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에서 함께 무너진 '가치 기반 국제 질서'라는 허울
드러난 미국과 서방 강대국의 위선, 이중잣대
팔레스타인 폭격도, 우크라이나 폭격도 잘못
10월 7일 이스라엘군이 자국민도 죽였다는 진실
이스라엘 점령이 뿌리지만 하마스 문제점도 봐야
팔레스타인 해방을 돕기 위한 하마스 비판 필요
종속적 타협과 유혈적 저항 양자택일 넘어서야
지난 두 달 간의 이스라엘의 폭격과 학살 속에서 많은 진보진영의 사람들이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의 위선과 이중잣대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나라 정부들은 바로 얼마 전까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폭격을 비판하던 태도를 180도 바꾸어서 이스라엘의 폭격과 학살을 돕거나 방관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국과 서방 각국 정부들이 말하고 윤석열 정부가 지지한다던 ‘민주주의, 인권 등 규칙과 가치에 기반한 국제질서’라는 게 얼마나 뻔뻔스러운 듣기 좋은 말뿐이었는지 입증하고 있다. 이들에게 그것은 러시아 등 자신의 반대편을 비난할 때만 필요한 핑계에 불과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러시아의 침략과 폭격 속에서 죽어갈 때 이들이 보인 눈물은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이스라엘의 폭격과 학살 속에서 죽어갈 때는 사라져 버렸다. 결국 죽어가는 사람들이 누구의 편이고, 그 전쟁이 누구를 위한 것이고, 누구에게 이익이냐에 따라서 그때그때 다르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한 달 반 만에 팔레스타인 1만 5000명을 죽이며, 러시아가 2년 동안 죽인 우크라이나인의 규모를 훌쩍 뛰어넘었다. 이 상황은 오늘날 여전히 더 큰 문제는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의 패권주의라는 것을 보여줬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폭격은 잘못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러시아 정부와 푸틴 대통령은 이번에 이스라엘을 비판하면서 ‘폭격으로 민간인 시설을 파괴하고 아이들까지 죽이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는데,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이 하고 있는 일을 볼 때 뻔뻔스러움에 말문이 막힐 일이다.
심지어, 러시아 군은 세계적 관심과 비판이 이스라엘에 쏠린 틈에 여전히 또다시 우크라이나를 폭격하기도 했다. 그 점에서 반전 평화를 주장하는 진보진영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과 학살을 맹비난하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폭격에 대해서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미국과 서방 정부들의 선택적 공감을 비판하면서, 진보진영이 스스로 또 다른 선택적 공감을 택할 수는 없는 일이다. ‘팔레스타인이 저항을 포기하고 이스라엘에 양보해야 한다’는 말이 틀렸듯이, ‘우크라이나가 이제 그만 러시아에 양보하고 영토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어렵다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이 더 큰 문제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러시아의 잘못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의 국제질서 속에서 약소국이거나 힘이 없어서 희생당하는 이들의 저항과 목소리이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우크라이나 민중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국제 언론이 팔레스타인과 우크라이나인을 서로 대립시키는 것을 중단하고, 고통의 위계가 인종차별적 수사를 영속화하고 공격받는 사람들을 비인간화하는 것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 우리는 전 세계가 우크라이나 민중을 위해 연대하는 것을 목격했으며, 팔레스타인 민중을 위해 모두가 똑같이 행동할 것을 촉구한다.”(우크라이나-팔레스타인 연대모임)
한편, 이스라엘을 비판하면서도 하마스와 10월 7일 기습공격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도 여전히 진보진영에서 논쟁이 되고 있다. 좌파적 정치철학자인 슬라보이 지제크는 “우리는 이스라엘이 자신을 테러에서 방어할 권리를 무조건 지지하는 동시에, 이스라엘 점령지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처한 절망적 상황에 무조건 공감해야 한다”며 양비론을 폈다.
그러나, 10월 7일 희생자의 일부가 이스라엘군에 의해 살해됐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이미 그날의 이스라엘 생존자(야스민 포랏)가 ‘격렬한 총격전 속에서 이스라엘군이 죽인 사람들’에 대해 증언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이스라엘 언론 <하레츠>는 그날 희생자 중에서 일부는 이스라엘군의 전투헬기에서 총격을 받아서 죽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하마스의 기습에 당황한 이스라엘군이 무차별 총격을 가해 이스라엘 시민들까지 죽여버렸다는 말이다. 그래 놓고서 이스라엘군은 하마스만 매도하며, 그것을 빌미로 가자지구에서 10월 7일의 열 배가 훌쩍 넘는 학살을 저질렀다. "10월 7일에 저지른 일 때문에 하마스가 해체되어야 한다면 이스라엘 정부는 10배는 더 해체되어야 한다"는 홀로코스트 연구 학자 노먼 핀켈스타인의 말이 딱 맞다.
