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유엔 안보리에서 '북 군사 정찰위성' 놓고 격론
미 "북, 피해망상" vs 북 "즉각 군사연습 중단"
미 "조건없이 대화하자…평양이 시간‧의제 선택"
북 "미, 투석기로 위성 쏘냐…왜 우리만 문제 삼나?"
중 "북, 위협 느끼면 한반도 안보 딜레마 못 풀어"
미국, 북한 두둔 중‧러 비판…안보리 단합 촉구
예상대로 결론은 없었다. 2시간여 만에 끝났지만, 그 어느 때보다 양보 없는 격론이 오간 자리였다. 북한의 군사 정찰위성 '만리경 1호' 발사 관련 대책 논의를 위해 미국 등 서방의 소집 요청에 따라 27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진행된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날 회의에선 미국 등 서방 이사국들이 북한의 안보리 결의 위반을 규탄하고 북한을 감싼다며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를 비판한 반면, 북한은 미국만을 정조준하고 한국은 북한만을 공격하는 그야말로 물고 물리는 광경을 연출했다. 한국의 비판에도 북한은 무시로 일관했다.
미국, 북한 두둔 중‧러 비판…안보리 단합 촉구
"평양이 시간‧의제 선택…단지 받기만 하면 돼"
가장 치열했던 논쟁은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벌어졌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와 김성 주유엔 북한대사는 각각 세 차례 발언권을 신청해가면서 격돌했다. 포문을 연 것은 미국이었다. 안보리 홈페이지에 공개된 발표문에 따르면, 토머스-그린필드 대사는 먼저 탄도미사일 기술을 활용한 북한의 모든 발사 행위를 금지하는 안보리 결의를 북한이 계속 위반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안보리의 단합된 행동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몇 번이나 더 모여야 북한이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데 러시아와 중국은 동참할 것인가"라며 두 상임이사국의 북한 두둔을 비판했다.
하지만 북한에 조건 없는 대화 제의도 잊지 않았다. 그는 "평양이 시간과 의제를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두 번째 발언에선 "다시 한번 나는 전제조건 없는 우리의 대화 제의를 진지하게 표현하고자 한다. 북한은 단지 받기만 하면 된다"고까지 했다. 늘 하던 말 같지만, 미국의 자세가 뭔가 다급하고 그래서 좀더 적극적이란 인상을 준다. 조선중앙통신은 27일 '만리경 1호'가 미국 백악관과 펜타곤(국방부), 버지니아주 노퍽 해군기지, 뉴포트 뉴스 조선소 등 미 본토 내 주요 군사시설을 촬영했고, 촬영 자료에는 미 해군 핵항공모함 4척, 영국 항공모함 1척이 포착됐다고 전해 미국을 자극했다. 또한 토머스-그린필드 대사는 안보리가 외교적 대화에 나서도록 북한에 촉구하고 글로벌 비확산 체제 수호라는 안보리의 책임을 다할 것을 주장했다. 프랑스와 영국, 일본 등 서방 이사국도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는 안보리 결의를 비롯한 국제 의무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이해당사국 자격으로 참석한 한국은 북한의 '도발'을 규탄하고 안보리의 단합된 대응을 촉구했다.
북 "미, 투석기로 위성 날리냐…왜 우리만 문제?"
북한, 미국만 정조준…한국 비판엔 무시로 일관
북한은 작정하고 나온 듯했다. 김성 주유엔 북한대사는 "미국과 추종국들"의 안보리 소집 자체가 "주권 침해고 내정 간섭"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찰위성 발사는 미국과 추종 세력의 군사 동향을 명확히 파악해 철저히 대비해 또 다른 전쟁을 막기 위한 거라고 주장했다. 올해 미국이 "약 30차례의 다양한 핵 전략자산을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 전개해 가장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군사 위협을 가하고 있다"면서 일촉즉발의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도 했다. 김 대사는 최근 부산항에 미 해군 제1 항모강습단의 항공모함인 칼빈슨호가 입항한 사실과 함께 한미·한미일 연합훈련이 실시된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이런 미국의 위협이 없었다면 북한도 정찰위성이 아닌 통신 위성 등 민간용 위성부터 발사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런 위협을 유엔 헌장에 명시된 글로벌 평화와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보지 않는다면 안보리는 존재할 이유도 없고 오늘부로 해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사는 "한 나라가 자기방어 필요성에 따른 다수의 군사, 민간 위성들을 개발‧발사‧운용할 권리는 합법적이고 정당하다"며 "현재 5천 개 이상의 위성이 지구 궤도를 돌고 있는데 왜 북한의 인공위성만 문제를 삼느냐"고 따졌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술 사용 금지 관련 안보리 결의에 대해 그는 "그럼 미국은 위성을 쏠 때 탄도미사일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투석기로 위성을 날리느냐"고 반문했다. 일련의 안보리 제재 결의에 대해 북한의 주권과 생존권, 발전권 박탈을 위한 미국의 "사악한 적대 정책의 전형적 결과"라면서 일부 서방국의 편향된 이중 기준을 비판했다. 그는 안보리를 향해선, 한 주권 국가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시비 걸 게 아니라, "미국의 후원과 보호를 받은 채 중동에서 저질러진 민간인 살해와 같은 국제적 위협을 제거하는 데 집중하라고도 했다.
