햄프셔 주 홀리스에서 유세를 벌이고 있다.  2024.1.18. 로이터 연합뉴스

억만장자 3명 재산>1억 6천만명 재산

충격적이고도 사람들을 격분하게 만드는 통계들을 곧잘 인용하며 자신의 정치적 ‘페르소나’를 만들어 온 ‘좌파’(민주사회주의) 샌더스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단 3명의 억만장자들(제프 베조스 아마존 회장,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 워런 버핏 버크셔 헤서웨이 회장)이 미국 사회 소득 중하층 인구 1억 6000만 명보다 더 많은 재산(부)을 갖고 있었다며 분개했다.

“세 사람! 믿을 수가 없다! 말도 안 된다! 오늘날 인플레를 감안한 노동자들의 임금은 50년 전의 노동자들 임금보다 적다. 생각해 보라! 내 손주들 생활수준이 내 세대보다 더 낮아질 것이라니.”

트럼프는 사람들 불안과 투쟁 이용하는 선동가

그는 사람들에게 민주적인 사회가 이런 심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줘야 하고, 그래야 트럼프를 이길 수 있다며, 트럼프는 사람들의 불안과 투쟁을 이용하는 세상의 선동가들이 하는 짓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다가와 내가 당신들의 강한 남자가 돼 주겠다, 내가 당신들의 이민, 트랜스젠더, 인종차별 등의 걱정거리들을 싹 다 해결해 주겠다. 내가 여러분들 곁에 있어 주겠다고 얘기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9일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동계 시장회의 참석자들 환영 연설을 하고 있다. 2024.1.19. AP 연합뉴스

“민주당은 컨설턴트가 주도하는 광고제작 선거기관”

불편하게도 그의 가장 날카로운 비판들 중 많은 것들이 민주당을 향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그는 1991년 하원의원에 취임한 이후 독립적인 무소속 의원으로 처신해 왔지만, 의회에서는 민주당 의원으로 투표를 했다. 그러면서 그는 민주당 지도부가 “컨설턴트가 주도하는 광고 제작 선거기관(머신)”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가 이기면 미국은 바이마르 공화국 된다”

샌더스는 바이든을 2007년 상원의원에 당선된 뒤부터 알고 지냈고, 그를 호감이 가고 점잖은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려면 심각한 위험에 처한 미국과 세계의 장래를 책임져야 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바이든에게 전했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사람들에게 민주사회의 정부가 그들의 심각한 요구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느냐는 것, 만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트럼프를 이길 것이고,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우리는 1930년대 초의 바이마르 공화국이 될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히틀러의 나치 집권에 길을 열어 주고 결국 2차 세계대전의 파국으로 세계를 몰고 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혼란상태로 미국이 빠져들게 될 것이라는 경고다.

샌더스가 옳았음을 가혹한 현실이 입증

샌더스는 바이든이 재선될 경우 2개월 안에 미국 노동계급이 절실하게 바라는 대대적인 개혁을 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과중한 의료비 부담을 지우는 붕괴상태의 보건의료체제, 억만장자들이 경제 정치를 좌우하는 소수 과두 지배세력(올리가르키)의 대두, 심각한 부의 불평등, 과도한 탄소배출로 인한 기후변동, 사람들의 불안을 이용하는 자들 때문에 위협받고 있는 민주주의를 미국과 현대세계가 직면한 위기의 근원으로 본다. 이의 시정을 요구해 온 그는 얼마전까지도 “선동꾼”으로 비난받았으나 “(가혹한) 현실이 버니 샌더스가 옳았음을 입증해 왔다”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그럼에도 이런 문제들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지 않는 워싱턴 정계의 현실이 대통령보다 한 살 더 많지만 더 젊어 보이는 샌더스를 괴롭히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 100일째인 14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미국대사관 앞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무슬림들이 가자지구에서 숨진 어린이가 9280명이 넘는다며, 신발 수천 켤레를 진열해 놓고 반이스라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 전쟁으로 필레스타인인 2만 3000여 명, 이스라엘인 약 1300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4.01.15. EPA 연합뉴스

샌더스의 세계관을 형성한 2가지, 가난과 유대계

샌더스는 이런 문제들과 그에 대한 지론을 지난해 2월에 출간한 그의 책 <자본주의에 화를 내도 괜찮아>(It’s OK to Be Angry About Capitalism)에서도 설파했다. 이 책에서 그는 핀란드에 한 섹션을 할애해 집중적으로 살폈다.