따라서 하마스를 비판하기에 앞서 이스라엘의 오랜 폭압적 점령에 10월 7일 비극의 원인과 뿌리가 있다는 것을 먼저 지적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영국의 급진좌파 활동가인 수잔 파쉬코프가 지적하듯이 “맥락이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고 해서 일어난 일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고 “잔인함은 이에 맞선 잔인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시류를 거슬러>의 편집자이고 ‘평화를 위한 유대인의 목소리’ 활동가인 데이비드 핀켈은 “전략적 목표를 넘어선 학살의 정도는 팔레스타인의 저항이나 진보적 목적과는 전혀 무관한 행동이다. … 무장을 포함한 억압받는 사람들이 저항할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이 그 방법과 정치를 분석해야 할 책임을 면제해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것은 오른쪽에서 이스라엘과 강대국들의 학살을 돕기 위한 비판이 아니라, 왼쪽에서 팔레스타인 민중의 해방을 돕기 위한 비판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런 비판을 하는 진보좌파들은 팔레스타인 해방의 대안적 방향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간다.
<하마스 억제: 팔레스타인 저항의 부상과 회유>의 저자인 타레크 바코니는 하마스의 문제는 억압의 구조 자체를 해체하지 못하는 효과적 전략의 부재에 있다고 지적한다. “폭력적이지 않은 반식민지 투쟁은 없었다. 그러나 효과적인 사상적, 전략적 정치 프로젝트 없이는 통제 불능이 될 수 있는 유혈 사태와 무장 저항은 다르다.”
미국의 좌파적 사회학자인 케빈 B. 앤더슨은 하마스의 대리주의를 비판하며 대중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도자를 암살하거나 소규모의 극적인 공격을 벌일 수는 있지만 식민주의나 자본주의로부터 진정한 해방은 말할 것도 없고 실제로 민족 독립을 달성하려면 헌신적인 젊은이들로 구성된 비밀 간부들이 대중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 대중에 뿌리를 둔 진정한 대중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 역사의 또 다른 교훈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팔레스타인 해방의 전략을 자유롭게 논의하며 검증할 수 있는 민주주의라는 것을 강조한 팔레스타인 출신의 탈식민주의 연구자인 바시르 아부 만네의 주장이다.
“결정적으로, 이스라엘-미국-EU의 팔레스타인 민주주의 억제를 끝내야 한다. … 그래야 대중 정치와 동원을 다시 활성화하고 해방을 위한 성공적 전략이 어떤 모습일지 함께 결정할 수 있다. PA의 실패한 정치와 하마스의 유혈 저항을 넘어설 길이 필요하다. … 종속적인 협력주의 정권이나 군사적 저항의 형태 사이에서 살아가는 나쁜 선택의 30년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팔레스타인의 자결권을 옹호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것이며, 이는 정의를 향한 첫걸음이다.”
하마스와 10월 7일 공격에 대한 이 모든 분석과 비판은 명백히 이스라엘의 점령, 폭격, 학살을 정당화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더구나 지금의 대학살극 속에서는 아무리 하마스와 10월 7일 공격에 비판적인 좌파라고 하더라도 하마스를 가자지구에서 모조리 제거하고 궤멸시키겠다는 이스라엘의 시도를 조그만큼도 인정할 수 없다.
하마스가 아무리 문제가 있더라도 팔레스타인 저항의 일부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고, 지금 이스라엘의 하마스 공격을 팔레스타인 저항 운동 전체에 대한 공격과 구분하기도 어렵다. 더구나, 가자의 지옥 같은 상황에서 분노에 찬 청년들이 하마스에 합류하고 유혈 저항에 나서는 그 마음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는 단정은 결코 쉽지 않다.
10월 7일 공격의 또 다른 부정적 결과는 이스라엘 내부에서 팔레스타인 해방과 평화적 공존을 지지하던 소수 진보적 활동가들의 오랜 노력에도 큰 타격을 가한 점에 있다. 그런 진보 활동가들은 지금 이스라엘에서 가자지구의 비극에 조금이라도 공감을 표현하면 곧 ‘적과 결탁한 반역자’로 취급받는 악조건 속에서 입이 막혀 있는 상황이다.
물론, 그 정반대로 ‘10월 7일 공격의 희생자와 남아있는 가족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은 곧 양비론이고 이스라엘 지지’라는 또 다른 오답도 거부해야 한다. 이것을 팔레스타인 저항을 지지한다면 하마스도 어떠한 비판도 없이 지지해야 한다는 또 다른 오답과 연결하지도 말아야 한다. 이스라엘의 폭격과 학살을 막기 위해 함께하면서, 이 비극과 재앙을 어떻게 끝낼 수 있을지 자유롭고 치열한 고민과 토론은 계속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