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인이 가장 많이 쓰는 말 ‘부하오이스’

[대만통신 5] 흔한 관용어에 응축된 역사와 사회현실

"겸손 우호 문화 표현" "굴욕성 반영" 엇갈린 해석

2023-11-02     최강문 대만통신원
최강문 대만통신원(작가, 전 월간 말 기자)

결국 이명박 정부 시절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냈던 유인촌 씨가 다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과거 장관 재직 시절의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은 물론이거니와 국정감사장에서 기자들을 향해 뱉은 “찍지마, 씨*” 욕설로 인해 장관, 특히 국어를 포함한 문화정책 총괄 장관의 자질을 의심받았기에, 또 한 번 윤석열 정부의 인사에 대해 고개 저을 수밖에 없었다.

언어는 사회의 얼굴이다. 일상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사회 현상을 반영하고, 다시금 사회 현상에 영향을 주는 상호작용을 한다. 그래서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고, 덩달아 세상도 고와질 것이다. 한 공동체에 형성된 언어문화는 그 공동체의 성격을 나타내는 하나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욕설이 우리 사회의 일단면을 드러내는 건 아닐까.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를 찾아보았다.

조금 오래된 자료이지만, 2007년도 국립국어원의 발표에 따르면, 총 280여 만 개의 단어를 분석한 결과 일반 단어에서는 의존명사인 ‘것’이, 고유명사에서는 ‘한국’ 그리고 조사에서는 ‘~의’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보다 한참 앞선 1975년 한국외국어대학교의 조사연구에 따르면 ‘~하다’, ‘~은(는)’, ‘~에(에서)’와 같은 동사(보조동사)나 조사가 많이 쓰였다고 한다. 정작 한국 사회의 성격을 나타내는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은?

온라인상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을 검색해 보면 몇몇 사이트에서 ‘진짜’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로 꼽는다. 그러나 출처는 분명하지 않고, 서로 같은 내용을 공유하며 전파된 정보였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즐겨보는 한 대만인은 “한국에서는 ‘씨*’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이 말을 들은 이후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마다 해당 단어가 얼마나 많이 사용되는지를 의식하게 되었는데, 아무리 봐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가 틀림없었다.

역시 오래된 자료이지만, 한국교육개발원에서 2010년도에 서울과 전남, 충남의 초중고 학생 1260명의 언어 행태를 조사하여 발간한 「학교생활에서의 욕설 사용 실태 및 순화 대책」가 있다. 조사 대상들이 가장 많이 알고 가장 많이 사용한 욕설은 아니나 다를까, 바로 이 ‘씨*’이었다. 유인촌 씨의 장관 재임명이 그다지 어색하지 않을 법도 했다.

대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분명하다.

‘부하오이스 不好意思’.

예를 들자면 지하철을 탔을 때, 출입문 근처에 서 있는 사람에게 뒷사람이 말한다.

“부하오이스, 지에궈 不好意思, 借過.’

출입문 근처의 사람도 대답한다, “부하오이스”라고.

 

대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 ‘부하오이스’.

대만인이 가장 즐겨하는 말, ‘부하오이스’

번역하자면 ‘실례합니다만, 지나가겠습니다’로 해석되는데 한국의 ‘내립시다’, ‘내려요’에 비하면 도입부가 하나 더 달려 있는 셈이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엔 ‘부不·하오好·이意·스思? 좋은 뜻이 아니라고?’ 하고 의아해했다. 정작 중국어 교재에서 배우지 못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대만에서는 일상적으로, 가장 자주 듣는 말이기에 BBC 여행채널에서는 ‘끝없이 사과하는 섬나라’라는 제목의 글로 이 단어를 소개하기도 했다.

“‘부하오이스’ 단어는 어떤 상황에서도 사용될 수 있다. 식당에서 웨이터를 부를 때, 직장 상사에게 잘못을 사과할 때, 심지어는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에도 들을 수 있다 … 미국 뉴욕대 브루클린 칼리지 창치아쥐 부교수는 “이 말은 대만의 예의를 지키는 언어문화 때문에 자주 사용되는데, 방해가 되거나 부탁을 할 때, 말을 걸 때에 사용된다”고 밝혔다 … 타이베이에서 지하철을 타면 어렵지 않게 '부하오이스' 합창을 들을 수 있으며 승객들은 조심스레 사람들 사이를 지나쳐간다. 교실에서 학생들이 질문을 할 때 '부하오이스'로 시작하고 끝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메일을 열면 첫 번째 줄은 으레 '부하오이스'다. 이는 '약간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라는 뜻이다.”

(BBC 여행채널 「끝없이 사과하는 섬나라 The island that never stops apologizing」, 2018. 11. 2.) 

 

BBC 여행채널에 실린 ‘부하오이스’ 관련 화면 캡처.

