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팔 '적대' 뿌리는 게르만-유대 민족주의 '교배'

'홀로코스트' 속죄한다며 팔레스타인 지지시위 탄압

이스라엘 편애‧학살 방치…'즉각 휴전' 프랑스와 대조

독일, '이스라엘 존재권' 지지 서약과 시민권 연계

'이민자 수입'은 독일 내 '백인 반유대주의' 물타기

독일, 극우화 흐름에 과거사 사죄 진정성마저 퇴색

2024-01-10     이유 에디터

 

8일 가자 중부의 알-브레이즈 지역에서 작전을 수행 중인 이스라엘 병사들   2024. 01. 08 AFP=연합뉴스]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우려는 맹목적 테러에 대한 싸움에서 이스라엘은 우리의 연대를 굳게 믿어도 된다."

독일의 아날레나 베어보크 외무부 장관은 7일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 카츠 외무장관과 억류된 인질 가족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고 더타임스오브이스라엘이 전했다. 베어보크 장관은 이 자리에서 가자의 팔레스타인 민간인 희생을 줄이기 위한 '저강도 전쟁'을 이스라엘에 요청했으나, 국제사회 절대다수가 요구하는 즉각적인 인도주의적 휴전은 거론하지 않았다. 10‧7 하마스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 군사작전이 시작됐을 당시 독일이 천명했던 '굳건한 지지와 연대'를 재확인한 것이다. 작년 10월 12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독일이 있어야 할 유일한 곳은 이스라엘 곁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 후 이스라엘군의 무자비한 공습과 지상 작전으로 94일째인 8일 현재 가자 전체 인구의 1%가 넘는 최소 2만2835명(가자 보건부 집계)의 사망자를 낳고 70% 넘는 강제 난민이 발생하는 등 제노사이드(집단 학살)와 종족 청소(ethnic cleansing)가 벌어지는데도 독일의 태도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왼쪽)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17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회담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이날 숄츠 총리는 "가자지구 주민들이 가능한 한 빨리 인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네타냐후 총리와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2023.10.18. AFP 연합뉴스

독일의 이스라엘 '편애'와 팔레스타인 '적대'

독일의 이스라엘 '편애'와 팔레스타인 '적대' 정책은 지난해 두 차례에 걸친 유엔 총회 결의안 채택 과정에서 확인됐다.

독일은 10월 27일 유엔 총회 결의안이 "일시 휴전"이란 최소한의 내용을 담았는데도 '기권'했다. 찬성 120, 반대 14, 기권 45였다. 그리고 가자 주민의 인도주의 위기 완화를 위해 "즉각 휴전" 요구를 담은 12월 12일 유엔 총회 결의안 표결에서도 또다시 '기권'했다. 찬성 153, 반대 10, 기권 23이었다. 유엔 193개 회원국의 79.2%에 이르는 절대 대수가 가자 전쟁의 즉각 휴전을 요구했지만, 독일은 결의안에 이스라엘의 자위권과 하마스 테러 규탄이 빠져 있다는 이유로 가자 주민의 막대한 인명 피해에 눈감은 것이다. 이처럼 독일은 정치적, 외교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원할 뿐 아니라 무기 수출 등 군사적 지원에도 적극적이다. 두 차례의 유엔 총회 결의안에 모두 찬성표를 던지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인도주의적 즉각 휴전 결의안과 관련해서도 찬성표를 던진 프랑스와는 전혀 궤를 달리하고 있다. 프랑스 또한 하마스의 '만행'을 규탄하지만, 이스라엘이 자위권 범위를 넘어섰다고 본다.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오른쪽 세번째)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오른쪽 다섯번째)이 3일 함부르크 성 미카엘 교회에서 독일 통일 33주년 기념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  2023.10.03  [AP=연합뉴스]

막대한 인명 피해 비판‧휴전 촉구 프랑스와 대조

독일 국내에서 팔레스타인 적대 정책은 더욱 가혹하다. '자위권'이란 구실 아래 민간인과 민간 시설을 가리지 않는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공격에 대한 반발로 아랍‧이슬람권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이스라엘 반대,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시위들이 쉼 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독일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은 이들 시위를 제한하거나 금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독일이 가장 가혹하다.

뉴욕타임스 보도(2023년 11월 10일 자)에 따르면, 베를린에서는 경찰이 폭격으로 숨진 팔레스타인 아이들을 추모하는 한 어린이의 1인 시위를 포함해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시위의 절반 이상을 금지했다. 허가된 집회‧시위라고 해도 "전쟁을 중단하라"거나 "팔레스타인에 자유를"과 같은 구호는 쓰지 못하게 했다. 이에 베를린 경찰은 "집회가 혐오 선동, 반(反)유대주의적 발언, 폭력 미화·선동으로 이어질 임박한 위험성이 있어 금지했다"고 말했다. 함부르크 당국도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를 금지하거나 시위 중 사용할 팔레스타인 국기 숫자를 제한했다. 게다가 진보적 유대인 단체인 '유대인의 목소리'의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까지 금지했다.

