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도 '피해자'로 만든 언론의 부산 엑스포 낙관
명백한 열세 전망에도 '대역전' 환상 심어줘
대통령과 언론들이 함께 연출한 '대국민 오도'
윤석열 보호하려 하지만 오히려 망치는 결과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공식 사과했다. “이 모든 것은 전부 저의 부족이라고 생각해달라”고 말했다. 그가 “예측이 빗나갔다”며 머리를 숙이는 장면은 그로서는 매우 희귀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었다.
30일 이를 전하는 언론의 보도는 정부의 오판에 대한 분석과 비판들이 많았다. 조선일보는 “정보 수집과 판단 역량에서 문제를 드러냈고, 대통령이 앞장선 ‘엑스포 올인’ 분위기 속에서 객관적 보고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질타했다.마치 이제서야 새로 알게 된 사실을 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개최 무산 결과가 확정된 뒤에야 언론들이 가하는 문제점 지적과 비판은 그러나 대통령 이전에 먼저 그 자신을 향했어야 할 것이었다. '객관적 인식'과 '판단 역량'의 미흡함은 언론 자신이 스스로 자기비판해야 할 점들이었다. 언론은 대통령과 함께 상대의 판단 능력을 흐리면서 객관적인 상황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을 서로 주고받으며 이번의 '엑스포 희극'을 연출한 것이었다. 투표에 의해 결정되는 국제행사의 개최지 선정은 뚜껑을 열 때까지는 물론 예측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번 엑스포 개최지 선정은 사실상 '이미 그 뚜껑이 반쯤 열린 상태'에서 투표가 이뤄진 것이었다. 한국 정부와 언론만이 다른 나라와 언론들이 모두 볼 수 있었던 그 반쯤 열린 뚜껑 속에 캄캄했다. 혹은 그 명백한 사실을 일부러 외면한 것이었다.
자사 보도에 대한 반성은 찾아볼 수 없어
엑스포 개최지 투표일을 불과 5일 앞둔 지난 24일자 조선 중앙 동아일보의 관련 기사 제목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49대 51까지 쫓아 왔다...2차 투표서 역전" (11월23일자 조선일보)
"후반전 시작, 역전골 가능하다" (11월23일자 중앙일보)
"2030엑스포 부산으로...오늘밤 뒤집는다" (11월27일자 동아일보)
그러나 윤 대통령의 사과를 전하는 언론의 지면에서 이같은 자사 지면의 보도들에 대한 자기반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언론 자신이야말로 지금의 사태를 있게 한 것에 역시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자기객관화'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조선일보의 9월 20일자 <뉴욕서 38國과 만나 ‘엑스포 홍보’>라는 기사는 78차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 뉴욕을 방문한 대통령이 첫날부터 9개 국 정상과 차례로 만나 엑스포 부산 유치 지지를 요청했다고 쓰고 있다. 이 유엔총회를 ‘엑스포 총력전’을 펼칠 마당으로 예고했다면서 "역대 정부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강행군에 참모들이 '일정이 너무 많다'고 만류하자 윤 대통령은 '나를 회담 기계라고 생각하고 필요하다면 회담을 다 잡으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윤 대통령이 3주 만에 60여 국 정상을 만나는 셈이 된다면서 “‘한 달 안에 가장 많은 정상회담을 연 대통령’으로 기네스북 신청”(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얘기가 나오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기네스북 도전까지 들먹이며 대통령의 '온몸을 던지는' 엑스포 외교에 대한 칭송을 보낸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엑스포 외교를 이유로 유엔총회에 참석했던 9월 이후 판세는 오히려 사우디 우세가 확고해졌다. 사우디에 대한 지지 선언 국가들이 대거 늘어감에도 언론은 한국 정부의 발표를 받아다가 "부산 쪽으로 유리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서방 언론들, 특히 사우디의 엑스포 개최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밀착취재하던 아랍지역 언론들에서 한국이나 이탈리아의 중도 포기 가능성을 노려 지지 국가들의 명단을 공개할 때도 한국 언론들에서는 정부의 입을 빌거나 뚜렷한 근거 없이 '박빙' '뒤집기' '턱밑까지 추격' 등의 말을 써 가며 결선 투표에서 대역전극을 펼칠 것이라는 예상을 쏟아냈다. 한두 번의 짧은 만남, 식사를 하면서 부탁하는 정도로 그 나라의 심사숙고에 의한 결정의 변심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판단한 얕은 인식을 정부와 언론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헛된 기대와 오판을 낳았다. 하루 전인 28일자 조선일보의 1면 <부산은 온힘을 다했다>에서는 패배를 예상하기로 한 듯한 표정이 엿보인다. 그러나 너무 늦기도 했거니와 자신의 책임을 면하려는 얄팍한 의도가 엿보이는 보도라는 점에서 독자들을 기망하는 것이었다.
