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 사회적 대화보다 정치투쟁 무게 실을 때
‘윤석열 정권심판’ 경사노위 참여한 지금도 유효
노사중심성 원칙 지키고 합의 서두르지 말아야
한국노총이 지난해 11월 13일, 위원장 명의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복귀를 선언했다.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쌓였던 불만이 금속연맹 김준영 사무처장에 대한 경찰의 폭력으로 폭발하면서 경사노위 불참을 선언한 지 다섯 달 만이다. 6만 명의 조합원이 모인 ‘2023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노동개악 노동탄압 윤석열 정권 심판하자!”를 외친지 불과 이틀 만이기도 하다. 짧은 시간을 거치면서 정부와의 물밑 대화가 급물살을 탄듯하나 '내부 공론화를 거쳤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먹을 것 없는 잔칫상 숟가락부터 든 격 아닌가
노동정치가 본업인 총연맹이 노동정치의 일환인 사회적 대화를 기피할 이유는 ‘원칙적으로’ 없다. 경사노위는 노동조합이 공식적으로 정부의 경제·사회·노동정책과 관련한 입법안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진보정당의 취약성이 노동조합의 정치적 배제를 부추긴다면 사회적 대화는 이를 벌충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윤석열 정부가 친노동 정부가 아니라고 해서 사회적 대화를 뱀 보듯 꺼릴 이유는 없다. 파업투쟁도 필요하고 거리투쟁도 필요하지만 정책투쟁도 필요하다.
한국노총이 참가를 결정한 이상 문제는 전략이다. 먼저 확인할 사실은 참여 결정 전후에 정부의 노동정책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노동탄압에 대한 사과도 없거니와 자본주도의 성장정책을 펴면서 노동을 배제해 온 정책을 바꿀 낌새도 없다. 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원한다는 신호를 보냈다지만 거기에 일말의 진심이 담겨있기나 한지 미심쩍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가 이 시점에 한국노총을 정부나 여당의 들러리로 세울 수 있다고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설마 정부가 그리도 어리석겠나. 그렇다면 총선을 앞두고 한국노총을 정치적으로 중립화하고 국민에게 사회적 대화를 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쇼일까.
사용자단체가 사회적 대화를 원한다는 신호가 잡히는 것도 아니다. 사용자단체로선 역대급 친자본 정권을 맞아 사회적 대화를 통하기보다 정부 뒤에 숨어 직접 정부와 소통하는 것을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참가하더라도 얻을 것은 별반 없어 보인다. 사실 경사노위가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먼저 의제 합의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으로서는 총선이라는 정치적 격변기를 앞두고 서두를 필요는 없다. 불리한 정치적 지형에서 합의에 연연할 필요도 없다. 먹을 것 없는 잔칫상에 숟가락 들고 달려가 봤자 먹을 것 없기는 마찬가지다.
한국노총으로서는 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정상화 하자는데 맞장구를 쳐도 좋다. 정부가 한국노총의 대표성을 인정하겠다고 했다니 그것부터 ‘현찰’로 요구해야 한다. 건강보험공단 재정운영위원회와 보건의료정책 심의위원회와 같은 정부위원회에서 노동계를 배제한 것을 철회하고 공무직 협의회를 복구해야 한다.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서 노동계 대표를 위촉하고, 경사노위가 노사의 동의 없이 꾸린 자문단과 연구회는 해체해야 한다.
경사노위는 합의 아닌, 노사 간 대등한 협의 기구
달걀 몇 개 얻으려고 사회적 대화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노총은 한국사회가 당면한 “고용노동정책과 이와 관련된 경제·사회정책 등”을 협의할 수 있어야 한다(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 제1조). 기후위기에 대응한 정의로운 전환과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비, 심화되는 불평등에 따른 취약노동자 및 취약계층 보호와 지역 활성화 등이 그것이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고 해서 노란봉투법을 사회적 대화 테이블에 올리지 말란 법은 없다.