레바논아메리칸대학(LAU)의 데니잘 제지치 조교수(커뮤니케이션)가 7일 알자지라에 실은 '독일은 왜 그토록 극렬하게 반팔레스타인인가'란 제목의 기고에 따르면, 가자 전쟁 개시 후 첫 몇 주 동안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를 벌인 수백 명이 구금됐으며 일부는 혐오 선동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7일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팔레스타인 주민 연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펼침막에서 "팔레스타인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다. 보스니아는 언제나 당신들 곁에 있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2024. 01. 07 [EPA=연합뉴스]

'이스라엘 존재권' 지지 서약과 독일 시민권 연계

최근 독일 연방 내무부는 "강에서 바다까지"(요르단강에서 지중해까지)란 친팔레스타인 운동의 구호가 이스라엘 파괴 촉구를 뜻하는 것이라면서 금지했고 바이에른주 당국도 이 구호를 "테러의 상징"이라고 낙인찍었다. 집권 연정의 중심인 기독교민주연합(CDU)은 "자유로운 팔레스타인"이란 구호를 문제 삼았다. 기민련은 이 구호는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테러 조직의 전쟁 구호"라면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이 지역의 유일한 민주주의 체제인 유대 국가(이스라엘)를 말살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독일 정부의 방침을 따르는 일부 대학에선 경찰이 시위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다. 11월 8일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팔레스타인과 아랍계 독일인은 하마스, 반유대주의와 거리를 둘 것을 촉구했다. 그로부터 일주일가량 지난 뒤 '이스라엘의 존재 권리'에 대한 공식지지 서약을 독일 시민권과 연계시키는 법률안 초안이 독일 연방 의회에 제출됐다. 이와 관련해 마르코 부슈만 연방 법무부 장관은 "우리는 반유대주의자가 독일 시민이 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달 후 작센안할트주 정부는 시민권 신청자에게 "이스라엘의 존재권"에 대한 지지 서약을 하도록 의무화한 법률을 공포했다. 앞서 10월에 독일 연방정부는 거부된 난민 신청자를 더 손쉽게 쫓아낼 수 있는 더 강력한 추방정책을 담은 법률안 초안도 내놓았다.

 

15일 미국 뉴욕시티의 컬럼비아 대학에서 '가자에서 모두 나가라'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한 피켓에는 "가자 홀로코스트"란 글귀가 다른 피켓엔 "우리는 요구한다. 강에서 바다까지 자유로운 팔레스타인을.  제노사이드에 자금 제공을 중단하라"는 글귀가 각각 씌어 있다. 2023. 11. 15 [AFP=연합뉴스]

 '홀로코스트 흑역사' 책임 팔레스타인에 전가

이런 독일의 가혹한 팔레스타인 적대 정책에 대해 제지치 교수는 경청할만한 진단을 내놓았다.

그는 "반아랍, 반무슬림 인종주의를 더 당연시하게 만들고, 훨씬 가혹한 반이민 정책을 정당화하며, 백인 독일인들 속에 온존하는 반유대주의를 희석하려는 시도"라고 봤다. 특히 제지치는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가자 공격 이후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확산된 것을 계기로 반유대주의를 '비(非) 백인 이민자들'이 수입하고 있다는 독일 언론의 보도에 주목했다. 그는 "대중에 확산하는 이런 거짓말은 독일의 야만적, 반유대 역사를 가리고, 유대인의 고통(홀로코스트)에 관한 비난을 유럽 인종차별주의와 정착민-식민주의 체제의 희생자들에게 쏟아붓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반유대주의 정서는 여전히 독일에 온존한다. 그것은 또한 독일 사회의 반유대주의적 현재를 숨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는 독일 연방 정부 통계를 인용해 2022년 반유대주의 공격 사례의 84%가 이민자가 아닌 극우 세력의 소행이었다고 전했다.

소설가 토머 도탄 드라이푸스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독일은 반유대주의를 이민 탓으로 떠넘기고 있다"며 "이 때문에 독일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반유대주의적 발언·시위보다 훨씬 위험한 자생적 반유대주의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이 홀로코스트란 잘못된 역사에 대한 '속죄'를 한다면서 엉뚱하게 팔레스타인을 핍박하고 적대하고 있다는 얘기다.

 

'7일 팔레스타인 순교자의 날'을 기념해 가자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 도중  어린인들이 모형 주검들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2024. 01. 07 [로이터=연합뉴스]

팔레스타인, 게르만주의-시온주의 '이종교배' 희생자

제지치는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 대한 지지율이 12월 중순 여론조사에서 사상 최고치인 23%를 기록해 우파 기민련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그에 따르면, 독일을 위한 대안'은 게르만 민족주의를 찬양하고 나치 정권의 범죄를 가리는 한편, 일관되게 이민자들이 반유대주의적이라고 주장하고 연방정부는 "수입된 반유대주의"와의 투쟁을 최우선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제지치는 "시온주의와 악성 게르만 민족주의의 이러한 결합은 유대 공동체를 포함한 소수자들을 향한 인종주의적 폭력에 더욱 기름을 부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독일의 반팔레스타인주의도 독일의 인종주의 범죄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그 연장선으로 봐야 한다"며 "팔레스타인인을 포함한, 이스라엘과 독일이 저지른 폭력의 희생자들은 지금까지 충분히 인간으로 여겨진 적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독일의 팔레스타인 '적대'는 나치의 게르만 민족주의와 유대 민족주의인 시온주의의 '이종교배'로 나왔다는 게 그의 진단인 셈이다.

제지치는 "대중 담론에서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던, 독일의 식민지 제노사이드들과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다른 인종차별주의 정권들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지지와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제노사이드에서 독일의 역할은 인종차별주의적 지배구조와 '문명화되고 도덕적으로 우월한' 국가라는 독일의 자아상을 유지시키고 있다"면서 "독일이 지원하는 팔레스타인인 학살은 이제 백인,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이란 환상들을 강화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 흑역사를 반성, 사죄하고 책임자를 처벌함으로써 새로 태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던 독일이 이제 극우화 흐름을 타고 다시 과거로 퇴행하고 있는 셈이다.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