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정당은 '창당의 자유'에 해당 안돼

[중앙선관위 책임론 ②] 선제적 방지책 내놔야

여야합의론은 사실상 국힘당 손 들어주는 셈

'대통령 거부권' 피할 수 있는 권능 행사하라

2023-12-12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창당의 자유를 내세워 위장창당을 감싸줄 수 없는 점은 이혼의 자유를 내세워 위장이혼을 감싸줄 수 없는 점과 다르지 않다고 앞 글(<위성정당 논란, 중앙선관위는 책임회피 말라>☜)에서 이미 설명했다. 중앙선관위가 내걸 수 있는 다른 하나의 변명은 정당등록요건 형식심사주의다. 창당등록신청서류는 형식 심사로 그치고 웬만하면 등록증을 내어줘야 한다는 형식심사주의는 창당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합목적적 법리다. 같은 이유로 이혼서류도, 폐업서류도, 전입서류도 형식 심사로 그치지 실체적 의사로 뒷받침되는지를 묻지 않고 그 증거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 대신 들통 나면 일벌백계로 엄히 다스리는 것이 일반적인 탈법행위 단속방법이다.

위장창당은 공공연하고 떠들썩하게 동네방네에 나팔을 불며 진행된다는 점에서 단속책임을 가진 당국이 형식심사주의를 들이댈 필요도 없다. 불법행위 주체가 공개적으로 불법행위를 광고하며 지지자들에게 동참을 선동하기 때문에 형식심사를 거칠 것도 없이 그냥 현행범으로 잡아넣으면 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지난 2020년 중앙선관위가 세상이 다 아는 거대양당의 위성정당에 등록증을 내줄 때 동원했던 두 법리적 근거, 즉, 창당의 자유와 창당서류 형식심사주의는 동네방네 떠들어댄 위장창당에는 적용할 여지가 없는 엉터리법리였다.

중앙선관위, 위성정당사태에 어떻게 대응하는 게 정도인가?

지금까지 전개한 나의 논리와 법리가 옳다면 당시 중앙선관위가 어떻게 대응했어야 했을까? 중앙선관위를 입법부에서 독립한 독자적인 헌법기관으로 만든 이유와 권한, 사명을 떠올리고 해석권한과 권고권한, 고발권한 등을 최대한 행사해서 국민들 보기에도 민망하고 국격마저 떨어뜨린 위성정당 쇼를 실효적으로 제지했어야 마땅했다. 거대양당을 찍는 정당투표가 사표가 된다는 식의 혼동과 착시를 확산하는 국회와 정치권에 대해 선거법전문 해석기관으로서 그런 주장이 어째서 틀렸는지를 짚어주며 더 이상 그런 가짜논리를 발설하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경고했어야 했다.

나아가서 거대양당의 위장창당행위는 제3당들의 연동형 비례의석을 가로채는 공공연한 불법행위이자 천만 지지자들까지 끌어들이는 전대미문의 불법선동으로서 당연히 금지된다는 공식입장을 내놨어야 했다. 그래도 거대양당이 위성정당 창당행위에 착수하면 정당지도부를 선거관리 업무방해죄로 검찰에 형사고발함으로써 거대정당의 위성정당 놀음을 중단시켜야했다. 아울러 국회와 정치권에 위성정당방지법 제정을 입법권고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최적의 입법안을 제출했어야 했다. 그것이 선거법과 정당법 집행책임을 맡은 주무헌법기관으로서 요구되는 바였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위에서 예시한 일을 지금에라도 해야 한다. 우선 선관위가 정당투표 사표론에 대해 입장을 공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난 7월 헌법재판소는 현행선거법을 만장일치 의견으로 합헌으로 판단하며 위성정당에 대한 제도적 방지책을 만들어야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발맞춰서 중앙선관위는 선거법 주무기관으로서 늦어도 지금쯤은 최적의 위성정당방지법안을 작성해서 국회에 제출했어야 했다. 헌재와 중앙선관위의 적극적 요청과 지원 아래 위성정당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 법리적, 정치적으로 그만큼 어려워진다.

