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30주기…분열의 시대, 다시 부르는 이름 문익환
기념사업회, '월간 문익환'의 가상 인터뷰
민주화투쟁 세대 노장년에게 "신념 잊지 말라"
"사회가 나서 '3포 세대'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문익환기념사업회가 소장 사료를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있는 ‘늦봄 문익환 아카이브’의 한 코너인 <월간 문익환>이 최근 늦봄 서거 30주기(18일, 1918~1994)를 기념한 가상 인터뷰 기사를 게재했다. <월간 문익환>과 챗GPT가 함께 진행한 ‘특집 기사’다.
<월간 문익환>은 ‘꽉 막힌듯 답답한 요즈음, 우리가 가야할 길을 주저 없이 가르쳐 주시던 그의 혜안이 그리웠다’는 기획 취지를 밝혔다. 가상 인터뷰이긴 하지만 늦봄의 육성을 듣는 것처럼 생생하다. 인터뷰 진행 전 미리 인공지능에게 늦봄 관련 데이터들을 충분히 학습시킨 덕분이다.
늦봄은 특히 과거와 현재의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민주화운동을 함께 했던 지난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는 “젊은 날의 열정과 신념을 잊지 말고,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와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격려했다.
이제 노장년이 된 그들에게 ‘다음 세대에게 길을 밝혀주는 역할을 해달라,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아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여러분이 겪었던 경험과 지혜를 다음 세대에 전달해서, 그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선배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후배들을 이끄는 멘토가 되세요.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잊지 말고, 그 교훈을 바탕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세요. 항상 희망을 간직하세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오늘날의 ‘3포 세대’ 젊은이들에게는 “나도 스무 살에 신학교에 들어갔는데 서른여덟에야 목사가 되었으니 얼마나 좌절의 연속이었겠느냐”며 “희망을 잃지 말고 초조해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3포 현상’같은)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은 단순히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어려울 수 있으므로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노력해야 해결할 수 있다”며 특히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며, 우리 사회는 여러분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월간 문익환>은 지난 2022년 3월호로 창간했다. 창간호 주제는 ‘시인 문익환’이었다. 시인 김수영(1921~1968)의 애독자였던 늦봄은 쉰 고개 넘어 시를 쓰기 시작했다. ‘늦깎이 데뷔’였지만 봄 꽃망울 터지듯 시가 터져 나왔다. 늦봄은 그것들을 묶어 <난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어요> <꿈을 비는 마음> <죽음을 살자> <두 손바닥은 따뜻하다> 등 여러 권의 시집을 냈다.
그동안 <월간 문익환>이 다룬 주제는 ‘청년 문익환’(2022년 4월호) ‘문익환의 가족’(2022년 5월호) ‘늦봄의 벗들’(2022년 11월호) ‘월간 문익환이 만난 사람 - 정도상’(2023년 9월호) 등이다. 소설가 정도상은 인터뷰에서 늦봄과의 만남을 기억한다. 학생운동을 하던 청년 시절 여러 행사의 자원봉사를 하며 늦봄의 연설문 초안을 작성했다. 그러나 늦봄은 ‘절대로 써 드린대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문익환의 가족’에서는 늦봄의 어머니 김신묵(1895~1990) 권사의 삶을 다룬 기사가 눈에 띈다. 그는 결혼 후 북간도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인 명동여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배신여자성경학원에서 성경을 공부한 ‘신여성’이었다. 그는 기독교정신이 독립정신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깨닫고 항일 여자비밀결사대원으로 활동했다. 1919년 3월 13일 용정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생후 9개월인 장남을 들쳐업고 뛰쳐 나갔다. 그 아들이 바로 늦봄이다.
늦게 오는 봄…더 무섭다
늦봄 문익환(1918~1994)은 박정희 독재시절이던 1975년 친구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에 충격을 받고 이듬해인 1976년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당시 58세였다. 이후 18년의 삶 가운데 6차례 옥고를 치르며 11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늦봄은 ‘통일 없이는 민주화도 없다’는 신념을 가진 통일운동가였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1989년 북한을 방문했다. 뒤를 이어 소설가 황석영, 한국외국어대 재학중이던 임수경, 문규현 신부 등이 북한땅을 밟았다. 그들의 방북은 통일 운동의 지평을 새로 열었다. 그 선봉에 늦봄이 있었다. 노태우 정권은 그들의 방북을 ‘이적 행위’로 처벌했다.
세월의 벽을 뛰어넘어 그의 실천적 삶을 되새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우 지난 13일 늦봄의 30주기를 앞두고 SNS에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시대에 문 목사님의 용기와 담대함에서 답을 찾겠다”는 다짐의 글을 올렸다.
늦봄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지만, 늦게 찾아오는 봄이 아니다. ‘늦게 보았다’는 뜻의 ‘늦봄’이다.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를 피눈물 흘리며 목도하고 나서야 비로소 보았다는 뜻을 담아 스스로 지은 호다. 늦봄은 늦어 세상을 보았지만 그 자호(自號)에 일생의 결단과 결의를 다져 넣었을 것이다.
오늘 한 생애가 전령이 되어 이 모진 겨울에도 어디선가 봄이 오고 있음을, 늦을지는 몰라도 기어이 찾아올 것임을, 봄 이기는 겨울이 없음을 알려주고 있다. 봄은 무섭다. 늦봄은 더 무섭다. 그러니 늦봄을 오해한들, 그 또한 장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