언론 보도의 일부는 한국이 '총력전'을 충분히 펼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이에 어김없이 '전 정부 책임론'까지 꺼내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대통령이 해외 출장 예산을 당초 249억 원에서 두 배인 578억 원으로 두 배나 늘리면서 1년 반 사이에 엑스포를 유치하겠다며 96개 국 정상을 150차례 만난 것이나 거의 모든 장관들을 세계 여러 나라에 보낸 것이 총력전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민간기업들이 막대한 비용을 써 가며 엑스포 유치에 동원되고 외교 자원을 총투입한 것이 총력전이 아니면 무엇인가.
엑스포에 대한 착시가 아닌 국정 무능 덮을 묘수로 본 것
윤석열 정부의 엑스포 유치 외교의 진짜 문제는 총력전을 펼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총력전을 펼친 것에 있다. 엑스포 유치가 국가 수반이 총력을 쏟을 일인지부터가, 외교의 거의 모든 것을 그에 맞춰야 할 일인지부터가 의문이다. 엑스포라는 행사에 대한 과도한 환상에서 비롯된 총력전이야말로 실은 문제인 것이다. 대통령은 엑스포 한 번 개최하면 "비약적인 성장"이 이뤄질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이야말로 인식의 '비약'이다. 엑스포는 한 나라의 산업과 경제와 국력 비약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그 결과다. 비약하고 도약하는 과정에서의 이벤트다.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대통령의 인식의 비약을 언론은 뒷받침한 것은 물론 부채질하고 앞에서 이끌었다. 예컨대 언론들은 경제효과 61조 원이라는 추산을 들뜬 어조로 내놓았는데, 그 근거는 예의 국제행사들의 막대한 경제효과 예상들에서 드러났듯 빈약한 근거의 계산에 불과한 것이었다.
윤 대통령이 사과했어야 할 '부족한 점'은 사실 엑스포 유치 실패가 아니라 엑스포를 요술 방망이로 여긴 듯한 착시였다. 자신의 국정 파탄과 무능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를 일거에 잠재울 수 있는 묘수로 생각한 듯한 그 착시였다. 그렇다면 이는 의도된 것이었다는 점에서 단지 착시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파탄과 무능을 보여준 것이었다고 해야 할 듯하다. 그리고 그 착시를 확신으로 굳혀준 것이 언론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엑스포 실패는 윤석열 정부와 언론의 동반 실패라고 해야 할 듯하다.
언론의 엑스포 보도는 결국 그 보도를 믿은 많은 한국 국민들을 피해자로 만든 셈이 됐다. 그리고 윤 대통령 또한 그 피해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윤 대통령은 국민들에 대해 허황된 기대를 갖게 한 '가해자'이면서 언론의 턱없이 부풀린 낙관론에 의한 피해자라는 이중적인 처지가 된 셈이다. 다만 그가 입은 '피해'는 그 근원이 결국 그 자신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언론과 윤 대통령은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와 피해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비롯한 유력 매체들은 최고권력자에 대한 애정과 옹호를 노골적으로 보여왔다. 엑스포 유치에 대한 지난 1년 반의 언론 보도도 그같은 관계를 뚜렷히 보여준 것이었다. 윤 대통령은 이들 유력 언론에 의한 최대의 수혜자가 돼 왔다. 그러나 그런 애정과 비호가 낳는 역설이 있다. 때로는 뭔가를 보호하려는 것이 오히려 그 대상을 피해자로 만든다는 역설이다. 대통령에 대한 이들 매체의 보도가 지금까지 그랬듯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대통령의 착시와 오판을 낳고 곤경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동아일보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말을 빌어 “엑스포 표결 결과가 기존에 보고받은 표결 정세 판단과 다르게 나오자 (윤 대통령이) 격앙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고 쓰고 있는데, 윤 대통령이 무엇보다 격앙해야 할 것은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와 같은 매체들의 시각 속에 갇혀 있는 자기 자신의 '판단'에 대한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