 

​제21대 총선 비례대표 선거 투표용지 개표 모습. 2020.4.15​ 연합뉴스

선거법 여야합의? 거대양당 담합요구에 지나지 않는다

선거법은 게임의 룰이라서 원칙적으로 여야합의로 개정되는 게 바람직하지 제3자인 중앙선관위가 끼어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식의 중앙선관위 자제론도 사이비논리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지금 가만히 있다가는 정당투표사표론과 위성정당불가피론으로 선거법이 다시 한 번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도 위성정당 탈법행위가 버젓이 되풀이되면 거대양당과 정당정치, 국회의 정당성은 물론이고 중앙선관위의 효용성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될 게 틀림없다. 중앙선관위가 시도 때도 없이 설쳐대서도 안 되겠지만 이번에도 아무 말 없이 있다가 위성정당사태가 되풀이되면 중앙선관위의 입지가 급격히 축소될 것이다.

둘째, 선거법에 대해 국힘당이 무조건 연동형 반대와 병립형 회귀를 외치고 있는 지금의 정치상황에서 중앙선관위가 여야합의를 강조하며 손을 놓아버리는 접근법은 국힘당에 비토권을 줌으로써 사실상 국힘당의 손을 들어주는 정치효과가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야합의에 힘을 실어줘도 이럴진대 소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는 것 역시 기득권과 현상유지에 힘을 실어주는 정치효과가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중앙선관위는 정치중립성이란 것이 적극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며 할 일을 제대로 할 때 확보될 수 있다는 사실에 깨어있어야 한다.

셋째, 선거법은 게임의 룰이라서 여야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은 사실상 민주당과 국힘당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는 선거법개정을 사실상 거대양당의 담합으로 처리하라는 뜻과 다르지 않다. 국회의원의 선출방식 등을 정하는 선거법 개정에는 국회의원과 소속정당이 직접적 이해관계를 갖게 마련이다. 선거법을 개정할 때에는 국회의원이 국민의 이익(선거결과의 대표성과 비례성, 다양성 증진)과 본인의 이익(소속정당의 승리와 본인의 재선)을 둘 다 대리하지 못하고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본인의 이익을 앞세울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봐야한다. 이렇게 주인(국민)과 대리인(국회의원)의 잠재적 이해충돌사안에서는 자기대리와 쌍방대리를 금지하는 것이 법의 일반원칙이다.

그렇다면 국회의원이 직접당사자성을 갖는 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등 정치관계법 분야에서는 셀프입법, 즉, 자기대리입법이 되지 않도록 개정안 작성책임을 제3의 독립기구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도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그런 방식으로 운영되는바, 앞으로는 국회가 앞장서서 혹은 유권자의 집단서명에 의해 추첨시민의회를 구성하여 개정안 성안책임을 맡기는 것이 요구된다. 이렇게 볼 때 흔히 들리는 선거법은 게임의 룰이라서 여야합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국민의 관점에서는 전혀 맞지 않는 얘기다. 게임의 룰을 직접 뛸 선수들이 정하게 하면 선수를 과보호할 가능성이 높다. 게임의 룰을 거대양당의 여야합의로 정하게 하면 기득권유지와 미세조정만 가능할 뿐 국민이 기대하는 변화와 개혁을 하지 못한다.

독립헌법기관 중앙선관위가 선제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이제부터라도 중앙선관위는 선거법전문 헌법기관으로서 선거법논란과 위성정당논란을 수수방관하지 말고 길라잡이가 될 만한 올바른 해석과 지침을 내놔야 한다. 거대양당 지도부와 소속의원, 지지자들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선거법을 농락하고 선거정의를 침해할 위험성이 감지되면 과감하게 불법판정을 내려 창당움직임을 중단시켜야 한다. 중앙선관위가 내부 심의와 토론을 거쳐 ‘거대양당과 국회의원이 직접당사자성을 갖는 선거법 개정국면에서는 국회가 직접 나서기보다 전문가위원회나 추첨시민의회 등 제3자 독립기구에게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개정안 성안책임을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공식입장을 발표한다고 상상해보라. 이런 입장이 이치와 법리에 더 맞는데 무엇을 망설이는가.

중앙선관위는 거꾸로 간다. 지금처럼 여러 개의 위성정당방지법안이 국회에 나와 있으면 종합적인 검토의견을 내는 것이 올바른 자세다. 헌재에서도 위성정당방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기 때문에 중앙선관위가 나서기도 편하다. 국회가 공식입법절차에 따라 중앙선관위에 의견 제출을 공식 요청할 때를 기다려 조용히 의견을 제출하고 말 게 아니다. 지금에라도 거대양당의 위성정당 창당은 민주법치국가에서 용납될 수 없는 법위반행동이자 법위반선동이라고 소리쳐야 한다. 위성정당방지법이 있건 없건 선거법주무기관으로서 형사고발 등 모든 권한을 동원해서 원천 차단할 방침이라고 공식입장을 밝혀야 한다. 동시에 국회에는 실효성 있는 위성정당방지법 입법을 촉구해야한다. 추후 대통령의 거부권행사조짐에 대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쐐기를 박아야 한다.

