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제방 무너뜨릴 '개미굴'로 전락한 국정원
"윤, 0점 짜리 인사" 국정원 인사 파동
1년 반 인사 파동에 엉망진창 국정원
정보력도 구멍…안보 상황도 우려돼
"정보 공백 만든 게 윤석열 안보대응?"
"후임 최측근 임명하려 일부러 공백?"
"어차피 바지사장이니 상관 없단거냐"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국가정보원(국정원)이라는 조직의 존재의 이유, 즉 본질적 책무는 우리의 '자유'를 수호하는 것이다"
"국정원은 특수한 조직 … 유연하고 민첩한 의사결정 체계와 인사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
"일하는 방식과 근무태도 역시 여타 국가기관 공무원과 달라야 한다"
"거대한 제방도 작은 개미굴에 의해 무너지듯, 국가안보 수호에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2월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국가정보원 청사를 방문해서 한 말이다. 윤 대통령은 국가 안보를 '거대한 제방'에 비유해 '작은 개미굴'같은 빈틈도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지만, 이 정부 내내 쌓인 인사 난맥상이 터지면서 국정원이 안보를 무너뜨릴 '작은 개미굴 신세'가 됐다. 부디 흰개미에 속이 텅 빈 기둥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지난 26일 윤 대통령은 영국·프랑스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김규현 국정원장을 전격 경질하고 해외 담당 권춘택 1차장과 대북 담당 김수연 2차장을 교체했다. 윤 대통령은 후임 국정원장을 지명하지 않고 신임 1차장에 홍장원 전 영국 공사를, 신임 2차장에 황원진 전 북한정보국장을 각각 임명했다. 국정원은 당분간 신임 1차장이 원장 직무대행을 겸하게 된다.
원장 후임 인선도 없이 수뇌부를 한꺼번에 교체한 것은 국정원 내부에 쌓여온 인사 난맥상이 곪을대로 곪았다가 터졌다는 신호로 읽힌다. 국가 정보기관의 내부 인사잡음이 외부에 감지될 정도라면 지극히 비정상적인 신호다. 이러한 근간에는 인사 파동이 자리잡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말끝마다 '자유'를 강조하는 윤 대통령 집권 뒤 '자유의 첨병'이라는 국정원은 끊임없이 인사 파동에 시달리고 있다.
윤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검찰' 출신 조상준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이 지난해 10월 임명 4개월 만에 돌연 사퇴하면서 이들의 내부 권력 암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조 전 실장의 사의 표명 배경에 김 전 원장과의 갈등설이 거론됐다. 이들의 갈등 배경 중에는 전 정권과 관련된 인사 처리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지난 6월엔 대통령 재가를 받은 1급 인사가 일주일 만에 번복되는 일이 벌어졌다. 60여 년 국정원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초유의 사태였다. 사태 배경으론 김 전 원장 최측근의 인사 전횡과 반대파 반발이 거론됐다. 당시 이 갈등은 언론에 보도되면서 국정원 내부에서도 크게 문제가 됐다. 김 전 원장과 권 전 1차장의 불화설도 불거졌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6월 인사 파동 당시 "국정원 조직이 붕괴 직전"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김 전 원장의 최측근은 6월 인사 파동 이후 의원 면직된 것으로 전해지지만, 내부 파벌 다툼은 여전했다. 김 전 원장 최측근이 인사에 개입하려는 정황이 드러나 대통령실에서 조사에 들어갔고, 김 전 원장 측도 불화설이 있었던 권 1차장에 대해 직무 감찰에 들어가는 등 내부 갈등은 극에 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잇딴 '붕괴 경고'에도 최고 정보기관이라는 곳이 권력 암투에만 집중했던 셈이다.
윤 대통령의 전격적인 수뇌부 인사 조치에 대해 언론은 대통령이 기강 문란을 좌시할 수 없어 조치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 최고정보기관이 1년 반 가까이 인사 파동을 겪고 있음에도 방치해 안보를 무너뜨리는 '작은 개미굴'로 만든 것은 대통령 본인이다. 국정원 고위인사는 대통령실이 관여했던 만큼 대통령의 책임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정치권 일각에선 국정원 내부 암투 뒤에 대통령을 위시한 검찰 세력이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국정원이 인사 파동에서 헤맨 사이 정보력에도 구멍이 생겼다. 지난 1일 국정원 국정감사에선 재중국 탈북민 500여 명이 조직적으로 북송될 동안 국정원이 사전 징후조차 파악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해외 활동도 부진한 국정원이 벌인 일이라곤 권한에도 없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보안 점검이었다. 이로 인해 국정원의 선거개입 논란이 불거졌다. 국정원이 컨설팅 명목으로 선관위에 설치한 '해킹툴'만 84개로 파악되고 있다.
야당은 정보공백, 안보공백을 불러온 국정원 인사 파동에 대해 윤 대통령의 책임을 묻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한반도의 안보 위기가 더욱 고조되고 있는데, 정보기관 수장을 공석으로 만드는 것이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안보 대응 방안이냐"며 "정보 공백이 안보 공백으로 이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했다.
박 대변인은 "윤 대통령이 감추고 있는 진실은 무엇인가. 반년 전 국정원 인사 파동 책임을 이제 와 묻는다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라며 "윤 대통령에게 안보는 총선을 위한 선동에 불과하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후임으로 거론되는 대통령 경호처장(김용현)을 바로 앉히기에는 눈치가 보여서 정보 공백을 자초한 것이라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회 정보위 야당 간사인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너무 늦은 인사다. 진작 했어야 하는 일을 이제야 했다"며 "윤 정부 출범 후, 국정원 역사상 있을 수 없는 인사 참사가 수 차례 반복돼왔다. 심지어 언론 플레이 등 국정원 내부의 총질까지 나오는 마당이었다. 그런데도 용산 대통령실은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차장 임명하는데, 원장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 요상한 인사를 하는 것은 용산 대통령실이 국정원을 직접 장악하겠다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며 "어차피 '바지 사장'을 앉힐 생각이니 상관 없다는 생각인가 아니면 국정원장 후보자로 '오직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을 점찍어 두었으니 상식 따위는 중요치 않다는 것인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윤 대통령의 인사는 빵점"이라며 "정신 못 차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