의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노사중심성의 원칙이다. “저는 정부의 장관으로서 여러분의 심부름을 하겠습니다. 어떤 결과를 미리 내놓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어떤 것을 합의해 달라고 안건을 저희 정부가 내놓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2018년 1월 31일, 노사정대표자회의 1차 회의에서 당시 김영주 고용노동부장관이 한 말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경총과 대한상의, 그리고 노사정위원회가 함께 한 자리였다.
지난 정부, 지난 장관의 말이기는 하나 이때 확인된 노사중심성의 원칙은 사회적 주체들이 합의한, 경사노위 운영의 기본원칙이었다. 노사정위원회 시절, 정부가 앞장서서 “감 놔라 배 놔라”하며 노사의 팔을 비틀던 구태를 청산하는 작업이었다. 정부가 할 일은 따로 있다. 노사 간 힘의 균형을 지원하고 이해대립을 조율하는가 하면 합의가 이뤄지면 이행을 책임지는 것이 그것이다.
사회적 대화는 합의가 아니라 협의를 주조로 한다는 사실도 지적해야 한다. 경사노위를 구축하면서 노사정이 합의한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의 성격은 ‘합의기구’도, ‘합의를 지향하는 협의기구’도 아닌 ‘협의기구’였다. “합의가 사회적 대화를 질식시킨다”라고 본 것이다. 의제 선정에서 누구라도 이의를 제기하면 그 의제는 논의하지 말아야 한다. 논의하다 만장일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어느 시점에서 협의를 끝내면 된다. 민주주의가 과정이듯이 민주주의의 표현인 사회적 대화 역시 과정이고 그 과정은 협의다. 합의는 협의의 우연적인 결과일 뿐이다. 정부나 사용자단체가 양보할 의지가 없으면 한국노총도 진심을 보이지 않으면 된다. 시간은 한국노총의 편이다.
아닐 때 아니라 하고, 기다려야 할 때 기다려야
한국노총이 경사노위에 간다고 해서 사회적 대화가 보란 듯이 활성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가 노동배제정책을 거둬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대화는 의제의 사회화를 통해 갈등을 증폭하거나 그 자체로 갈등과 대립의 진원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화를 한다는 명목으로 투쟁의 고삐를 늦출 이유는 없다. 역설적으로 사회적 대화를 투쟁의 기폭제로 삼을 수도 있다. 정부의 노동탄압과 노동개악에 대해서는 노동조합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
투쟁은 정치투쟁도 포함한다. 현재의 노정관계에서 개혁의 무게중심은 아무래도 정치투쟁에 놓일 수밖에 없다. 총연맹이 할 일은 노동공약을 개발하고 정치적인 연대를 모색하는 일이다. 사회연대입법이 그 예다.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법제화, 그리고 일하는 사람을 위한 권리보장법 제정으로 이뤄지는 사회연대입법은 사회적 대화가 아니라 총선공약으로 접근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지난해 11월 11일에 여의도에서 외쳤던 ‘윤석열 정권심판’이라는 기조는 살아있는 카드다. 한국노총이 경사노위 참여중단을 선언하면서 밝힌 “노동자 전체를 적대시하며 탄압으로 일관하는 정권에 대해서는 전면적인 심판 투쟁에 나설 것”이라는 말(2023.6.8.)은 경사노위에 참여하는 이 순간에도 유효하다. “수도권이나 부산·경남 등 박빙지역 선거에 개입하여 지지후보를 당선시킬 수 있는 행동을 할 것이다”라는 김동명 위원장의 선언(2023.9.13.)은 정권심판 투쟁의 실천적인 표현이 될 수 있다.
사회적 대화라는 노동정치의 불씨를 꺼뜨릴 것까지는 없다. 의제 선정절차는 만장일치를 전제로 하고 의결과정에서도 한국노총은 거부권을 갖는다. 한국노총은 노동의 대표라는 자긍심을 갖고 아닐 때는 “아니다”라고 말하면 된다. 그게 한국노총의 노총다움이자 자존감을 살리는 길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어설프게 합의를 서두르지 말라는 것이다. 옛날 사무라이 고수 사이의 칼싸움에서는 상대방의 빈틈을 찾지 못해 해가 넘어가도록 서로 칼만 겨눴다는 이야기가 있다. 먼저 움직이면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