현실의 정치구도를 감안할 때 중앙선관위의 이러한 선제적 방지책은 위성정당방지입법에 한사코 반대하는 국힘당에 반대하는 정치효과를 갖는다. 하지만 정치중립의무란 것이 정치현안이 된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무턱대고 침묵하거나 기계적 중립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다. 정부여당이든 제1야당이든 군소정당이든 시민단체이든 선거법 관련주장(이를테면 정당투표사표론, 여야합의개정론)이 합리적인 근거와 논리를 갖추지 못한 채 아무 말 대잔치에 지나지 않는다면 적절한 방식으로 그 사실을 분명히 밝혀줘야 한다. 중앙선관위는 주권자 시민이나 이해관계자들이 선거법과 관련해서 거짓논리에 현혹되거나 휩쓸리지 않도록 힘껏 지원할 책임이 있다.

대법관과 동일한 6년 임기 헌법기관답게 쫄지 말고!

정치중립의무란 것이 무조건적 침묵이나 기계적 중립을 요구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선거법관련 주무헌법기관으로서 분명한 근거를 갖고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법적 책임을 방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소극적으로 해석되는 정치중립의무를 위해서라면 중앙선관위를 굳이 최고의 위상과 독립성을 보장받는 독자적인 헌법기관으로 만들어놓지 않았을 것이다. 헌법상 중앙선관위원은 9인으로 구성되는바, 임기가 대법관이나 헌재재판관과 동일하게 6년이다. 대통령의 임기(5년)이나 국회의원의 임기(4년)보다 중앙선관위원의 임기를 길게 잡은 이유는 정치권력 앞에서 눈치를 보거나 쫄지 말고 선거법 해석과 집행에 필요한 일을 정정당당하게 독립적으로 수행하라는 뜻이다.

중앙선관위가 과연 그렇게 해왔는지 의문이다. 지난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법과 선거정의를 농락하고 민주주의와 정당정치를 위협하는 위성정당 괴물의 출현을 마냥 수수방관하다 창당의 자유와 형식심사주의를 내세워 합법성을 부여했다. 비유컨대 위성정당에 관한 중앙선관위의 4년 전 판단오류는 당사자들이 위장이혼이라고 면전에서 떠벌이는데도 귀를 막고 이혼의 자유와 형식심사주의를 내세워 재판상 이혼명령을 내린 가정법원의 판단오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국민이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중앙선관위를 예우해줘야 할지 의문이다. 이런 중앙선관위는 존재이유가 없다.

위성정당문제를 풀 열쇠, 중앙선관위가 갖고 있다

올바른 중앙선관위라면 연동형선거법을 무력화할 목적 아래 위성정당 창당으로 치닫는 거대양당 지도부를 연동형 비례의석을 가로채서 군소정당에 손해를 가할 민사상 불법행위고의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비례후보를 내지 않고 정당투표에 불참하는 방식으로 정당득표율을 인위적으로 0%로 만든 거대양당 지도부를 정당득표율이 0%가 아니라야 산출할 수 있는 선거관리 후속업무를 방해할 형사상 업무방해고의를 가진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당연히 거대양당 지도부에 고강도 민형사책임을 물렸을 것이다. 나는 중앙선관위가 우리 국민들을 거대양당의 후안무치한 위성정당편법과 위법동참 선동에서 구해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만약 위에서 전개된 나의 진단과 처방이 옳다면, 국회는 당장 중앙선관위원장을 출석시켜 위의 해석과 주장에 대해 동의하는지,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 이유는 위에서 전개한 반론에 비추어볼 때 과연 타당한지, 향후 행동계획은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그에 대한 공식답변을 이끌어내야 한다. 중앙선관위가 기존입장을 바꾸고 형사고발과 등록거부 등 위성정당 불관용 방침을 밝히면 자칫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가로막힐 수 있는 위성정당방지법 입법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위성정당 악령을 물리칠 수 있다. 지금의 선거법해석논란과 위성정당논란을 풀 수 있는 열쇠는 다른 어떤 기관보다도 중앙선관위가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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