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공간, 그 자체로 예술이 되다
'전시 디자인-작품은 어떻게 스토리가 되는가'
국립현대미술관 1호 '전시 디자이너' 김용주
전시 대상과 공간에 관한 고정관념을 뒤집다
〈전시 디자인 미술의 발견-작품은 어떻게 스토리가 되는가〉(김용주 지음, 소동 펴냄)가 최근 출간됐다. 이 책을 소개한 언론은 두세 군데에 불과하고 그나마 단신으로 다뤘다. 전시디자인 분야가 일반인에게 생소하고 영역이 협소하기 때문이지 싶다.
나는 지은이가 책을 쓴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진작에 나왔어야 하는데, 하면서 책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지은이가 2010년 국립현대미술관(국현) 전시공간디자이너 1호로 채용된 이래 국현의 전시가 환골탈태하여 사계의 정상에 오른 것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러한 지경에 이르렀는지 몹시 궁금했다. 책이 손에 들어오자마자 단숨에 읽었는데, 꼼꼼한 기술에서 얼추 궁금증이 풀렸고 행간에서 지은이의 고민을 짐작할 수 있었다.
책 이야기에 앞서, 전시디자인 개념부터 짚자.
전시는 대상물을 일정 공간에 벌여놓아 관객한테 선보이는 행위이자 결과물이다. 전시디자인은 이러한 벌여놓음에 질서를 부여하여 대상물과 관객 사이의 바람직한 소통에 기여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A를 그냥 내보였다 치자. 단박에 “어쩌라고?”라는 반응이 나올 거다. B를 추가해 함께 선보이면 A와 B가 상관하여 A>B, A<B 혹은 A=B, A≠B 등의 관계가 성립한다. C를 더 추가하면 삼자 비교 외에 순서 즉 맥락이 생긴다. 즉, A-B-C, A-C-B, B-A-C, B-C-A, C-A-B, C-B-A 등.
전시는 공간을 전제로 한다. 같은 콘텐츠이어도 선보이는 장소에 따라, 예컨대 서울이냐, 부산이냐, 혹은 베니스냐에 따라 달리 보인다. 지역이 다르고, 관객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 같은 국현이어도 과천관, 서울관, 덕수궁 등 전시장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건물의 외양과 공간의 모양새, 즉 넓이, 층고, 창과 기둥 유무 등이 다르기에 그렇다.
이는 뮤지엄 전시 관계자라면 누구나 챙길 법한 기본에 속한다.
지은이는 몇 가지 점에서 기존의 전시 관계자와 다르다. 그는 공간을 다루고 연구하기에 공간 장악력을 갖고 있다. 2차원 도면을 3차원으로 인식할 수 있으며 그 반대도 가능하다. 그에 따라 전시 콘텐츠와 공간의 상관성에 민감하다.
감각이 남다르다. 어려서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엔진 소리만으로 차종을 구별한다고 한다. 이러한 주파수 감별력은 공간은 물론 작가, 작품이 가진 아우라에 대한 파지력과 관련되며 높은 공감능력을 수반한다. 공감을 위해 노력도 지극하다. 한 예로 정기용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그의 사진을 책상 앞에 걸어두고 오랫동안 눈맞춤을 했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전시디자인은 모름지기 이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가 뒤집은 첫 번째 상식은 ‘전시장=화이트 큐브’. 작품을 오로지 드러내려면 놓인 공간이 0이어야 한다는 논리인데, 백색은 0이 아니라 여러 색상 가운데 하나이며 ‘큐브’ 즉 방형공간 역시 수다한 공간형태 중 하나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와 관련하여 두 번 째 뒤집은 상식은 전시대상물과 전시공간이 대립적이라는 인식. 이는 양자를 대립시켜 대상물을 도드라지게 하자는 건데, 기실은 되레 대상물을 한편으로 쏠려 보이게 만든다는 것. 그는 양자가 대립이 아닌 상보적이어야 한다고 본다. 공간이 대상물을 보완함으로써 대상의 진가를 더 잘 드러낸다는 것이다.
김용주 표 전시디자인의 본령은 상식의 전도다. 그로써 그가 디자인한 전시는 대상과 공간이 융합하여 대상물들의 총체적인 가치를 돋우세우는, 거대한 설치작품으로 승화한다. 앞서 전시디자인을 기술이라고 했는데, 그의 디자인은 별도의 예술장르라고 고쳐 일러야 마땅하다.
책은 국립민속박물관을 포함하여 17년 동안 디자인한 150개 이상의 전시 가운데 12개를 선별하여 자신이 전시대상을 어떻게 이해했으며, 그에 따라 전시디자인이 그러할 수 밖에 없었음을 자초지종 설명한다.
