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노조도 찬성한 노란봉투법…거부할 명분 없다

“원청도 사용자 포함·과도한 손배 제동”

국제 사회 “ILO 협약에 부합하는 법률”

“대통령 거부권 행사 노동 후진국 자인”

재계 “불법 파업 조장법” 주장 근거없어

그런데도 여당·보수 언론 재계 편들어

2023-11-10     장박원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노동계가 20년간 염원했던 ‘노란봉투법’이 9일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을 말한다.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어도 실제로 근로자와 근로조건을 지배・결정할 수 있으면 사용자로 보고, 파업 등 노조의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조합 전체가 아니라 개별적으로 묻도록 한 것이 핵심 내용이다. 법이 시행되면 하청노동자가 원청 기업을 상대로 교섭할 수 있게 되고 기업이 노동권을 제약하려는 의도로 과도하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악습에도 제동이 걸린다.  

 

9일 국회 본회의장 국민의힘 의원들 자리가 비어 있다.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은 이날 야당 단독으로 통과됐다. 2023.11.9. 연합뉴스

이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도 명시된 국제 기준이기도 하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은 물론 대기업과 공기업 사무직 중심의 MZ세대 노조인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가 노란봉투법에 적극 찬성하는 근거이자 이유다.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는 윤석열 정부가 양대 노총 대신 협상 파트너로 공을 들였던 노동단체다. 윤 대통령이 노란봉투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 MZ노조의 목소리도 듣지 않는다는 ‘불통’ 이미지가 더 강해질 게 분명하다.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는 지난 7월 ‘노란봉투법에 관한 의견문’에서 “사용자와 노동쟁의 범위 확대는 ILO 협약과 주요 선진국 입법례 등 국제 사회 노동기준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협의회는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가 특수고용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원청 사용자와의 단체교섭을 촉진할 것을 계속 권고해왔다”며 “미국과 영국 등 노동 분야 주요 선진국이 노동쟁의 범위와 단체교섭 대상에 관해 권리분쟁을 포함하는 의미로 포괄적으로 규정하거나 해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배상 의무자별로 손해배상책임 범위를 달리 둬야 한다는 조항에 대해서도 “민법의 대원칙인 ‘자기책임의 원리’를 좇는 것이므로 사법 체계의 근간과 정의, 형평의 관념에 비춰 합당하다”고 평가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3월 22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MZ노조로 불리는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와 간담회를 갖고 '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유준환 의장. 2023.3.22. 연합뉴스

ILO는 ‘결사의 자유’ 기본 협약 87호와 단체교섭에 관한 98호에 근거해 하청노동자들이 원청 사용자를 상대로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노동 3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고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할 권한을 가진 원청에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일관되게 밝혀왔다. 우리 법원에서도 원청 기업이 하청노동자에게 부당 노동행위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판결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파업 참여 정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정해야 한다고 판결이 대세를 이룬다.

그런데도 재계와 국민의힘, 보수 언론들은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불법 파업이 판을 치며 당장 산업 현장이 극심한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호도하고 있다. 노조법 개정안 내용을 왜곡해 ‘불법 파업 조장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실제와 논리가 모두 빈약한 주장이다. 

노란봉투법은 불법 파업을 허용하는 법이 결코 아니다. 노란봉투법에 폭력과 파괴가 수반된 불법 파업을 용인한다는 조항은 없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 권리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노조법 개정이다. 하청노동자들이 실제로는 원청 기업의 감독과 지시를 받는 데도 단체교섭권이 없고 상식적 차원에서 정당한 파업인데 불법으로 몰려 노동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비정상을 바로 잡자는 내용이다.

그동안 하청노동자의 권리가 제대로 보호되지 않는 바람에 엄청난 희생이 따랐다. 어쩔 수 없이 불법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많은 노동자가 범법자로 전락했다. 기업이 무분별하게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 시달려 극단적 선택을 한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런 비극이 반복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도 노란봉투법은 반드시 시행되어야 한다.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문화예술노동자 등이 노조법 2·3조(노란봉투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12.15 연합뉴스

한국은 30년 전 이미 ILO에 가입했고 지난 2021년 4월엔 ILO 핵심 협약인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단체교섭권 보호를 비준했다. 국제 협약에 부합하도록 국내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노란봉투법은 이를 이행하는 시험대다. 만약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제 사회에 다짐한 협약을 깨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국격을 대통령 스스로 깎아내리는 꼴이 될 것이다. 국제 노동단체들도 국회에서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여러 차례 피력한 바 있다. 국내 여론조사에서도 10명 중 7명 이상이 노란봉투법에 찬성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10일 노란봉투법의 국회 의결에 관한 논평에서 “원·하청 구조가 전산업에 걸쳐 보편화된 우리나라에서 노조법 개정은 의미가 깊다”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는 곧 노동 후진국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실련은 또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사용자들이 악용해왔던 손해배상 청구에 의한 실질적인 노동쟁의권 약화 시도가 줄어들 것”이라며 “ILO도 결사의 자유가 사회 진보를 위한 필수사항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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