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브레이커’ 김한길, ‘윤석열 신당’ 키맨 될까?
“그럴 계획 없다”지만 큰판 흔들기 모색할 듯
민주당 대표 경험에 비춰 ‘비명계’ 끌어당기기
3040 정치지망생 영입에 심혈 기울일 가능성
다문화 가족, 고립인구 등 ‘틈새 유권자’ 공략도
‘윤석열 멘토’ 신평 “김한길에게 희망 둘 모멘텀 없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패배한 이후 수습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는 가운데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과거 정계 개편을 주도한 경험을 살려 판을 흔드는 지략으로 내년 총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부활시킬 수 있는 적임자라는 분석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행보를 보면 단순히 다음 총선뿐 아니라 전체 정치 지형에서 보수 진영의 파이를 확장하는 작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지난 17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국민통합위 만찬에는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윤재옥 원내대표 등 지도부, 주요 부처 장관, 김대기 비서실장 등 대통령실 참모들이 총출동했다. 여권 핵심부가 모인 가운데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에 있는 위원회 중에서 (통합위가) 가장 열심히 일한 위원회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면서 "우리 모두 한 번 우리 김한길 위원장과 위원들에게 박수 한 번"이라고 말했다. 공개적으로 김 위원장을 칭찬하며 힘을 실어준 것이다.
특히 윤 대통령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통합위의 정책 제언들을) 꼼꼼하게 읽어줄 것"을 참석한 국무위원들에게 당부했다.
윤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는 가운데 김한길 위원장이 도모할 수 있는 일로 가장 자주 거론되는 것이 '신당 창당'이다. 강서구청장 보선을 통해 수도권 민심을 확인했고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으면 총선 수도권 선거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신당 창당이 성공의 보증수표는 아니지만, 판을 흔들지 않고 그대로 두면 총선 승리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이러한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물론 김 위원장은 신당 창당에 선을 긋고 있다. 김 위원장은 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민통합을 위한 사회과학학회 합동토론회에 참석하기 전에 채널A 기자가 총선 역할에 대해 묻자 "그럴 계획이 없다"면서 "통합위 일에 전념한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정계 개편에 나선다면 우선 기존 국민의힘을 확대하는 방식인가 아니면 국민의힘 틀 밖에서 '윤석열 신당'을 별도로 창당하는 방식인가가 문제가 된다. 일단 국민의힘 확대 방식은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현재 국민의힘 강세 지역에는 현역 의원들이 버티고 있고 이를 뛰어넘어 검사 출신과 용산 대통령실 출신 등을 하향식으로 꽂아 넣어야 하는데 쉽지 않은 과정이다. 이미 지역에 터를 닦아 놓은 현역 의원들과 경선에서 이기기 쉽지 않으며 그렇다고 모든 지역구에 전략 공천을 할 수도 없다.
이 때문에 11월 '윤석열 신당' 창당 가능성이 거론된다. 검사 출신과 용산 대통령실 출신이 주력 부대가 되겠지만 이렇게 해서는 선거에서 선전할 가능성이 낮다. 여기서 '김한길 역할론'이 대두된다.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까지 지낸 데다 과거 열린우리당, 국민의당 창당으로 총선에서 성공을 거둔 경험이 있다. 만약 민주당 비명계를 움직이려 한다면 김한길 위원장이 적임자라는 것이다.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3일 '신율의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해 윤석열 신당 창당설에 대해 "완전히 근거 없는 것으로 생각하진 않는다"라고 밝혔다. 이어 "윤 대통령의 지지도가 워낙 낮은데다 국민의힘에서 개혁 공천을 하려면 영남 쪽 혁신이 이뤄져야 하는데, 영남 쪽에 힘 있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포진해 있어 정치 혁신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돌파구로 정치적 상황을, 판을 흔들어보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 "국민의힘, 민주당 일부 의원과 김한길 위원장이 주도하는 윤석열 연합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생각해 본 바도 없고 거론된 것을 들어본 적도 없다"라고 말했다.
특히 이 의원은 김한길 위원장의 역할론에 대해 "김 위원장이 정치 발전을 위해 양당의 구조만으로는 한계에 봉착했다는 점에서 문제의식이 있다고 한다면 신당 창당이나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에 역량을 투입할 수 있다고 본다"라고 답했다.