책 첫머리에 내세운 <이중섭, 백년의 신화>(2016. 6. 3~10. 3). 탄생 100주년을 맞아 국현 덕수궁관에 펼친 대규모 회고전이다. 지은이가 밝혔듯이 전시디자이너에게 이중섭은 너무 익숙해 새롭지 않다, 작품 대부분이 크기가 작다는 핸디캡을 안고 있다. 나 역시 국현 전시에 앞서 여러 곳에서 열린 전시를 본 터라, 대여 작품 수를 늘려 국현의 힘을 과시하지 않겠나, 하는 기대에 멈춰 있었다. 막상 전시장을 둘러보고는 낮잡은 기대를 반성하고 기대를 배반한 자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우선 전시장을 덕수궁관으로 선택한 탁월함. 탄생 백주년과 덕수궁의 고풍스러움이 잘 맞았다. 이중섭의 은지화 기법과 옛 금속공예품의 은입사 기법이 유사함에 유의하여 은지화를 박물관 진열장에 넣은 것도 같은 맥락. “나는 밥만 먹여준다면, 평생 벽화를 그리고 싶어, 그것도 큰 벽화를...” 이중섭이 은지화를 그리며 벽화를 위한 밑그림이라고 말했다는 증언에 착목하여 가로 16cm 은지화를 가로 16m로 100배 확대하여 장방형 전시공간의 긴 벽에 쏘아 거대한 벽화를 구현했다. 지은이는 “누군가의 삶을 그의 시간을 되짚어가며 연구할 때, 때로는 그에게 빙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많다”고 썼다. 작가에의 빙의는 미세한 부분에서도 드러난다. 아내에게 보낸 편지화 전시영역과 재현한 미도파화랑 영역 사이의 칸막이 벽에 작은 창을 사선으로 뚫었다. 화랑 영역을 향한 창 한 켠에 이중섭이 아이들한테 사주마고 약속한 자전거를 그려 넣고 ‘희망의 창’이라고 이름 붙였다. 전시에는 30만 명의 관객이 들었고, 2017년 독일 아이에프 디자인상을 받았다.
<한국현대미술작가: 최만린>(2014. 4. 8~7. 6). 대문, 낮은 담, 대청, 툇마루, 쪽창, 안방, 사랑방, 정원, 장독대 등 한옥의 얼개를 차용한 공간에다 60년에 걸친 작풍의 변화를 재구성했다. 시기별 작품군의 특성과 단위공간의 성격을 매칭한 다음 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함으로써, 관객들이 공간을 왕래하며 최만린 작품세계 60년을 일별하도록 했다. 창 너머 과거와 미래를 비교할 수도 있고, 낮은 담 너머로 인접한 시기의 작풍을 엿볼 수도 있다. 작품세계를 관람하는 게 아니라 그 속으로 들어가 경험하는 오묘함이라니.
이 전시에서 상식을 깬 것은 생명의 근원적 형태를 조형화한 ‘태’ 시리즈의 배열. 비슷하게 생긴 작품들을 한군데에 몰아 장독대 항아리처럼 벌여 놓았다. 작품들 사이를 띄어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강변하기보다 이웃시킴으로써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인지하도록 했다. 또 다른 특징은 작가의 작업실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보관된 석고원형, 즉 작품의 형태를 결정하기 위해 시험삼아 만든 중간산물을 전시장으로 끌어낸 것. 통상 완성태로서의 작품만을 전시하는 관례를 깼다.
사전에 “이번 전시는 디스플레이가 아니라 설치 개념으로 접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작가는 전시장을 둘러 본 뒤 “이번 조각 전시의 방식은 앞으로 좋은 연구사례가 될 것이라 생각해요. 나는 해외 어디에서도 이런 형식의 전시를 본 적이 없어요. 내가 참 운이 좋은 사람인가 봐요.”라고 흡족해했다. 두어 달 뒤 일본 굿 디자인 어워드는 이 전시를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이어서 상술한 전시디자인들을 보면 상식 깨기에 더해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든 예가 대다수다.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는 상설 칸막이벽을 뚫어 작가가 길을 새로 내어 묵묵히 걸어간 삶을 형상화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보이는 수장고>는 수장고로서의 항온항습과 관람을 위한 전시기능을 충족하기 위해 통창을 내고, 이동과 보관 기능을 겸한 팰릿을 개발했다. <공간 변형 프로젝트-상상의 항해>는 한여름에 달아올라 전시공간으로 부적절한 미술관 3층 유리통로의 성질을 역이용하여 30년 뒤 미래로 가는, 달아오른 과정을 구현하였다. <어반 매니페스토 2024>는 세 곳으로 분리된 전시공간에 맞춰 전시 및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통합성을 살려냈다. 2014년 12월 29일~2015년 1월 31일 전시 비수기에 열리는 점을 감안하여 추위를 피해 잠깐 들러도 전시특징을 간파하도록 시각적으로 패턴화하고, 4주 동안 진행된 토크장의 창을 주제별로 색깔을 달리함으로써 결과물을 색채기록으로 남기는 실험을 했다. 지구를 구하자는 모토의 전시 <대지의 시간>에선 칸막이를 공기막 미러볼로 대체하여 폐기물을 줄임과 동시에 전시 대상물들의 관계를 리듬으로써 변별하는 시도를 했다.
이러한 ‘비상식적’ 디자인이 획기적이란 평가와 함께 국제적인 디자인상을 거머쥐기까지 작가들과 전시 관계자들을 설득하는데 얼마만한 공력이 들었을지 짐작이 간다.
무엇보다 전시도록에도 오르지 못하고 전시 종료와 함께 사라지는 전시디자인의 전모를 기록으로 남겨 두고두고 되새김할 수 있게 해준 지은이한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