2020년 대선 기간에 샌더스는 <CNN>에 자신의 세계관을 형성하게 한 배경 두 가지를 얘기했다. 하나는 페인트 영업사원이었던 아버지가 생계를 책임졌던 가난했던 성장환경, 또 하나는 유대인이라는 태생적 조건이었다.

아버지는 1921년 무일푼의 17살 소년 때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대다수 친인척들은 그때 폴란드에 남았고 대부분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희생됐다. 몇 년 전 영국 옥스퍼드에서 녹색당 의원을 지낸 형 래리와 함께 아버지가 태어나 자란 폴란드의 고향마을에 가서 희생자들이 묻혀 있는 언덕같은 무덤을 봤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인종청소’를 하는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생각이 샌더스의 평생을 지배했다. 그는 이스라엘을 유대인의 안식처로 여기고 지지한다면서, 팔레스타인 주민들도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존하는 ‘두개의 국가’ 해법이다.

그는 지금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무력공격으로 “무고한 남녀와 어린이들 삶을 파괴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이를 지원하는 바이든 정부에 대해서도 점점 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미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수십억 달러의 추가 군사원조를 막으려 애쓰고 있고, 미국 무기가 가자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조사하라고 상원에 요구하고 있다.

양쪽으로부터 비판받는 샌더스

샌더스는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저지르고 있는 만행에 고통을 느끼고, 그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하마스와의 전쟁을 당장 그만두는 ‘영구 정전’에는 반대하는 애매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정전이 역시 무고한 사람들을 공격해 희생시킨 하마스의 이스라엘 파괴행위를 또 부추기게 될 것이라는 게 그 이유다. 이 문제에서는 미국 주류사회의 시각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 때문에 400명이 넘는 그의 예전 직원들이 그의 이런 입장 표명에 대해 “우리 세대 최대의 정치적 실망”을 안겨 주었다면서 입장 변경을 탄원하는 공개서한에 서명하기도 했다.

또 한편에서는 민주 공화 양당을 불문하고 초당파적 친이스라엘 세력으로부터 샌더스가 극우 네타냐후 정권을 무조건 지지하지 않고 미국의 동맹국 이스라엘을 배신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 지명전에 나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그해 2월 아이오와 주 디모인에서 열린 당원대회에 참석해 주먹을 쥐어 보이고 있다. 2016.2.1. AP 연합뉴스

“그럼에도 싸움을 포기할 도덕적 권리가 없다”

1990년에 그가 하원에 진출했을 때 진보적 의원들은 5명뿐이었지만 지금은 100명이 넘는다며, 샌더스는 그때보다 진보세력이 훨씬 강해졌다고 했다. 2016년 대선 뒤 등장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중심의 하원 내 진보적 의원들 모임인 스쿼드(Squad)를 두고 그는 “신선한 공기의 숨결(청량제)”이라고 했다. 그리고 진보적 여성 대통령의 탄생을 적극 지지한다며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샌더스는 바이든의 대선 공약이 그대로 실현된다면 그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래 가장 진보적인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공약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고, 탈화석연료, 제약업계의 탐욕 규제, 학자금 대출부담 경감 등의 조치들은 (공화당 지명 법관이 다수인) 대법원에 의해 뒤집히고 있다.

은퇴를 생각할 지친 몸의 그는 그럼에도 손주들과 미래 세대를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 그의 유전자(DNA)에 각인돼 있고, 그것이 자신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라며, “우리는 쉽게 그것을 버릴 도덕적 권리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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