북‧미 '북한 자위권 정당성' 놓고 치열한 공방
미 "북, 피해망상" vs 북 "즉각 군사연습 중단"
북‧미 간 반박과 재반박이 이어졌다. 2차 발언에 나선 토머스-그린필드 대사는 북한의 자위권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미 군사 연습은 "정례적이고 방어적 성격"이고, 연습 날짜와 훈련 계획을 사전 공지하고 있으며,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술과는 달리 한미 군사 연습은 안보리 결의로 금지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토머스-그린필드의 설명이다. 북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김 대사도 2차 발언을 통해 미국이 핵무기로 북한을 위협하고 있어 재차 정당한 자위권이 있다면서 "미국이 보유한 핵무기에 상응하는 핵무기 체계를 개발‧시험‧제조‧보유할 권리가 있다"고 맞섰다. 이어 "미국은 북한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적성국으로 대우하며 공개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3차 발언에 나섰다. 토머스-그린필드 대사는 끝내 격한 감정을 표출했다. 그는 김 대사를 지목한 뒤 "지금까지 미국이 북한에 무기를 발사한 적이 없었다. 우리는 미국이 공격하지 않을까 하는 피해망상에 빠진 당신들의 행위로부터 우리 동맹국의 주권을 보호하고자 동맹국과 함께 협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3차 발언에 나선 김 대사는 "미국이 진정으로 평화와 안정을 원한다면, 즉시 역내의 모든 종류의 연합 군사연습들을 중단해야 한다"라고 맞받았다.
"북한, 위협 느끼면 한반도 안보 딜레마 못 풀어"
중국, 미국에 군사연습 자제와 현실적 방안 요구
북‧미 간 설전이 이어지자 이달 안보리 의장국인 중국이 나섰다. 겅솽 주유엔 중국 부대사는 적대와 대결로 치닫는 한반도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시한 후 지금처럼 악화하는 상황을 방치할 경우 결국 통제를 벗어나 모든 관련 당사자가 지난 수십 년간 기울였던 노력들이 훼손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겅 부대사는 특히 "북한이 위협을 느낀다면 한반도는 이런 안보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어느 나라도 다른 나라의 안보를 희생하면서 자국의 절대적 안보를 추구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의 정당한 안보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대화와 협상이라면서 미국에 군사연습 등 압박 전술 자제와 현실적 방안 제시를 촉구했다. 겅 부대사는 2차 마무리 발언에서도 같은 말을 되풀이해 강조했다.
안나 에브스티그니바 러시아 차석대사는 지난 3월 미국 주도로 한미일 3국의 "호전적인 대규모 군사 연습"을 거론하며 북한의 위성 발사가 미국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는 북한의 입장을 지지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그는 한국이 이달 말 미국 캘리포니아주 밴덴버그 공군기지에서 정찰위성 1호기 발사할 예정이라는 언론보도를 언급하면서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에 서방이 과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대응해 "보복 조치" 차원에서 9·19 남북군사합의 일부 조항의 효력을 정지한 것이 북한의 대응을 야기할 것이라고 밀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날 대북 제재 완화를 주장하기도 했으나, 미국 등 서방 이사국들은 일축했다.
한미 "북‧러 군사거래 중단하라"…러 "근거 없다"
또한 이날 회의에서 한미일 3국은 북한과 러시아 간의 무기와 위성 및 탄도미사일 기술 거래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즉각 중단을 촉구했다. 특히 토머스-그린필드 대사는 지난 7월 북한 평양에서 열린 '전승절'(6·25전쟁 정전협정체결일) 70주년 열병식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고위급 인사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비롯한 북한의 무기를 참관한 사실을 거론하면서 '특수관계'를 암시했다. 또한 그는 북한이 러시아에 1천개의 컨테이너를 열차로 보냈다는 정보를 재차 언급하면서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 강화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황준국 주유엔 대사도 북한이 러시아에 탄약을 공급했다는 언론보도를 언급하면서 "두 나라의 군사협력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러시아의 안보리 결의 이행을 촉구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의 에브스티그니바 차석대사는 "근거 없다"고 못 박고 관련 당사국들이 대규모 충돌로 비화될 위험한 행동을 중지할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