‘부하오이스’의 활용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지하철에서 내릴 때나 길을 묻는 것처럼 무언가 상대방의 양보를 요청할 때는 물론이고, 쑥스럽거나 후회스러운 상황을 표현할 때에도 쓰인다. 때로는 거절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는데, 완곡하게 거절하는 말의 첫 시작을 담당한다. 상대와 갈등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조화로운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다. 어짊과 예의를 중시하는 유교 문화의 대만판 화법이라 할 수 있는데, 『논어』에서는 ‘예를 행함에 있어 화합을 귀하게 여기니 선왕의 도에서는 화합을 아름답게 여겨 크고 작은 일에 모두 화합을 중요시했다’고 했다.

중화권 중 유일한 유교사상의 언어버전

그럼 ‘부하오이스’는 14억 인구의 중국은 물론이고, 화교들이 밀집한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 등의 중화권 모두에서 즐겨 사용될까? 그렇지 않다. 대만에서만 종종 들을 수 있는 표현인 것이다. BBC는 기사에서 국립대만사범대학 리친안 교수의 말을 소개했다.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도덕관념과 과거 일본의 식민 지배의 영향이 어우러져 대만만의 독특한 가치를 창출했고, 실생활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항상 좋게 유지하기 위한 ‘부하오이스’ 언어문화를 만들어냈다.”

중화권의 오랜 유교 전통과 50년간의 일본제국주의 지배에 따른 ‘스미마센’식 문화가 접목되어 오늘날의 ‘부하오이스’로 대변되는 대만의 겸손한 사회문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의 약속인 언어는 당연히 그 사회의 생활양식, 사회 현상과 불가분의 관련을 맺으며 다시 사회를 재구성하는 수단으로 재생산되는 것이다.

관련된 통계에서도 ‘부하오이스’ 문화를 찾을 수 있다. 해외에서 거주하고 일하는 사람들의 글로벌 커뮤니티인 인터네이션 InterNations의 통계에 따르면 대만은 ‘세계에서 가장 우호적인 국가’ 중 하나(2021년 1위, 2023년 5위)로 높게 평가되었다.

인터네이션의 조사는 전 세계 53개 국의 여행과 교통, 레저 옵션, 의료, 환경 및 기후, 안전 및 보안 등의 5가지 항목 21가지 기본 요소에 대해 외국인이 등급을 매기는 방식으로 매년 치러지는데, 2023년도 통계에서는 대만이 5가지 항목을 종합한 ‘삶의 질’ 부문 2위로 분류되었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덩달아 스스로의 행복과 삶의 만족도까지 높인 것이다. 한국의 ‘씨*’ 이상으로 높은 사용 빈도수의 ‘F로 시작하는 네 글자’로 악명 높은 미국의 삶의 질 지수는 44위에 불과했다. 언어문화와 사회 분위기의 연관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2023년도 인터네이션 조사 삶의 질 리스트. 붉은 점이 대만, 푸른 점이 한국.

물론 너무나도 겸손한 ‘부하오이스’ 문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중국과의 갈등 속 정상적인 독립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대만 상황을 ‘유령섬 증후군’이라고 진단하는 대만 밍추안대학 첸원휘 교수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 볼모로 잡힌 대만의 상황 속에서 지나친 겸손이 되레 굴욕적인 문화로 변질될 수 있고, 나아가 대만 정체성의 덫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리친안 교수는 “대만의 깊은 ‘부하오이스’ 문화가 예의 바르고 도덕적인 사회가 평화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내다 봤다. 대만에서 청소년교육캠프를 운영하는 미뇽 고드프르와도 “‘부하오이스’에는 단순함과 열정, 관대함 그리고 약간의 대담함이 숨겨져 있고, 자신을 낮춤으로써 더 나은 자신으로 변화하는 역동성을 갖고 있다”고 대만의 문화잡지 『VERSE』(2022년 10월호) 기고를 통해 주장했다.

외유내강 ‘부하오이스’의 역동성

예의 바르고 도덕적이지만 열정과 대담함, 역동성까지 갖춘 ‘부하오이스’ 문화의 관점에서 최근 불거지고 있는 양안문제를 바라다본다면 어떠할까.

강대국 미-중의 격화된 갈등 속에서 어느 날 갑자기 ‘유령섬 증후군’마냥 분쟁지역이 되어버린 대만. 정작 대만인 그 누구도 갈등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상대국의 기분까지 망쳐가면서 강력하게 자기 주장을 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계속 끌려만 가지도 않을 것이다. 격화된 양안 갈등의 사실상 당사자인 두 강대국에 대해 대만이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의 정중한 거절’을 이룬다면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키고 양안의 평화도 지켜나갈 수 있지 않을까. 갈등 유발 요인에 대한 정중한 거절은 당연히 정치적 해결로 귀결된다. 내년 1월 동시에 치러지는 총통 선거와 입법의원 선거 향배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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