윤석열 신당이 일단 창당된 뒤 지지율에서 국민의힘을 압도해 국민의힘과 다시 통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보선 패배 이후에도 김기현 대표를 유지한 것은 향후 다양한 정계 개편 시나리오가 전개될 때 윤 대통령의 뜻을 국민의힘에 관철시키기 위함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 방안이 실현되면 국민의힘 내부에서 영남 지역 공천을 놓고 다투기보다는 용이하게 기존 현역의원을 물갈이할 수 있다. 다만 이렇게 되면 당내 경선과는 달리 탈당과 무소속 출마가 가능한 점은 변수다.
물론 윤석열 신당 세력이 만약 깃발을 띄우더라도 민주당 탈당 의원이 움직일지는 미지수다. 민주당을 탈당하는 의원이 나온다면 유승민, 이준석 신당이나 금태섭, 양향자 신당 등이 대안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제가 유지될 경우 진보 개혁 성향의 다른 신당이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금태섭 신당은 강서구가 과거 금 전 의원의 지역구임에도 이번 보선에서 후보조차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동력 확보 면에서 의구심이 제기된다. 물론 후보를 낼 동력이 있었는데도 전략적으로 움직이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 지역 보선에서 금태섭 신당을 언급하는 이가 거의 없었다는 점은 뼈아픈 대목이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낮은 상황에서 기존 국민의힘이 존재하는 가운데 윤석열 신당이 이준석, 유승민 신당을 압도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 대목에서 김한길 위원장의 역할이 있을 수도 있다. 윤석열 신당에 검사당 이미지를 탈색할 수 있는 3040 세대를 영입함으로써 당의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다. 평균 연령을 대폭 낮춰 '윤석열 신당'보다는 '세대교체' '혁신 공천' 이미지를 강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 당시 김한길 위원장이 여성주의자 신지예 씨를 영입한 것은 그 맹아라고 볼 수 있다. 영입의 규모와 폭이 대선 때보다는 크게 늘어날 수도 있다. 물론 이 시나리오는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은 상황에서 역량 있는 3040 세대 정치지망생이 신당으로 움직일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해소해야 실현 가능하다. 독자 생존이 어려울 경우 금태섭, 양향자 신당은 윤석열 신당에 합류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은 김한길 위원장을 중심으로 나오는 여권발 분열 시나리오가 당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일 35일 만에 당무에 복귀하면서 '가결파’를 포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여권에서 분열의 신호들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이 분열하지 않으면 총선 승리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표 시절 2016년 총선 과정을 복기해 보면 2015년 말 국민의당 탈당파들이 탈당 움직임을 본격화한 분기점으로 2015년 10월 중앙위에서 '김상곤 혁신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사건이 꼽힌다. 현재 더민주전국혁신회의에서 '김은경 혁신안' 이행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여권발 정계 개편에 민주당이 휘말리지 않으려면 민주당 지도부의 정치력이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김한길 위원장의 최근 움직임은 단순히 내년 총선을 대비한 정계 개편에만 국한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지난 1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23 대한민국 다문화 페스타'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이제는 이주배경주민, 우리가 흔히 다문화 가족이라고 부르는 분들이 한 23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면서 "강원도 인구보다 훨씬 많고 충청남도 인구와 비슷하다. 이제는 이 문제를 더 이상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되는 때가 왔다"고 말했다.
또한 통합위는 보건복지부를 통해 고립인구 전 국민 실태조사를 제안했다. 고립인구도 전국적으로 수십만 명 이상 실재하는 큰 집단이다. 다문화 가족, 고립 인구 등 기존 정치권에서 선이 닿지 않는 유권자 세그먼트로 분류해 대책을 마련하고 보수 진영의 파이를 키우는 역할을 김 위원장이 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으로서도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과거 사례를 보면 김한길 위원장의 정치 기획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그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2003년 새천년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것과 2016년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한 것은 성공한 기획이었다. 그러나 2007년 열린우리당을 선도 탈당해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했을 때는 역사상 최다 표차의 대선 패배를 초래했다. 2014년 민주당 대표로서 안철수 대표의 새정치연합과 합당해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한 때는 합당 4개월 후 730 재보선에서 패배한 뒤 동반 사퇴했다.
윤 대통령의 멘토로 불리는 신평 변호사는 정계 개편에 있어 김한길 위원장의 역할을 낮게 평가했다. 신 변호사는 지난 1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김한길 위원장에게 그만한 희망을 둘 그런 모멘텀이 없다"라고 말했다. 반면 윤 대통령의 신당 창당 가능성은 높게 평가했다. 신 변호사는 "지금 그런 말들이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윤 대통령이 취임 후 계속해서 정계 개편을 염두에 두고 지금까지 국정운영을 해왔다"라고 말했다. 이어 "자세히 말하기는 그렇지만 그런 대비(신당)는 계속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