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구형을 확정판결인 듯 왜곡, 무지인가 악의인가

'김용 징역 12년, 검은돈 얼룩' 이라는 왜곡보도

기사 내용 대부분은 검찰 주장 일방적으로 전달

피의자 입장 보도 안 하는 게 '국민 알권리'인가

국민, '정치검찰' '친검언론'을 개혁대상으로 생각

언론, 검찰 입장 벗어나고 받아쓰기 그만해야

2023-10-03     김성재 에디터
김용 민주연구원 전 부원장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불법 대선자금 수수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3.8.17. 연합뉴스

 

포털은 국민들이 TV만큼 자주 뉴스를 이용하는 미디어다. 요즘 20~30대는 TV보다 포털에서 뉴스를 더 많이, 더 자주 소비한다.  뉴스의 홍수 속에서 뉴스 소비자들은 대개 제목만으로 뉴스를 읽는다. 지난달 21일 이런 제목의 기사가 포털에 주요 기사로 올라왔다.

"이재명 대선자금·뇌물 김용 징역 12년…민주주의 꽃, 검은돈 얼룩”(뉴스1)

제목만 본 독자는 이렇게 이해했을 것이다.

‘이재명의 최측근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이재명 대선자금에다 뇌물까지 받았나보다. 그래서 징역 12년이라는 엄벌에 처해졌고, 민주주의 꽃이라는 선거는 검은돈으로 얼룩졌나보다.’

그러나 이 기사는 검찰이 법정에서 재판부에 요청한 ‘검찰 구형량’과 ‘검찰의 주장’일 뿐이다. 법정에서 내려진 최종 판결 내용이 아니다. 그런데도 기사 제목은 마치 김용 전 부원장이 법정에서 ‘최종적으로 징역 12년 판결을 받은 것’처럼 되어있다. ‘대선을 검은돈으로 더럽혔’고 여기에는 ‘이재명이 연루되어 있는 것’처럼 오해하도록 한 것이다.

다행히 본문에서는 ‘검찰이 김 부원장에 대해 12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다행’이라고 해야할 지도 의문이다. 기사 본문의 대부분은 검찰의 일방적 주장이다. 20개 단락으로 쓰인 긴 기사에 검찰로부터 기소당한 김용 전 부원장의 주장은 ‘정치 검찰의 희망사항을 그대로 구형으로 반영했다,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고 생각돼 최선을 다해 재판에 마지막까지 임하겠다’는 한 단락뿐이다.

기사에 따르면, 당일 오후 김 전 부원장의 최후변론이 이어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최후변론은 기사화 되지 않았다. 포털에 ‘주요 기사’로 배치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예 기사 자체가 없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아마도 이날 오전 검찰의 구형이 진행된 공판만 취재해 기사를 작성하고 그 이후 벌어진 김용 전 부원장 최후진술을 취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취재도 하고 기사도 썼는데 데스크가 ‘킬’하는 바람에 기사가 독자를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독자는 검찰이 주장한 김용 부원장의 범죄혐의 (‘정치자금법 위반’과 ‘뇌물수수’혐의) 만 기억하게 됐고 (그것도 매우 상세히), 김용 부원장의 자기 방어권 주장은 전혀 알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결국 독자는 기사를 끝까지 다 읽은 뒤 검찰의 장황한 주장에 설득당하고 피의자의 짧은 한마디는 ‘구차한 범죄자의 변명’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9월21일 다음 뉴스포털에 올라온 뉴스1 기사 갈무리

언론, 검찰의 입장에서, 검찰의 주장만을, 검찰이 불러주는대로 보도

검찰 ‘받아쓰기’ 기사가 문제라는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검찰의 혐의 흘리기를 ‘(~라고) 알려졌다’ ‘(~라고) 전해졌다’로 기사화하면 검찰의 표적이 된 ‘혐의자’ 혹은 ‘피의자’는 법정의 판결이 나기도 전에, 아니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심지어 검찰이 기소장을 쓰기도 전에 언론의 여론재판에서 ‘범죄자’로 낙인찍힌다.

언론학계와 시민사회, 정치권에서 검찰의 ‘피의사실 사전공표’가 명백한 불법임을 강조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검찰이 불러주기만 하면, 언론이 알아서 척척 받아 써주기 때문이다. 피의사실 공표로 검사가 처벌받은 적도 없다.

검찰 구형량과 구형사유 주장을 마치 확정된 형량과 판결사유처럼 보이도록 제목을 붙인 뉴스1 기사는 검찰 받아쓰기일 뿐 아니라 의도적 오보, 즉 왜곡보도에 해당된다. 본문에서 ‘검찰 구형’임을 밝혔지만, 독자가 포털에서 제목만으로 기사를 소비하는 요즘 뉴스 소비방식 트렌드를 기자와 데스크가 모를 리 없다. 오보임을 알면서도 이런 제목의 기사를 포털을 통해 노출시킨 것은 악의적이다.

검찰의 주장만으로 기사의 대부분을 작성한 것도 형평에 맞지 않다. 검찰의 주장은 재판에서 한쪽의 ‘주장’일 뿐, ‘사실’ 혹은 ‘진실’이 아니다. 피의자를 죄인으로 만드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검찰의 주장은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검찰의 일방적 주장이 법정에서 다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피의자는 최종판결이 나는 순간까지는 무죄인 것이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1년 형사 기소된 피의자 중 7090명이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언론이 공판에서 검찰이 주장하는 혐의사실과 구형량을 낱낱이 보도할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법적 분쟁의 한쪽 당사자인 검찰의 주장을 언론이 이렇게 상세히 알리는 것이 ‘국민의 알권리’인가? 만약 그렇다면 반대편 당사자인 피의자의 주장도 상세하게 기사를 통해 보도해야 한다. 그러나 뉴스1뿐 아니라 대부분의 언론도 검찰의 주장과 구형량만을 보도했다. 이것이 과연 공정한 보도인가?

정치검찰 입장에 선 '친검기자' '친검언론'이 언론개혁 '0순위' 

우리나라 검찰은 그냥 검찰이 아니라 ‘정치검찰’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검사 출신 윤석열 씨가 대통령이 되면서 검찰은 수사·기소를 담당하는 행정기관이 아니라 노골적으로 정치에 개입하고 정치를 흔드는 ‘정치검찰’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야당 정치인을 수백 번 압수수색하고, 십수 번 기소했다. 언론을 동원해 여론재판으로 범죄자를 만들어 왔다. 그러면서도 여당 정치인과 김건희 씨의 불법 혐의에는 한사코 조용하다. 이러니 검찰이 정치를 하고 있다는 말이 안 나올 수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기각 이후 야당에서는 검찰의 정치개입 행태를 ‘정치공작’이라고 규정짓고 있다. 정치적 중립을 애지중지한다는  기자들과 언론들이 정치집단의 일방적 주장을 이렇게 충실하게 받아써 주는 게 저널리즘 원칙이나 취재보도 윤리에 맞는 일인가?

언론권력은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는 바, 한국사회 개혁 대상 1, 2호다. ‘검찰 출입기자단’을 고집하면서 검찰과 ‘잘못된 만남’을 계속하고 있는 ‘친검(親檢) 기자’ 혹은 ‘친검 언론’은 개혁대상 0순위라고 해야 할까? 언론이 이제 검찰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검찰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쓰는 일을 그만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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